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83화 (83/234)

83화 드래곤 둥지 (2)

카엘 일행을 먼저 눈치챈 건 놀 측이었다.

컹! 컹컹!

“인간이 회색산맥에 침입해? 더러운 라이칸스로프까지 끌어들여 이곳까지 오다니 무슨 속셈일까?”

“이곳을 침공할 속셈일 게 분명하다!”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저것들을 잡아 죽여 버려야 해!”

이내 오크들도 눈치챘다.

크취익!

“인간들이 경계 안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드워프까지 함께 왔다고 하니 꼭 해치워라!”

“내 도끼로 반드시 죽인다!”

“겁 없이 이곳에 기어들어 온 녀석들에게 응징을!”

놀과 오크들은 각자 추격대를 편성해 카엘 일행을 노렸다.

카엘이 짐작한 바였다.

전과 달리 라이칸스로프 브로칸과 드워프인 블렌트를 데려온 만큼, 더욱 쉽게 노출될 거라 여겼으니까.

두 집단은 카엘 일행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치자마자 으르렁대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위협했다.

그것도 카엘의 예상대로였다.

컹! 커컹!

크취익.

“우리 영역에서 꺼져! 이 더러운 오크들아!”

“놀! 네 녀석이야말로 왜 우리 영역으로 넘어왔나! 지저분한 털을 다 뽑아 버리기 전에 돌아가라!”

…라고 두 몬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브로칸이 설명해 줬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블렌트가 혀를 찼다.

“이것들이 우리를 잡아 놓은 짐승 취급 하는군.”

그럴 법도 한 게 다들 일전의 패배를 설욕하려는 듯 4명을 잡는 데 각각 수백 마리씩을 데려왔다.

‘반대로 자기들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겠지.’

“카엘 님, 그냥 뚫고 달릴까요?”

사실 그냥 싸워도 이길 자신은 있었다. 전투가 길어지는 게 문제지.

“잠시만 기다려 봐.”

카엘이 브로칸을 진정시킬 때, 뜻밖에도 협상이 이뤄지는 게 아닌가?

“크취익. 이러지 말고 우리는 드워프를 데려갈 테니, 너희는 저 라이칸스로프를 데려가라.”

“컹커컹. 좋다! 그럼 나머지 인간은?”

“하나씩 가져가면 된다.”

오크 워리어의 제안에 놀의 우두머리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의 대화를 전달한 브로칸이 걱정했다.

“카엘 님, 이러다 양측이 협공할 기세인데요?”

“흥. 누가 그냥 잡혀 준대? 죽을 때까지 싸워야지.”

블렌트가 믿음직스럽게 말했지만, 카엘은 당장 싸울 생각이 없었다.

“모르타, 바람의 정령에게 부탁해서 서로의 대화가 들리게 해 줘.”

“네.”

우두머리끼리는 대화가 통할지 몰라도 항상 다투고 있는 이상, 부하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힘으로 억눌러도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하겠지.’

“컹컹. 저 더러운 냄새 풍기는 것들이랑 협상할 필요가 있어?”

“커엉 컹. 그러게. 그냥 확 물어뜯어 버리면 되는데. 우리가 숫자도 더 많잖아!”

“크취익. 저 지저분한 것들이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쾌하군.”

“크췩. 왜 저리 꼬나봐? 저 침 흘리는 아가리를 뭉개 버릴 수도 없고.”

“컹! 방금 들었어?”

“크앙! 저것들이 지금 뭐라고 했어?”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양측의 우두머리인 놀 치프와 오크 워리어가 윽박질렀다.

“어, 이것들아, 시끄럽다!”

“조용히 못 해?”

“크췩? 하지만 저 녀석들이 우릴 더러운 냄새 풍기는 놈들이라고 했다고요! 물어뜯는다고도 했어요!”

“컹! 컹! 우리 아가리를 뭉갠답니다. 그냥 참아요? 에이 씨!”

열받은 놀들이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오크들도 즉각 반응했다.

“어어, 저것들이 덤비네! 죽여 버려!”

양측의 우두머리가 말리는 와중에 소리가 커져 다툼이 시작된 거였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모르타는 그걸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니, 이렇게 사이가 나쁜데 용케도 나란히 이웃해서 사네요.”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이자.”

“네.”

카엘이 덤벼드는 놀을 집어 던지고 움직이자 일행도 뒤를 따라왔다.

놀과 오크들도 그걸 봤지만. 대부분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 저것들 도망치잖아!”

“됐어. 장벽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이것들 혼내고 잡아도 충분해.”

그 와중에 놀과 오크 몇몇이 쫓아왔지만 쫓아오면서도 다투기 바빴고, 맨 후미에 있던 브로칸이 간단히 뿌리쳤다.

“이것들이, 그만둬!”

“그만 좀 못 해?!”

한편 놀 치프와 오크 워리어는 부하들을 때려잡아서 겨우 진정시켰다.

“컹! 젠장, 놓쳤잖아! 어쩔 거야?”

“크췩! 그쪽이 먼저 덤볐잖아.”

놀 치프와 오크 워리어는 대립했지만, 오크 워리어가 먼저 물러나며 제안했다.

“쯧. 좋다. 잡아 와서 라이칸스로프를 넘겨주겠다. 다음번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쪽에 먼저 기회를 넘겨 주는 거로 하자.”

“흥, 일리 있는 제안이지만, 우리가 먼저 가겠다. 불만 없겠지?”

“…그렇게 해.”

오크 워리어가 순순히 물러나자 놀 치프가 이빨을 보이고 웃으며 부하들을 이끌고 쫓아갔다.

그걸 본 오크들이 분통 터져 했다.

“저 재수 없는 새끼들한테 양보하면 어떡합니까?”

“오크 로드께서 일전의 전투처럼 인간을 앞에 두고 저것들과 다투지 말라 하셨지 않았느냐.”

“그래도…….”

“우는소리 그만하고 쫓아가자. 저 녀석들이 놓쳤을 경우를 대비해야지.”

“아, 하긴 저것들이 뭐 제대로 하겠습니까? 힘이나 빼놓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오크 워리어의 말대로 카엘 일행을 덮친 놀 부족은 순식간에 박살 났다.

라이칸스로프인 브로칸에 단단한 갑옷을 갖춰 입은 드워프 블렌트는 놀들도 쉽지 않은 상대라고는 예상했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으로 착각한 엘프는 어지간한 기사보다 전투력이 뛰어난 데다가.

카엘이 아조트를 휘두르자 놀들이 종이처럼 썰려 나갔기 때문이다.

놀 치프마저 단칼에 목이 떨어지자 놀들은 우르르 도망쳤다.

카엘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처음 본 블렌트는 입을 떡 벌렸다.

“어, 엄청나게 강하군……. 혹시 자네가 그 소드 마스터인가 하는 건가?”

“아뇨. 소드 마스터는 훨씬 더 강합니다.”

“허. 그렇군.”

“어서 가죠. 조금만 더 들어가면 목적지 근처입니다.”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그때 브로칸이 다급하게 외쳤다.

“카엘 님! 오크들이 몰려옵니다!”

“이렇게 바로?! 어쩌나, 그럼.”

“아마 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겠죠. 다들 그대로 뚫고 갑시다.”

“하지만…….”

카엘의 말에 블렌트가 말꼬리를 흐렸다.

날렵하고 산이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엘프와 브로칸과 달리, 드워프는 이 이상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괜찮아요, 갑시다.”

“어어.”

카엘은 블렌트를 덥석 들고 앞장섰다.

그렇게 카엘 일행은 오크의 추격을 뿌리치며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 나갔다.

카엘 일행이 검은 암석 지대까지 가는 걸 본 오크 워리어는 주춤했다.

“이것들이 설마… 야, 그만 쫓아.”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저것들 금지에 들어가려는 거 같다.”

오크 워리어의 말에 오크가 화들짝 놀랐다.

“네?! 거기 안에 들어가면 다들 미쳐 버리지 않습니까?”

저기로 갔다가 미쳐 버리거나 행방불명된 오크의 이야기는 오크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그래서 오크 로드는 아예 출입을 금지했다.

“어차피 죽을 길로 가는 녀석들을 애써서 잡을 필요 없지.”

그때였다.

“비켜라! 형제의 복수를 하러 왔다!”

새로운 놀 치프가 어마어마한 숫자의 놀을 이끌고 나타났다.

놀 치프는 가만히 있던 오크들을 보더니 물었다.

“인간들과 라이칸스로프는?”

“저 안으로 들어갔다.”

“왜 안 쫓아?”

“저 안은 오크 로드께서 출입을 금지하신 곳이다.”

“훗. 겨우 그런 이유로 포기하다니. 우리는 형제의 복수를 하러 가겠다!”

놀 치프는 그렇게 말하며 놀을 데리고 쫓아갔다.

“두목? 어떡합니까?”

“내버려 둬라, 내가 오크 로드께 말씀드릴 테니까. 대신 도망쳐 오는 놀은 모조리 잡아 죽이도록.”

“알겠습니다.”

오크 워리어의 지시에 오크가 사악하게 웃었다.

* * *

한편 암석 지대로 달려간 놀들은 그 끝자락에서 동굴을 발견했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놀들이 보고했다.

“라이칸스로프가 이곳을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거 같습니다.”

“좋다. 가자! 다들 어서 가서 잡아 와라!”

놀 치프의 말에 신난 놀들이 뛰어 들어갔다.

앞서 살아남은 동족이 강한 녀석들이라고 조심하라고 했지만, 놀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상대한 놀들이 약한 거지 자신은 강하니 질 리가 없다는 거였다.

동굴은 제법 커다란 게 여러 마리가 나란히 뛰어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달려가던 놀들이 하나둘 발을 멈추기 시작했다.

뒤따라가던 놀 치프가 그걸 보고 호통을 쳤다.

“음? 다들 뭣들 하냐! 왜 멈췄어?”

하지만 아무리 으르릉거려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부하들이 하나같이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데 공포에 질린 눈빛이었다.

“야, 왜 그래?”

“두, 두목… 숨이, 커억.”

놀은 말을 끝내기 전에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그대로 숨이 끊어져 죽은 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털썩. 털썩.

앞뒤로 서 있던 놀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 거였다.

‘이, 이건 저주?! 그래서 오크 녀석들이 못 들어가게 한 거였나?’

낭패라고 생각한 놀 치프가 나가려는 순간.

“커억.”

팔다리가 저리면서 동시에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힘이 전신을 옥죄는 듯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놀 치프마저 저주에 걸린 거였다.

“으으윽!”

놀 치프는 전신이 움츠러드는 고통에 그대로 죽어 갔다. 숨이 끊어지는 마당에도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먼저 들어온 라이칸스로프나 인간들의 시체는 없는 거지?’

* * *

“음? 놀들의 냄새가 났는데?”

브로칸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봤다.

“쫓아오는 거 아닐까요?”

“괜찮아. 여기 들어왔다가는 저주받아서 죽을 테니까.”

모르타의 걱정에 카엘이 안도시켰다.

“저주요?!”

“그 저주라는 게 혹시 드래곤 피어인가?”

드래곤 피어는 드래곤이 존재감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기운.

최고의 생물이라고 일컬어지는 드래곤이 존재감을 발휘하면 대부분의 생명이 공포를 느끼며 움츠러들고, 심하면 생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블렌트도 과거 드래곤과 전투를 벌였던 드워프들의 전설에서 들은 적 있었다.

“비슷합니다. 드래곤이 그걸 주문으로 만들어 이곳에 펼쳐 둔 거니까요. 강한 자라면 버티겠지만, 소드 엑스퍼트 이상은 되지 않으면 무리죠.”

“헉! 그럼 저도 그만큼 강해졌다는 소린가요?!”

“아냐. 방금 먹은 포션 덕분에 버틸 수 있는 거죠. 맞죠?”

기뻐하는 브로칸과 달리 모르타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맞아. 진정 포션을 먹어서 괜찮은 거야.”

동굴에 들어온 카엘은 오크들이 더는 쫓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정 포션을 마시게 했다.

“단순히 긴장을 푸는 약이라 생각했는데 드래곤의 저주를 버티는 약이었다니.”

“이걸 먹으면 드래곤이 직접 발산하는 드래곤 피어도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대단하구먼.”

블렌트는 감탄하면서도 뒤따라 가면서 문득 카엘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설마 드래곤 피어를 직접 막아 내는 일은 안 생기겠지?’

* * *

통로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른 평지가 나왔다.

마치 드워프들의 지하 왕국처럼 내부가 지하임에도 밝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 저건 빛의 룬으로 만든 건데…….”

동족의 흔적을 알아본 블렌트가 침울한 얼굴이 됐다.

아무래도 드래곤에게 잡힌 동족이 만든 거라고 짐작해서였다.

“지금 데리고 나올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엘프에게 걸었던 주박보다 훨씬 강한 저주를 걸어 뒀거든요.”

“아…….”

카엘도 안타까웠지만, 분명히 선을 그었다.

드래곤이 호락호락한 존재도 아닌데, 그 드래곤에게 잡혀 있는 드워프들을 쉽게 해방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다만.

“지금 데리고 나올 수 없다고 하면, 나중에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몬스터 대침공 이후, 드래곤이 깨어나서 이곳을 떠나면 구할 수 있었다.

회귀 전 블렌트가 이곳을 탈출했던 것처럼.

카엘의 말을 들은 블렌트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그때는 나도 반드시 힘을 보태겠네.”

“기대하겠습니다.”

그 결연한 모습에 꼭 룬 때문이 아니더라도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블렌트는 돌아가면 바로 놀과 오크가 아니라, 드래곤을 상대할 무기를 만들리라 다짐했다.

‘그 전에 이곳에서 무사히 돌아가는 게 먼저겠지만.’

그러나.

블렌트의 기우와 달리 카엘은 드래곤 둥지를 제집처럼 거침없이 다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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