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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71화 (71/234)

71화 불사의 뱀을 쉽게 잡는 방법 (2)

카엘은 연구실에서 부두를 고치고 있는 거인들을 봤다.

‘생각보다 쓸모 있는데?’

체구가 거대한 만큼 공사에 쓸 자재들을 번쩍 들어 옮기거나, 부서진 건물의 토대를 잡아 주는 등 도움이 되는 곳이 많았다.

인근에 가라앉은 선박 잔해를 수습하는 데도 제격이었다.

어인족만으로는 거대한 잔해를 뭍으로 올리기 힘들었는데, 거인들은 헤엄치지 않고 그대로 들고 나오는 게 가능했다.

거인들은 처음 일 시킬 때는 구시렁거리다가 막상 해 보니 재밌는지 지시에 잘 따랐다.

‘단점은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정도인가.’

거인 하나가 보통 사람 10인분의 식량을 먹어치웠다.

단순히 덩치가 크니까 많이 먹는 게 아니었다.

그 큰 배가 터질 정도로 아득바득 먹었는데, 물어보니 조금이라도 몸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다.

딱히 우두머리는 없지만, 몸이 클수록 발언권이 세다나?

심지어 거인섬에는 먹을 게 별로 없는데, 항구에서는 일한다고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 주니 너무나도 행복해하고 있었다.

‘잘만 구슬리면 싸울 때 말고도 평소에도 일꾼으로 잘 써먹을 수 있겠군.’

“카엘 님, 이거면 되겠습니까?”

연구실로 뛰어 들어온 브로칸이 자루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작고 노란 꽃이 핀 풀이 가득 들어 있었다.

뱀독을 해독하는 데 쓸 스베키아라는 약재였다.

해독제로는 잎을 자르면 유액이 나오는 아스클레피아스가 흔히 쓰이지만, 히드라의 독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운이 좋게도 치료소에 스베키아가 극소량이 남아 있어서 브로칸에게 냄새를 맡고 구해 오라고 한 거였다.

히드라와 싸우려면 해독제가 잔뜩 필요해서였다.

“그래 충분해. 잘했어.”

“헤헷. 또 도와드릴 건 없나요?”

“응. 이제 해독제를 만들어야지.”

카엘은 먼저 스베키아를 말려 가루로 만들었다. 거기에 미리 준비해 둔 아스클레피아스 가루를 비롯해 몇 가지 약재를 섞었다.

그걸 회복 포션과 혼합한 다음, 절반은 포션병에 담고, 나머지는 좀 더 증류해 피부에 바르기 편하게 연고처럼 만들었다.

“완성이다. 이거라면 히드라의 독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야.”

“와! 이제 잡으러 가나요?”

“그래야지. 그전에 너도 준비 좀 하고.”

“저요? 전 준비할 게 없는데요? 무기도 이거면 되고.”

브로칸이 날카로운 발톱을 내보였다.

“그거로는 안 돼. 뱀 머리에 붙들리지 않으려면 너도 무기를 들고 거리를 벌려서 싸워야지.”

“그건 아는데, 거대화 포션 먹고 싸울 텐데 제가 쓸 만한 게 있을까요?”

“안 그래도 거대화됐을 때, 쓸 수 있는 대형 창을 만들어 놓으라고 했어. 슬슬 다 만들어 뒀을 거야.”

“정말인가요?! 어서 보러 가요!”

브로칸이 눈을 반짝이며 펄쩍 뛰었다.

카엘은 신난 브로칸과 함께 대장장이 길드가 운영하는 공방으로 갔다.

창고에는 카엘이 주문한 대로 길이만 4,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창이 놓여 있었다.

“와! 정말 크네요. 근데 끝부분이 특이하네요? 초승달 모양 같기도 하고.”

들떠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대로 창끝에는 초승달 모양의 대도가 달려 있었다.

“저건 월도라고 뱀의 목을 자르기 위해 베기에 특화한 무기야.”

카엘은 대꾸하면서도 다소 실망스러운 눈으로 월도를 바라봤다.

‘그리 예리해 보이지는 않는군.’

대형화에 신경을 쓰다 보니 아무래도 만듦새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게를 살려서 휘두르면 뱀의 머리 정도는 충분히 베어 낼 수는 있어 보였다.

‘이건 이번만 써 보고 멀쩡하면 거인한테 주고, 클리페우스성으로 가면 드워프들한테 부탁해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줘야겠다.’

평소 뭘 부탁해도 군말 없이 잘 따라 주는 브로칸이라 뭐라도 하나 챙겨 주고 싶었다.

문제는 딱히 뭘 원한다고 먼저 말하는 법이 없어 알아서 챙겨 줘야 한다는 거였다.

브로칸은 들뜬 얼굴로 월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지금 써 보면 안 되겠죠? 아니, 조금만 더 참아 볼게요. 그래도 조금만 만져 보는 건 괜찮겠죠? 잘못하면 사람들 놀라게 할 거 같아서 안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금방 써 볼 기회가 생길 테니까, 조금만 참아.”

“네!”

브로칸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월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카엘은 웃으며 브로칸더러 월도를 배에 싣는 걸 도와주라고 하고는 거인들을 찾아갔다.

“이제 준비를 다 마쳤으니 히드라를 잡으러 갈 거야.”

“어. 그래.”

“잘 갔다 와라.”

“…….”

쉬는 시간이라고 과일을 땅콩처럼 씹어 먹고 있던 거인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그 심드렁한 모습에 카엘은 기가 찼다.

“아니, 너희가 안내해 줘야지. 다들 왜 관심이 없어?”

“음, 그게…….”

거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더니, 제일 큰 거인이 입을 열었다.

“히드라를 잡을 필요가 없어져서 그렇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자 거인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했다.

“우리 여기서 잘 먹는다. 거인섬에 먹을 거 많지 않다.”

“굳이 거인섬으로 갈 필요 없다.”

“일만 시켜 주면 열심히 하겠다.”

‘이것들이…….’

여기서 일 좀 거들고, 마음껏 먹으며 지내다 보니 거인섬에 대한 미련이 싹 사라진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일꾼으로 부려 먹으면 좋겠다 싶었던 만큼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그래도 전설급 약재로 쓸 히드라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지내도 되지만, 히드라는 잡으러 갈 거야.”

“굳이?”

“우리 때문이라면 괜찮다.”

“나중에 싸워 주는 건 잊지 않겠다.”

“그래도 히드라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순 없어. 여기에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잖아.”

“어!”

“그렇네.”

“어디 있는지 알 때 잡아 둬야 안심이지.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다! 항구도시를 지켜야 한다!”

“지키자!”

항구도시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 거인들은 흥분해서 따라서 소리쳤다.

‘누가 보면 여기 원주민인 줄 알겠네.’

제일 큰 거인이 먹던 음식도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

“알겠다! 내가 안내한다!”

* * *

“이야, 신기해요!”

브로칸은 앞에서 헤엄을 치는 거인을 바라보며 외쳤다.

카엘은 현재 브로칸과 함께 대형 선박을 타고, 헤엄치는 큰 거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몇십 개의 크고 작은 섬을 지나자 자욱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조류도 매우 심해져 어지간한 배는 이 이상 전진하기 어려워 보였다.

선장은 이걸 무리하게 뚫고 갔다가는 빙글빙글 돌다가 난파될 거라며 안색이 새파래졌다.

‘어인족들도 쉽게 못 찾은 이유가 있었네.’

카엘은 함께 온 어인족 이쿤에게 물었다.

“여기 와 본 적 있어?”

“아뇨. 저도 이곳은 처음입니다. 굳이 이런 험한 곳에 올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긴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굳이 이런 험한 곳에 올 이유는 없겠지.

선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물었다.

“카엘 님, 이제 어떡합니까?”

“기다려 봐. 저 거인이 끌고 갈 거야.”

“맞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끌고 간다.”

큰 거인은 선박의 닻을 잡더니 천천히 걸어가며 선박을 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지에 도달했다.

거인섬에 도착한 거였다.

배에서 폴짝 뛰어내린 브로칸이 신나서 소리쳤다.

“신기해요! 여기는 뭐든지 다 큰 거 같아요!”

그 말대로 곤충부터 새와 동식물은 물론, 수풀과 나무까지 거대했다.

‘괜히 거인섬이 아니라는 건가?’

카엘은 큰 거인에게 물었다.

“설마 히드라도 큰가?”

“아니, 작다.”

외부에서 흘러들어 와서 크진 않은 모양이었다.

“히드라는 어디 있어?”

“저 안쪽의 숲에 있을 거다.”

거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섬의 유일한 산이 있었다.

“좋아. 가자.”

“근데 문제가 있다. 히드라가 저기 어딨는지 모른다. 찾아야 한다.”

“그거야 별로 어렵지 않지.”

“엇. 저도 냄새를 모르는데.”

난감해하는 브로칸에게 카엘이 웃으며 말했다.

“뱀 흔적 찾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보다 전투 준비부터 해.”

“아, 네.”

브로칸은 미리 준 해독 포션을 한 병 비운 뒤, 옷을 벗고 해독 연고를 전신에 덕지덕지 발랐다.

그런 다음, 서서히 라이칸스로프의 모습으로 변했다.

완전히 본모습으로 돌아온 브로칸은 거대화 포션까지 꺼내 마셨다.

그러자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거대화가 멈추자 냉큼 선박으로 달려가 월도를 집어 들었다.

“카엘 님, 어떻습니까?”

“잘 어울린다.”

“헤헷.”

카엘의 칭찬에 브로칸이 기쁜 듯 꼬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우와! 부럽다.”

큰 거인은 그걸 보며 감탄하더니 슬그머니 카엘을 바라봤다.

자기 무기는 없냐고 묻는 거였다.

“왜? 너도 싸우려고? 맹독에 걸리면 죽는다며?”

“아, 아니다. 안 싸운다.”

큰 거인은 그제야 히드라의 독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네 몸에 바를 연고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 포션만 먹어 둬.”

“응. 고맙다.”

큰 거인은 카엘이 주는 해독 포션을 한 방울도 안 남을 때까지 탈탈 털어 마셨다.

모든 준비를 끝낸 걸 확인한 카엘이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자.”

숲길에 들어서고 얼마 안 지나 카엘이 히드라의 흔적을 발견했다.

“브로칸, 이거야. 이거 냄새 맡아 봐.”

“확인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브로칸은 킁킁 냄새를 맡더니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져 보폭도 늘어난 만큼 속도도 매우 빨랐다.

카엘이 바짝 따라붙으면서 뒤돌아보니 큰 거인이 뒤처지는 게 보였다.

느린 발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느린 게 일부러 떨어져서 오는 게 분명했다.

‘쯧, 전투에 써먹기는 쉽지 않겠네.’

“찾았습니다!”

브로칸의 외침에 앞을 보니 수풀 사이로 보이는 머리가 아홉 개인 뱀.

히드라가 있었다.

“생각보다 큰데?”

히드라는 수백 년 된 거목 같은 몸체에 두껍고 흐물거리는 가지 아홉 개가 뻗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 머리 하나하나만 봐도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로 컸다.

카엘의 말에 큰 거인이 이렇게 변명하는 게 아닌가?

“거인섬의 뱀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끙.”

한편 히드라는 난데없이 등장한 거대화된 브로칸과 큰 거인을 보자마자 살짝 놀란 듯했지만, 이내 오랜만에 나타난 먹음직스러운 먹이라고 생각했는지 입맛을 다셨다.

그때.

펑!

갑자기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터져 나갔다.

카엘이 던진 돌에 맞은 거였다.

“앗! 벌써 해치운 건가요?”

브로칸이 아쉬워했다.

월도를 쓸 기회를 놓쳤나 싶었던 거였다.

“아니다. 이제 재생한다.”

큰 거인의 말대로 터져 나간 히드라의 머리 아래에서 천천히 새로운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카엘도 스승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지금 공격은 어디까지나 얼마나 빠르게 재생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대략 30초가량인가? 그 정도면 충분해.’

분석을 마친 카엘이 브로칸에게 소리쳤다.

“공격 시작해! 무리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머리 하나씩만 노려!”

“네!”

힘차게 대답한 브로칸이 월도를 휘두르며 히드라과 대치했다.

히드라는 쉭쉭거리며 경계하면서도 머리 하나는 돌멩이를 던진 카엘을 경계했다.

‘하나로는 안 되지.’

카엘도 히드라에게 달려가면서 다시 돌멩이를 던졌다.

퍽!

그걸 보고 놀란 히드라의 머리 두 개가 카엘 쪽을 돌아보는 순간.

브로칸이 뛰어들었다.

히드라의 머리들이 쉭쉭거리며 브로칸을 깨물려고 했지만.

브로칸은 거대화했음에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 공격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월도를 휘둘렀다.

“우와!”

그 묘기에 큰 거인이 감탄하는 사이 월도가 히드라의 머리를 쳤다.

퍽!

벤다기보다는 터트리는 거에 가까웠지만, 한 방에 머리 하나를 날린 거였다.

쉭쉭.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드라는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상대가 불을 들고 있지 않아서였다.

잘린 머리를 불로 지지면 재생이 안 됐는데, 그 약점을 노린 자들에게 몇 번 토벌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실제로 인간들에게 포위당해서 하나둘 머리가 잘리고 불에 지져질 때는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절대로 죽지 않는 머리 덕분에 겨우 도망친 뒤에는 불만 보이면 바로 도망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적들은 여느 때보다 강력했지만, 불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공격받아 머리를 잃어도 재생하며 버티면 된다.

버티면서 한번 물기만 하면 끝이었다.

자신의 맹독에 버틴 생명체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어서 빈틈을 노려서 한 번만 물자.

히드라가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쩌적. 쩌저적.

목에서 머리가 재생하지 않고 그대로 얼어 버린 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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