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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118화 (118/234)

118화 아크 리치 (1)

카엘은 허탈해하는 데비하이드와 메라자이드를 데리고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먼저 달려 나가던 브로칸이 성 밖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아직 밝네요?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

뒤따라오던 콴이 웃으며 말했다.

“벌써 하룻밤이 지나서 그렇습니다. 황금성 안이 워낙 휘황찬란하다 보니 연회가 열리면 날이 가는지도 모르거든요.”

‘어느덧 온종일 먹고 마신 거였다니.’

카엘도 살짝 놀랐다.

-뭐? 우리는 종일 고생해서 올라왔는데, 너희는 온종일 먹고 마시면서 논 거야?

투덜거리는 데비하이드를 무시하고 메라자이드가 물었다.

-그건 됐고, 뭐 지원 받기로 했어? 그것부터 좀 말해 봐.

“흠, 흠.”

카엘을 보고 지원하는 걸, 뒤늦게 와서 내놓으라는 듯 구는 모습에 불쾌했던 콴은 헛기침을 하며 카엘을 쳐다봤다.

카엘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콴 님께서 말씀해 주실 거야. 콴 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콴이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하피 측에서 지원해 줄 건, 이미 죽은 하피의 뼈다귀들.

시신을 새가 뜯어먹게 두는 조장(鳥葬) 후에 남은 것들이라 문제없었다.

그 밖에 오를란도산맥 내 하피의 지배하에 놓인 여러 종족에게 사체를 받아다 줄 예정이라고 했다.

-음, 그게 다야?

오를란도산맥의 생명체를 모조리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 생각이었던 메라자이드로서는 조금 시원찮았던 모양이었다.

‘이길 수도 없는 주제에.’

카엘은 그러다 문득 빠진 사람을 깨닫고 콴에게 물었다.

“마법사와 용병들은요?”

“그건 전적으로 카엘 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아, 그럼 시체들은 내주시고, 남은 이들은 노역이라도 시키세요.”

“알겠습니다.”

콴의 대답에 데비하이드가 놀라 물었다.

-마법사? 용병? 그런 게 여기에 있었어?

“응. 하피들을 납치했다길래 구해 줬어.”

그러자 콴이 끼어들어서 한마디 했다.

“그렇게 가볍게 말할 일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 모든 하피가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연회를 연 거였나? 나름대로 고생이 많았네.

-그 덕분에 지원 받기로 한 건가? 부족해도 하는 수 없지. 그걸 바탕으로 세력을 늘려 나가는 수밖에.

데비하이드가 납득하자, 메라자이드도 하는 수 없이 수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은 남은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무 오래된 사체에는 잔존 마력이 거의 없는데…….

“그 문제는 이거면 해결될 거야.”

카엘이 마법사 졸라의 지팡이를 들어 보였다.

그걸 바로 알아본 데비하이드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 그건?

“작지만 현자의 돌이야. 이거면 충분하지?”

-허걱! 그걸 메라자이드에게 준다고?!

-아, 충분해.

데비하이드가 깜짝 놀라는 사이, 메라자이드가 냉큼 지팡이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지팡이의 보석 부분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걸 본 데비하이드가 중얼거렸다.

-…부러워.

-호호홋! 기대하라고!

그 뒤로 카엘은 며칠간 오를란도산맥 근처에 머물면서 하피로부터 침입자들의 시체와 각종 사체, 뼈다귀를 받아 하나둘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데드 몬스터는 거의 천에 달했다.

-여기에 소드 마스터 올리버로 만든 데스 나이트에 마법사 졸라로 만든 스켈레톤 메이지까지! 이제 어지간한 성 하나는 점령할 수 있어!

자신 있게 말하는 메라자이드를 향해 카엘이 물었다.

“근데 왜 데스 나이트는 올리버 하나뿐이야? 전에 신전 기사들도 잡아갔잖아.”

-하피들한테 당했지.

“…그렇군. 그보다 이거로 4황자군을 치는 건 무리겠는데.”

카엘은 냉정하게 현재 메라자이드의 전력을 평가했다.

당장 데스 나이트로 만들어진 올리버만 해도 소드 마스터 중에서는 약체인 데다가, 언데드 몬스터가 되면서 더 약해졌다.

소드 엑스퍼트보다 조금 나은 수준?

그에 반해 4황자군에는 소드 엑스퍼트도 여럿 있었다.

스켈레톤 메이지도 예전처럼 복잡한 마법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마기의 연무를 확장하거나 저주를 거는 등 간단한 마법밖에 못 썼다.

-그건 그래.

“역시 그것까지 동원해야 하나.”

-뭐? 혹시 쓸 만한 게 있어?

순순히 수긍하던 메라자이드의 눈빛이 반짝였다.

“잠시만 기다려 봐.”

카엘은 서신을 하나 써서 해안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어인족을 불러내 서신을 전했다.

그걸 본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인족한테도 뼈를 가져다 달라고 하실 건가 봐요?”

-흠, 생선 뼈는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기 어려운데.

“아니면 바닷가에 버려진 뼈들을 모아 달라고 하신다거나?”

데비하이드와 모르타도 알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어인족이 회신을 가지고 돌아왔다.

평소에 가볍게 부탁을 주고받은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괜히 심각한 일인가 싶었던 브로칸과 모르타는 긴장한 얼굴로 서신을 읽는 카엘을 바라봤다.

그걸 잘 모르는 소피아만 의례 그러는 줄 알고 잠자코 지켜볼 뿐이었다.

카엘은 서신을 다 읽고 어인족에게 회복 포션을 하나 건넸다.

“서신을 전달하느라 수고 많았어.”

“우왓. 감사합니다.”

“메르 8세 님께도 고맙다고 조만간에 좋은 선물을 가지고 들른다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불러 주세요!”

신난 어인족이 기뻐하며 돌아갔다.

그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메라자이드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뭔데? 뭐길래 그렇게 거창해?

“재촉하지 말고 금방 가져온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아, 마침 저기 왔네.”

-응? 어? 저건?!

카엘이 가리키는 대로 바다를 돌아본 메라자이드를 포함해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그 시각 루크는 레몽 용병단과 함께 마을을 점거한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카엘의 지시대로 이곳저곳을 다니며 언데드 몬스터를 모조리 해치웠다.

하지만 아조트가 말한 것처럼 오러에 특성이 나타난다든가 검의 경지가 올랐다는 느낌을 조금도 받을 수 없어 답답했다.

‘내가 신전 기사도 아니고, 언데드 몬스터를 잡는다고 강해지겠어?’

내심 그럼 불만이 치솟았지만, 그대로 꾹 억누르고 검을 휘둘렀다.

싱숭생숭한 마음 탓에 오러가 불안정해졌지만, 스켈레톤과 좀비를 해치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거로 끝인가? 여기가 마지막 마을이랬죠?”

“네, 루크님, 수고하셨습니다!”

루크의 물음에 레몽이 깍듯이 인사했다.

실력이 전부인 용병 세계에선 자기보다 어려도 공손하게 구는 건 당연했다.

심지어 강해지겠다고 혼자서 날뛰느라 일도 편하게 했으니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때였다.

“대장! 대장! 루크 님!”

저 멀리서 용병 하나가 다급하게 부르는 게 아닌가?

‘혹시 언데드 몬스터가 남아 있나?’

불만스러워도 마지막까지 정신을 똑바로 차렸어야 한다고 자책하며 달려가니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용병들과 신전 기사들이 대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신전 기사들의 뒤에는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이가 여럿 보였다.

‘설마 용병들이 약탈하러 왔다고 신전 기사들이 오해했나?’

레몽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황급히 말했다.

“신전 기사님들, 진정하시오! 우리는 그저 언데드 몬스터를 해치우러 온 것뿐이오!”

“그럼 그대로 꺼져. 우리는 우리 물건 가져가는 것뿐이니까.”

‘물건?’

그 말에 뒤늦게 마을 주민들이 밧줄에 묶여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을 봐서는 언데드 몬스터를 피해 숨어 있던 게 틀림없어 보였다.

“설마 숨어 있던 마을 주민을 데려가려는 건가요?”

“맞아. 어차피 언데드한테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하면 노예로 팔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렇게 대꾸한 신전 기사는 다른 신전 기사들과 잠깐 수군거리더니 레몽에게 제안했다.

“너희도 수고한 게 있으니, 여기 절반은 두고 가마. 그럼 불만 없지?”

“…루크 님, 어떡할까요?”

레몽이 난감하단 얼굴로 물었다.

루크는 기가 찼다.

기껏 마을을 언데드 몬스터의 마수로부터 구했더니, 마을 주민들이 저자들의 노예로 팔려 가게 생겼다니.

그것도 신전 기사가!

프레데릭과 파나틱 신전 기사를 봐 왔던 루크로서는 저 신전 기사들의 존재 자체가 용납이 안 됐다.

한편 레몽을 보고는 신전 기사가 비웃었다.

“얘한테 뭘 물어 봐. 어디 귀족가 도련님이라도 되는 건가?”

“저들이 하나도 못 데려가게 막아 주세요.”

“미쳤나? 이게 사람이 좋게 좋게 이야기하는데.”

루크의 대답을 들은 신전 기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검으로 루크의 머리를 툭툭 치려고 했다.

하지만 신전 기사의 검이 루크의 머리에 닿는 일은 없었다.

이미 루크의 검이 신전 기사의 손을 깔끔하게 잘라 내 버린 거였다.

“으아아악!”

“뭐, 뭐야. 저런 꼬맹이가 소드 엑스퍼트?!”

신전 기사들은 난리가 났다. 특히 루크가 검에 두른 오러를 보고는 더욱 기겁했다.

신전 기사라고 거들먹거리고 다니긴 했지만 기사보다도 약했는데, 소드 엑스퍼트를 상대할 자신이 있을 리 만무했다.

문제는 천박한 욕심을 버리지도 못했다는 거였다.

“이 자식이, 더 가까이 다가오면 이 계집애를 죽여 버릴 테다!”

“꺄아아악!”

신전 기사가 마을 소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협박했다.

보통이라면 인질극이 성립되지 않겠지만, 저 꼬맹이가 마을 주민들을 신경 쓰는 걸 신전 기사가 눈치챈 거였다.

한 가지 간과한 건, 루크는 딱히 타협할 생각이 없다는 거였다.

“만약 죽는다면 내가 복수해 줄게.”

“복수는 무슨, 너 때문에 죽는 건 줄 알아라.”

“꺅!”

타협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루크의 말에 신전 기사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검을 휘둘렀다.

“윽!”

루크는 그사이 몇 발짝 가까이 갔지만, 여전히 거리는 멀었고, 신전 기사의 검은 소녀의 바로 앞에 있었다.

‘젠장, 너무 멀어. 내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으면 막아 낼 수 있었을 텐데.’

루크는 안타까워하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캉!

그런데 소녀를 찌르던 검이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신전 기사는 자신의 손을 보며 당황했지만, 루크는 어떻게 된 건지 곧바로 깨달았다.

소녀의 바로 앞에 생긴 희미하고 작은 방패를 본 거였다.

‘내 오러가 소녀의 앞에 방패를 만들어 낸 건가?’

방어의 오러.

그간 싸워 오면서 여럿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오러에 깃든 거였다.

“헉, 소드 마스터인가 봐.”

“도망치자.”

“어딜 도망가려고?!”

신전 기사들은 뒤늦게 달아나려고 했지만, 레몽 용병단이 어느새 포위했다.

“죽어라!”

“신전 기사라는 새끼들이 인간 이하의 짓을 하다니!”

아무리 돈에 죽고 사는 용병들이라고 했지만, 이 난리 속에서 주민을 납치해 팔려는 신전 기사들의 행태에 화가 난 거였다.

그렇게 루크는 마지막 마을에서 언데드와 신전 기사를 물리치고 생존자를 구했다.

* * *

듀리프 후작은 요즘 기분이 아주 좋았다.

요 며칠 영지에서 날아온 서신들 때문이었다.

언데드 몬스터에 의해 하나둘 점령된 마을이 해방되고 돌아온 주민들에 의해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다 내 덕이지!’

영지에 언데드 몬스터가 출몰하고 용병들마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듀리프 후작은 바로 브리운 공작가의 막내아들, 카엘을 떠올렸다.

그간 제국과 왕국에서 들려온 소문과 자신이 수집한 정보로는 일을 맡기기에 적격이었다.

‘문제는 내 말대로 잘 움직여 줄까 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잘 따르더란 말이지.’

아무래도 신앙심이 깊다 보니, 언데드 몬스터가 활개 치는 걸 못 두고 봐서 그런 거 같았지만.

어쨌든 실제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그간의 행적을 봐서 제국에 해가 되지 않을까 경계했는데 굳이 걱정 안 해도 될 듯했다.

‘잘 구슬려서 앞으로도 잘 이용해 먹어야지.’

심지어 무능한 브레프니의 왕이 새로 탄생한 왕국의 영웅을 경계한 덕분에 왕국에 반감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치기 어린 소년의 야심을 잘만 자극한다면, 이전보다 훨씬 왕국 내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황제의 인정도 받을뿐더러, 제국에서의 내 입지도 탄탄해지겠지.’

듀리프가 부푼 꿈을 안고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새로운 서신이 도착했다.

“어디 보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소드 엑스퍼트인 소년과 용병들이 언데드 몬스터를 물리치고 마을을 해방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게 마지막 마을로 언데드 몬스터에 고통받는 마을은 이제 없다고 했다.

그 소식에 속이 후련해진 듀리프는 한껏 너그러워졌다.

“그래, 그래. 잘했어. 이제 돌아오면 수고했다고 이 소드 엑스퍼트 소년에게 뭐라도 선물을 해 줘야겠구먼. 돈이 안 들 만한 선물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 듀리프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소드 엑스퍼트인 소년?’

분명 카엘은 소드 엑스퍼트보다 강하긴 해도 소드 엑스퍼트는 아니었다.

‘데리고 다닌다는 여인과 소년이 오러를 쓴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듀리프는 다시 한번 그동안 받은 서신을 살펴봤다.

하나같이 소드 엑스퍼트 소년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 있었다.

카엘이 뭘 한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냥 지시를 내리고 구경만 하고 있다 해도 보고서에 적혀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한참을 서신을 뒤지다가 첫날에는 함께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아예 언급이 없었다.

‘그럼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 * *

데비하이드가 연신 위를 보며 감탄했다.

-우와! 부럽다, 부러워!

-부럽다는 소리 좀 그만해.

듣다 못한 아조트가 쏘아붙였지만, 데비하이드는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어떤 리치가 저걸 보고도 안 부러워할 수 있겠어?

그러면서 데비하이드가 쳐다보는 시선 끝에는 뼈다귀만 남은 거대한 드래곤이 있었다.

드래곤의 뼈로 만든 언데드 몬스터, 본 드래곤이 서 있었다.

무리해서 드래곤 하트를 흡수해 해룡이 되자마자 부작용으로 죽어 버린, 코그의 사체를 이용한 거였다.

해룡이라 일반적인 본 드래곤과는 조금 다른 외형이었지만, 그 강력함만은 여전했다.

“그럼 쓸어 버려!”

-호호홋, 두고 보라고.

카엘의 지시에 메라자이드가 웃으며 본 드래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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