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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35화 (35/234)

35화 분노의 숲 (1)

카엘이 자고 일어나서 공방으로 가니 블렌트가 밤새 유리병을 잔뜩 만들어 놨다.

그것도 하나같이 크기와 모양이 매우 다양했다.

“제 상상 이상으로 많이 만드셨네요.”

“허헛.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 봤네. 어떤 게 괜찮은가? 마음에 드는 걸 알려 주면 대량으로 만들어 주지.”

“아, 네.”

카엘은 유리병을 살펴보다가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약병은 이거 두 가지 종류면 충분합니다. 술병은 헤닝거 님과 상의해 보세요. 아마 다양하게 만들어 달라고 할 거예요.”

“알았어. 일단 약병부터 더 만들게.”

‘나도 놀 게 아니라 포션을 미리 만들어 봐야겠네. 그러려면 이 병을 데비하이드의 라이프 베슬로 바꿔야겠지.’

제일 작은 엄지만 한 병이면 지금 데비하이드의 마력에 딱 알맞아 보였다.

“여기서 몇 가지 더 가져가도 되죠?”

“당연하지. 필요하면 다 가져가도 돼.”

“감사합니다.”

카엘은 손에 몇 가지 병을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방에서 데비하이드의 라이프 베슬을 꺼내 제일 작은 병의 뚜껑을 열어 남은 마력을 옮겨 담았다.

“이러면 더 샐 일이 없을 거야.”

시끄럽다고 가방에 묶여 있던 데비하이드가 이변을 느끼고 깼다.

-오, 감사합니다. 근데 뚜껑을…….

“뚜껑? 당연히 필요할 때 열고, 닫으려고 만든 거지.”

-열고, 닫는다니…….

데비하이드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이 증명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 이제 포션을 만들어 볼까?”

그 말에 누워 있던 브로칸이 벌떡 일어났다.

“어, 드디어 제 약을 만드는 건가요?”

“응, 근데 아직 처방했던 약효가 안 떨어졌지?”

“네.”

“그럼 지금은 못 먹겠다.”

“괜찮습니다. 약효가 이 정도로 오래가면 굳이 완전히 치료할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안 돼. 내가 완전히 고쳐 준다고 했잖아.”

“카엘 님!”

브로칸이 감격해서 카엘에게 매달렸다.

“자, 그만 달라붙고. 회복 포션을 만들어서 드워프들에게 가져다줘야겠다.”

카엘은 평소 가지고 다니는 진통제와 치료제를 조합해 빻았다.

그런 다음 성배를 꺼내고, 라이프 베슬을 들었다.

-서, 설마…….

“조금만 쓸게.”

-아니, 벼룩의 간을 내어 먹어도 정도가 있지.

데비하이드가 항의했지만, 카엘은 무시하고 라이프 베슬의 마력을 성배에 떨어트렸다.

마력을 성배가 정화하자마자 병에 옮겨 담고 준비한 약재를 더한 뒤, 기다란 숟가락으로 저어서 잘 섞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완전히 섞인 걸 확인한 뒤, 뚜껑을 닫았다.

그러자 뒤에서 데비하이드가 징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흑흑. 이대로 가면 정말 소멸해 버릴 거야.

“그러니까 누가 마검 얻었다고 반항하래?”

-…….

“뭐, 위험해 보이긴 하니까, 이거 조금 흡수해.”

카엘은 마검 아조트를 검집에서 꺼냈다.

-어머, 드디어 내가 필요할 때가 오신 거군… 꺄악.

나오자마자 교태를 부리던 아조트는 자신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데비하이드의 라이프 베슬은 금세 가득 찼다.

“이거 좀 큰 곳으로 옮겨야겠는데.”

-뭐 해. 빨리 떨어져!

-안 돼. 못 들었어? 큰 병으로 옮겨 준다는데 마력 조금만 더 줘. 넌 스스로 회복하는 거 같은데.

“뭐?”

그 말을 들은 카엘은 곧바로 아조트를 쥐고 마력을 확인해 봤다.

데비하이드가 흡수했을 텐데도, 처음 봉인을 풀고 확인했을 때보다 마력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이거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겠는데?”

-헤헷. 잘했죠? 그러니까 제가 좀 더 흡수하겠습니다.

“그래. 잘했다. 너는 마력이 좀 여유 있어도 괜찮으니까. 더 흡수해.”

없는 꼬리라도 흔들 기세로 아양을 떠는 데비하이드를 칭찬해 준 카엘은 라이프 베슬 병을 좀 더 큰 것으로 옮긴 뒤, 아조트의 마력을 흡수하게 했다.

-꺄아아악. 너무해.

아조트는 투덜거리면서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통제권이 카엘에게 있다는 걸 깨달은 거였다.

카엘은 주변을 정리하고는 회복 포션을 가지고 아픈 드워프들이 있다는 병실을 찾아갔다.

이번 엘프들의 습격에 다친 드워프들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였다.

“크윽.”

“끄응.”

병실로 들어가자마자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카엘은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원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아직 많이 아픈 모양이군요.”

“말도 말게. 원체 몸이 튼튼해서 죽진 않았지만, 다들 중상이야.”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침입자와 싸운 탓이리라.

‘역시 치료하러 오길 잘했네.’

다른 드워프들은 엘프들의 사정을 듣고 공감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이들은 다친 원한이 남아 있을 게 분명했다.

앞으로 클리페우스에서 두 종족이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워야 하니 최대한 앙금을 없앨 작정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제가 회복약을 만들어 왔는데요. 한번 써 보세요.”

“그보다 주조사가 아니었어?”

“원래 약제사가 본업입니다.”

카엘은 그러면서 포션을 내밀었다.

드워프 의원은 이리저리 살펴보고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봤지만, 아리송한 듯했다.

“음. 그냥 물 같은데…….”

“물이라면 크게 다칠 일도 없으니까, 환부에 한번 부어 보세요.”

“그래 볼까?”

드워프 의원은 미심쩍은 듯했지만, 이미 카엘이 만든 독한 술도 맛보기도 했고, 침입자를 막고 아이들을 구해 준 일도 있다 보니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드워프 의원은 구석에서 팔을 길게 베여 괴로워하고 있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지, 진통제를 더 주게…….”

“알았어. 그 전에 이것만 시험해 볼게.”

그렇게 말하며 환자의 팔에 포션을 조금 흘렸다.

주룩.

“어떤가?”

“어, 방금 뭐 한 거야? 시원한데? 아픈 것도 금방 사라졌어.”

“…….”

“왜? 말이 없어? 뭐 했냐니까?”

“사, 상처가…….”

말이 없던 의원은 환자의 추궁에 환자의 팔을 가리켰다.

“상처가 왜? 어, 어떻게 된 거야? 다 나았잖아.”

환자는 자신의 팔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걸 조금 부었더니… 나았어. 마치 고위 성직자가 치유의 기도를 한 거 같군.”

그 말에 옆의 환자들이 아우성쳤다.

“정말? 나도 좀 줘.”

“나한테도 소용 있을까?”

“어이, 날 빼먹을 생각은 아니지?”

의원이 난처해하며 카엘을 쳐다봤다.

카엘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전부 치료하는 데 쓰세요. 그러려고 가져온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의원은 곧바로 환자들에게 회복 포션을 썼다.

바로 효과를 본 환자들은 카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덕분에 싹 나았네요.”

“한동안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살았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이 분위기라면 엘프에게 적대적이어도 내가 부탁하면 괜찮겠지.’

카엘은 만족하면서 겸손하게 대답했다.

“친구가 아프다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때 드워프 경비병이 브로칸과 함께 찾아왔다.

“카엘 님 계십니까? 칼스벅 님이 부르십니다.”

“네. 가죠.”

카엘은 그러면서도 의원에게 말했다.

“장기가 상한 분들에게는 마시게 하고요. 혹시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카엘은 의원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카엘이 회의실에 도착하니 한쪽 구석에 엘프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전과 달리 새까만 암살복과 얼굴을 가린 두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채 평상복을 입었다.

엘프들은 카엘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러지 마세요. 민망하게.”

왠지 스승에게 인사를 받는 거 같아서 어색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희의 은인 나아가서는 종족의 은인이 되실 테니까요.”

어제 주로 이야기했던 엘프가 먼저 입을 열더니 차례로 소개했다.

“저는 노아나, 이쪽은 둘째인 데키마, 막내인 모르타라고 합니다.”

셋은 세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한 외모에 체격도 비슷했다.

다른 건 눈동자의 색 정도일까?

“저는 카엘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브로칸이고요.”

“저기… 라이칸스로프와는 어떻게 같이 지내나요?”

모르타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모르타!”

“궁금하잖아.”

데키마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지만, 모르타는 핀잔을 줬다.

‘성격은 확실히 다르군.’

“아. 카엘 님이 저희 마을 촌장님을 치료해 주시고, 제국 기사단이 마법사와 함께 저희 마을에 습격해 온 걸 막아 주셨거든요. 거기다가 제 코도 고쳐 주신다고 해서 형님으로 모시며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브로칸은 마치 물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 말에 드워프들이 감탄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어?”

“이미 제국과 싸워서 이겼구만. 그러니 자신만만하지.”

“호오.”

엘프들도 기대에 찬 눈빛이 됐다.

브로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낀 거였다.

카엘은 잘됐다고 생각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어떻게 이야기는 잘됐습니까?”

“다른 드워프들도 모두 찬성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제 세워야겠지만요.”

칼스벅이 대답했다.

드워프의 지하 왕국 스탄눔은 말이 지하 왕국이지 왕족은 모조리 죽은 뒤, 나이 많은 드워프들이 돌아가면서 대표를 맡는 중.

마침 현재 대표는 칼스벅이었으나 그가 결정했다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합당한 이유로 다른 드워프들을 설득해야 하고, 설득에 실패하면 철회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네.’

“여기 노아나 님과 상의한 바로는 제국에서 이변을 느낄 때까지는 한 달 정도 여유가 있답니다.”

칼스벅의 대답에 노아나가 추가 설명을 이어 갔다.

“그 전에 임무 완수했다고 연락을 보내 두면 좀 더 시간을 끌 수 있고요. 최대 두 달 정도 되겠군요.”

“두 달이라…….”

제국에서 이상을 느꼈다 하더라도 바로 엘프들을 처형하진 않을 테니 그것까지 고려하면 조금 더 시간이 있긴 할 터였다.

‘그래도 마냥 여유 부릴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저희는 이곳을 정리한 뒤에 클리페우스성으로 이동하려 합니다.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눈에 띄지 않도록 산을 타거나 땅굴을 파서 움직일 테니 오래 걸리겠지만요.”

드워프의 외모는 눈에 띄는 데다가 라이칸스로프처럼 변신할 수도 없으니 조심하려면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혹시 엘프와 드워프들은 어떻게 구출하실 계획입니까? 국경을 넘어가기도 힘들다 들었는데.”

“저희가 왔던 길로도 가기 힘들 겁니다.”

노아나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카엘에게는 이미 생각해 둔 계획이 있었다.

“한 달 뒤쯤, 왕국의 사절단이 제국으로 들어갈 때 같이 갈 겁니다.”

“아, 그런 방법이…….”

“그러면 저희는 못 따라갈 텐데.”

칼스벅이 안타까워했다.

사절단의 규모가 크다고 하더라도 드워프들은 눈에 띌 게 분명했다.

“괜찮습니다. 너무 많아도 움직이기 곤란하니까요.”

“그래도…….”

“여기 엘프분들이 도와주시면 충분합니다. 그러려면 엘프들의 귀도 고쳐야 하겠지만요.”

귀를 고친다는 말에 엘프들의 눈이 반짝였다.

“먼저 재료를 구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도요.”

“당연히 가야죠!”

엘프들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칼스벅이 한마디 했다.

“저희도 거들고 싶은데 어디로 갑니까?”

“분노의 숲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 말에 엘프들의 표정이 굳었다.

“거긴 위험합니다. 움직이는 나무들이 살아 있는 동물들을 모조리 공격하는 곳이에요.”

“엘프가 두려워하는 숲도 있다니…….”

칼스벅마저 꺼림칙해할 정도였다.

“움직이는 나무라… 혹시 네크로맨서가 있는 곳인가?”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하자, 모르타가 얼른 설명했다.

“아냐. 그냥 나무인데 소통을 거부하고 모든 생명체에 적대적인 것뿐이라고 들었어.”

“…엘프한테도 적대적이라던데.”

데키마도 걱정되는지 중얼거렸다.

모두 걱정하는 가운데 카엘만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 방법이 있으니, 걱정할 거 없습니다.”

* * *

며칠 뒤.

화르르르륵.

분노의 숲이 불타고 있었다.

카엘이 숲에 오자마자 불을 지른 거였다.

그 불은 맹렬한 기세로 커지더니 이제는 숲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엘프들은 경악한 얼굴로 눈앞의 지옥도를 바라봤고, 브로칸마저 내심 걱정했다.

‘방법이 있다더니 숲에 불을 지르다니,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 앞에서 저래도 되나?’

정작 카엘은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이러면 간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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