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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34화 (34/234)

34화 침입자들의 정체 (2)

감옥에는 침입자 셋이 입에 재갈을 문 채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카엘은 다가가 재갈을 뺐다.

“일단 이야기 좀 하지.”

“할 말 없으니 죽여라!”

침입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뒤에 있던 드워프들이 화를 냈다.

“흥! 못 죽일 거 같냐.”

“핏덩이 같은 애들을 납치한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

그러자 침입자는 할 말은 없는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건가? 완전 쓰레기는 아니군.’

카엘은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어린애들은 왜 납치했냐?”

“제국 측에서 명령했다. 드워프들이 부족하다고…….”

그 말에 드워프들이 어이없어했다.

“부족해?”

“동족을 그렇게 많이 납치해 갔으면서.”

“대부분은 자살하고 몇몇 남은 자들은 도망치지 못하도록 다리가 잘린 채 노역하고 있을 겁니다. 맞지?”

카엘의 말에 침입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매우 흥분했다.

“이럴 수가!”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 아이들도 그 꼴로 만들 셈이었다니.”

“다들 잠깐만 진정하세요.”

카엘은 드워프들을 말리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이럴 게 아니라, 이야기할 때는 서로 얼굴을 보고 해야지.”

“아, 안 돼.”

침입자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다른 침입자들도 팔다리가 묶인 채로도 최대한 카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그 반응에 드워프들이 이상함을 느꼈다.

“왜 저러지?”

카엘은 대답 대신 침입자의 복면을 벗겼다.

“헉!”

“앗!”

침입자의 얼굴을 본 드워프들은 충격에 빠졌다.

얼굴은 조각처럼 아름다웠지만, 짧은 머리 아래 귀가 잘려 나간 자리에 끔찍한 흉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드워프들의 반응에 눈을 질끈 감은 침입자를 향해 칼스벅이 물었다.

“혹시… 엘프인가?”

“엘프라고?!”

“하지만 귀가…….”

드워프들이 왈가왈부하는 상황에서도 침입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 뿐이었다.

그러자 다른 침입자가 엘프 앞으로 기어와서 자신의 몸으로 가렸다.

그걸 본 칼스벅이 혀를 찼다.

“다른 자들도 엘프인가.”

“그렇습니다. 다 같은 꼴이죠.”

“어째서 저런…….”

“제국의 황제가 벌인 짓입니다. 제국에서 드워프들의 다리를 자르고 노역시키는 것처럼, 엘프들을 부려 먹는다고 저렇게 귀를 잘라 둔 겁니다.”

“그, 그걸 어떻게?!”

엘프들이 놀란 눈으로 카엘을 쳐다봤다.

“어허. 그런 끔찍한 일이…….”

“이런 극악무도한!”

쾅!

드워프들은 안타까워했다. 분노해서 벽을 치는 드워프도 있었다.

옛날부터 사이가 나빴던 엘프지만, 제국의 만행에 진심으로 분노한 거였다.

그 와중에 칼스벅이 넌지시 물었다.

“음. 이들을 어찌할 생각입니까?”

말투가 아무래도 엘프들의 사정에 공감하고 선처를 바라는 듯했다.

제국에 잡혀간 드워프 동족을 구하는 걸 포기했던 죄책감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엘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동정은 됐다. 우리를 죽여 다오.”

“아니… 왜.”

칼스벅과 드워프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카엘은 왜 저러는지 알았다.

“이대로 배신하면 제국에 남아 있는 동족들이 위험해서 그렇지?”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지?”

“다른 엘프에게 들었지.”

“말도 안 된다. 형제자매를 배신한 자가 있다니.”

“더 중요한 것도 들었는데? 제국에서 엘프들의 귀를 죄다 잘라 놓은 이유라든지.”

“……?!”

엘프들은 놀라워했지만,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사정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있지. 내가 구해 줄 거니까.”

“네가 아무리 강해도 무리다.”

엘프가 고개를 가로젓자 브로칸이 대뜸 말했다.

“나도 도와드릴게요.”

“우리도 도와주겠다.”

“도와주면서 우리 동족도 구하자.”

“그러면서 제국에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드워프들까지 목소리를 높이며 동조했다.

그러나 엘프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무리다.”

“정령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면 충분히 빼낼 수 있지 않아?”

제국에서 엘프의 귀를 자른 건 정령의 목소리를 못 듣게 해 정령술을 쓰는 엘프의 힘을 약화하기 위한 것.

정령술과 검술을 자유자재로 쓰는 엘프는 소드 마스터에 필적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 정도 되려면 고위 정령술을 써야겠지만.’

“정령의 목소리를 다시 듣다니, 그거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엘프가 있었지.”

카엘은 그리 말하며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바로 카엘의 스승.

오래전 제국에서 운 좋게 탈출한 스승은 자신의 귀를 고치기 위해 연금술과 약제술을 배웠고 해답을 찾아냈다.

‘운이 나빠 몬스터 대침공에 휘말렸던 탓에 정작 성공은 못 했지만.’

카엘은 그 방법도 필요한 소재가 있는 위치도 알고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엘프는 고개를 들었다.

“…알겠다. 우리를 도와 다오.”

“진작 그럴 것이지.”

* * *

일단 엘프들은 카엘이 준비를 마칠 때까지 드워프들의 손님으로 지내기로 했다.

칼스벅을 비롯해 드워프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엘프들을 챙겨 준다고 나섰다.

‘살다 보니 저런 꼴을 다 보네.’

감옥을 나와 공방에 가니 딸을 진정시키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던 블렌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네는 이제 좀 괜찮습니까?”

“지금은 진정됐는지 잠들었습니다. 다 카엘 님 덕분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말 편하게 하세요. 전 블렌트 님한테 부탁할 것도 많은데.”

“하지만 딸을…….”

“그거로 으스대려고 구한 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카엘의 말에 블렌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그보다 딸에게 들었는데 검이 부러졌다지? 내가 새 검을 주지.”

블렌트는 곧장 공방에 걸어 둔 검을 내려 줬다.

매우 예리하고 단단해 보이는 검이었다.

“감사합니다. 보검이 하나 있긴 한데, 장식이 너무 화려해서 쉽게 못 쓰고 있었거든요.”

“보검?! 한번 봐도 되겠나?”

“물론이죠.”

카엘은 1왕자에게서 받은 보검을 꺼내 건넸다.

잠시 살펴보던 블렌트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마검인 거 같다만.”

‘마검이라고? 1왕자는 대체 뭘 들고 다닌 거야?’

“표정을 보니 몰랐던 모양이군.”

블렌트는 검의 보석을 가리켰다.

“이것들은 보통의 보석이 아니라, 마검의 힘을 억누르는 봉인석이다. 아, 여기 뭐라고 새겨져 있는데… 아조트?”

‘뭐라고, 아조트?’

아조트는 전설 속, 최초의 소드 마스터가 들었다는 에고 소드.

이게 그 에고 소드가 맞다면 소드 마스터를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었다.

“이거 봉인은 어떻게 해제합니까?”

“봉인한 마법사의 주문이 필요하지. 아니면 이 봉인석들을 강제로 떼든가.”

그 말에 카엘이 봉인석을 힘으로 떼어 내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안 떨어지는데요.”

“그걸 떼려면 아주 강한 고열이 필요해. 드래곤의 브레스나 용암 정도?”

블렌트의 말에 카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트롤의 외혈로는 어떻게 안 됩니까?”

“클리페우스 출신이라더니 그것도 가지고 있나? 어쨌든 트롤의 외혈이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군.”

“한번 해 보죠.”

카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숙소에서 트롤의 외혈을 가지고 왔다.

블렌트가 그걸 용광로에 집어넣자 불이 한층 더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아조트를 그 한가운데에 집어넣었다.

그걸 본 브로칸이 물었다.

“저러면 쇠가 녹아 버리진 않습니까?”

“괜찮아. 마력으로 보호되어 있으니까.”

블렌트의 말과 함께 검에 붙어 있던 보석이 하나둘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블렌트가 아조트를 꺼냈을 때는, 검신 제일 아래쪽의 보석 하나만 남아 있었다.

“엥, 이건 안 떨어졌네요?”

“이건 마검의 핵이라서 그래.”

블렌트는 그렇게 말하며 아조트를 건드렸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 깨어나는데요?”

“너무 오래 봉인됐었나 보군. 깨우려면 마법적인 충격을 줘야 할 텐데, 마법사를 보기는 힘드니 지금은 무리겠네. 혹시 모르니 봉인석은 검집에 붙여 주겠네.”

블렌트는 아깝다는 듯 검을 카엘에게 돌려주고는 봉인석을 수습해서 검집에 붙였다.

‘마법적인 충격이라… 이따가 한번 시도해 봐야겠군.’

마력을 생명력으로 바꾸는 능력을 써 보면 마검이 충격을 받아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무기보다 병을 만들어 달랬다며?”

“네. 무기도 만들어 주면 좋지만요. 당장 필요한 건 약을 담을 병입니다.”

“약을 담을 병이라?”

“네. 작은 유리병으로요. 이번에 만든 증류기로 만든 술을 담을 때도 유용할 겁니다.”

“음. 그렇겠군. 알겠네. 맡겨 두라고.”

카엘은 곧바로 작업에 돌입한 블렌트를 내버려 두고, 숙소로 돌아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조트를 뽑았다.

“어, 뭐 하시려고요?”

“이거 마검이라는데 한번 깨워 보려고.”

카엘은 브로칸의 물음에 대꾸하며 아조트의 핵에 손을 갖다 댔다.

강한 마력이 느껴졌다.

데스 나이트의 두 배는 더 될까?

‘그래도 예상했던 것만큼은 아니군.’

오래 봉인된 탓 같았는데, 이 정도라면 깨어나도 충분히 제압 가능해 보였다.

‘어디 한번 해 볼까?’

우웅.

카엘은 핵에서 마력을 흡수했지만, 금방 생명력이 가득 찬 탓에 흡수가 멈췄다.

당연하게도 아조트는 깨어나진 않았다.

“안 된 거죠?”

“응. 역시 그 녀석을 써 봐야겠어.”

카엘은 가방 안에서 꽁꽁 묶어 놓은 데비하이드를 꺼내 풀어 줬다.

그러자 데비하이드의 해골에 붉은빛이 돌아왔다.

-푸하.

데비하이드는 간신히 살았다는 듯 숨을 내뱉더니 뼈다귀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게 재밌는 듯 브로칸이 툭툭 건드렸다.

“살아 있는 것처럼 구네.”

-악. 귀찮아.

카엘은 데비하이드에게 아조트를 내밀었다.

“이거 마검이라는데 깨울 수 있겠어?

-네? 마검이요?

아조트를 건네받은 데비하이드가 감탄했다.

-오, 이거 상당히 강한 마력을 지녔네요?

“깨울 수 있겠어?”

-그거야 쉬운 일…….

데비하이드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다가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아조트와 가방을 번갈아 보는 게 아닌가?

뭘 보는지 바로 눈치챘다.

가방을 보는 게 아니라, 깨질까 봐 부드러운 천으로 감아 가방에 넣어 둔 라이프 베슬을 보는 거였다.

그 가방은 지금 데비하이드의 뒤쪽에 있고.

“마검 얻었다고 배신하려고?”

아조트의 핵에 강한 마력이 있다니 그걸 흡수해 본래 힘을 되찾으려는 거였다.

-흐흐, 정답이다. 이거로 굴욕의 시간도 끝이다. 마검이여, 내 힘이 되어라!

고오오오오오오오!

데비하이드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 마력이 넘실거렸다.

동시에 데비하이드의 체형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금방 본래 모습을 되찾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생각대로 안 될 텐데.’

카엘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자 데비하이드가 비웃었다.

-왜,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겠느냐? 가만히 네게 다가올 죽음을 기다려거라. 네 육신을 제물로 바쳐 그동안의 굴욕을 청산할…….

팟!

한참 떠들던 데비하이드의 머리통의 윗부분이 날아갔다.

구멍이 뚫린 거였다.

-어?

데비하이드가 당황하는 사이, 뚫린 머리로 마력이 급격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형도 다시 작아지더니,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버렸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라이프 베슬 때문이지.”

-뭐? 라이프 베슬이 왜? 앗!

그제야 데비하이드는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깨달았다.

현재 라이프 베슬은 원래보다 훨씬 작은 데다가 구멍까지 난 상황.

다시 막아 두긴 했지만, 임시 처방에 불과했다.

거기에 마력을 뭉텅이로 집어넣었으니 다시 터져 버린 거였다.

‘애당초 마력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그래도 데비하이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이 마검이…….

펑!

데비하이드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흥! 어디 감히 더러운 언데드가 날 만져?

불쾌한 듯 쏘아붙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아조트가 혼자 허공에 섰다.

손잡이는 위쪽에 있었는데 검신에 박혀 있던 보석에 눈이 생겨 있었다.

마검 아조트가 깨어난 거였다.

“아조트?”

-어머, 당신이 내 새 주인인가요?

아조트는 카엘 쪽을 쳐다보더니 흐물거리며 날아왔다.

“주인?”

-그래, 당신이 날 깨운 거 맞지?

정확히는 데비하이드가 깨운 거였지만.

“맞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 새 주인이지. 자, 어서 날 그 멋진 손에 쥐어.

바로 옆까지 날아온 아조트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유혹했다.

카엘은 그 말에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그래, 그렇게. 내가 가서 안길 테니까.

아조트는 차분히 날아와서 카엘의 손에 얌전히 쥐였다.

동시에 아조트의 눈에 빛이 번뜩이더니, 붉은 마력이 카엘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오호호호. 멍청한 인간, 이렇게 손쉽게 내게 몸을 내주다니. 오랜만에 피 맛 좀 보겠구나.

‘리치고 마검이고 하는 짓이 비슷하네.’

카엘은 한숨을 내쉬며 아조트에게 물었다.

“몸을 내주다니? 난 멀쩡한데?”

-아니, 어떻게? 의식이 있지?

아조트가 화들짝 놀랐을 때.

-흐흐흐, 놀랐느냐? 내 생명력을 정제해서 흡수하신 덕분에 어마어마한 마법 방어력을 가지게 되셨거든.

구석에 처박혔던 데비하이드가 어느새 일어나서 비웃었다. 그걸 본 아조트가 어처구니없어했다.

-야! 너는 왜 잘난 척하는 거야? 이 인간 배신하는 거 아니었어?

데비하이드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카엘 님! 방금은 제 본심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 사악한 마검이 저를 조종한 겁니다.

-야! 무슨 소리야! 내가 더러운 언데드를 왜 조종해!

-더러운 언데드라니!

둘의 말싸움에 카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 많이 시끄럽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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