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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47화 (47/234)

47화 신전 기사들 (3)

신전 기사들이 줄행랑쳤다는 말에 용병들이 조롱했다.

“새끼들, 허세만 떨 줄 알고 하나도 도움이 안 되네.”

“신의 이름만 팔고 다니는 겁쟁이들.”

“다음에 봤을 때도 깝죽거리기만 해 봐. 그냥 확!”

신전 기사들은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거나 실력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신전에 의탁한 자들이다.

실력이 있었으면 어디 이름 있는 영주 밑에서 활약했을 테니, 대체로 실력도 없는 편이었다.

‘예외라면 프레데릭 정도겠지.’

“저런 쓸모없는 것들. 차라리 광신도 기사단이 낫지.”

용병들의 대화를 듣던 카엘은 자신이 하나 간과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왕국의 신전 기사 프레데릭이 성기사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유명한 신전 기사라면 모두 제국의 파나틱 신전 기사단을 꼽았다.

일반적인 신전 기사들과 달리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평소에도 기도와 고행에 매진했다. 그러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부정한 존재가 나타났다는 말이 들리면 출동해서 퇴치하는 거로 유명했다.

몬스터 대침공 시절 아크 리치가 횡행할 때도 파나틱 기사단이 국경을 넘어 나타나기를 기대한 이들이 있었지만, 기사단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전멸당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때 호위 기사들이 찾아왔다.

“카엘 님, 적도 퇴치했고, 별다른 피해가 없긴 합니다만. 저하의 안전을 위해 이곳에서 떠났으면 합니다.”

호위 기사들로서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하나 레오폴드에게 말했다가는 씨알도 안 먹힐 걸 알고, 카엘에게 부탁하러 온 거였다.

카엘도 동감이었다.

이번에는 방심하고 좀비 떼만 대충 보냈지만, 다음번에는 더욱 대규모로 습격해 올 게 분명했다.

그것도 최소한 네크로맨서까지 함께.

카엘 혼자서라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레오폴드가 휘말려서야 곤란했다.

“그래야지요. 제가 저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철수시키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정작 카엘은 혼자 포트빌성 인근을 둘러보고 오겠다며 나왔다.

레오폴드는 철수에 동의하다가 카엘이 포트빌성으로 향한다고 하자 따라가겠다고 했는데, 호위 기사들이 자기를 죽이고 가라며 막아 겨우 말렸다.

* * *

카엘은 주민이 말한 강가에 도착했다.

‘확실히 쉽게 건너긴 힘들겠네.’

폭이 좁은 곳도 대략 십여 미터는 되어 보였다.

다만, 마을 주민이 간과한 건 좀비는 지시를 받으면 낭떠러지에 떨어지든 바다에 쓸려 가든 무작정 따른다는 거였다.

숨을 쉬는 것도 아닌데, 유속도 낮아 보이니 기어서라도 건넌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러다가 숫자가 좀 줄어든 걸 수도.’

카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에서 리치 데비하이드를 꺼냈다.

“어때? 여기 펼쳐져 있는 마기는? 얼마나 강한 거 같나?”

-…….

“왜 말이 없어?”

-…….

계속 처박아 뒀다가 오랜만에 꺼낸 탓인지 단단히 삐친 모양이었다.

“앞으로 자주 바람 쐬게 해 줄게. 일단 건너가자.”

카엘은 커다란 바위를 잡고 강 한가운데 던졌다.

풍덩!

바위 끄트머리가 살짝 보였다.

“오, 됐다.”

카엘은 데비하이드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고 냅다 강으로 달렸다.

잠자코 있던 데비하이드는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 뛰어넘으려고?!

“어.”

카엘은 대답하자마자 대지를 박찼다.

‘이 거리를 단번에 건너긴 힘들어 보이지만, 징검다리가 있으면…….’

탓!

카엘은 자신이 던진 바위에 발을 딛고 재차 뛰어올라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휴. 죽는 줄 알았네.

“이미 죽어 있으면서.”

-큭, 그렇군.

“뭐야, 이제 기분 좀 풀렸어?”

-풀리진 않았다. 내 신세가 처량한 건 여전하니까.

“그나저나 너 말이 다시 짧아졌다?”

-…….

“그래. 편하게 말해. 협조만 잘하고. 그러면 나중에 풀어 줄게.”

-…풀어 준다고?! 맹세할 수 있나?

“그래,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대신 우리 성이랑 정반대에 풀어 줄 거야.”

-…그거면 됐다.

그제야 데비하이드의 기분이 풀린 듯했다.

‘다행이네. 이 정도로 기운 없어 할 줄이야.’

나중에 드래곤이나 아크 리치를 상대하려면 데비하이드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예 삶의 의지를 잃고 소멸해 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 리치는 얼마나 강한 거 같아?”

카엘은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무턱대고 돌격할 생각은 없었다.

특히 제국 쪽은 아는 게 많지 않아, 회귀했다는 이점도 살리기 힘든 상황. 가능한 한 조심스레 움직일 생각이었다

-뭐라도 알아보려면 마기의 연무가 있어야 해.

“그래? 그럼 좀 더 들어가자.”

데비하이드의 말에 카엘은 저 멀리 시커멓게 보이는 안개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안 지나 좀비들이 덤벼들었다.

카엘은 가볍게 해치우고 데비하이드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잠깐만, 이 힘은……? 크흐흐흐흑. 크흐흑. 크하하하핫!

신중하게 마력을 살피던 데비하이드가 실성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설마 미쳤나? 이 녀석은 약도 안 듣는데.’

카엘이 걱정하고 있을 때, 웃음을 멈춘 데비하이드가 말했다.

-이건 메라자이드의 마력이다.

“메라자이드?”

-후배인데, 선배를 존중하기는커녕 아주 건방진 녀석이다.

말만 들어서는 아주 원수지간 같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지만.

“그래서 강해?”

-솔직히 말하자면, 강하다. 너와 마주쳤을 시점에도 제법 세력을 이뤘는데, 지금 이 일대를 차지하고 성까지 점령했으니 더욱 이루 말할 게 없겠지.

“그렇군.”

‘이거 그냥 목표물만 찾아서 돌아가야겠네.’

상대가 그토록 강대한 세력을 이룬 상태라면 굳이 무리해서 대적할 생각은 없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데비하이드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도 너와 아조트의 힘이라면 충분히 분쇄할 수 있다. 내가 장담하지.

데비하이드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

만약 잘못해서 카엘이 죽기라도 한다면 해방의 맹세는커녕, 그토록 싫어하는 후배의 손아귀에 들어갈 테니까.

다만, 한 가지.

“근데 너무 부추기는 거 아냐?”

-그래. 제발 메라자이드도 짓밟아서 내 꼴처럼 만들어 다오.

데비하이드는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자신처럼 추락하기 바라다니, 얼마나 싫어하면 저럴까.’

하지만 데비하이드 때와 달리 라이프 베슬의 위치는커녕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혹시 알고 있는 약점이라도 있어?”

-아니.

“그러면 무리야. 원래 계획대로 가야겠어.”

-원래 계획?

“그런 게 있어. 그보다 저기 누가 싸우고 있는데?”

카엘은 저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옮겼다.

마기의 연무를 헤치며 안으로 들어가니.

신전 기사들이 한창 좀비 떼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나저나 이 신전 기사들은 제법 잘 싸우는데?’

다섯이서 빙 둘러서서 다가오는 언데드들을 차근차근히 해치우고 있었다.

성벽에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다섯 명이 수백 마리에 둘러싸여서 싸우면 정신적으로 지칠 만도 한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어 보였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신이시여, 사악한 마귀를 추방하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지상에 재를 뿌리는 원수들을 굴복시키고자 하오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 허락하소서.”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부정한 존재야, 우리는 신의 이름을 빌려 너희를 추방할 것이니.”

입으로는 기도문을 외고 있는 거였다.

‘저들이 광신도라 불리는 파나틱 기사단이로군.’

그래도 성기사 프레데릭처럼 신성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주 강한 거 같진 않았다.

지금도 신앙심만으로 버티고 있을 뿐, 좀비들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결말은 빤해 보였다.

‘네크로맨서는 어디 있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좀비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를 해치우는 게 제일이었다.

좀비들이 무턱대고 공격하는 걸 봐서는 보고 지시를 내리기에는 조금 멀리 있는 모양.

좀비들이 소멸하는 걸 느끼고는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카엘은 주변을 살펴보다가 언덕 너머에서 지팡이를 들고 나타난 네크로맨서를 발견했다.

‘저기 있군.’

카엘은 그대로 네크로맨서를 향해 직진했다.

앞을 가로막는 좀비들은 아조트를 휘둘러 가볍게 치웠다.

놀란 네크로맨서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어딜.”

그걸 본 카엘은 아조트를 냅다 던졌다.

푹.

아조트는 지팡이를 뚫고 네크로맨서의 입에 박혔다.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데비하이드가 투덜댔다.

-저 정도 마법은 체내에 흡수한 내 마력이 충분히 방어할 텐데.

“가능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그러면 미리 말해 주든가.”

카엘은 그렇게 대꾸하며 절명한 네크로맨서에게서 아조트를 뽑아낸 다음, 나머지 좀비들을 쓸어 버리기 시작했다.

덕택에 파나틱 기사단도 훨씬 여유를 가지고 좀비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좀비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난 뒤, 신전 기사가 성호를 그으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부정한 존재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신전 기사는 아니신 듯한데, 누구신지…….”

“전 티겔 브리운 공작의 넷째인 카엘 브리운이라 합니다.”

“앗! 티겔 브리운 공작이라면 소드 마스터이자 클리페우스성의 수호자!”

신전 기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맞습니다.”

카엘이 수긍하자 신전 기사들은 매우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기사라면 대부분 소드 마스터의 이름을 듣고 경외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러면 혹시 브리운 공작의 막내 자제분이 맞으십니까?”

“브리운 공작의 막내라면 그분 아닌가? 신의 계시로 성수를 만들어 신의 자손들을 구했다는!”

“그렇지. 확실히 카엘이라는 이름이셨어.”

신전 기사들이 자신을 알자 되레 카엘이 놀랐다.

‘아니, 그 소문을 어떻게 들은 거야?’

카엘에 대한 소문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광신도라는 별명이 붙은 파나틱 신전 기사단답게 신성과 관련된 소문이 흥미를 끌었던 모양이었다.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오! 역시였군요. 반갑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다니 전부 신께서 인도하신 겁니다.”

“마침 잘되었군요. 든든한 지원군도 생겼으니 이대로 포트빌성을 탈환하러 갑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네크로맨서가 없는데도 쩔쩔매는데, 아마 성을 차지하고 있을 리치에게 덤볐다가는 전멸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무리라고 해도 그냥 갈 사람들이 아니지. 역시 이 방법뿐인가?’

카엘은 목소리를 깔며 파나틱 신전 기사단에게 말했다.

“흠, 흠. 사실 전 신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여러분께 온 겁니다.”

“오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어서 말씀을 전해 주시오.”

신전 기사들은 기뻐하며 귀를 기울였는데, 그 모습에 한 치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

“곧 부정한 것들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니, 애쓰지 말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스스로 물러난다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글쎄요. 그저 신의 말씀을 전해 드릴 뿐이라.”

카엘이 그렇게 말하자 신전 기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부정한 존재인 언데드 몬스터를 퇴치하러 왔는데 그냥 돌아가라니!

그렇다고 해서 신의 뜻이라는데 저버리고 싸우러 갈 수도 없었다.

다행히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신의 뜻이라는데 돌아가야지요.”

“하지만 만약…….”

신전 기사 하나가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만약 언데드 몬스터들이 물러나지 않으면 다시 올 거라고 말하려고 한 거였지만, 차마 신의 뜻에 ‘만약’이라고 할 수 없어 입을 다문 거였다.

“그럼 전 남은 할 일이 있어서.”

“아, 그러시군요. 신의 뜻을 펼치려고 가시는 거군요.”

“신께서 보살펴 주실 겁니다.”

“카엘 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카엘은 성호를 그으며 호들갑을 떠는 파나틱 기사단을 보내고, 포트빌성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포트빌성 근처의 작은 마을에 숨어 있는 생존자를 찾으러 가는 거였다.

‘분명 거기에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가진 아이가 살아남아 있었다고 했지.’

이 난리를 평정한 소드 마스터는 생존자를 딱 한 명 구해 왔는데, 소드 마스터가 될 자질이 있다며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

카엘이 대신 그 소년을 구해 소드 마스터로 육성할 작정이었다.

‘아조트에게 맡기면 몇 년 안에 가능하겠지.’

그러면 최소한도로 필요한 세 번째 소드 마스터를 얻게 된다.

그게 바로 카엘이 이곳까지 온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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