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약 빤 막내아들-22화 (22/234)

22화 의리의 상인 (1)

“덕분에 살았습니다.”

“맞습니다. 안 도와주셨으면 피해가 엄청났을 겁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상단주와 용병대장이 카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몬스터에게 습격당하고 있는데, 당연히 도와야죠.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카엘의 대답에 두 사람은 내심 감탄했다.

‘좋은 사람인데 괜히 놀랐네. 얼굴을 닦으니까 훨씬 부드러운 인상이기도 하고.’

‘그런 대활약을 했으니 잘난 체할 만도 한데, 이리 겸손하다니.’

기사라면 자신을 칭송하면서 마땅한 사례를 받기 원하고, 용병이라면 손부터 내밀면서 도와준 보수를 치르라고 한다.

그러나 눈앞에 사내는 두 사람의 안위부터 걱정하는 게 아닌가?

호감도가 치솟은 상단주는 문득 이 사내의 이름을 못 들었다는 걸 떠올리고는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맞다. 반갑습니다. 전 맥킨더 상단의 맥킨더입니다.”

카엘은 깜짝 놀랐다.

‘이 자가 의리의 상인이라는 맥킨더?’

몬스터 대침공 이후.

대륙에 몬스터가 횡행하고 인간들끼리 약탈하던 시절, 대부분 상인은 위험하다며 상행을 포기했다.

온전히 유지되는 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제국과 왕국 수도 간의 무역 정도뿐.

그 와중에도 거래가 성사되면 온갖 위험한 곳을 오갔던 유일한 상단이 바로 맥킨더 상단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의리의 상인 맥킨더.

몬스터 대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클리페우스성까지 온갖 물자를 날라줄 상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인재를 초기에 만나다니.’

상단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정작 맥킨더는 카엘의 침묵을 오해한 듯 멋쩍어했다.

“아, 상단주가 너무 젊어서 놀라셨군요. 이해합니다. 이제 막 상행을 시작했거든요.”

“그러셨군요.”

이어서 얼굴에 상처가 많고, 험악한 인상의 용병대장이 소개했다.

“저는 상단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콜트 용병단의 콜트입니다.”

“아, 저는 카엘이라고 합니다.”

원래 적당한 가명을 쓸까 했지만, 관뒀다.

회귀 전에도 본명을 그대로 썼지만, 알아채는 이가 없었는데 굳이 가명을 쓸 필요를 못 느꼈다.

아버지인 티겔 브리운 공작이 소드 마스터로 유명하다고 해도 병약해 누워만 있던 막내아들의 이름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무엇보다 클리페우스성에도 같은 이름이 있을 정도로 희귀한 이름도 아니기도 했다.

“그럼, 정리하는 동안이라도 이쪽에서 좀 쉬시지요.”

맥킨더가 마차 안으로 들어가길 권했다.

지금 주변은 고블린의 습격으로 엉망이라 어수선했다. 용병들은 그 와중에 피곤한지 그대로 드러누워 있었다.

고블린에게 다쳤는데도.

그걸 본 카엘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맥킨더 님, 콜트 님, 이럴 게 아니라 고블린에게 조금이라도 다친 분들은 치료해야 합니다.”

“치료요?”

맥킨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콜트도 괜찮다는 듯 말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녀석은 없어서 괜찮습니다.”

“그래도 한번 봐야 합니다. 고블린들은 자기들의 분변을 무기에 바르는데, 당장에 괜찮더라도 파상풍이나 패혈증으로 번질 위험이 있습니다.”

“음. 그렇습니까?”

“상처를 깨끗한 물로 씻어 내도록 하시고. 상처가 심하면 제가 한번 봐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콜트, 그렇게 하지.”

“알겠습니다.”

콜드는 부하들에게 가서 지시를 내렸다.

“자식들아, 그 무거운 엉덩이를 냉큼 떼서 움직여! 깨끗한 물 길어 오고.”

콜트의 호통에 용병들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엘도 약초를 빻아서 가루로 만드는 등 준비했다.

그사이 몇몇 용병이 열이 나서 앓아누웠다.

그걸 본 용병들은 언제 구시렁거렸다는 듯 앞다퉈서 봐 달라고 했다.

용병들의 진료를 다 보고 나니 콜트가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그대로 뒀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카엘 님, 별거 아니지만 도와주신 사례입니다.”

맥킨더까지 와서 감사의 의미로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받아 보니 제법 두둑했는데 안에 은화가 10닢이나 들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역시 의리 하나는 알아준다니까.’

카엘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머니를 잘 챙겼다.

“그러고 보니 카엘 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었습니까?”

“팔 게 있어서 루지에르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팔아서 여비로 쓰라며 티겔이 잡은 오거 가죽을 받았다.

따로 은화와 동화도 받았지만, 그것부터 처분하고 움직일 작정이었다.

“혹시 뭘 파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괜찮은 물건이면 제가 매입해 드려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원래 거래하던 곳이 있어서요.”

“아! 그런 거라면 의리를 지켜야죠.”

맥킨더는 예약된 물건이라 못 판다는 말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른 제안을 했다.

“대신 거기까지 같이 가시는 건 괜찮죠? 마침 저희도 루지에르로 가는 중이었거든요.”

“좋죠.”

카엘은 바로 승낙했다.

혼자 며칠 노숙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게다가 고블린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는 함께 다니는 게 더욱 안전하기도 했다.

“근데 클리페우스성으로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한참 돌아가야 할 텐데.”

“아, 제국 대사가 클리페우스성으로 향한다는 말에 피하려고 우회했습니다. 자칫 시비 걸릴까 무섭기도 하고요.”

‘하긴.’

비단 왕자뿐만이 아니라 왕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제국을 싫어했다.

좋아하는 건 제국에 빌붙은 귀족들 정도?

“그런데 고블린에게 습격당할 줄이야. 브리운 공작님이 몬스터를 다 막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다행히 콜트가 오해를 풀어 줬다.

“거긴 고블린은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주로 놀이나 오크 부대랑 싸우니까요. 게다가 드물긴 해도 고블린은 대륙 전역에 나타납니다.

“아, 그렇군.”

“근데 이곳의 고블린은 좀 다르긴 합니다. 오래전에 고블린 굴을 소탕하는 의뢰를 받고 상대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강하고 조직적이었습니다.”

‘조직적이라…….’

용병단이 고블린에게 밀렸던 게 단순히 야습에 당황해서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카엘 님, 혹시 짐작 가는 거라도 있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카엘은 그리 대답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회귀 전에 고블린에 대한 이야기가 달리 없던 걸 생각하면 조만간에 토벌될 거였기 때문이다.

* * *

이틀 뒤.

카엘은 맥킨더 상회와 함께 무사히 루지에르성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날 밤 이후로 고블린의 습격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카엘 님은 기존에 거래하던 공방이 있다고 하셨죠.”

“네. 물건만 건네주면 됩니다.”

오래전부터 거래하던 곳이라 흥정할 필요도 없었다.

오거 가죽을 가져다주고 돈만 받으면 됐다.

“저희는 기스카르 상회로 갑니다. 있다가 숙소에서 봅시다.”

“알겠습니다.”

맥킨더와 헤어진 카엘은 브로턴 공방을 찾아갔다.

오거 가죽을 가져왔다는 말에 왜 어린애를 보냈나 의아해할 뿐, 카엘의 정체를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형제들은 한 번쯤 이곳에 온 적이 있지만, 카엘은 그동안 아프다며 두문불출했으니 당연했다.

‘그나저나 이 시기에 고블린이 원래 출몰했었나?’

카엘은 판매 대금을 받아 챙기며 공방의 점원에게 슬쩍 물었다.

“여기 오는 길에 고블린에게 습격받았는데요. 최근 고블린이 많이 나오나요?”

“정말?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네. 안 그래도 요즘 고블린에게 습격당했다는 소리가 많이 들리더라. 숫자도 제법 된다더라고.”

“큰일이군요.”

고블린의 번식력은 놀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 소규모일 때 퇴치해 두지 않으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몬스터 대침공 때도 대륙으로 나온 고블린이 몇 년 사이에 어찌나 번식했는지 나중에는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더 불어나기 전에 토벌해야 하지 않을까요? 영주님은 아무 말이 없나요?”

“글렀어. 여기 영주는 토벌할 의지가 전혀 없더라고. 나중에 브리운 공작님한테 요청해서 쓸어 버리면 된다나? 정말 너무하지?”

그 말에 카엘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모았다.

클리페우스성은 오크와 놀을 막아 내는 것도 벅찬데, 후방에서 이렇게 고블린 사냥까지 떠넘긴 거였다.

브리운 공작가는 그 특성상 사병을 많이 가졌기에 국왕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따로 소영주를 거느리거나 가신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약간의 사례금만 받고 산적의 본거지를 공격하거나 고블린 따위를 토벌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력으로 힘들 때의 이야기지 이렇게 이용하다니.

‘이러니까, 몬스터 대침공 때도 전혀 도움이 안 됐지.’

카엘은 혀를 차면서도 내심 다짐했다.

‘몬스터 대침공 전에 이곳도 정리해 둘 필요가 있겠어.’

* * *

숙소로 돌아온 카엘이 쉬려는데, 콜트가 찾아왔다.

“고용주가 아직 안 돌아와서요. 키스카르 상회로 가 볼까 하는데 혹시 같이 갈 생각이 있으신가 해서요.”

“그러죠.”

맥킨더가 거래하는 모습이 궁금했던 카엘은 흔쾌히 승낙했다.

키스카르 상회로 가는 길에 콜트는 가져온 물건은 이미 다 팔았고, 다음에 매입할 물건을 맥킨더가 이것저것 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키스카르 상회에 도착하니 점원이 맥킨더에게 한창 약초를 영업 중이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귀한 시넨시스 약초입니다. 기운을 북돋아 주는 데 제일이죠.”

“오! 귀하다고? 이것도 주게.”

훈훈한 분위기로 거래가 이뤄지는 듯했지만, 거래하는 약초를 본 카엘은 혀를 찼다.

‘저런 평범한 약초를 귀하다고 하다니…….’

맥킨더는 그것도 모르고 좋다고 하니 큰일이었다.

뒤를 지키고 있는 용병들이나 콜트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게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건 어떠십니까? 맥킨더 님이니까 내 드리는 겁니다.”

“좋군요. 이것도 한 바구니 챙겨 주세요.”

이렇게 점원이 물건을 권할 때마다 맥킨더는 신나서 주문한다는 거였다.

사들이는 건 하나같이 흔한 약초뿐.

그게 아니면 고가의 약초와 비슷한 모양의, 겉보기만 그럴싸한 하급 약초들이었다.

심지어 색이 바래고 향도 희미한 게 관리도 제대로 안된 듯했다.

‘견본 상태가 저래서야 실제로 받을 약초의 상태는 안 봐도 빤하지.’

저러면 약효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심각하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렇게 좋은 물건을 잔뜩 살 수 있다니 운이 좋군요.”

그런데도 맥킨더는 좋다고 웃는다.

‘호구가 따로 없네. 안 되겠어.’

상단 간의 거래니 가능한 참견하지 않으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맥킨더가 손해 보는 건 둘째 치고 서라도, 저걸로 약을 지어 먹고 힘들어할 환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최소한 신중하게 매입하라고 주의라도 줘야지.

“잠깐만요, 맥킨더 님.”

“아! 카엘 님도 오셨습니까? 이거 제법 괜찮지 않습니까? 수도에 가져다 팔 생각인데.”

맥킨더가 거래하던 약초를 보이자 점원의 표정이 굳었다.

호구와의 거래 성사를 앞두고 있는데 재를 뿌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던 거였다.

그러다 카엘의 모습을 보고 눈에 띄게 안심했다.

‘뭐야, 아직 어린애잖아. 이 호구 상단주의 안목도 낮은데, 저런 어린 녀석이 약초에 대해 뭘 알겠어?’

‘이거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알려 줘야겠는걸.’

그 속내를 눈치챈 카엘은 곧바로 나섰다.

“제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별론데요?

그 말에 기스카르 상회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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