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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52화 (52/234)

52화 망나니 황자 인간 만들기 (2)

다음 날, 늦은 오후.

레오폴드는 탈프 황자가 드디어 깼다는 말에 침소를 찾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뭐야.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짜증 나게.”

탈프는 언제 살갑게 굴었냐는 듯 짜증을 냈지만, 레오폴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숙취가 심하신 모양이군요. 그럴 줄 알고 제가 숙취에 좋은 걸 가져왔습니다.”

“어, 정말인가? 역시 자네밖에 없어. 내 아랫것들은 이런 거 하나 준비할 줄도 모르고, 하나같이 쓸모가 없다니까. 어서 줘 보게.”

“네. 어서 드십시오. 숙취 해소 약입니다.”

“약?”

금방까지 칭찬하던 탈프 황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레오폴드가 내민 숙취 해소 포션을 쳐다봤다.

“쓴 건 싫은데.”

“…….”

레오폴드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달랬다.

“제가 감히 전하께 입에 쓴 걸 권하겠습니까? 병부터 예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마셔 볼까?”

꿀꺽.

곧바로 태도를 바꾼 탈프는 숙취 해소 포션을 한모금 마셨다.

“오, 정말 마실 만한데?”

쓴맛이 아닌 걸 확인한 탈프는 그대로 꿀꺽꿀꺽 넘겼다.

다 마신 뒤에는 입맛까지 다셨다.

“이거 제법 청량감도 느껴지고 나름 별미로군.”

‘맛있으라고 준 거 아닌데…….’

레오폴드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으니 탈프 황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러고보니 두통이 가셨잖아. 이거 맛만 좋은 게 아니라 효과도 좋은데? 되레 머리가 시원해! 이거 더 없나? 이거면 종일 술을 마실 수 있겠는데.”

“원하시는 만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자네밖에 없다니까! 맞다. 대낮부터 무슨 일로 찾아왔나? 아! 또 한잔하자고 왔구먼.”

“그게 아니라, 전하께 의원을 소개해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방금 드신 약을 만든 자입니다.”

“호오, 그래? 그대가 소개할 정도면 실력이 대단한가 보군. 그래도 딱히 아픈 데는 없는데…….”

실제로 탈프 황자는 매월 정기적으로 신전에서 축복의 기도를 받는다.

덕분에 잔병치레도 하지 않는 않으니, 무절제하고 엉망으로 생활하는 데도 별로 불편함을 못 느꼈다.

저 몸을 유지하는 데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탈모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탈프의 심드렁한 태도에 레오폴드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실은 전하께만 알려 드리는 비밀입니다만.”

“비밀?! 뭔가?”

“제가 이런 모습인 것도 사실 그 의원이 힘입니다.”

“뭐라?! 그게 정말인가?”

“제가 전하께 감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레오폴드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 그렇군. 실은 자네가 내 생각과 달라 보여서 내심 실망했었다네.”

탈프는 탈프대로 어제 봤을 때, 레오폴드가 자신과 달리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몸도 좋아 보이는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약의 힘이었다니!

탈프는 새삼스레 레오폴드에게 친근함을 느꼈다.

“지금 전하의 풍채도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큼 좋으시지만, 아직 젊으시니 기사처럼 하고 다니시는 것도 잠깐의 여흥으로 괜찮지 않겠습니까?”

“기, 기사처럼.”

탈프는 기사처럼 근육질이 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실은 그간 자신의 외모가 불만스럽긴 했다.

특히 어머니한테 은연중에 돼지라고 무시당하니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를 안 입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프고 힘든 건 싫은데…….”

어처구니없는 투정에 레오폴드는 구겨지는 표정을 어떻게든 막아 내면서 달랬다.

“안, 아픕니다. 제가 감히 전하께 괴롭고 힘든 걸 권했겠습니까?”

“그렇지? 뭐, 그대가 그렇게 권한다면 한번 만나 보지.”

그제야 안도한 탈프는 선심 쓰듯 말했다.

“감사합니다. 카엘, 이리 오게.”

“카엘? 어디서 들어 본 이름 같은데…….”

탈프가 배를 긁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카엘은 앞에 다가와 한쪽 무릎을 굽혔다.

“고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그보다 정말로 가능하겠느냐?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면 네 목을 벨 것이다.”

능멸하려는 건 맞지만. 황자가 기대하는 건 충분히 이뤄줄 생각이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음?”

“전하의 옥체에 영향을 갈 약과 약품을 쓸 것이니 저를 믿고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레오폴드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대를 믿을 테니, 어서 약이나 처방해 주게.”

탈프는 애가 타는지 곧바로 승낙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망나니 황자 인간 만들기 작전이 시작됐다.

* * *

‘그럼, 살 빼는 약을 만들어 볼까?’

카엘은 탈프 황자 전용 체중 감량 포션 제작에 들어갔다.

단기간 체중 감량 하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컸다.

제조할 때 체질과 상태에 맞춰 용량을 미세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중심이 되는 약재는 포리아.

포이라는 잘라 낸 소나무 뿌리에 기생해 양분을 응축한 버섯.

심박수를 빠르게 해서 가만히 있어도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한 것처럼 만들고, 이뇨 작용을 유도해 빼 주고 부종을 경감시켰다.

거기에 볏과 작물인 코익 씨의 껍질를 제거해 말린 걸 더한다.

‘이건 소화 기능을 좋게 하고 체내의 지방을 분해하고 흡수를 막아 주지.’

마지막으로 에피드라로 땀을 내게 하면서 구토도 유도해 식욕을 감소시킨다.

거기에 몇 가지 약재를 더한 다음, 회복 포션을 섞으면 됐다.

‘다만, 포리아와 에피드라라는 바로 구하기 어려운 약재란 말이지.’

그래도 카엘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황자의 하인들이 어떻게 구해 왔다.

그것도 하루 만에.

“이거면 됐느냐.”

“충분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게으름 피우면 안 될 것이야!”

윽박지르는 탈프를 레오폴드가 달래서 데려 나갔다.

“그러지 말고 잠깐 기분 전환이나 하고 오죠.”

“아, 그러면 사냥이라도 갈까?”

탈프는 뜻밖에도 사냥을 제안했다.

레오폴드는 몰랐지만 탈프 황자의 사냥은 일반적인 귀족의 사냥과 달랐다.

사냥꾼들이 몰아 온 사냥감을 활로 쏘는 게 아니라, 반쯤 죽인 채 포획한 걸 직접 멱을 따는 거였다.

한편 탈프와 레오폴드가 나가고 조용해지자 카엘은 먼저 황자의 하인이 건네준 약재 바구니들부터 살폈다.

‘분류부터 해야겠군. 그나마 소량만 필요해서 다행이지 일이 많아질 뻔했어.’

카엘은 에피드라를 펼쳐 놓고 줄기와 뿌리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줄기와 뿌리의 효능이 다른 데다가 자칫 잘못 다루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기에 신중하게 써야 했다.

보통은 달리 보관하지만, 황자가 당장 대령하라고 날뛰니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 아무렇게나 모아 오다 보니 문제가 생긴 거였다.

그래도 차마 황자 앞에서 지적할 수는 없었다.

자기를 죽일 생각이었냐면서 하인들을 때리거나 심하면 참수했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지만, 이용하려면 어쩔 수 없지.’

포션을 완성했을 때는 어느덧 어두워져 있었다.

카엘은 레오폴드를 찾아가서 물었다.

“사냥은 재미있으셨습니까?”

“말도 말게, 그게 무슨 사냥이야.”

레오폴드는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설마 지금 황자를 보러 가게? 너무 늦은 시간인데.”

“지금 먹이는 게 딱 좋습니다.”

걱정하는 레오폴드를 설득해 함께 탈프를 찾아가 체중 감량 포션을 대령했다.

“호, 이게 그 약인가?”

“그대로 쭉 들이켜시면 됩니다. 드시기 좋게 단맛도 듬뿍 첨가했습니다.”

“허, 레오폴드. 이 친구 마음에 드는구먼.”

카엘의 말에 탈프가 활짝 웃더니 그대로 쭉 들이켰다.

순식간에 포션을 완전히 비운 탈프가 투덜댔다.

“음. 맛은 확실히 있네만,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진 않는데?”

‘아무리 포션으로 약효를 빠르게 했다고 해도 마법도 아니고, 바로 효과가 날 리가 있나.’

카엘은 기가 찼지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만은 약주를 삼가십시오. 이제 땀을 많이 흘리실 겁니다.”

“음… 그래? 안 그래도 속에 뜨거운 느낌이 도는군.”

탈프는 슬슬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 건지 웬일로 순순히 대답했다.

* * *

다음 날.

황자의 하인이 아침부터 카엘에게 달려왔다.

탈프 황자가 부른다고 어서 빨리 오라는 게 아닌가?

함께 탈프 황자에게 달려간 레오폴드가 탈프 황자를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허, 이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이야.”

탈프의 살이 눈에 띄게 빠진 거였다.

대략 사람을 셋을 합친 정도로 뚱뚱했던 것이 둘로 합친 것 정도로?

카엘도 살짝 놀랐다.

‘스승에게 들었던 것보다 효과가 더 좋군.’

스승은 몇 달에 걸쳐 먹여서 살을 빼게 했다고 들었다.

사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는 그쪽이 맞았다.

그럴 여유가 없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복 포션을 섞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약효가 강하게 나타난 거였다.

어쨌거나 당사자인 탈프 황자는 뛸 듯이 기뻐했다.

“으하핫! 이거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저보다 훨씬 약효가 잘 드시는 거 같군요. 그만큼 황자님이 대단하신 거겠지요.”

“그렇지? 어쨌거나 거기 의원, 어서 한 병 더 만들어 다오.”

왜 일찍부터 불렀나 했더니 포션을 또 마시고 살을 더 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오나 복용은 침소에 들기 전에 하시는 게 좋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 그래. 그래. 인내심 하면 나니까.”

‘아침부터 부른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카엘은 속으로 어이없어하며 돌아갔다.

* * *

다음 날.

체중 감량 포션을 마신 탈프는 또다시 살이 왕창 빠졌다.

그렇게 삼 일째.

“흐흐흐, 어떤가?”

탈프 황자가 자신의 몸매를 자랑하며 물었다.

“…정말 멋지십니다.”

“드래곤을 해치운 전설 속의 전사 같으십니다.”

카엘은 자신의 뒤를 이어 탈프를 칭찬하는 레오폴드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용케도 칭찬하네.’

어쨌든 체중 감량 포션의 효과는 대단했다.

거대한 돼지였던 탈프 황자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전사가 된 거였다.

환골탈태한 모습에 레오폴드가 슬쩍 물을 정도였다.

“저 정도로 근육이 생기는 거면 나도 먹고 싶은데.”

“안 됩니다. 황자는 워낙 몸이 비대해서 저런 거니까요. 저건 원래 뚱뚱하고 무거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생긴 근육이거든요.”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의 체중을 늘 업고 다닌 거나 마찬가지.

근육이 안 생길 수 없었다.

“그렇군, 그래도 저래 놓으니 정말 사람이 멋져 보이는군.”

레오폴드의 말처럼 현재 탈프는 몸매뿐만 아니라 얼굴 살도 쫙 빠졌다.

덕분에 이목구비가 뚜렷해지고 턱선도 날카로웠다.

어떤 여성의 눈길이라도 끌 만한 멋진 모습이었다.

‘황제의 핏줄은 핏줄이라는 건가. 다만…….’

탈프 황자가 멋진 모습으로 환골탈태했기에 단점이 더욱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횅한 머리카락.

탈프도 불만스러운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기뻐하다가도 거울 속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모았다.

그러다가 슬쩍 카엘을 돌아봤다.

“혹시…….”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래? 그대만 믿겠네.”

그제야 탈프 황자가 헤벌쭉 웃었다.

* * *

탈프 황자가 돌아가자마자 레오폴드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방금 머리카락을 어떻게 해 주겠다고 한 거지? 정말 탈모를 치료할 수 있나?”

“아무나 되는 건 아니고, 생활 습관 때문에 악화한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먹는 걸 조심하고, 두피에 좋은 약을 처방하면 조금씩 머리카락이 돌아올 겁니다.”

“노화로 인한 탈모는?”

“무리죠. 그거야말로 기적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군.”

레오폴드가 입맛을 다셨다.

왜 저리 아쉬워하는가 싶었더니 문득 얼마 전에 본 국왕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왕관을 쓰고 있었지만, 분명 가운데가 휑했었지.’

아무래도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신경 쓰이는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왕국에서 본 선대 국왕들도 그랬던가?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가문에 탈모가 많으면 가능성이 크긴 했다.

‘완전히 막진 못하더라도 늦추고 예방하는 방법 정도는 나중에 알려 드려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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