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72화 (72/234)

72화 불사의 뱀을 쉽게 잡는 방법 (3)

‘잘 통하네.’

카엘은 얼어붙은 히드라의 목 부분을 보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히드라가 정신없어하는 사이 근처로 가 빙한목의 냉기를 쏜 결과였다.

스승한테 들은 대로였다.

히드라를 공략하려면 불사에 가까운 가운데 머리를 뺀 나머지 머리를 베고, 재생 못 하게 막아야 한다고 했다.

재생을 막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잘라 낸 머리를 불로 지져 버리는 것.

가능하다면 불로 지지는 것보단 얼리는 게 더 효과가 좋다고 했다.

변온동물이라 움직임까지 둔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건 최상급 빙계 마법을 쓸 수 있는 극소수 마법사 혹은 정령왕이나 블루 드래곤 정도뿐이라며 스승은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카엘은 그를 대체할 만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빙한목의 냉기.

‘이거라면 드래곤 브레스도 막을 수 있을 정도인데, 히드라 얼리는 것 정도야 쉽지.’

히드라가 워낙 큰 탓에 동시에 머리 여러 개를 얼리진 못했지만.

쉭!

카엘은 집어삼키려고 드는 히드라의 머리를 베면서 소리쳤다.

“브로칸, 얼린 부분은 공격하지 마!”

“네!”

브로칸은 지시대로 월도를 조심스레 휘두르며 머리 하나를 베어 내는 데 성공했다.

둘의 매서운 협공에 깜짝 놀란 히드라는 주춤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카엘이 뿜어낸 냉기에 혈관이 수축하고 혈액 순환이 느려져 몸이 굳은 거였다.

……?!

오랜만에 생명의 위험을 느낀 히드라는 발악했다.

머리가 더 잘리는 피해를 무릅쓰고 브로칸에게 달려든 거였다.

콱!

“앗!”

브로칸이 히드라에게 물리는 걸 본 큰 거인이 비명을 질렀다.

“이 자식이! 누가 이기나 보자!”

브로칸은 움츠러들기는커녕 용맹하게도 발톱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대로 히드라의 머리를 뜯어 내려 한 거였다.

한편 히드라는 상대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걸 보고 기뻐하며 더욱 힘을 줬다.

방금 자신이 저 늑대 인간을 깨문 머리는 자신의 가운데 머리.

다른 머리보다 훨씬 단단하고 품은 독도 강했다.

이 늑대 인간도 곧 전신에 맹독이 퍼져 그대로 쓰러질 게 뻔했다.

그런 다음에는 저 이상한 기술을 쓰는 작은 인간 정도야 쉽게 따돌리고 도망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아무리 힘을 써도 상대가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닌가?

심지어 자신을 움켜잡은 힘이 빠지지도 않고, 멀쩡해 보였다.

마치 독이 전혀 안 통한 것처럼.

히드라는 몰랐지만, 카엘이 미리 먹이고 발라 두게 한 해독약이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었다.

놀란 건 브로칸도 마찬가지였다.

“카엘 님, 이 녀석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도 안 해요.”

“그게 가운데 머리인가 보다. 꼭 붙들고 있어!”

카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조트를 휘둘렀다.

투두둑.

그러자 히드라의 머리 두 개가 한꺼번에 바닥에 떨어졌다.

-이히힛! 오랜만에 상위 몬스터의 피를 맛보는구나!

카엘은 아조트가 미친 듯이 웃는 걸 무시하며 다른 손으로 빙한목의 냉기를 쏘아 내 히드라의 목을 얼렸다.

-어딜!

아조트는 웃다가도 몰래 카엘을 물려고 노리는 히드라의 머리를 다시 날려 버렸다.

……?

히드라는 기가 찼다.

머리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저걸 피하다니.

동시에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얼어붙어 봉쇄된 머리가 하나둘 늘어나고 몸은 둔해지는 와중에 가운데 머리가 붙잡혔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얼어붙은 목을 억지로 물어뜯어서 다시 재생할 수도 없었다.

이어서 히드라 머리 여덟 개를 제압한 카엘은 여전히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누르고 있는 브로칸에게 물었다.

“어때?”

“아직 버틸 만합니다.”

해독 포션의 힘이 뛰어나다고 해도 이만큼이나 독을 견딜 수 있는 건, 자연 회복력이 뛰어난 라이칸스로프인 데다가 거대화한 덕분이었다.

“그보다 이거 어떡하죠? 끄떡도 안 하는데.”

“그대로는 못 죽여. 보통은 커다란 바위에 눌러 둬서 봉인하지.”

카엘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히드라가 힘을 빼고 얌전해졌다.

봉인한다는 소리에 겁먹은 건 아니었다.

작은 인간의 말대로라면 이대로 제압당해도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이 얼어붙은 목이 녹기만 하면 어떤 바위로 눌러 두든지 머리를 재생해서 금방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정작 카엘은 그런 히드라의 꿍꿍이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하지만 지금은 얼려 둔 거니까. 그렇게 하려면 불로 지져야 해.”

말을 알아들은 히드라가 움찔했다.

그때 뒤에서 구경하던 큰 거인이 끼어들었다.

“그럼 불은 내가 준비하겠다.”

찌릿.

히드라가 뱀눈으로 째려보자 겁먹은 큰 거인이 나무 뒤로 숨어 버렸다.

“불로 지지진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한 카엘은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 쪽으로 다가가더니 대뜸 히드라의 입에 손을 쑥 집어넣어 버렸다.

“엇!”

“카엘 님?!”

……?!

난데없는 행동에 큰 거인과 브로칸은 물론, 히드라까지 당황했다.

‘이 녀석이 이런 몸이 된 이유가 여기 있지.’

그 틈에 히드라의 입안을 더듬던 카엘은 입천장의 유난히 딱딱한 걸 확인했다.

‘이거다!’

카엘이 그 딱딱한 걸 움켜쥐는 순간!

……!

히드라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힘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어, 어.”

어찌나 힘이 센지 브로칸이 꽉 잡고 있는데도 들썩일 정도.

그러나 카엘이 다른 손으로 히드라의 주둥이를 잡자 히드라는 꼼짝도 못 했다.

드드득.

이내 거친 소리와 함께 카엘이 히드라의 입안에 있는 걸 뜯어 냈다.

그러자 히드라가 갑자기 축 처졌다.

“죽었나 봐요. 아무리 힘을 써도 꼼짝도 하지 않더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이걸 빼내서 그래.”

카엘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걸 보여 줬다.

그건 검은 돌이었는데, 겉에 묻은 뱀의 체액은 둘째 치고 시커먼 연기에 휩싸여 있는 게 불길해 보였다.

“그건, 히드라의 드래곤 하트 같은 건가요?”

“비슷해. 히드라가 가진 힘의 원천, 마석이라는 거야.”

“마석?!”

-세상의 모든 어둠과 부정함이 모이고 모여서 응축된 거지.

아조트의 말에 카엘이 부연 설명을 했다.

“히드라도 처음부터 히드라로 태어난 건 아니었어. 원래 뱀이었다가 마석을 우연히 삼킨 뒤 비정상적인 재생 능력과 맹독을 가지게 된 거야. 그러다가 머리가 하나둘 늘어나다 보니 히드라가 된 거지.”

아주 오래전 히드라의 머리가 하나에서 둘이 되는 걸 갓 목격한 엘프가 해치워서 마석까지 획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스승이 말해 줬다.

다만, 이 정도로 커지고 최대로 만들 수 있는 머리 9개까지 만든 히드라에게서는 마석을 뽑아내기 힘들다고 했다.

아주 단단히 들러붙어 있는 데다가 맹독이 있어 접근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감안해서 준비한 카엘에게는 별문제가 안 됐지만.

브로칸은 신기하다는 듯 마석과 히드라를 쳐다보았다.

“근데 거기에도 맹독이 있어 위험하지 않나요?”

“오래 들고 있으면 위험하지.”

카엘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잘라 냈다.

마석을 빼니 그 단단하던 게 종이처럼 잘렸다.

거기에 마석을 집어넣고, 입과 목 부분을 단단히 꿰맸다.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로 주머니를 만든 거였다.

“이렇게 쓰면 돼. 이리 두면 사악한 기운이 안 새어 나오니까.”

“아, 그렇군요.”

“나머지 사체는 필요 없으니 태워 버리자. 바닷가에서 태우면 되겠지. 너도 구경은 그만하고 나와서 좀 도와!”

“…알겠다.”

카엘의 말에 숨어 있던 큰 거인이 앞으로 나섰다.

큰 거인은 히드라의 사체를 해변으로 끌고 가, 불을 피워 그 위에 던졌다.

히드라의 사체를 태우는 동안, 카엘은 브로칸이 시무룩해 있는 걸 봤다.

“왜 그래?”

“앗, 아닙니다.”

브로칸은 황급히 월도를 쥔 손을 뒤로 숨겼다.

“뭔가 이상한데? 뒤로 감추지 말고.”

“…죄송합니다.”

카엘의 말을 거스르지 못하겠는지 브로칸이 월도를 보이며 사과했다.

급하게 만드느라 안 그래도 투박했던 월도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거 망가졌다고 미안해하는 거야? 괜찮아.”

“그래도 기껏 만들어 주셨는데…….”

“이걸로 잘 싸웠으니 괜찮아. 그리고 어차피 이번에만 쓰고 놔둘 거였어.”

“놔둬요?”

“그럼, 이런 큰 걸 가지고 가기도 힘들잖아? 네 무기는 클리페우스성에서 다시 만들 거야.”

“저, 정말입니까?!”

“그럼. 드워프들한테 부탁해서 제대로 만들어야지!”

“와!”

브로칸은 얼마나 신났는지 제자리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걸 본 큰 거인이 넌지시 물었다.

“…그럼, 저건 내가 써도 되나?”

“그건 주인한테 물어봐야지.”

“어, 가져. 난 새로 받을 테니까.”

“고맙다!”

브로칸이 호쾌하게 허락하자 큰 거인이 기뻐하며 월도를 집어 들었다.

“가면 공방에 그거 좀 고쳐 놓으라고 해 둘게.”

“아니다. 이대로 괜찮다. 히드라를 해치운 무기다. 평생 자랑거리다!”

실컷 구경해 놓고는 자랑은 또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 * *

카엘은 항구도시 아말레이로 귀환했다.

히드라의 사체를 정리한 뒤 잠깐 거인섬을 둘러봤지만, 특별히 써먹을 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외부 침입이 쉽지 않은 게 괜찮아 보였지.’

한편 큰 거인은 아말레이에 도착하자마자 거인들에게 월도를 보여 주면서 히드라를 퇴치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러나 경청하는 거인은 없었다.

죄다 먹기 바빴기 때문이다.

‘저 녀석도 이제 내 심정을 좀 이해하겠지.’

시큰둥한 반응에 큰 거인은 열 받았는지 씩씩거렸지만, 다른 거인이 주는 멧돼지 뒷다리를 받고는 주저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카엘은 개의치 않았다.

거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얻은 것만 해도 큰 성과였으니까.

그때 순식간에 멧돼지 뒷다리를 뼈만 남긴 큰 거인이 카엘에게 소리쳤다.

“카엘, 히드라 잡았다! 나중에 카엘이 부르면 도와준다! 거인은 약속을 지킨다!”

“그래. 까먹지나 말라고.”

기특한 말에 카엘이 웃으며 대꾸하자 큰 거인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다. 우리 거인들은 잘 까먹는다.”

“…그때 되면 내가 다시 말해 주지.”

“그래? 역시 카엘이다. 고맙다.”

큰 거인의 칭찬에 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연구실로 향했다.

* * *

카엘이 돌아오자 엘프 자매들이 우르르 연구실로 찾아왔다.

“카엘 님, 무사하셔서 다행이야.”

“…고생했어.”

“브로칸이 그러는데 이번에도 엄청나게 멋있었대요.”

브로칸은 어느새 모르타와 만난 모양이었다.

“그래, 다들 고마워. 자, 이게 히드라의 머리야.”

카엘이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를 보여 주자 다들 한마디씩 했다.

“신기하지만 가까이하기 두렵군요.”

“…불길해.”

“근데 이건 어떻게 쓸 건가요?”

“이거로 엘프들을 정신 차리게 해볼 거야.”

“네?! 그게 가능한가요?”

깜짝 놀란 노아나가 물었다가, 이내 너무 큰 소리를 냈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카엘은 모르는 척 히드라의 가운데 머리에 관해 설명했다.

“다들 느끼는 대로 이건 사악한 힘이긴 하지만, 궁극의 재생력을 부여해 주기도 하거든.”

“재생이라면 카엘 님이 만드신 게…….”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거야. 정신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니까, 충격으로 엉망이 된 머릿속까지 재생되겠지.”

“사악한 힘이라면 위험하지 않나요? 아, 카엘 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모르타가 중얼거리다가 카엘의 눈치를 봤다.

“아니, 실제로 위험한 약이긴 해. 사악한 기운도 기운이지만, 독성도 강하니까.”

“…그래도 방법이 있을 듯.”

“맞아. 이 약을 먹이기 전에 미리 해독 포션을 먹일 거야. 정신을 차리자마자 성수로 바로 정화하고, 그래도 부작용이 좀 생길 수도 있을 테니 잘 봐야겠지만.”

데키마의 말에 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

부작용이라는 말에 엘프 자매들의 말이 없어졌다.

방법이 없진 않았다.

“세계수의 씨앗으로 만들면 훨씬 편하겠지만, 부작용도 없을 테고.”

“그건 저희도 행방을 모릅니다… 아마 모이라 님이라면 아실 텐데…….”

모이라는 나이가 가장 많은 엘프로, 엘프 자매들도 나이를 짐작 못 할 정도라고 했다.

다만 현재 다른 엘프와 마찬가지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게 문제였다.

“어쨌든, 포션도 만들어야 하고 다른 준비도 해야 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네. 알겠습니다.”

“…문제없음.”

“저희에게 조금 더 기다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프들의 수명을 생각하면 당연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석으로 재생 포션을 만든 카엘은 해독 포션, 성수를 준비해 엘프 중 한 명에게 먼저 시험해 보기로 했다.

대상은 콜로소라는 남자 엘프.

콜로소의 신체는 완전히 회복된 듯했지만, 눈에 초점이 없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시작해.”

“네.”

카엘의 지시에 노아나가 해독 포션을 입으로 천천히 부어 마시게 했다.

다 마시고 경과를 본 카엘은 데키마를 쳐다봤다.

데키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석으로 만든 재생 포션을 마시게 했다.

“엇! 귀가?”

약효가 돌기를 기다리며 콜로소를 주의 깊게 살피던 중, 데키마가 놀랐다.

카엘이 처음 만든 재생 포션과 달리 시커먼 기운이 모이며 귀가 재생하더니, 하염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콜로소의 멍한 눈빛이 어느새 사라진 거였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카엘이 지시를 내렸다.

“이제 성수를 마시게 해.”

“네. 이거 드세요.”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던, 모르타가 성수를 마시게 했다.

어영부영하다가 그대로 성수를 마신 콜로소는 혼란스러운지 엘프 특유의 아름답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어디? 어떻게 된 거지? 어, 너희들은?”

“그게…….”

엘프 자매들은 콜로소에게 차분히 설명을 해 줬다.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은 콜로소는 카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지옥에서 저를 구원해 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콜로소는 정말 감격했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콧대 높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엘프치고는 너무 격정적이었지만, 그간 겪은 일을 떠올렸을 때 당연한 반응이라면 반응이었다.

카엘은 그 모습에 뿌듯하면서도 문득 걱정도 됐다.

‘이 부담스러운 감사를 몇십 번이나 더 받아야 하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