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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19화 (119/234)

119화 아크 리치 (2)

최상위급 언데드 몬스터 중 하나인 본 드래곤은 자연재해나 다를 바 없다.

성만 한 본 드래곤의 거체를 처음 목격한 병사들은 순간 꿈을 꾸는 줄 착각했다.

그만큼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난 거였다.

하지만 본 드래곤이 창고를 단번에 박살 내는 걸 보고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미친! 어디서 저런 게 갑자기 나타난 거야?”

“다들 뭣 하고 있나? 공격해야지! 어서 공격해!”

“아니,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하라고요.”

“…….”

명령한 지휘관은 병사들의 항명에 할 말이 없었다.

정말 저 거대한 걸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한단 말인가.

지휘관이 당황한 사이, 병사들은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쿵! 콰직!

이어서 바로 뒤의 막사를 짓밟아 무너트리는 걸 확인한 지휘관도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러나.

“어, 이럴 수가.”

“젠장!”

“저것들은 뭐야?”

도망치던 병사들은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멈췄다.

기괴한 모습의 언데드 몬스터가 잔뜩 나타나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였다.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을 한 것부터, 팔만 기다랗거나 짐승의 모습을 한 것까지.

생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 탓에 병사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안 되겠다! 저리로 도망치자!”

“아, 안돼! 저기도 있어!”

다른 길을 찾아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언데드 몬스터가 길을 막고 있었다.

어느새 포위당한 거였다.

그때 지휘관이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섰다.

“하는 수 없지. 내가 앞장서서 길을 뚫을 테니, 모두 뒤를 따라라!”

“우오오오!”

“그래, 저 정도야 어떻게든 되겠지.”

지휘관의 행동에 병사들도 용기를 얻었다.

확실히 뒤에서 날뛰는 본 드래곤보다는 눈앞의 언데드 몬스터가 상대할 만해 보이긴 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었지만.

“컥!”

호기롭게 달려가던 지휘관은 그대로 몸이 세로로 갈라져서 죽어 버렸다.

갈라진 지휘관 너머로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있었다.

“데, 데스 나이트다.”

한 기사가 알아보고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데스 나이트.

생전에 검술이 뛰어났던 기사로 만든 언데드 몬스터.

그 때문에 아주 강력해 신전 기사들은 상대가 안 되고 성녀나 소드 마스터가 나서 줘야 퇴치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 다른 기사가 뒤늦게 데스 나이트의 모습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어, 올리버 님 아닌가? 맞는 거 같은데.”

그 말을 들은 기사와 병사들은 절망에 빠졌다.

행방불명됐다는 소드 마스터 올리버가 데스 나이트가 되어 나타난 거였다.

여느 데스 나이트보다 훨씬 강할 게 틀림없었다.

심지어 소드 마스터 올리버와 드래곤을 언데드 몬스터로 만든 네크로맨서는 또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극한의 위기에 처하자 오히려 몇몇 기사들은 냉정을 찾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알려야 해!”

“맞아!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반드시 탈출해야 해!”

소드 마스터 올리버가 데스 나이트가 된 이상, 이 언데드 몬스터 세력을 쓸어 버리려면 소드 마스터가 여럿이 필요했다.

제국은 그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언데드 몬스터를 얕봤다가는 점점 세력을 불려 주기만 할 뿐이었다.

“너희들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래, 어차피 상대는 말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다. 항복해도 받아 주지 않으니 끝까지 싸우는 게 낫다!”

기사들의 말에 병사들도 공감하며 마음을 다잡고 몰려오는 언데드 몬스터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그리고.

전멸했다.

* * *

-오호호호호호홋!

메라자이드는 입이 있다면 찢어질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았다.

본 드래곤을 내세운 첫 전투에서 압승을 거둔 거였다.

심지어 인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노련한 사냥꾼은 길목을 지키고, 햇병아리 사냥꾼은 사냥감을 쫓아다닌다고 했던가?’

카엘의 조언대로 적절히 언데드 몬스터를 배치한 게 통한 거였다.

그 덕분에 언데드 몬스터의 규모가 단숨에 두 배로 늘어나 천 단위가 됐다.

거기다가 기사들을 여럿 잡아 데스 나이트로 만들기까지 했다.

원래라면 단기간에 이 정도로 언데드 몬스터를 많이 만들기에는 마력이 부친다.

하지만 카엘에게 받은 지팡이에 붙어 있는 현자의 돌 덕분에 가능했다.

심지어 데비하이드가 계속 쫓아다니면서 부럽다고 하는 것마저 마음에 들었다.

메라자이드는 으스대며 카엘에게 물었다.

-어때 만족해? 네가 원하는 대로 저 부대를 완전히 박살 냈어.

“그래. 잘했어.”

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최근 황자의 내전이 재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전황을 살펴봤더니, 키슬링 4황자군이 탈프 황자의 연합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기가 막히도록 무능하단 말이지.’

3황자 탈프에게, 제라드 1황자와 12황자의 후견인인 헤이든 공작까지 합쳐 연합을 만들어 줬는데 밀리고 있는 거였다.

그러다 이 키슬링군의 후방 부대를 알아내고 메라자이드에게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보급을 담당하는 후방 부대가 전멸하는 난리가 벌어졌으니, 키슬링군도 주춤할 게 틀림없었다.

-아, 그리고 부탁한 대로 식량은 해안가로 옮겼어. 오늘 중으로 다 옮겨질 거야.

어차피 언데드 몬스터들에게는 식량이 필요 없었다.

보통은 마기에 오염되어 썩기 마련인데, 카엘은 어인족에게 부탁해 그걸 그대로 실어 클리페우스성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성녀 아네스가 있으니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자연스레 정화될 터였다.

“고마워.”

-이 정도쯤이야. 또 필요한 거 없어? 다음 목표는?

“아마, 다음 목표는 알아서 찾아올 거야.”

-찾아온다고?

메라자이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이었지만, 카엘이 보기에는 빤했다.

‘아마 키슬링 황자는 최대한 빨리 해결하려고 하겠지.’

아무래도 등 뒤가 불안하면 제대로 싸우기 힘드니까.

거기다가 황제가 언데드 몬스터가 나오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명령한 이상.

그냥 놓아 둘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전력을 보내서 언데드 몬스터들을 처리할 거냐는 거였다.

‘아마도 소드 마스터를 움직이겠지.’

스승인 소드 마스터 파이슨이 나설 거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전에 소드 엑스퍼트 한둘이라도 더 보내면 좋을 텐데.’

그러도록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정보가 노출 안 되도록 적을 전멸시킨 거긴 했다.

‘과연 어떻게 움직일까?’

카엘은 어느새 대규모가 된 언데드 몬스터 부대를 바라봤다.

* * *

카엘의 예상대로 후방 부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에 키슬링 4황자군은 발칵 뒤집혔다.

“전멸? 그게 말이나 돼?”

아무리 치열한 전투를 벌이더라도 전멸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승패가 확실해지면 지휘관이 보통 항복을 하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전투 중에도 도망치는 병사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명도 남지 않고 전멸하다니.

무엇보다 괜히 후방 부대겠는가?

주위에 키슬링 황자와 우호적인 영주들밖에 없는 곳이었다.

처음 연락이 안 된다고 보고를 받았을 때, 무슨 일이 있어 부대 이동을 한 게 아닐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다음 보고에서는 전멸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을 겁니다.”

“여기서 사람을 보내 확인해 봅시다.”

다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마지막 보고가 도착했다.

“전장에서 다수의 언데드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언데드 몬스터?!”

그제야 의문이 다소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언데드 몬스터라면 항복도 안 받아 줄 테니까. 그래도 도망 못 치고 전멸까지 갈 일인가 싶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 일대를 장악할 정도로 언데드 몬스터의 세력이 크다는 소리였다.

키슬링은 답답했다.

“분명 황제 폐하께서 언데드 몬스터가 들끓지 않도록 하라 했거늘, 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언데드 몬스터가 나타났단 말이냐!”

“…….”

키슬링이 답답한 마음에 호통쳤지만,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모두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부관이 조심스레 조언했다.

“지금은 언데드 몬스터부터 퇴치할 방도를 궁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야겠지.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정리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맛이 썼다.

아쉬웠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적 연합을 단번에 부숴 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1황자인 제라드의 군대만 박살 내 놓으면 연합도 무너질 게 분명했다.

12황자의 후견인인 헤이든 공작은 슬그머니 발을 뺄 테고, 3황자인 탈프는 어차피 딱히 위협도 안 됐다.

‘이 정보가 새어 나가면 상대는 시간을 끌려고 하겠지.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

키슬링이 그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막사 저편에서 누군가가 일어섰다.

“제가 도와드리죠.”

그를 본 막사 안의 사람들이 환호했다.

“오오! 렘브란트 경께서.”

“렘브란트 경이 나서 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요.”

“이미 문제는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죠.”

렘브란트는 소드 마스터 파이슨의 으뜸가는 제자로.

아직 소드 마스터가 되진 못했지만, 최근 미약하나마 오러에 속성이 담기기 시작한 인재였다.

그 속성은 바로 빛.

사악한 존재인 언데드 몬스터를 해치우기에 제격이었다.

“고맙다.”

“별말씀을. 그보다 이번 기회에 소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렘브란트는 씩 웃으며 막사를 떠났다.

그리고 영원히 소드 마스터가 되는 일은 없었다.

언데드 몬스터에게 당한 거였다.

그 소식에 키슬링은 경악했다.

심지어 적의 세력이 클 걸 대비해 붙여 준 기사와 기병, 병사들까지 다시 전멸당했다고 했다.

몇몇이 겨우 도망치긴 했는데 공포에 정신이 나갔는지, 드래곤이니 소드 마스터니 횡설수설하기만 했다.

“…렘브란트로도 안 되면, 스승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겠군.”

키슬링은 곧바로 소드 마스터 파이슨을 떠올렸다.

원래라면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황자를 위해서는 가능한 한 직접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제자만 보내 지원하고 있었다.

‘이건 내전이 아니라, 언데드 몬스터를 퇴치하는 거니까, 황제께서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라 설득하면 되겠지.’

키슬링은 그렇게 판단하고 파이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 소식을 들은 파이슨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 렘브란트까지 당해 버렸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간 힘들게 제자들을 키운 게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거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자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군.’

저번에 자신의 제자를 벤 카엘이라는 브레프니 왕국인을 복수하러 찾아갔더니 어느새 사라진 바람에 놓쳤다.

황자들의 내전에 간섭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듣는 걸 감수하고 찾아갔는데 허탕 친 거였다.

어느새 브레프니 왕국에 돌아가 버렸는데,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복수하겠다고 타국의 국경 끝까지 가기에는 힘들었다.

심지어 감시하던 엘프들마저 잃어버리는 바람에 파이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 카엘이라는 녀석이 겁도 없이 제국에 다시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장 혼쭐을 내려 찾아가려고 했다.

듀리프 후작의 일로 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죽이진 못해도 팔 한 개쯤은 받아야 속이 풀리지.’

그렇게 마음먹고 출발하려 할 때, 키슬링으로부터 연락이 온 거였다.

‘마침 근처기도 하고, 키슬링의 일을 끝내자마자 찾아가면 되겠군.’

게다가 새롭게 출현했다는 대규모 언데드 몬스터를 해치우면, 엘프를 놓쳐서 망신살이 뻗친 것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으리라.

파이슨은 곧바로 움직여 키슬링이 알려 준 곳에 도착했다.

키슬링이 준비해 둔 병력과 합류해 언데드 몬스터가 진을 치고 있다는 곳으로 갔더니.

언데드 몬스터와 함께 웬 인간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목구비가 분명 그 카엘이라는 인간과 닮았다.

“혹시 카엘인가?”

“맞다.”

순순히 인정하는 카엘의 뒤로 엘프마저 함께 서 있었다.

‘설마 엘프를 빼돌린 것도 저 카엘이라는 자식이 한 건가?’

아니라도 엘프와 함께 있는 거로 뒤집어씌우면 될 일이었다.

‘흐흐흐, 어떻게 됐든 이번에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왔구나.’

속으로 기뻐하고 있는데 카엘이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설마 소드 마스터라고 당신 혼자 온 건가?”

그 물음에 파이슨은 왠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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