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30화 (30/234)

30화 라이프 베슬 (4)

-내 마력은 안 돼!

데비하이드가 바락바락 달려들었다.

브로칸은 귀를 파며 쏘아붙였다.

“거, 되게 시끄럽네! 카엘 님, 그냥 깨트려 버리죠.”

-…….

데비하이드가 조용해지자, 프레데릭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무슨 약을 만드시려는 건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마력을 흡수하는 약을 만들 겁니다.”

라이프 베슬 내의 검붉은 액체는 리치의 마력이면서도 생명력.

마력과 생명력의 양쪽 특성을 가진 걸 이용해 서로 전환을 할 수 있었다.

마력을 흡수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과 마기에 대한 저항력도 높아진다.

‘내 체질이라면 어지간한 독은 무효화할 테고, 성물이 없이도 마기 침식을 걱정할 일도 없어지겠지.’

앞으로 상대할 적들을 생각하면 꼭 필요했다.

그때 프레데릭이 물었다.

“혹시 그걸 직접 먹으실 겁니까?”

“네? 그래야죠.”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먹겠습니다.”

‘아니, 이 좋은 걸 왜 자기가 먹겠다는 거야? 줄 생각도 없는데.’

황당해하는데 정작 프레데릭은 비장한 얼굴이었다.

“그 약을 먹고 마기에 찌든 대지를 정화하실 작정 아닙니까? 자신의 몸이 상하든 말든!”

‘그 정도로 효과가 좋진 않은 데… 아니 어쩌면 되려나?’

체질 때문에 약효가 늘어나면 흡수 효율도 늘어나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프레데릭은 카엘이 무슨 대단한 희생을 할 거라고 착각한 거 같았다.

“마력을 흡수한다고 꼭 나쁜 건 아닙니다. 이 약은 흡수한 마력을 생명력으로 바꿔 주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신성력 없는 제가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할 수단이기도 하고요. 자세히 설명을 안 해서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아닙니다. 제가 성급하게 오해한 거지요. 바로 성배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제야 프레데릭이 안심하며 밖으로 나갔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 데비하이드만 투덜거렸다.

-내 마력…….

* * *

잠시 후.

“여기 가져왔습니다.”

프레데릭이 성배를 들고 돌아왔다.

“정말 바로 가져오실 줄은 몰랐네요.”

“잠깐 쓴다고 하니 주교님이 바로 내주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카엘은 성배를 받아들고 감탄했다.

“오! 이거 신성력이 엄청나군요.”

크기는 작았지만, 성배에 담긴 신성력이 일반적인 성물의 두 배는 됐다.

“저도 놀랐습니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진작에 카엘 님이 쓰게 가져왔을 것을. 구석에 꿍쳐 두다니.”

프레데릭은 괘씸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그때 브로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 녀석, 이상한데요?”

-으윽.

데비하이드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성배가 품고 있는 신성력이 강력한 탓에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악영향(?)을 받는 모양이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전 밖에서 지키고 있겠습니다.”

프레데릭은 아무래도 들키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망보는 걸 자처했다.

프레데릭이 나간 뒤, 카엘은 칼끝으로 라이프 베슬에 구멍을 냈다.

-억!

작은 구멍을 냈을 뿐인데도 데비하이드가 기겁했다.

카엘은 한 손에는 성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라이프 베슬을 들었다.

라이프 베슬 안의 검붉은 액체의 마력을 성배로 정화해 그 특성만 남길 생각이었다.

‘문제는 라이프 베슬 밖으로 나온 마력이 날아가 버린다는 건데.’

그것도 처음 라이프 베슬을 깼을 때 보니 매우 빨리 증발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증발 안 되게 굳히면 되지.’

쪼르륵.

-으, 귀한 마력이…….

검붉은 액체가 성배에 부어지는 걸 보고는 데비하이드가 안타까워했다.

치이이이이.

한편 검붉은 액체는 성배에 닿자마자 격한 반응을 일으키며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렸다.

라이프 베슬의 용액을 절반 가까이 붓자 성배가 가득 찼다.

‘이 정도면 되겠지.’

카엘은 성배를 쥔 손에 빙한목의 냉기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성배 안의 액체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그걸 본 브로칸이 깜짝 놀랐다.

“어, 얼었다. 카엘 님, 설마 마법사셨습니까?”

-아니, 저건 마법은 아니야. 굳이 분류하자면 자연력, 정령력에 가까운데 어떻게 한 거지?

“아하, 마법이 아니면 됐어요.”

마법을 보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브로칸은 급 흥미를 잃어버렸다.

잠시 후.

검붉은 빛이었던 액체는 반쯤 줄었는데, 대신 선홍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걸로 완성입니다.”

데비하이드가 뒤에서 구시렁거렸다.

-내 생명력을 저렇게 타락시키다니.

카엘은 무시하고 숟가락으로 성배 안의 약을 긁어 먹었다. 냉기로 살얼음이 되어 버려서 그냥 마실 수는 없었다.

“이야, 시원한데? 맛도 생각보다 좋고.”

-맛있습니까? 하긴 누구 마력인데.

으스댈 일인가 싶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먹었다.

‘나중에 이런 식으로 다른 재료를 써서 간식을 만들어 먹어 봐도 좋겠는데?’

그러면서 브로칸을 보니 군침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카엘 님, 그거 정말 맛있나요?”

“나중에 약 말고 맛으로 먹을 만한 거로 하나 만들어 줄게.”

“네! 네!”

브로칸은 지금은 없는 꼬리를 흔들 것 같은 기세로 기뻐했다.

‘그럼 이제 약효를 시험해 볼까?’

약을 깔끔하게 다 먹은 뒤 성배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러자 데비하이드의 신음이 들리는 게 아닌가?

-으으.

보니까 쓰러져 있었다.

“왜 그래?”

-괴, 괴롭습니다.

“괴로워? 아, 그러고 보니.”

라이프 베슬에 구멍을 낸 채로 놔둔 탓이었다.

마력은 어느새 반의반으로 줄어 있었다.

‘정말 빨리 증발한단 말이야.’

카엘은 구멍 낸 부분을 헝겊으로 감았다.

“나중에 제대로 막아 줄게.”

-…으.

데비하이드는 어지간히 기운이 없는지 대꾸도 제대로 못 했다.

‘그래도 당장은 버티겠지. 일단 약효부터 확인해 봐야지.’

카엘은 가방에서 납작한 철판을 꺼냈다.

데스 나이트였던 것으로 카엘이 가져가기 편하게 납작한 철판으로 압축한 거였다.

‘일단 마력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

카엘은 눈을 감고 철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정말로 미미하게 마력이 느껴졌다.

“이거 신성력과 비슷한 느낌인데?”

성직자가 들었다면 불경하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을 말을 중얼거리며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마력을 손을 통해서 빨아들인다는 느낌으로……. 어, 됐다.’

마력이 손끝으로 흘러들어 오면서 팔이 검붉게 변했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가 덜그럭거렸다.

아무래도 마력을 뺏기는 게 괴로운 모양이었다.

카엘은 반대였다.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체내로 들어온 마력이 생명력으로 변환되면서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은 거였다.

‘좋군. 이게 생명력이 차오르는 느낌인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력 흡수가 막혔다.

그리 많이 흡수한 거 같지도 않은 데,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억지로 더 하면 탈이 나겠지. 그럼 슬슬 회복시켜 줄까?’

카엘은 아예 드러누워 있는 데비하이드에게 철판을 내밀었다.

“이거 흡수해. 설마 소중한 부하의 마력이라 흡수 못 한다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데비하이드는 대꾸하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마력의 균형이 깨진 데다가 복구할 힘은 없으니 놔두면 그대로 소멸할 겁니다.

확실히 카엘이 마력을 흡수하자마자 데스 나이트의 마력은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철판을 받은 데비하이드는 그 앞에 대고 뭔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엘이 흡수할 때와 달리 철판은 모래처럼 흩어지며 소멸해 버렸다.

동시에 반의반밖에 남지 않았던 라이프 베슬이 차올랐다.

-후. 이제 살 거 같군.

“그래? 그럼 다시 들어가.”

카엘이 말하자마자 브로칸이 데비하이드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자 프레데릭이 슬쩍 들어왔다.

“다 끝나셨습니까?”

“아, 네.”

“그럼. 주교님께 보고드리러 가죠. 리치를 퇴치했다고 하면 기뻐하실 겁니다. 교회 차원에서 포상도 있을 테고요.”

“아뇨, 괜찮습니다.”

교회에서 포상해 봐야 얼마나 대단한 포상을 해 준다고.

‘기껏해야 축복의 기도나 해 주겠지.’

주교급이 내려 주는 축복을 받으면 한동안 불행한 일을 피하고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게 된다.

사실 그것도 일반인에게는 큰 영광이긴 했다. 보통은 거금을 기부하는 귀족에게나 기도를 해 줬으니까.

하지만 카엘에게는 필요 없었다.

한편 프레데릭은 카엘의 거절에 감격했다.

“아니, 어쩜 이토록 겸손하실 수 있습니까? 진정한 영웅의 면모를 여기서 보게 되는군요.”

‘뭘 또 그렇게까지야.’

그래도 프레데릭이 그렇게 느낀다는 데 카엘에게 불리할 것도 없어서 적당히 맞장구쳐 줬다.

“주교님이 오해하지 않도록 잘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격한 얼굴로 나갔던 프레데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카엘 님, 주교님께서 부르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네? 무슨 일로…….”

“카엘 님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저처럼 감격하시지 뭡니까. 거절했다고 해도 꼭 신전 차원에서라도 합당한 보상을 하고 싶다고 꼭 모셔오라 했습니다.”

“아. 그랬군요.”

아무래도 보상을 안 바란다는 걸 알고, 선심이나 쓸까 해서 부르는 모양이었다.

‘두 번이나 거절하긴 그러니까 다녀올까? 그래도 혼자 갔다 와야겠군.’

무엇보다 라이칸스로프가 축복의 기도를 받았다가는 큰일 난다.

언데드처럼 타격을 입지는 않겠지만, 변신이 풀려 버린다.

“그럼 가죠. 브로칸은 여기서 리치를 좀 지켜 줘.”

“아, 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브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막상 가니 주교가 기도 대신 원하는 게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원하는 거 말입니까?”

“무엇이든 괜찮으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주교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은 했지만, 그러면서 프레데릭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아무래도 프레데릭이 기도로 넘어갈 생각 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은 게 분명했다.

‘뭐 그렇다면 받아 갈 게 있지.’

카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까 빌렸던 성배를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 그 성배는…….”

주교는 성배를 요구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당황했다.

“신전에 놔두는 것보다 요긴하게 쓰실 겁니다.”

카엘이 성배를 사용해 약을 만드는 걸 본 프레데릭이 곧바로 잘됐다며 옹호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물릴 수 없는 분위기였다.

“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교의 말에 카엘은 냉큼 대답했다.

‘잘됐네. 드워프한테 가서 비슷한 거 만들어 달라고 하려 했는데.’

* * *

다음 날.

카엘은 프레데릭의 배웅을 받으며 톨레도성을 나섰다.

“카엘 님, 잘 가십시오.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수행에 힘쓰세요. 재회할 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진심이었다.

프레데릭이 성기사가 되면 전력에 커다란 보탬이 될 테니까.

“물론입니다. 다음에 뵐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겁니다.”

프레데릭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무래도 몬스터 대침공 전에 이렇게 언데드 몬스터와 마주친 게, 그가 신성력을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된 게 틀림없었다.

카엘은 프레데릭과 작별한 뒤 대로를 따라 말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 이곳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온 카엘은 대로가 꺾이기 시작할 때쯤 길을 벗어나 들판을 가로질렀다.

잠자코 뒤따라오던 브로칸이 비슷한 풍경에 금방 질렸는지 물었다.

“근데 저희 어디로 가는 겁니까?”

“드워프의 지하 왕국에 갈 거야.”

“네?! 드워프요? 수백 년 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들었는데, 지하 왕국이 있었다니…….”

그 말대로 현재 드워프는 모두 인간과 인연을 끊고 은둔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지.’

일부는 비밀리에 제국의 자치령에, 나머지는 대륙 서쪽의 발레라산맥에 지하 왕국을 건설해 모여 있었다.

천혜의 지형과 드워프들이 만든 방어 무기 덕분에 몬스터 대침공 때도 그곳만은 꽤 오래 버텼다.

‘드래곤이 뜬 이후에는 죄다 불덩이가 됐지만.’

하지만 그 불지옥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드워프들을 기다리는 건 비참한 삶이었다.

드래곤의 둥지에서 노예로 일해야 했으니까.

거기서 간신히 도망쳐 나온 드워프가 하나 있었는데, 스승이 구했었다.

‘목숨을 건지고도 그 녀석은 다른 것보다 술이 없는 게 지옥 같았다고 했지.’

그걸 들은 카엘은 스승의 특제 술을 몰래 드워프에게 줬다.

덕분에 친구가 됐었다.

스승의 특제 술에 취한 그 드워프는 푸념하며 말했다.

술이 없는 것보다 더욱 지옥 같은 건 소중한 딸을 잃은 거라고 말이다.

드래곤이 습격해 왔을 때 일인가 싶었지만, 뜻밖에도 훨씬 전 이야기였다.

제국에서 자치령에 있는 드워프들로는 모자랐는지 드워프들을 납치하러 왔는데, 거기에 휘말려서 죽었다는 거였다.

그 말을 하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어 대던지.

회귀했을 때 반드시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려면 늦지 않게 가야지. 아직 여유는 있지만.’

* * *

며칠 동안 열심히 달린 끝에 카엘은 드워프 지하 왕국이 위치한 발레라산맥 근처에 무사히 도착했다.

“멈춰라!”

그리고 산속에 들어가자마자 도끼를 든 전사들에게 포위당했다.

‘잘 찾아왔군.’

정체를 알 수 없도록 전신에 갑옷을 입었지만, 작은 키에 두꺼운 몸을 보니 드워프가 틀림없었다.

“앗! 여러분, 드워프 맞죠?”

한편 브로칸은 도끼에 위협을 느끼긴커녕 신나서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야!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뭐 어때? 진작 눈치챈 거 같은데.”

드워프 전사들은 자기들끼리 설왕설래하더니 경계하며 추궁했다.

“우리에 대해서 아는 거 같은데,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나?”

친분을 쌓기 전이니 아는 드워프가 있다고 할 수 없어 일단은 드워프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카엘은 미리 생각해 둔 방법을 빙긋 웃으며 말했다.

“드워프도 취할 만큼 아주 독하고, 맛있는 술을 만들어 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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