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94화 (94/234)

94화 놀과 오크 내전 (3)

오크 제사장의 거처는 제단이 위치한 바위산의 꼭대기.

오크 로드는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고, 그 뒤를 수많은 오크가 따랐다.

반면에 꼭대기에도 오크 제사장 외에도 그를 추종하는 오크들이 있었다.

그들은 겁도 없이 오크 로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것들이, 비켜라!”

“감히 오크 로드의 앞을 가로막느냐!”

“어서 비키지 못해?!”

오크 로드를 뒤따라오던 오크들이 소리칠 때, 오크 로드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퍽!

오크 로드가 휘두른 대형 도끼에 오크 둘이 날아갔다.

오크 둘이 순식간이 피떡이 된 끔찍한 상황에도 오크 제사장 측 오크들은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돌았구나!”

오크 로드가 분노하며 대형 도끼를 치켜들었을 때, 뒤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물러서라.”

오크 로드를 가로막고 있던 오크들이 순식간에 좌우로 나뉘었다.

그만큼 오크 제사장의 말에 절대복종하고 있는 거였다.

“흥!”

오크 로드는 콧바람을 내며 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다가오는 오크 제사장을 바라봤다.

오크 제사장이라고 해도 오크는 오크.

인간의 사제처럼 비쩍 마르거나 뒤뚱거릴 정도로 살찌진 않았다.

오히려 오크 로드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다른 오크보다 체격도 크고 거기에 걸맞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선 오크 제사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찾아올 줄 알았다.”

“흥! 비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 거나 마찬가지지. 그보다 네 혀가 필요하다.”

“흐흐, 일이 생각대로 잘 안 풀리는 모양이지?”

“그래. 회색산맥에 네크로맨서가 나타난 듯하다.”

그 말에 여유를 부리던 오크 제사장의 눈썹이 꿈틀댔다.

“네크로맨서가?!”

“최근 드래곤 둥지가 소란스러웠는데, 거기서 나온 거 같군.”

“흠. 그 소란에 대해서는 전해 들었는데, 네크로맨서까지 나타났다니.”

“다들 겁을 먹었으니 뭘 해서라도 진정시켜. 너도 오크 전사들이 네크로맨서에게 겁먹고 있는 건 싫지?”

오크가 죽음을 겁내지 않고 싸우는 건 사후에 진정한 전사만이 갈 수 있다는 천국이 약속됐다고 믿기 때문.

그게 무너지면 오크의 용맹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오크 제사장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질 수도 있었다.

“그런 거라면 하는 수 없지. 맡겨 둬라.”

그렇게 말한 오크 제사장은 문뜩 생각난 듯 물었다.

“그보다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다던 위대한 전쟁은 대체 언제쯤 시작되나?”

“조만간이다. 그 후로 전사의 쉼터는 없앨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음, 알겠다.”

오크 제사장은 여전히 안 내키는 듯했지만, 별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추종자들을 데리고 물러갔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오크 로드는 몸을 돌렸다.

‘그럼 이제 장애물을 치우러 가야겠군.’

* * *

놀 치프들이 모인 곳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크하하하하핫!”

“다들 잘 싸웠소.”

“이게 다 아미르 님 덕분이오.”

“다들 힘을 모아 준 덕분이오! 내 덕이 더 크지만.”

아미르의 너스레에 놀 치프들은 다시 한번 시끄럽게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다들 은근히 취했을 때쯤, 놀 치프 하나가 언데드 몬스터를 화제에 올렸다.

“최근 사체가 돌아다니면서 오크들을 공격하던데, 혹시 뭔지 아는가?”

“글쎄? 우리를 공격하진 않던데, 그래도 끔찍한 모습으로 지나다니는 걸 보면 찜찜하긴 해.”

“그대로 둬도 괜찮을까?”

놀 치프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아미르는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알게 뭔가! 우릴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들마저도 오크들을 미워하는구나.’ 하고 말면 되지.”

“그런가?”

“자네 말이 맞아.”

아미르의 말에 다른 놀 치프들이 호탕하게 웃었다.

실제로 다른 놀들도 언데드 몬스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오크들만 공격하는 덕분에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되어 횡재라고만 생각했다.

심지어 어느 정도 전선이 고착 상태에 빠지자 놀 치프들은 이렇게 모여 승리를 자축했다.

서로 전력이 비슷하다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번식력이 뛰어난 놀이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면 우리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지.’

그때였다.

한바탕 싸우고 왔는지 허름한 행색의 놀 몇 마리가 우르르 달려와 보고했다.

“아미르 님! 오크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저 앞 부족 거주지까지 왔습니다.”

“저 앞 부족 거주지까지?”

아미르는 의아했다.

오크가 최소 다섯 개의 부족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무래도 오크 로드까지 온 거 같습니다.”

놀의 말에 아미르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시간을 끌면 불리하다는 걸 알고 빨리 승부를 볼 생각인가 보군. 아무리 그래도 바보 같은 짓을 다 하는군!”

아미르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길게 찢었다.

오크 로드가 겁도 없이 적진 깊숙이 파고든 거였다.

“이 기회에 제거해 버리자! 모든 부족에 연락을 보내 모이라고 해!”

아미르가 지시를 내린 순간.

쾅!

굉음과 함께 주위를 지키던 놀들을 날려 버리고 오크 로드가 나타났다.

“크흐흐.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군.”

다른 오크보다 훨씬 큰 체격에 거기에 걸맞은 대형 도끼를 든 오크 로드는 어마어마한 투기를 뿜었다.

주위에 있던 놀들이 그 기세에 눌려 움츠러들 정도.

그걸 보면서도 아미르는 비웃었다.

‘저걸 이용해서 여기까지 왔나 본데, 바보짓이지.’

드래곤 피어도 아니고, 오크 로드의 투기로는 놀 치프를 억누르지 못했다.

여기에 모인 놀 치프의 숫자만 해도 자신을 포함해 여덟.

거기다가 곧 놀 치프가 될 각 부족의 후계자들이 수십여 마리는 됐다.

“자, 다들 전투의 물을 마시도록.”

“오오.”

“어서 마십시다!”

“이걸 드디어 쓸 때가 됐군.”

아미르의 지시에 놀 치프들이 작은 물주머니를 꺼내 마셨다.

최근 놀들이 미친 듯이 호전적으로 변했는데, 하나같이 특정 연못의 물을 마신 뒤였다.

그걸 알게 된 아미르가 전투의 물이라 명명하며 따로 마실 수 있게 준비해 둔 거였다.

“크으으으으.”

“컹! 컹컹!”

“죽여 버리자고!”

신의 물을 마신 놀 치프들의 안광이 번뜩이면서 털이 솟구쳤다.

“사정 봐주지 말고 한 번에 덤벼!”

“당연하지!”

“우리가 언제 오크 사정 봐줬다고!”

“오늘 오크 로드의 목을 물어뜯어 버릴 테다!”

아미르의 명령에 놀 치프들이 신나게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크취익!”

오크 로드는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대형 도끼를 휘둘렀다.

그렇게 오크 로드와 아미르가 이끄는 놀 치프 무리가 맞붙었다.

맹렬한 전투에 평범한 놀이나 오크들은 낄 엄두를 못 냈다.

그 와중에 놀들은 한 가지 이상함을 느꼈다.

놀 치프와 상대 가능한 오크 워리어마저 이 전투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다는 거였다.

마치 오크 로드의 승리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리고 잠시 후.

관전하던 놀들은 오크들이 왜 그리 자신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놀 치프들은 물론, 수십 마리의 놀이 덤볐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건 오직 하나 오크 로드였다.

나머지는 모두 오크 로드의 대형 도끼에 처참하게 도륙당했다.

“이제 너만 남았군.”

유일하게 남은 놀 치프 아미르를 보며 오크 로드가 중얼거렸다.

그때 치프 아미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크으…….”

“호오, 끝까지 싸울 텐가?”

오크 로드가 감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런 강자를 몰라본 제가 멍청한 놈이죠. 앞으로 저와 저희 부족은 오크 로드님을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아미르가 비굴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는 게 아닌가?

힘겹게 일어난 것도 똑바로 고개를 조아리기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실망이군.”

오크 로드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꾸하더니 몸을 돌렸다.

굴욕적인 장면임에도 아미르는 목숨을 건졌다는 데 안도했다.

그러나.

“저건 죽여 버려라. 항복하는 것들은 모아 두고.”

오크 로드의 명령에 놀란 아미르가 애원했다.

“제, 제발 목숨만은…….”

아미르가 애원했지만, 달려든 오크 워리어에게 순식간에 난도질당했다.

그 덕분에 아미르의 실망스러운 목소리는 더는 오크 로드의 귓가에 맴돌지 못했다.

* * *

-흐, 오크들이 이제 겁 안 먹어…….

언데드 몬스터들을 잃은 데비하이드가 돌아와 투덜댔다.

“그럼 이제 돌아갈 때로군.”

카엘의 말에 브로칸과 모르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놀들은 열심히 싸우던데…….”

“맞아요.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요?”

“아니. 놀들이 졌다고 봐야지. 좀 더 두고 보면 알 거야.”

카엘의 말대로 놀의 패색은 갈수록 짙어졌다.

오크 워리어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데다가, 언데드 몬스터에 겁을 먹지 않는 이상, 오크를 방해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놀의 진영도 붕괴했는지 대처도 되지 않았다.

잠깐 사이 전황을 보고 온 브로칸이 고개를 저었다.

“카엘 님 말대로 놀들은 더 못 버틸 거 같네요.”

-맞아, 무리라니까. 나도 말했잖아.

“네가 언제 말했다고!”

모르타가 쏘아붙이곤 카엘을 돌아봤다.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회귀 전 오크 군단의 전력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처음부터 오크가 더 강했거든. 지는 건 기정사실이었고, 전력을 파악하면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려고 나선 거야.”

“아. 그렇군요.”

“저도 이해했어요!”

“그래도 너희 덕분에 예상보다 더 피해를 준 거 같다.”

-오랜만에 재밌게 놀았어.

“헤헷.”

“도움이 돼서 기뻐요!”

카엘의 칭찬에 모두 나름대로 기뻐했다.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으로 철수하며 곧 흑녹색으로 바뀔 회색산맥을 바라봤다.

‘그래도 한동안 조용하겠지? 놀들까지 통제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테니.’

그사이 최대한 전력을 키울 작정이었다.

도장으로 찍어 내는 것처럼 계속 늘어나는 오크 워리어를 목격하니 새삼스레 회귀 전 오크 군단의 위력이 다시 떠올랐다.

* * *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으로 복귀하자마자 티겔 공작에게 보고했다.

상황을 전해 들은 티겔 공작의 표정은 어두웠다.

“앞으로 더 골치 아파지겠어.”

단일 세력이 회색산맥을 장악했을 경우의 후폭풍을 바로 예상한 거였다.

옆에 있던 큰형 브란의 표정도 심각했다.

“동감입니다. 그래도 올겨울은 조용할 테니, 지원을 보낼 여력은 있겠군요.”

“지원이요?”

카엘은 의아했다.

몬스터로부터 내내 장벽을 지키느라 바쁜 클리페우스성에서 다른 곳을 지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근에 나타난 고블린을 퇴치하는 정도일까?’

게다가 정예병을 왕국 내에서 움직였다가는 아무래도 다들 불안해할 테니까.

근데 말하는 분위기를 봐서는 훨씬 대규모 지원이 이뤄질 모양이었다.

“그래. 올렉과 이고르 백작 쪽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지원해 달라고 하는군.”

“몬스터요?! 혹시 장벽이 뚫리기라도 한 겁니까?”

그 말에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옥스가 뜨끔했다.

장벽의 뒷구멍을 이용한 게 찔린 거였다.

“아니야. 전혀 새로운 몬스터가 나타났다는군.”

“어떤 겁니까?”

“거대 거미라는군. 사람만 한 크기에 어마어마한 숫자가 광산을 점령하고 성을 포위하고 있다고 한다.”

큰형 브란의 말에 카엘은 깜짝 놀랐다.

‘거대 거미? 그게 왜 여기에 나타났지?’

회귀 전 몬스터 대침공이 벌어진 이후의 일이다.

북쪽에서 몬스터 대침공이 벌어졌을 때, 남쪽의 섬나라에서 거대 거미가 출현했다고 한다.

제국이 브레프니 왕국에 오진 않았지만, 그 섬나라에 거대 거미를 토벌하러 가 멸망 직전의 나라를 구했다.

그 소식을 들은 브레프니 왕국 사람들은 제국에 더욱 섭섭한 마음을 가졌다.

‘설마 거대 거미도 제국에서 푼 건가?’

올렉과 이고르 백작의 자식들을 암살하려고 한 걸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거대 거미들이 이대로 증식을 하면 우리에게도 큰 위험이 될 거야.”

“클리페우스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브란 형, 티겔 공작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이대로 뒀다간 몬스터 대침공 전에 왕국이 무너질 판이니까.

“그럼 제가 지원군을 이끌고 가 보겠습니다.”

카엘이 솔선해서 나서자 티겔 공작과 브란 형 모두 걱정했다.

“괜찮겠느냐?”

“안 그래도 정찰하느라 피곤했을 텐데.”

“맡겨 주십시오. 나름대로 대처 방법도 생각해 뒀습니다.”

“네가 그렇다면, 절묘한 방책이 있는 거겠지. 좋아, 부탁한다.”

티겔 공작이 허락했다.

카엘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자신 있게 말한 만큼 카엘은 거대 거미의 정체와 토벌하는 방법을 알았다.

하지만 노리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몬스터 대침공 전에 그것도 얻을 수 있겠네.’

카엘은 새로운 소재를 얻을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지원군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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