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82화 (82/234)

82화 드래곤 둥지 (1)

“이제 슬슬 출발하면 되려나?”

카엘은 클리페우스성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매일 장벽 밖을 살폈다.

장벽 밖에서는 축제와 별개로 전투 후 뒤처리를 빠트릴 수 없었다.

놀과 오크의 사체가 언데드 몬스터화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모조리 불태워야 했다.

그러면서 시커먼 연기가 며칠 동안 피어올랐다.

놀과 오크들은 딱히 동족의 사체를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 연기를 지켜보고 있어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 그 연기가 가시고 지켜보던 놀과 오크들도 모두 철수한 거였다.

카엘은 이주민 거주 구역으로 내려갔다.

대부분이 3층 신축 건물이었는데, 2층은 라이칸스로프들이, 3층은 엘프들이 사용했다.

건물의 대부분을 드워프들이 만들었음에도 드워프들은 1층의 일부만 숙소로 쓰고 나머지는 공방으로 썼다.

그 안에서 무기와 방어구는 물론, 각종 생활용품을 끊임없이 생산했다.

특히 전투를 직접 겪은 드워프들은 수성 무기가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것 말고도 잔뜩 개발한다고 머리를 맞댔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목적이 분명한 뭔가를 만든다는 게 창작 의욕을 고취한 듯했다.

옥스와 네먼이 가지고 온 술을 거부할 정도로.

그중에 현재 드워프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카엘이 부탁한 브로칸의 무기였다.

그건 회귀 전의 카엘과 친구였던 드워프 공방의 총 책임자인 블렌트가 최우선으로 진행 중이었다.

카엘이 부탁한 무기가 아주 흥미로운 물건이기도 했지만, 제국에 납치될 뻔한 딸을 구해 준 보답을 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그러나.

“안녕하세요.”

“앗. 카엘 왔는가?”

카엘이 온 걸 본 블렌트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서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제가 부탁한 거 많이 멀었나요? 더 천천히 만들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대충 시제품은 완성했는데…….”

“오, 정말인가요? 그럼 보여 주세요.”

“흠.”

블렌트는 자신 없는 태도로 사람모형을 덮어 놓은 천을 벗겼다.

그러자 강철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면 관절 부분 보호가 거의 없어 방어에 취약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그래도 상관없는 게, 브로칸이 편하게 움직이도록 만든 브로칸 전용 갑옷이었기 때문이다

“다 만들어진 거 같은데요?”

“주문한 대로 만들긴 했어. 이렇게 하면 칼날이 튀어나온다든가…….”

블렌트가 갑옷에 붙은 판을 뒤집자 칼날이 나타났다. 그렇게 갑옷 곳곳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붙어 있었다.

육탄전이 장기인 브로칸이 적과 붙었을 때 공격하는 용도였다.

“와! 멋진데요. 제가 생각한 그대로예요!”

“그래도 못 써.”

“그래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자동으로 안 되거든. 하나하나 세워야 해.”

“그럼 제가 말한 대로 변형도 안 되겠군요.”

“아예 안 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수동으로…….”

그 설명을 들은 카엘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그럴 필요 없이, 여기에 룬 문자를 새기면 되지 않나요?”

드워프들만 쓸 수 있다는 고대 문자 룬.

룬 문자를 새기면 특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장에 카엘이 쓰는 포션병도 블렌트가 유리병에 보존의 룬을 새겨 준 거였다.

카엘은 자신이 의뢰한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무기에도 룬을 붙여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수동이라니.

정작 블렌트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음? 보존의 룬은 새겨 줄 수 있지만, 크게 차이는 안 날 텐데.”

“복원의 룬을 쓰면 되잖아요.”

형태마다 복원의 룬을 새겨 두면 각 룬이 힘을 발휘할 때마다 형태를 바꿀 수 있었다.

“복원의 룬? 들어 본 적은 있는데, 쓸 줄 모르는데.”

“복원의 룬을 쓸 줄 모른다고요? 아…….”

카엘은 아차 싶었다.

회귀 전 만난 블렌트는 복원의 룬을 비롯해 몇 가지 룬 문자를 쓸 줄 알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알던 게 아니라, 드래곤의 둥지에 잡혀 있던 다른 드워프한테 배웠던 모양이었다.

‘이거 드래곤 둥지에 가서 해야 할 게 하나 더 생겼네.’

“어떡할까?”

“일단 이건 잠깐 이대로 두세요. 복원의 룬이 있어야 완성할 테니.”

“아, 알았네.”

블렌트는 카엘의 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했다.

어떻게 드워프들에게만 내려오는 룬을 찾는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더는 불가능한 일에 매달려 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엘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복원의 룬 배우러 가지 않겠습니까?”

“어?”

* * *

드워프의 공방을 나온 카엘은 위층의 엘프 거주 구역으로 올라갔다.

엘프들은 언제 좁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느냔 듯 모두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카엘이 온 걸 보고 바로 무릎을 꿇고 조아리려는 걸 매번 만류해야 했다.

그만큼 카엘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거였지만, 엘프가 저러니 민망했다.

다행히 엘프 자매들이 금방 달려 나왔다.

“카엘 님, 오셨어요?”

“…반가워.”

“오랜만이에요.”

“그래. 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어?”

“전혀 없어요. 먹을 것도 넉넉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드워프분들이 바로바로 만들어 주시는걸요.”

다행히 여기 와서도 드워프와 다투지 않고 우호적으로 지내는 모양이었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신가요?”

“…궁금.”

“앗! 혹시 저희가 활약할 때가 온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조만간에 드래곤의 둥지를 탐험하러 가려는데, 도와줬으면 해서.”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하지만 최소 인원으로 갈 거라 한 명만 데려가려고 하거든.”

“그래요?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내가 갈 거야.”

“제가 갈게요!”

엘프 자매들은 드래곤 둥지로 가겠다는데도 겁도 없이 서로 가겠다고 나섰다.

“위험한 곳인데, 괜찮겠어?”

“세계수의 흔적을 찾으러 가는 거잖아요. 당연히 저희가 가야죠.”

“…빠지기 싫어.”

“카엘 님도 도울 수 있고요.”

“근데 누가 가지? 카엘 님, 셋 중에서 누가 제일 도움이 될까요?”

노아나의 말처럼 모두 가겠다고 한 덕분에 카엘이 선택할 수 있었다.

“셋 다 도움은 되겠지만, 은밀하게 잠입하려면 모르타가 소리를 차단해 주는 게 편하겠지.”

“야호!”

카엘의 말에 모르타가 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그럼 출발 준비해 두고 있어. 내일 새벽에 출발할 테니까.”

“새벽에요?!”

“응, 몰래 출발할 거거든.”

어머니가 알면 반대할 게 뻔했기에 카엘은 비밀리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어차피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 * *

그날 밤.

카엘이 방에서 뭔가를 만드는 걸 본 소피아가 물었다.

“또 뭘 만드시는 건가요?”

“이거? 진정 포션이야.”

“아! 저, 전 이제 필요 없어요.”

카엘의 말에 소피아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거였다.

예전에 소피아가 공작이자 소드 마스터인 티겔 앞에서 검술을 펼쳐야 했을 때였다.

긴장할까 봐 진정제를 만들어 뒀었는데, 정말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소피아는 그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거였다.

“필요 없지. 이제 나보다 검술 실력이 좋은 거 같던데?”

“그, 그런가요? 저 열심히 훈련한 보람이 있네요.”

“이건 나중에 필요해서 만들어 두는 거야.”

“아, 그렇군요.”

납득한 소피아는 별 의심 없이 돌아갔다.

가는 방향을 보니 이 밤에도 훈련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정말 열심히 하네. 나도 힘내야지.’

새벽 무렵.

카엘은 방에서 빠져나와 이주민 거주 구역으로 향했다.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드워프 블렌트와 엘프 모르타, 라이칸스로프 브로칸과 합류했다.

이 셋 말고도 등에 멘 가방에는 데비하이드가, 허리춤에는 아조트가 매여 있었다.

드래곤 둥지로 가는 만큼 철저히 대비한 거였다.

장벽 앞에 도착하자 브로칸이 아득하게 높은 장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길 넘어가는 건가요?”

“넘어가? 난 무리야, 무리.”

블렌트가 정색했다.

카엘도 블렌트의 짧은 다리로 장벽을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눈에 안 띄게 뒷구멍으로 갈 테니까.”

“누군가 오고 있어요.”

“옥스 님과 네먼 님이네요.”

정령의 목소리를 들은 모르타에 이어 냄새를 맡은 브로칸이 말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레인저 조장 옥스와 백인대장 네먼이 나타났다.

“여긴 무슨 일이야?”

“그건 저희가 할 말입니다.”

카엘의 당당한 물음에 네먼이 어처구니없어했다. 옆에 선 옥스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회색산맥으로 가시려고 하는 거 같은데 맞죠?”

“그래.”

“역시. 며칠 동안 성벽을 주시하는 걸 봤거든요. 분명 나가려고 하실 거 같았어요.”

아무래도 함께 몇 번이나 회색산맥을 탐색했던 옥스답게 바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들켰나. 어쨌든 비밀로 해 줘.”

“헤헷. 물론이죠. 대신 저희도 데려가셔야죠. 너무 새 친구들이랑만 다니시는 거 아닙니까?”

“드래곤 둥지로 가는 건데?”

카엘의 말에 옥스와 네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 드래곤 둥지로요? 그게 어딨는데요?”

“설마 회색산맥에 있습니까…….”

“응. 지금은 수면기라 자고 있지만.”

카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옥스의 얼굴은 심각했다.

“끙. 거긴 또 무슨 일로 가십니까? 거기에 희귀한 약재라도 있습니까.”

“비슷해.”

가서 찾아봐야 하는 것만 해도 3가지나 됐다.

세계수의 열매나 씨앗, 드워프의 룬, 가장 중요한 스승까지.

스승은 바로 만나진 못하고, 클리페우스성으로 찾아오라고 메모를 남길 생각이었다.

옥스는 한숨을 내쉬더니 투덜거리며 말했다.

“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는 수 없죠. 갑시다, 가!”

“가?”

“네,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신다는데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네먼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 다 두려운 듯했지만, 빠질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뜻은 고맙지만. 최대한 은밀히 침입해서 조용히 찾아보고 나올 생각이거든. 그래서 인원도 최소로 가려고.”

그 말에 옥스와 네먼이 카엘이 데리고 온 일행을 쳐다봤다.

야수나 마찬가지인 라이칸스로프와 숲의 주민으로 유명한 엘프보다 숲에서 잘 활동한다고 자신할 순 없었다.

드래곤 둥지를 찾는다니 드워프도 필요할 테고.

자신의 역량을 잘 아는 옥스와 네먼은 순순히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요 앞까지는 같이 가도 되겠죠?”

“그래. 안 그래도 뒷구멍을 찾고 있었거든.”

“뒷구멍이요? 여기 바로 있는데…….”

옥스는 신나서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리며 네먼의 눈치를 봤다.

또 경비를 담당하는 백인대장에게 뒷구멍을 들켜서였다.

“휴. 너 나중에 보자.”

네먼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엘은 한결같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 * *

카엘 일행은 옥스가 알려 준 뒷구멍으로 장벽을 넘어왔다.

장벽을 통과하면서도 네먼은 투덜댔다.

“이런 걸 함부로 만들었다가 몬스터가 이용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괜찮아. 최대한 은폐해 두고 수시로 위치도 바꾸거든. 그리고 이 넓은 곳에서 이거 하날 어떻게 찾겠어?”

확실히 장벽만 해도 백 미터가 넘는데 거기에 좁은 통로 몇 개가 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생길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혼날 만한 일이긴 하지.’

“자랑이다, 이 녀석아!”

네먼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옥스를 혼냈다.

“아, 이런 게 뒷구멍이군요. 저기 나무 뒤에도 하나 있던 거 같은데.”

심지어 브로칸은 쉽게 다른 위치를 찾아 버린 거였다.

“이 자식이! 이번에는 절대로 못 참아.”

“못 참으면 카엘 님이 사라진 것도 알려야 하는데?”

“끙.”

화를 내던 네먼이 옥스의 말에 앓는 소리를 냈다.

카엘은 웃으며 두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자 자, 그만 다투고 들어가.”

“앗, 꼭 무사하셔야 합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인사한 옥스와 네먼이 돌아가자 잠자코 따라오던 모르타가 말했다.

“좋은 분들 같네요.”

“그러게요. 저 두 분 말고도 여기 분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브로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여길 꼭 지키고 싶은 거야.”

카엘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회색산맥은 몇 번이고 온 탓에 이제 옥스의 안내도 필요 없었다.

한참 회색산맥을 올라가는데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은밀히 가려면 놀 영역이나 오크 영역 외곽으로 가는 게 좋지 않나요?”

“저도 이상해요. 이러다가 양쪽 모두에게 쫓기는 게 아닌지.”

모르타도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일행은 샛길이긴 해도 현재 두 영역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둘의 걱정과 달리 예전에도 두 종족의 감시를 피하느라 이 방향으로 향했었다.

게다가 양쪽 다 사상자가 많으니 한동안 조심하며 내부 단속에 힘쓸 게 분명했다.

‘그래도 계속 안 들킬 수는 없겠지만.’

이 인근에 잠깐 들렀다 나오는 거면 모르겠지만, 회색산맥 중심으로 가는 데 안 들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카엘의 예상대로 하룻밤 만에 놀과 오크 양측에서 카엘 일행의 존재를 눈치챘다.

하지만 이것도 카엘이 의도한 거였다.

‘어차피 들킬 거라면 두 집단을 싸우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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