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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86화 (86/234)

86화 세계수의 흔적

“어떻게 된 거야?”

먼저 들이닥친 디오네가 소리치자, 블렌트가 엉겁결에 저 앞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드워프가 매우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쓰며 서 있었는데, 다리가 완전히 뒤틀려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상태로 다리를 질질 끌며 움직이는 중이라는 거였다.

강제로 일하게 만드는 드래곤의 저주 때문이었다.

“쯔쯧, 일하는 척만 하라니까.”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저래야 하는데 죽은 목숨이지.”

옆에서 일하는 드워프들이 혀를 찼다.

확실히 작업을 멈출 수가 없으니 도중에 다치기라도 하면 악화해 죽기 십상이었다.

“말을 왜 그렇게 해? 침대가 낡아서 일하는 김에 만들려다 그런 건데.”

“더 움직이지 않도록 저쪽 선반이나 치워 봐. 앉아서 하는 일이라도 시켜야지.”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 친구가 정말!”

난데없는 사고에 드워프들이 다투기 시작했다.

싸운다고 해 봐야 일하면서 입으로 떠드는 수준이었지만.

“지금 그렇게 싸울 때야?”

“…….”

기가 찬 디오네가 소리치자 드워프들이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에 카엘은 다친 드워프에게 다가갔다.

“브로칸, 이분 부축 좀 해 줘.”

“아, 네.”

브로칸이 다친 드워프를 부축했다.

“으윽.”

“조금만 참으세요. 카엘 님이 고쳐 주실 거예요.”

그러나 드워프들은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저 상태로 어떻게 고쳐? 앞으로 몇 시간은 더 남았는데.”

“쓸데없는 짓이야.”

디오네마저 우려했다.

“일하는 걸 멈추지 않고 어떻게 치료하려고?”

“이걸 먹이면 됩니다.”

카엘은 회복 포션을 꺼냈다.

그걸 본 디오네는 대번에 뭔지 파악하며 감탄했다.

“아, 그렇지. 재생 포션을 만들 정도면 회복 포션도 당연히 있겠지.”

“네.”

카엘은 일단 드워프의 상태를 살폈다.

발등이 박살 나 있는 게, 아무래도 옆에 떨어져 있는 망치에 찍힌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서 강제로 움직였다가 모루에 걸려 다리가 완전히 뒤틀린 거군.’

원래 공방에서 일할 때는 발등에 뭔가 떨어져도 괜찮게 안전화를 신었다.

뛰어난 대장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드워프들도 마찬가지.

아무리 손재주가 뛰어난 드워프라고 해도 실수는 하기 마련이었으니까.

다만, 오랜 시간 강제로 일하는 척하다 보니 그런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게 된 거였다.

“크윽!”

카엘은 다친 드워프 곁에서 뒤틀린 뼈를 맞추고 회복 포션을 상처에 발랐다.

그런 다음 남은 걸 마시게 했더니 드워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떻습니까?”

“어, 이제 안 아프네.”

“호오, 회복도 빨라 보이는데 통증도 바로 잡았네? 포션을 얼마나 잘 만든 거야?”

카엘은 스승의 감탄에 내심 기뻐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상처가 아물고는 있지만, 계속 움직이다간 다시 벌어질 수도 있어서였다.

“여기 부목 만들어 왔네.”

블렌트가 눈치 빠르게 발바닥과 정강이뼈를 고정할 수 있도록 나무판을 붙여 가지고 왔다.

“잘하셨습니다.”

다친 드워프는 부목까지 대자 몸이 훨씬 편했다. 그러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이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흥분하면 위험하니까 진정하시고.”

“…네. 정말 감사합니다.”

드워프의 작업은 그 후로도 두 시간은 더 지나서야 끝이 났다.

진이 빠진 드워프들은 평소라면 그대로 널브러졌을 테지만, 다들 다친 드워프에게 달려왔다.

“어떤가? 괜찮아?”

“아까는 죽을 거 같았는데, 금방 괜찮아졌어.”

“이야, 정말 벌써 멀쩡해졌는데?”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까 다친 드워프를 비난했던 드워프도 얼싸안고 울었다.

말은 차갑게 했어도 많이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비정하게 굴었던 건지도 몰랐다.

나머지 드워프도 카엘 일행을 둘러싸고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소. 우리를 도와줘서 정말 고맙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주겠소.”

“맞다. 아까 룬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 주지.”

“그래, 어차피 잊히는 것보다 동족에게 알려 주는 게 낫지.”

다친 드워프를 치료한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블렌트가 그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다.

“그 전에 술부터 한잔하셔야죠.”

“크, 역시 드워프답게 뭘 좀 아는구먼!”

큰 소리로 블렌트를 칭찬한 드워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부탁이…….”

“부탁이요?!”

“치료약이 더 있으면 달라는 거겠죠.”

놀라서 되묻는 블렌트에게 카엘이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민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해서 사고라도 나면 죽는 상황에서 저런 즉효성 치료약을 보니 탐나는 게 당연했다.

“안 그래도 몇 개 더 드리고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술이며 약이며 더 가지고 오죠.”

“오, 정말?”

“회색산맥을 몬스터가 잔뜩 뒤덮고 있어 쉽게 오진 못하겠지만요.”

“괜찮네. 술이 온다는 희망이 있다는 것만으로 버틸 수 있으니.”

카엘의 솔직한 말에 드워프가 해탈한 듯 웃음을 지었다.

드워프들도 그렇게 이야기가 쉽게 풀릴 거라 기대하진 않은 듯했다.

그때 모르타가 조용히 불렀다.

“카엘 님, 세계수에 대해서…….”

“아, 그렇지.”

드워프들에게 세계수에 관해 물어본다는 게, 갑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깜빡했다.

“이곳에 원래 세계수가 있었다는데, 혹시 그 흔적을 보신 적 있습니까?”

“아, 물론이지.”

“여기저기 땅을 파 봤는데 세계수의 흔적이 있더라고.”

“저기로 가면 바로 볼 수 있어.”

드워프들이 앞다퉈서 세계수의 위치에 대해 말했다.

“이대로면 수월하게 세계수의 열매에 대해서도 찾을 수 있겠는데요?”

그걸 본 브로칸이 기대감에 부풀었고, 모르타도 희망에 차서 재차 물었다.

“혹시 거기서 세계수의 열매를 보신 적 있나요?”

그러나 드워프들은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의 열매? 그런 건 못 봤는데.”

“참, 저길 구경하는 건 괜찮지만, 가까이 가면 안 돼.”

“그래. 아주 위험해.”

“위험하다고요?!”

“저기 가면 갑자기 불길이 치솟거든, 거기서 까맣게 타 버린 드워프도 있다니까.”

그 말에 모르타가 카엘을 쳐다봤다.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들이야.”

“근데 여기는 드래곤 때문에 정령들이 두려워하면서 오지 않으려 할 텐데.”

모르타의 의문에 디오네가 답했다.

“아마 세계수가 건재할 때부터 존재하다가, 세계수 소멸로 미쳐 버린 정령들일 거야.”

“하긴 그런 게 아니라면 정령들이 먼저 상대를 해치진 않을 테니까요.”

“어쨌든 거기로 갑시다. 정령들이 머물며 주변에 적대적이라는 건 뭔가를 지키고 있다는 거니까요.”

카엘의 말에 디오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의 열매든 뭐든 있을 가능성이 크겠지.”

“오! 그래요?”

“어서 가요!”

희소식에 브로칸과 모르타가 앞장서려고 할 때, 디오네가 찬물을 끼얹었다.

“근데 거기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폭주한 정령들은 나도 쉽게 상대 못 해.”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카엘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 * *

카엘은 드워프가 알려 준 방향으로 가서 작은 동굴로 들어갔다.

얼마 들어가지 않아 넓은 구역이 나왔는데, 드워프가 알려 준 바에 의하면 세계수의 내부라고 했다.

“카엘 님, 저 멀리서 희미하게 정령의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그래? 어서 가 보자.”

카엘은 모르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악!”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타가 갑자기 귀를 틀어막으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모르타, 괜찮아?”

브로칸이 얼른 부축했다. 모르타는 몸을 떨면서 저 먼 곳을 응시했다.

“저, 정령들이 화났어요. 슬픈지 통곡하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애들도 있고…….”

몰아치는 온갖 소리에 괴로운 듯했다.

“하는 수 없지. 일단 안 들리는 쪽까지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어. 브로칸이 좀 데려가.”

“알겠습니다!”

브로칸은 대답하며 모르타를 부축한 채로 몸을 일으켰다.

모르타가 굳은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죄송할 거까지야.”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디오네를 쳐다봤다.

“난 괜찮아.”

디오네는 씁쓸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귀가 없어서 정령의 소리를 못 듣는 거였다.

하지만.

디오네는 귀가 없었음에도 오랜만에 정령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폭주한 불의 정령이 숨 막힐 듯한 열기와 함께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한 거였다.

“이, 이 이상은 무리겠는데. 야, 위험해.”

험악한 상황에 미간을 모으던 디오네가 카엘 쪽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카엘의 몸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흠.”

카엘은 빙한목의 냉기를 뿜어내 불을 껐다.

그걸 본 디오네가 화들짝 놀랐다.

“어, 어. 방금 그건?”

“빙한목의 냉기를 내뿜은 겁니다.”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잖아. 그것도 이 정도로 강력한 냉기는 처음 봤어. 넌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냉기가 강력한 건 카엘의 체질 탓이었지만, 지금 가타부타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힘들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빙한목의 냉기로 불의 정령을 버틸 수는 있지만, 그 힘을 계속 발산하면서 전진하는 건 무리였다.

“이걸 쓰려고요.”

“음?”

여기서 뭘 더 할지 궁금했던 디오네는 카엘이 가방에서 뭔가 꺼내는 걸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설마…….”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꺼낸 카엘은 거기서 마석을 꺼냈다.

그러자마자 사특한 기운이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 사방이 서늘해졌다.

숨 막힐 듯한 열기도 어느새 가셨다.

마석을 다시 집어넣었을 때도 마찬가지.

불의 정령들이 도망친 거였다.

“허, 마석까지 들고 있다니. 놀랄 일이 너무 많아서 지칠 정도네.”

“그보다 저기 세계수의 열매가 있네요.”

저 앞을 본 카엘이 말했다.

정령들이 사라진 곳에는 사람 머리 크기만 한 열매가 덩그러니 있었다.

바로 세계수의 열매였다.

“이거 괜찮을까?”

디오네의 말대로 열매는 열기 때문인지 오래돼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비쩍 말라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쓸모없는 걸 정령들이 지키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카엘은 그러면서 말라비틀어진 열매를 가르려고 단검을 꽂았다.

하지만 얼마나 단단한지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조트로 조심스레 잘라 낸 뒤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내부에서 씨앗이 나왔다.

은은한 빛을 발하는 씨앗은 누가 봐도 멀쩡해 보였다.

“정상적인 세계수의 씨앗이야. 드디어 원하는 걸 얻었군.”

“탐나시진 않나요?”

“글쎄. 원래라면 인간의 손에 넘어가게 두진 않겠지만. 너라면 엘프들을 위해 쓸 거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디오네는 민망한 듯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왠지 친근하게 느껴지거든. 인간한테 이런 적은 없었는데.”

“네?”

설마 회귀 전의 인연이 느껴진 건 아니겠지.

카엘의 반문에.

“아니야. 원하는 건 찾았으니까 어서 돌아가자.”

고개를 저은 디오네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 * *

밖으로 나오니 브로칸과 모르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엘 님! 찾으셨어요?”

브로칸의 물음에 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계수의 열매를 열어 안의 씨앗을 보여 줬다.

“우와, 신기해. 싱그러운 냄새가 가득해요.”

브로칸은 킁킁대더니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한편 옆에 있던 모르타도 기뻐하면서도 걱정되는 기색이었다.

“근데 정령들이 다 사라졌던데요.”

“미안하지만 내쫓았어.”

“쫓은 것뿐이니까 어디 다치거나 하진 않았을 거야.”

디오네가 나서서 변명해 주자 모르타의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아, 그렇군요.”

아무래도 카엘이 앞을 가로막는 정령들을 소멸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돌아가죠. 데비하이드가 현자의 돌도 찾아 뒀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브로칸의 말에 카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찾았다고 해도 그냥 있지 않겠지.’

카엘의 예상대로 데비하이드는 진흙 골렘과 씨름하고 있었다.

“이거 내 거야.”

“…….”

“내 거라니까. 왜 가져가.”

“…….”

현자의 돌이 든 상자를 서로 잡아당기면서 실랑이 중이었다.

“그만해.”

“이제 됐어.”

카엘과 디오네의 말에 데비하이드와 골렘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지만 데비하이드는 곧바로 다시 진흙 골렘이 손에 든 상자를 뺏더니 카엘에게 건넸다.

-내가 찾았어.

“…그래, 수고했다.”

카엘은 상자를 건네받으면서도 무생물인 진흙 골렘이 데비하이드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걸 무시하고 상자를 여니 현자의 돌이 들어 있었는데, 어림잡아도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서너 배는 커 보였다.

‘확실히 드래곤이 만든 거라 차원이 다르군.’

카엘은 현자의 돌을 확인하고, 디오네에게 건넸다. 그걸 본 데비하이드가 깜짝 놀랐다.

-앗! 그걸 왜 건네줘?

“이건 약속대로 디오네 님께 맡기겠습니다.”

“알았어. 쓸 거면 언제든 말해.”

웃으며 현자의 돌을 가방 안에 챙겨 넣은 스승이 손가락으로 꼽았다.

“현자의 돌에 세계수의 씨앗, 마석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 드래곤 하트만 있으면 엘릭서를 만들 수도 있겠네.”

“그것도 이미 있는데요.”

“뭐?! 정말? 드래곤 하트도 있다고?”

카엘의 말에 디오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그걸 보기 위해서라도 클리페우스성에는 꼭 가 봐야겠군.”

“저야 환영이죠.”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있는데 때마침 블렌트가 나왔다.

“앗. 벌써 돌아왔군.”

“어떻습니까?”

“변형의 룬 배웠어. 그 밖에 몇 가지 쓸 만한 것도.”

“벌써요?!”

브로칸이 깜짝 놀랐다. 세계수의 씨앗을 찾으러 갔다 온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그렇게나 배웠다니.

“쓰는 순서랑 몇 가지 요령만 외우면 되거든. 룬 문자를 쓸 수 있으면 금방 배워.”

“잘됐네요. 그럼 돌아갈 수 있겠네요.”

“응…….”

블렌트는 말꼬리를 흐렸다.

동족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무거웠던 탓이다.

디오네도 그걸 꿰뚫어 봤는지 한마디 했다.

“드워프들 조만간 풀려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풀려난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아, 요즘 상황을 보니까 조만간 드래곤이 깰 거 같거든. 그러면 풀려날 거야.”

그 말에 카엘도 놀랐다.

자신이야 회귀해서 안다고 해도, 디오네는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산맥의 상황이 심상치 않더라고. 어마어마한 기운이 들썩이는 걸 봐서는 아무리 깊은 잠에 들어간 드래곤이라도 깰 거 같더라. 원래라면 수백 년은 더 자고 있어야 할 텐데.”

‘그렇다는 건 드래곤이 수면기가 끝나서 깬 게 아니라, 억지로 깨 버린 건가?’

그런 거라면 회귀 전 드래곤이 끝도 없이 흉포한 게 이해가 됐다.

억지로 잠에서 깼으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그러면 그 방법은 안 되겠네.’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의 전력이 계획했던 것보다 강해진 걸 보고, 먼저 회색산맥의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몬스터 대침공을 막으려고 전전긍긍할 게 아니라. 선제공격으로 병력을 줄여 놓으면 훨씬 안전할 테니까.

하지만 디오네의 말에 따르면 괜히 그랬다가는 드래곤을 먼저 깨워 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돌아가는 것도 가능한 한 조용히 돌아가는 게 좋겠군. 그럴 수 있다면 말이지.’

카엘 일행은 귀환 준비를 마치고 다시 비밀 통로를 이용해 미궁을 벗어나 둥지 바깥으로 나왔다.

미노타우로스도 디오네가 해치운 마당에 거칠 게 없었다.

‘나중에는 또 다른 몬스터가 미노타우로스의 역할을 하고 있겠지만.’

문제는 미궁 바깥이었다.

동굴 바깥쪽으로 나가니 어마어마한 수의 오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대로군.’

이리로 들어가는 걸 봤으니 순순히 놓아 줄 생각이 없는 이상, 기다리고 있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디오네까지 그걸 뚫고 들어왔으니 이를 갈고 대규모 병력으로 봉쇄한 거였다.

하지만.

카엘은 이 오크들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스승과 우리가 함께 있으면 충분하지. 그러고도 안 되면 쓸 방법도 있고.’

카엘은 뒤따라 오는 브로칸을 슬쩍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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