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22화 (122/234)

122화 드래곤 라 키레아스 (2)

‘아직 무사하군. 다행이야.’

카엘은 저 멀리 보이는 클리페우스성이 여전히 멀쩡한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

‘그나저나 레몽한테 미안하네. 또 남겨 두고 와 버렸어.’

급하게 귀환하느라 소드 마스터가 되어서 이제 오러로 신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소피아와 루크.

회복 능력이 뛰어난 브로칸과 바람의 정령을 타고 날 수 있는 모르타만 데리고 달렸다.

함께 움직였던 용병단의 대장 레몽은 따로 천천히 귀환하도록 말해 뒀다.

‘뭐, 사정을 알면 레몽도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겠지만.’

자칫하면 드래곤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일단 듀리프 후작에게 서신을 보내야겠군.’

원래라면 돌아오는 길에 킹스콧에 들러서 듀리프 후작과 만날 생각이었다.

그래야 언데드 몬스터를 처리해 준 일로 생색도 내고 뭔가 대가를 챙길 수 있을 테니까.

카엘은 몰랐지만, 현재 듀리프 후작은 카엘이 자신이 아끼는 황금을 요구해도 흔쾌히 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룰 수밖에 없는 게, 자신 영지에 나타난 언데드 몬스터는 깔끔하게 해치운 상황.

그 와중에 아크 리치가 출현해 4황자군을 괴멸시킨 거였다.

덕분에 듀리프 후작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타국에서 대사직이라는 중요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자신의 영지를 제대로 관리한 셈이니까.

특히, 듀리프 후작이 있는 브레프니 왕국의 카엘이 언데드 몬스터를 퇴치한 걸 알고는, 자신의 영지로 보내 달라거나 소개해 달라는 연락이 빗발쳤다.

4황자 영지에 자리 잡은 아크 리치의 언데드 몬스터 대군에 겁먹은 거였다.

한편 듀리프 후작은 카엘이 이미 왕국에 왔는지도 모르고, 그중 제일 비싼 값을 치를 만한 귀족과 영지를 가늠하는 중이었다.

한편 카엘이 클리페우스 성내로 들어가자 주민들이 모두 환영했다.

왕성에서, 그것도 국왕이 친히 대대적으로 축하를 해 준 소식이 여기까지 퍼진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간 왕실의 대우에 실망해 온 티겔 공작을 비롯해 브리운 가문의 일원은 시큰둥했지만.

“아니, 제국에 간다더니 어찌 이리 일찍 돌아온 거냐?”

큰형 브란의 물음에 카엘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드래곤이 쳐들어올지 몰라 급하게 돌아왔습니다.”

“회색산맥에 드래곤 둥지가 있다고는 들었다만, 수면기라 자고 있을 텐데.”

“드래곤의 잠은 아주 깊고 길어서 수백 년을 넘게 잔다며.”

셋째 형 막시마도 아는 체하며 끼어들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티겔 공작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드래곤이 곧 깨어나려나 보구나.”

“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릅니다만, 이번에 오크 로드가 드래곤 둥지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건 나도 들었다. 놀들에게 쫓기다가 거기로 들어간 거 같다던데?”

“단순히 쫓긴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대답의 의미를 눈치챈 브란이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네 말은 오크 로드가 드래곤을 깨울 수도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오크 로드가 드래곤의 부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하, 부하가 패배했으니 두목이 나선다는 건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막시마와 달리 티겔은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검을 쓰다듬었다.

“하긴 전부터 심상치 않은 건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 드래곤과 싸워야 하는 건가.”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에다가 지능도 높아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런 드래곤과 인간이 싸운다는 건 전설로만 듣던 이야기.

실제로는 싸우기는커녕 모습을 본 이도 없었다.

“일단 드래곤이 깨는 것도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만약 깨어나 이곳으로 향한다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렇습니까? 아버님.”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래, 너라면 뭔가 방법이 있겠지.”

신뢰를 보내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고마우면서도 카엘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 * *

카엘이 클리페우스성에 귀환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그러나.

드래곤이 나타나기는커녕 회색산맥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오크들마저 잠잠한 게 새롭게 오크 로드가 정해진 거 같다고 했다.

‘기우였었나.’

쾅!

장벽에 서서 저 멀리 회색산맥을 보고 있는데, 아래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놀랍게도 검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소피아,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나 보네.’

그러면서 아래를 보니 소피아와 루크가 한창 대련 중이었다.

카엘이 메라자이드를 아크 리치로 성장시키는 와중에 루크에게 마을에 남은 언데드 몬스터를 퇴치하게 했는데, 그 와중에 깨달음을 얻고 소드 마스터가 됐다고 했다.

‘아직 어설픈 거 같지만.’

대련은 일방적으로 소피아가 루크를 압도하고 있었다.

펑!

“윽.”

폭발에 밀려난 루크가 괴로워했다.

오라로 만든 방어벽이 폭발을 못 막아 낸 거였다.

-집중해. 둘이 실력이 비슷하니까 집중만 하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다.

“아, 알겠습니다.”

옆에 떠 있던 아조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루크가 자세를 다잡았다.

“소피아, 너도 봐주지 말고 제대로 해.”

“네… 알았어요.”

소피아가 다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펑! 펑! 퍼펑!

“크억!”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발이 계속 커지더니.

결국, 못 막아 낸 루크는 뒤로 날아가서 벽에 부딪혔다.

놀란 소피아가 검을 거두고 달려갔다.

“괘,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런 루크 옆으로 아조트가 날아와 투덜댔다.

-소피아보다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게 늦었으면 그보다 더 강해져야 할 거 아니야.

“전 방어만 할 수 있는걸요. 너무 상성이 안 좋아요.”

그걸 보던 카엘이 참다 못해 한마디 했다.

“그 능력으로 방어만 하라고 누가 정해 뒀어?”

“아.”

-카엘! 스스로 깨닫게 놔둬야지. 그걸 알려 주면 어떻게 해?

“미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해졌으면 해서. 그리고 저런 별거 아닌 조언으로 깨닫는 것도 재능이지.”

-별거 아닌 조언이라니, 검술도 아닌데 그런 걸 깨닫고 있는 게 더 대단하지.

그러는 사이 루크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제 알겠어요. 한 번만 더 해 보겠습니다.”

-자신만만한데, 소피아?

“저는 상관없어요.”

-좋아, 시작해.

아조트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소피아가 빠르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지만. 그 앞을 뭔가 가로막았다.

“윽.”

그 탓에 폭발의 오러를 발휘하지도 못했다.

-됐다. 확실히 그런 방법도 좋지.

소피아가 움직이는 경로에 루크가 오러로 벽을 만들어 세운 거였다.

“크윽.”

소피아는 몇 번이나 더 공격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막혔다.

펑!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피아가 발에 오러를 터트려 날아갔다.

“엇?”

어찌나 빠른지 루크도 미처 오러 벽을 세우기도 전에 당할 판국이었다.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쿠쿵!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거세게 흔들렸다.

“앗……? 죄송해요.”

소피아는 곧바로 공격을 멈추고 사과했다. 자신이 지면에 폭발을 일으킨 탓에 일어난 일이라 여겨서였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네? 그럼요?”

반문하던 소피아는 카엘이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시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 끝에서는 회색산맥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 어. 어떻게 된 거죠?”

“글쎄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소피아와 루크 외에도 성안에서는 난리가 갔다.

그 와중에도 카엘은 회색산맥을 주시했다.

잠시 후, 드디어 지진이 가라앉나 싶을 때쯤이었다.

콰르릉!

회색산맥에서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흙과 작은 돌들이 뒤집혀 날아가고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뽑혔다.

하늘에 짙게 낀 구름마저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구름이 회색산맥 중앙으로 소용돌이치듯 몰려들더니 그 구름을 뚫고 거대한 뭔가가 떠올랐다.

클리페우스성의 대부분은 그 모습을 처음 봤지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게 바로 드래곤인가 보네요.”

“생각보다 훨씬 큰데요? 제가 거대화했을 때보다도 더 큰 거 같아요.”

어느새 장벽 위로 뛰쳐 올라온 브로칸이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보다 빨리 엘프들에게 가서 준비하라고 해.”

“아, 네!”

카엘의 지시에 브로칸이 허겁지겁 내려갔다.

드래곤은 중력을 무시하듯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더니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더니 입을 벌리고 소리쳤다.

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기묘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드래곤이 존재감을 발하며 드래곤 피어를 내쏜 거였다.

회색산맥에 있던 동물들과 약한 몬스터들은 그대로 죽거나 쓰러졌다.

원래라면 이곳 클리페우스성 주민 대부분이 괴로워하며 죽거나 쓰러져야 했지만.

다들 어지러워하긴 해도, 멀쩡했다.

“호오. 재미난 짓을 해 뒀는걸.”

카엘의 코앞까지 다가온 드래곤이 달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미난 일이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얕보다니.’

엘프들이 정령들을 총동원해 드래곤 피어를 막아 낸 거였다.

엘프들의 힘만으론 부족했으나 세계수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카엘이 조제한 정신안정제로 드래곤 피어를 어느 정도 막아 낼 수도 있겠지만, 언제 드래곤이 나타날 줄 알고 정신안정제를 수시로 먹게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드래곤 피어를 막은 클리페우스성에서는 반격은커녕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는지 드래곤이 몸을 비비 꼬았다.

“흐음. 뭔가 재롱을 피워 줄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재미없게 왜 그래?”

그런 드래곤에게 장벽 위에 선 카엘이 말했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자비를 베푸십시오!”

“자비를? 내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 말해 보아라. 너는 개미에게 자비를 베푸는가?”

“네.”

“……?”

“물론, 장난으로 개미를 짓뭉갤 때도 있겠지만, 애틋하게 여기고 자비를 베풀 때도 있습니다. 특히 개미가 자비를 베풀기를 구걸하면 십중팔구 들어줄 겁니다.”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는군.”

드래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꼬투리를 잡을 게 생각났는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언데드 몬스터와 손을 잡은 생명체에게 자비란 없다.”

카엘은 너도 둥지에서 언데드 몬스터를 부리고 있지 않냐고 따지고 싶었다.

강한 만큼 제멋대로인 드래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다물고 있었지만.

‘그보다 엘프들이 대화를 잘 차단했겠지?’

언데드 몬스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게 분명해 엘프들에게 미리 주문해 둔 참이었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저는 어디까지나 언데드 몬스터에게 이용당했을 뿐입니다!”

“이용당해?”

의아해하는 드래곤에게 카엘이 턱을 들어 목을 보이게 했다.

그걸 본 드래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지배의 목걸이가 아니더냐? 확실히 네크로맨서의 마력도 거기서 느껴진다.”

카엘은 예전에 라이칸스로프 촌장에게 받은 지배의 목걸이에 이제 아크 리치가 된 메라자이드에게 받은 팔찌의 보석을 매달았다.

그 보석 안에 라이프 베슬과 비슷하게 메라자이드의 생명력과 마력이 깃들어 있는 걸, 드래곤이 대번에 알아본 거였다.

“네. 오크들을 대량으로 해치워 그걸 자기 세력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 싸움에 저희가 동원됐고요. 그걸 바탕으로 왕국 너머 제국에 어마어마한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음? 제국에?”

그 말에 드래곤이 카엘의 뒤편 장벽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혀를 찼다.

“쯧, 정말 그렇군.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세력을 키운 건가?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되겠는걸.”

‘됐다!’

카엘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대로 간다면 처음 계획대로 드래곤을 아크 리치 메라자이드와 싸우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그 전에 한 가지만 묻겠다. 네가 카엘인가?”

“…맞습니다. 위대한 드래곤께서 제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그래. 이곳은 일단 내버려 두겠다. 적어도 네크로맨서부터 해치워야겠지.”

“감사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네 저주도 풀어 주겠다.”

“잠깐…….”

카엘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드래곤이 입을 벌리고 드래곤 브레스를 카엘에게 내뿜었다.

카엘은 그대로 거센 불길에 휩싸였다.

그 모습을 보고 드래곤이 웃으며 말했다.

“네 더럽혀진 영혼마저 정화해 줄 불이니 감사하도록.”

드래곤은 그 말만 남기고는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크 리치 메라자이드를 제거하기 위해 제국으로 향한 거였다.

털썩.

그리고 그 자리에는 드래곤 브레스에 불탄 카엘이 쓰러져 있었다.

소피아가 얼른 뛰어 올라가 불에 탄 카엘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카엘 님…….”

그러자 카엘이 한쪽 눈을 살짝 뜨며 물었다.

“갔어?”

“네, 갔습니다.”

그 말에 바로 몸을 일으킨 카엘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휴. 죽는 줄 알았네.”

어느새 뛰어 올라온 브로칸과 소피아가 감탄했다.

“와, 이게 통하네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드래곤을 속일 생각을 다 하다니!”

그런 둘에게 카엘은 드래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메라자이드가 최대한 열심히 싸워 주길 기도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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