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25화 (125/234)

125화 드래곤 라 키레아스 (5)

라 키레아스가 입을 크게 벌리는 걸 본 데비하이드가 호들갑을 떨었다.

-또 드래곤 브레스를 쏘려나 봐.

-나도 봤어. 파이슨, 막아!

메라자이드의 지시에 파이슨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드래곤 브레스에 대비했다.

그러나.

라 키레아스는 드래곤 브레스를 쏘는 대신, 바로 앞에 선 파이슨을 집어삼켰다.

덥석.

그걸 본 데비하이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 지금 뭐 한 거야?

-저런 바보짓을 하다니. 파이슨을 삼킨다고 먹을 수 있을 거 같냐? 입속에서 공격당하지.

메라자이드가 비웃었다.

안 그래도 메라자이드가 만든 데스 나이트인 만큼, 잡아먹혔는데도 건재한 게 느껴졌다.

-파이슨, 온 힘을 다해 불태워 버려!

메라자이드의 지시에 파이슨이 업화의 불길을 최대로 일으켰다.

화르르르르르.

그 탓인지 라 키레아스의 몸이 서서히 타오르는 게 아닌가?

붉은색 비늘에 화염을 주로 다뤄 레드 드래곤이라고도 불리는 존재라도 별수 없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 키레아스는 천천히 하강하다 지면에 추락했다.

쿠쿠쿵!

흙먼지가 일어나는 와중에 파이슨이 크게 뛰어서 빠져나왔다.

그걸 본 메라자이드는 얼떨떨한 눈빛을 했다.

-정말 해치운 건가?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이기게 될 줄이야.

-이기면 된 거지. 그럼 본 드래곤을 하나 더 갖게 되는 거야? 부럽다, 부러워.

-그렇게 말해도 안 줄 거야.

-지금 쓰는 본 드래곤을 줘도 되는데…….

그때였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너무 성급한걸?”

그러면서 라 키레아스가 천천히 일어서는 게 아닌가?

-응? 사, 살아 있어?

-심지어 눈도 멀쩡해.

놀라는 두 리치를 향해 라 키레아스가 히죽 웃었다.

“덕분에 이번에 쉽게 탈피했다.”

-뭐?! 탈피? 도마뱀처럼?

그러고 보니 비늘이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윤기가 흐르고 매끄러운 게 반질반질했다.

무엇보다 바닥에 껍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거랑은 좀 달라.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거든. 그러면서 더욱 커지고 강해지지.”

-그럼 지금까지 잠에서 깨어나면 대륙을 불태우고 다녔던 것도?

“그래, 내 껍데기를 태워 벗기 위해서지. 원래라면 꽤 고생스러운 일이거든. 잠에서 깨기 싫을 정도로.”

라 키레아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회복해도 또 해치우면 그만이다! 다들 한꺼번에 덮쳐!

메라자이드의 외침에 본 드래곤, 파이슨, 올리버를 비롯해 언데드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화하는 사이에 가까이 모이게 한 거였다.

“방금 더 강해진다고 한 거 못 들었어?”

비웃듯이 말한 라 키레아스의 비늘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

데비하이드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거대한 화염이 사방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화염이 잦아든 뒤에는 본 드래곤과 파이슨, 올리버를 비롯해 데스 나이트 같은 강한 언데드 몬스터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근방에 있던 대부분의 언데드 몬스터가 소멸한 거였다.

-이, 이럴 수가……. 끝장이다.

-무슨 소리! 아직이다!

메라자이드가 지팡이를 들어 언데드 몬스터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먼저 데스 나이트들이 덤벼들었다가 라 키레아스가 휘두르는 꼬리에 와르르 박살이 났다.

그중에 데스 나이트 올리버만은 피해서 공격을 퍼부었지만, 새로운 비늘을 뚫지 못하고 결국 드래곤 브레스에 새카맣게 타 버리고 말았다.

파이슨도 업화의 불꽃을 앞세워 덤볐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자근자근 씹혀 그 형체도 온전히 남지 않았다.

본 드래곤도 마찬가지.

라 키레아스에게 육박전을 벌이다가 그 거구가 하나둘 부서지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확실히 탈피 전보다 훨씬 강했다.

-아, 안 되겠다. 도망가자.

겁먹은 데비하이드가 말했지만, 메라자이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돼! 어차피 도망치기 힘들 거야, 그럴 거면 끝까지 싸우는 게 나아!

“오, 정답이야. 저 멍청한 해골바가지보다는 해골 뼈다귀가 뭘 좀 아는군.”

라 키레아스가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메라자이드가 눈빛을 가늘게 뜨고 노려봤다.

-뭐? 다시 말해 봐.

-허걱! 겁도 없이 메라자이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을 하다니.

위태로운 순간이었지만, 데비하이드가 걱정했다.

그걸 들은 라 키레아스는 되레 더 비아냥거렸다.

“왜? 해골 뼈다귀라고 부르니까 열받아? 해골 뼈다귀?”

-어디 해골 뼈다귀한테 한번 당해 봐라.

“그래 봐야 해골 뼈다귀가 하는 말이라 안 무서운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끝까지 조롱하는 라 키레아스 때문에 분통이 터진 메라자이드가 악을 쓰며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마력이 지팡이를 휘감더니, 그 끝에 있던 현자의 돌을 터트렸다.

-뭐 하는 거야? 그 귀환 걸 왜 부숴?

-잠자코 두고 보기나 해.

메라자이드가 날 선 목소리로 대꾸하는 순간, 현자의 돌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사방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으윽!

메라자이드가 보랏빛 눈빛을 번뜩이며 집중하니 방출된 마력이 서서히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본 드래곤의 뼈다귀가 하나둘 메라자이드에게 날아와 붙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철컥.

철컥. 철컥.

-어? 어떻게 된 거지?

“저건 뭐지?”

천 년을 넘게 살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라 키레아스도 눈을 크게 떴다.

메라자이드에게 붙은 본 드래곤의 뼈다귀들은 전과 달리, 거대한 사람 형태의 갑주가 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검은데 새카맣게 타 버린 데스 나이트 올리버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데스 나이트 파이슨은 그대로 재가 되더니 검의 모습으로 장갑에 쥐였다.

그걸 본 데비하이드가 경악했다.

-저, 저게 가능해?

-만물을 변형시키는 현자의 돌이 가진 특성을 이용한 거야.

메라자이드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자의 돌을 파괴해서까지 합쳐 놓은 덕분에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힘이 전신을 맴도는 중.

지금이라면 뭐든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에 휩싸였다.

“호오, 나름 멋있는걸.”

라 키레아스마저도 새삼 달리 볼 정도였다.

-비켜!

-엇!

그때 데비하이드를 저 멀리 밀어 낸 메라자이드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럼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와라!”

그렇게 데비하이드와 라 키에라스가 격돌했다.

콰콰쾅!

어마어마한 충격에 하늘이 흔들리고, 대지가 요동쳤다.

태풍과 지진도 동시에 강림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참 뒤.

자연재해급 소란이 겨우 진정됐을 때, 드래곤 라 키레아스만이 서 있었다.

메라자이드는 산산이 부서진 본 드래곤 갑옷 가운데에 쓰러진 채였다.

-큭, 분하다.

더는 꼼짝할 힘도 없던 메라자이드는 꿈틀거리면서 이를 갈 뿐이었다.

라 키레아스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비웃었다.

“분해? 그럼 다음에 다시 도전해 봐. 아니, 다음 기회가 있다면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드래곤 브레스를 메라자이드에게 뿜어냈다.

화르륵.

메라자이드의 전신 뼈다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럼 내 귀염둥이의 복수부터 하러 가 볼까?”

그렇게 말한 라 키레아스는 그대로 클리페우스성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 * *

라 키에라스가 날아간 뒤, 데비하이드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메라자이드를 살폈다.

-야, 괜찮아?

-이게 괜찮아 보여? 아파 죽겠다.

메라자이드는 드물게 고통을 호소했다.

메라자이드는 그만큼 심각한 상황, 무엇보다 메라자이드의 모습이 이상했다.

-이거 왜 이래? 전신이 뻘겋잖아.

-단순한 드래곤 브레스가 아니라서 그래. 속에서부터 뜨거운 게 가시질 않아.

-아픈데 괜히 버티지 말고 이 신체는 포기하고 라이프 베슬을 옮겨.

-…안 돼. 지금 내 상태라면 예비 라이프 베슬에 들어가 봐야 라이프 베슬이 깨질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저 빌어먹을 도마뱀 자식이 내 마력을 끓어오르게 만들었어. 그 때문에 지금 있는 라이프 베슬도 깨질 판이야.

어느 라이프 베슬에도 못 들어간다는 건, 이대로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봐.

데비하이드가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을 뒤지는데 메라자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을 거야. 그래도 마지막에 네가 함께 있어서 외롭진 않네.

-…….

난데없는 소리에 데비하이드가 멈칫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우리가 그동안 싸우긴 많이 싸웠지만, 우리의 운명이 그런 걸 어쩌겠어?

리치끼리는 원래 사이가 나빴다.

모든 생명체를 자신의 부하로 만들려는 리치에게 다른 리치는 경쟁자이니 당연했다.

네크로맨서를 부하로 두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일 뿐.

만약 제자가 자신보다 강해질 기미가 보이면 가차 없이 제거한다.

데비하이드와 메라자이드 둘 다 그렇게 스승에게 죽임당할 뻔하다가 탈출해 리치가 된 거였다.

그렇게 수백 년을 넘게 경쟁하며 다투면 누구라도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특히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만큼 더 아프고 괴롭게 만들 수 있기에 더욱 그랬다.

-슬슬 한계야. 이제 이별이네.

-잠깐만 기다려 보라니까! 아, 찾았다. 이거 한번 써 보자.

데비하이드는 가방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기다란 병 안에는 뭔가 들었는데, 작고 하얀 나뭇가지 조각이었다.

-이건 뭐야?

-라이프 베슬이야. 만약을 위해 내가 카엘에게 부탁해서 만들어 온 거야. 드워프가 룬도 새겨 줘서 아주 튼튼해.

라이프 베슬치고는 확실히 두꺼운 게 튼튼해 보였다.

-카엘이 드래곤 브레스에 당하면 뜨겁겠다 하면서 빙한목의 나뭇가지도 넣어 줬거든. 잘됐네.

저 작은 나뭇가지가 빙한목의 나뭇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저거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만했다.

-몇 개나 받아 뒀으니 일단 실험이라도 해 보자.

-…그래.

메라자이드는 라이프 베슬로 마력을 옮기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만날 날 괴롭힐 궁리만 하더니. 왜 날 살리려는 거야? 지금이야말로 소멸시킬 절호의 기회인데.

-네가 밉긴 해도 소멸하는 걸 원한 건 아니었거든.

-치.

-그러니까 지금은 얌전히 고맙다고나 해.

-…고, 고마워.

-그거면 됐어.

따뜻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메라자이드가 천천히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데비하이드가 손에 쥔 라이프 베슬에 마력이 차올랐다.

뜨거운 마력이 빙한목의 나뭇가지에 반응해서 격렬히 끓어올랐지만, 이내 가라앉았다.

메라자이드가 소멸의 위기를 넘긴 거였다.

그렇게 라이프 베슬에 마력을 순조롭게 채우고 나자 메라자이드가 다시 형체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야가 너무 낮은 게 아닌가?

-어떻게 된 거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메라자이드는 깜짝 놀랐다.

부활한 건 좋았지만, 아기 체형이 되어 있는 거였다.

데비하이드처럼.

-풋, 귀엽네.

-야! 웃지 마!

메라자이드는 데비하이드에게 소리치며 옥신각신했다.

신기하게도 그러는 게 너무나도 마음이 편한 게 아닌가?

‘입 밖으로 내진 못하지만.’

* * *

그 시각 클리페우스성에서는 한창 전후 처리에 힘쓰고 있었다.

트팍이 죽고 드래곤의 저주에서 벗어난 몬스터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원래부터 흉포한 녀석들은 저주에서 풀리든 말든, 주변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눈치 빠른 녀석들은 재빨리 회색산맥으로 도망쳤다.

엘프와 드워프, 라이칸스로프들은 주저하며 상황을 살폈다.

동족이 인간들과 함께하는 걸 본 탓이었다.

그중 드래곤 둥지에서 카엘 일행을 본 드워프들은 제일 먼저 장벽으로 향했다.

엘프들은 엘프 세 자매를 비롯해 클리페우스성에 정착한 엘프들이 가서 진정시키고 데려왔다.

라이칸스로프들은 유독 경계심이 심했는데, 거대화한 동족이 멋진 무기를 들고 다니는 걸 보고 호기심을 느끼고 합류하기로 했다.

그래도 일부는 경계하며 회색산맥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쉬운 건 하피들이었다.

여기서 하피들을 잘 챙겨서 왕국에 데려가면 좋아할 거 같은데, 빠르게 회색산맥으로 날아가 버렸기에 클리페우스성으로 오라고 설득할 수가 없었다.

한편 클리페우스성의 사람들은 오크 로드 트팍을 해치운 카엘이 성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 속에서 카엘은 장벽 위에 있는 티겔 공작에게 올라갔다.

“승리를 축하한다. 잘 싸웠다.”

“감사합니다.”

“몸은 어떠냐?”

카엘이 대답하기도 전에 막시마가 걱정했다.

“너무 무식하게 싸우던데, 많이 아팠겠다.”

“괜찮습니다. 새롭게 만든 약을 사용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도 좀 더 편하게 싸우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브란의 우려에 카엘이 멋쩍어하며 대꾸했다.

“그간 너무 편하게 싸운 거 같아서요. 힘들게 싸우면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그 말에 막시마와 브란이 놀랐다.

“여기서 더 강해지려고?”

소드 마스터라도 되고 싶은 모양이구나.

농담으로 한 말이겠지만, 카엘은 가능하다면 그만큼 강해지고 싶었다.

조만간에 드래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를 위해서 준비해 둔 것도 많았지만, 우선 자신이 강해지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때, 카엘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너 살아 있었네?”

어느새 드래곤 라 키레아스가 돌아온 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