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라이칸스로프 (2)
“크앙!”
그사이 제국 측 라이칸스로프 하나가 카엘을 보고 덤벼들었다.
“카엘 님, 위험해요!”
브로칸의 경고에 카엘은 검을 뽑을 틈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퍽!
라이칸스로프는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나름 힘 조절했으니까. 죽진 않았겠지?’
“어림도 없다.”
카엘의 의도를 눈치챈 제국 기사도 앞을 가로막았다.
퍽!
카엘에게 덤볐던 라이칸스로프처럼 곧바로 나가떨어졌지만.
라이칸스로프에 대비해 이 험한 곳까지 완전무장을 갖추고 온 게 무색할 정도였다.
카엘은 연달아 덤비는 적들을 내던지면서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 광경을 본 병사들이 겁에 질렸다.
“괴, 괴물이다!”
“뭣들 하냐! 어서 막지 않고!”
마법사도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목소리로 병사들을 앞으로 내몰았다.
그 틈에 도망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카엘이 방패를 뺏어 휘두르자 병사들이 곧바로 혼비백산해서 흩어져 버린 거였다.
“안 되겠다! 라이칸스로프들이여, 나를 지켜라!”
마법사가 뒤늦게 라이칸스로프들을 불러 모았지만, 이미 늦었다.
푹!
카엘이 마법사의 얼굴에 검을 꽂아 버린 거였다.
이 시대의 마법사들은 마법을 쓰더라도 기껏해야 한 가지.
잘해야 두세 가지를 쓰는 게 고작.
방어 마법까지 잘 다루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상대하기 까다로우니 허튼짓하기 전에 해치우는 게 최선이었다.
예상대로 지배의 목걸이는 마법사가 쓰러지자마자 바로 효력을 잃었다.
그러자 조종당했던 라이칸스로프들이 하나둘 정신 차리기 시작했다.
“큭. 이건 어떻게 된 거야?”
“머리 아파……. 그러고 보니 난 인간들에게 잡혀 있던 게…….”
“윽. 뭐야? 날 왜 깨물고 있어?”
“네가 먼저 깨물었잖아!”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네.”
의식이 돌아온 동족을 반기는 라이칸스로프들을 향해 촌장이 외쳤다.
“다들 재회는 나중에, 당장 인간들부터 잡아라! 하나라도 남겨 두면 안 된다!”
“네!”
라이칸스로프들이 힘차게 대답하고 뛰쳐나갔다.
그때 한 눈치 없는 라이칸스로프가 카엘을 가리키며 물었다.
“촌장님, 저기 저 인간도 잡습니까?”
“멍청한 놈! 은인에게 무슨 소리냐! 네 힘으로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보든가.”
“아, 아닙니다. 실은 도저히 못 이길 거 같아서 여쭤본 겁니다.”
야수의 직감으로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강자라는 걸 느낀 거였다.
그게 아니라도 라이칸스로프들은 동족뿐만 아니라 기사까지 날려 버리는 카엘의 괴력을 눈으로 똑똑히 봤다.
덤빌 생각이 들 리가 없었다.
오히려 저런 인간에게 덤비려고 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조종당하던 라이칸스로프들이 빠지자, 승기는 급격히 라이칸스로프들에게 기울었다.
제국 기사들이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고 은검을 준비했다고 해도 서넛이 덤벼드는 것까지는 버티진 못했다.
병사들은 더욱 쉬웠다.
허둥대며 도망가는 걸 잡기만 하면 됐으니까.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녀석도 냄새로 금방 찾아내 해치웠다.
한편 카엘은 조종에서 풀려난 라이칸스로프들을 살폈다.
‘쳇. 역시 바로 사라졌군.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효력을 잃어버린 지배의 목걸이는 그대로 모래처럼 무너져 내렸다.
모조품이다 보니 마력 공급이 끊어지는 순간 소멸해 버린 거였다.
촌장은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어 가자 카엘에게 다가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인, 덕분에 우리 일족이 무사했습니다.”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였다.
카엘이 마법사를 쓰러트리지 않았다면, 수많은 동족이 잡혀가서 지배당했을지도 몰랐다.
그 참혹했던 과거처럼.
그때를 떠올리니 몸이 떨릴 정도였다.
“음.”
무리해서인지 눈앞이 어지럽고 발에 힘이 풀렸다.
그걸 본 라이칸스로프들이 비명을 질렀다.
“앗, 촌장님!”
“괜찮으세요?”
카엘은 무너져 내리는 촌장을 부축했다.
“일단 촌장님부터 치료하죠.”
* * *
촌장을 살펴본 카엘이 밖으로 나오니 라이칸스로프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
“당장은 괜찮습니다. 그래도 빨리 처방해야 할 거 같으니, 바로 곰에게서 약재를 추출할 겁니다. 잘 보고 다른 분들도 각자 사냥해 온 것들 떼세요.”
“네!”
“알겠습니다!”
“거기 앞에 좀 비켜 봐!”
언제 공격하려 했냐는 듯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들끼리 티격태격했지만.
카엘은 흑곰을 해체하려다가 다른 라이칸스로프들이 잡아 온 곰을 보며 한마디 했다.
“맞다. 붉은 곰의 쓸개는 못 쓰니까, 내버려 두시면 됩니다.”
“젠장! 희귀한 거 같아서 잡았는데.”
“크크, 쓸데없는 짓을 했네.”
“그럼, 합니다.”
카엘은 자신이 사냥한 흑곰을 해체해서 쓸개를 떼어 냈다.
‘큰 놈을 잡은 보람이 있네.’
쓸개가 일반적인 것보다 배는 커 보였다.
카엘은 정성스레 겉에 붙은 기름기를 떼어 내고, 그늘에 뒀다.
“이대로 좀 말렸다가 나중에 나무판자 사이에 끼워 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아하.”
“촌장님은 당장 필요하시니까, 인위적으로 좀 말려야겠네요. 저기에 불을 좀 피워 주시겠어요?”
“불? 알았어!”
“야, 내가 할 거야.”
“나는 돌을 가져오지.”
카엘의 부탁에 라이칸스로프들이 앞다퉈 나섰다.
이렇게 라이칸스로프는 임무가 하나 주어지면 어떻게든 완수하려 했다.
‘그 때문에 믿고 일을 맡기기 좋지.’
카엘은 그사이 빙한목의 냉기로 쓸개의 겉면을 살짝 얼려 모양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라이칸스로프들이 금세 피운 불을 뒤적거려 불씨를 작게 한 뒤, 피어오르는 연기 위에 쓸개를 얹어 말리기 시작했다.
“오옷!”
“신기하네.”
“이렇게 얼마나 해야 하나요?”
“반나절은 해야죠.”
“아.”
“…으음.”
카엘의 대답에 라이칸스로프들이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반나절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지루함을 못 견디는 라이칸스로프들에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긴 시간이었다.
“한 명만 지키고 있으면 되니까, 다들 볼일 보세요.”
카엘의 말에 라이칸스로프들은 마치 죄 사함이라도 받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 와중에도 브로칸만은 쓸개를 말리는 걸 눈을 부릅뜨며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
“카엘 님도 쉬세요. 여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라이칸스로프답지 않은 대단한 인내력이야.’
촌장을 지극히 따르고 있어서 발휘하고 있는 거였다.
“그럼 잠깐 맡기겠습니다.”
그리 말한 카엘은 쉬는 대신, 미리 챙겨 온 약재를 꺼내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반나절 뒤.
“이 정도면 되겠네요.”
카엘은 말린 쓸개를 살펴보곤 한쪽 끝을 갈랐다.
투명한 황금빛의 담즙이 나왔다.
그걸 본 브로칸이 감탄했다.
“우와! 예쁘다.”
카엘은 그걸 자신이 따로 준비한 탕약에 넣고 섞었다.
“자, 됐습니다. 촌장님께 드리러 가죠.”
“네!”
브로칸이 힘차게 대답하며 따라왔다.
촌장은 조금 진정됐는지 깨어나 있었다.
그러나 약탕의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거 생각보다 쓰고 비린내가 나는군.”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입니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촌장은 탕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탕약이 촌장의 목젖을 넘어가는 걸 뚫어지게 쳐다보던 브로칸이 물었다.
“어떤가요?”
“어떻게 먹자마자 효과가 나겠냐, 이놈아!”
촌장이 벌떡 일어나서 브로칸을 타박했다.
‘어? 방금 벌떡 일어나신 거 아니야?’
카엘로서도 뜻밖이었다.
‘아무리 라이칸스로프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효력이 나타나다니.’
“은인, 약을 얼마나 더 먹어야 합니까?”
“원래 한 달은 먹어야 하는데, 이 정도면 이삼일 정도만 더 드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 말대로 촌장은 이삼일 만에 눈에 띄게 회복했다.
심지어 푸석푸석했던 털에 윤기가 돌아오고 근육도 붙어서 이전보다 체격도 커졌다.
사 일째에는 나무 위로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였다.
카엘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감탄했다.
“대단하시네요. 약도 이제 더 안 먹어도 되겠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말씀이십니다. 이게 다 은인 덕분입니다.”
“은인이라니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저도 은인에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야겠군요.”
촌장은 그러더니 품속에서 짧은 가죽끈을 꺼내 내밀었다.
아주 오래된 듯 색이 바래 있었는데 중앙에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설마?’
“지배의 목걸이입니다. 이것 말고는 보답할 만한 게 따로 없군요.”
‘역시 지배의 목걸이였어.’
그것도 며칠 전에 상대했던 라이칸스로프들이 하고 있던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었다.
은원이 확실한 라이칸스로프니 뭔가 보답하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보물을 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미 마력이 없어 사용은 못 합니다만, 골동품이니 비싸게 팔릴 겁니다.”
촌장 말대로 지배의 목걸이는 제국의 고위 귀족들이 시중에 물건이 나돌 때마다 비싸게 사들였다.
마력이 다해 효능이 없다고 해도 은밀한 취미 생활에 쓴다는데, 그 가격이 금화 수백 닢을 넘어갔다.
기사 1년 수입이 금화 100닢 정도인 걸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나는 진짜로 사용할 거지만.’
소모된 마력을 채워 넣을 방법도 아는 데다가, 쓸 곳도 진작 생각해 뒀다.
“이런 귀한 걸 저한테 주시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
“은인, 하찮은 보답을 한 뒤라 민망합니다만,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미 제국 기사들이 가지고 있던 금화와 보물도 챙겼는데, 지배의 목걸이 진품까지 받았다.
수고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보답을 받은 셈이라 흔쾌히 더 들어주고도 남았다.
“혹시 냄새를 못 맡는 병도 고칠 수 있습니까?”
“촌장님!”
브로칸이 소리쳤다.
냄새를 못 맡는 자신을 위해 묻는 거라는 걸 알아서였다.
‘안 그래도 빚진 게 많은 은인에게 제 병까지 고쳐 달라고 하시다니.’
정작 카엘으로서는 뜻밖의 횡재였다.
브로칸을 데리고 떠나기 위해 미끼로 쓸 이야기였는데, 촌장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 주다니.
“저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냄새를 못 맡게 되었지 뭡니까? 그 때문에 다른 녀석들로부터 무시당하며 사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촌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만날 숨어서 질질 짜면서. 은인, 어떻습니까? 가능합니까?”
“사실 후각 기능에 이상이 있으신 듯해서 전에 잠깐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고칠 수 있습니다.”
“앗! 정말인가요?”
브로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치기 어렵다 해서 포기했던 건데 일말의 희망이 생긴 거였다.
“다만, 독특한 약재가 필요해서 당장은 안 됩니다.”
“아…….”
브로칸이 안타까워하자 촌장이 타박했다.
“괜찮다고 할 때는 언제고. 어린 녀석이 탄식하기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내 말대로 해. 은인! 그럼 이 녀석을 데려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촌장님?”
“데려가서 병을 고쳐 주고, 마음껏 부려 먹으십시오. 저런 목걸이가 없어도 충성을 다할 겁니다.”
그건 안 봐도 잘 알았다.
회귀 전 보르칸이 스승에게 어찌나 잘하던지 가끔 질투 나기도 했으니까.
“촌장님…….”
“이 녀석이. 아까부터 시끄럽게 왜 계속 불러?”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촌장님을 두고 떠납니까.”
“흥, 그리 말하려면 네 꼬리나 감추고 하든가.”
“윽!”
촌장의 지적대로 보르칸의 꼬리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심 카엘을 따라가는 걸 기대하는 마음이 표출된 거였다.
“앞으로 10년은 더 살 테니, 세상에 나간 김에 이런저런 냄새를 맡고 돌아와서 이야기해 다오.”
“아, 알겠습니다!”
냄새를 맡는다는 이야기에 브로칸은 귀를 쫑긋했다.
촌장으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브로칸을 내게 떠맡길 정도로 믿다니, 그 제안을 말하기 더 쉽겠는데?’
카엘은 그리 생각하며 넌지시 물었다.
“촌장님, 앞으로 어떡할 생각입니까?”
“…음.”
촌장이 입을 닫고 표정이 어두워지자, 브로칸도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봤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던 탓이다.
마을을 습격한 제국 기사와 마법사는 물론, 병사들까지 모조리 해치웠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습격자를 심문한 바로는 카엘의 예상대로였다.
제국 대사가 클리페우스성으로 향하던 길에 일부 병력을 차출해 마법사와 함께 라이칸스로프 사냥을 보낸 거였다.
만약 병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다시 쳐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것도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이끌고.
그러면 이 마을도 끝장이었다.
촌장도 같은 생각인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국 놈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이제 이 마을에서 떠나야겠죠. 더 깊은 산맥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인간들이 못 찾는 곳으로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촌장의 눈빛은 씁쓸해 보였다.
라이칸스로프는 마법사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몬스터이긴 하나, 본래는 인간.
‘그 때문에 산속의 짐승처럼 살고 싶지 않아 이렇게 모여 마을을 이뤘거늘.’
정체가 탄로 나고 사냥꾼에게 쫓기느라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그때 카엘이 제안했다.
“그러지 말고. 클리페우스성으로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