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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213화 (213/237)

# 213

공수전환

계획이 정해지고 3일 뒤.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식사를 하는 와중 갑자기 오르골이 끼릭, 하는 소리를 내며 멈췄다. 나는 태연하게 손을 뻗어서 다시 오르골을 작동시켰다. 노래가 다시 연주되자, 나와 서지현의 몸이 약간 굳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식사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고상한 느낌이네."

저 음악을 들으면서 밥을 먹으려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음식을 씹어 삼킨 다음 말했다.

"모래알 씹는 기분이에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와중,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그리고,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급하게 오르골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런 미친!"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뭔가 전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오르골을 멈춘다고 멈췄지만 그 잠깐 사이 녀석은 결국 오르골의 음악을 듣고 말았다.

"아... 으..."

그대로 딱딱하게 굳은 녀석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한다. 세상 끔찍한 물건이란 물건을 죄다 억지로 구경하다 정신줄을 놓아버린 것 같은 모습이다.

"아악, 으아아아아아아!"

나와 서지현은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발광하는 녀석의 사지를 눌렀다. 이 자식이 자해를 하려 들 거라는 사실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야, 누구 없어! 아무나 좀 와!"

그리고 갑자기 아침에 밥 먹다 말고 입에 게거품을 문 채 지랄발광을 하는 녀석을 억누르고 있던 우리는 가까스로 녀석의 사지를 묶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는데 성공했다.

"저기,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이시은이 당황한 표정으로 아직도 입에 재갈을 물고 읍읍거리며 악을 쓰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우리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문에 경고문 보여?"

내 말에 이시은이 문에 붙어있는 팻말을 확인했다.

[경고, 반드시 노크 할 것. 그냥 열고 들어왔을시 입게 될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음.]

이시은이 그 팻말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를 바라봤다.

"잠깐, 저거 진짜 저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어?"

지금 이시은의 질문으로 오히려 나도 물어보고 싶은게 생겼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내 말에 이시은이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뭐냐. 두 사람은 긴밀한 사이잖아? 실제로 김용천 씨나 우석진 씨가 경험한 일도 있고."

김용천과 우석진이 경험한 일이라. 나는 둘이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 뭘까 생각해보다가 이내 한 가지 대답에 이르렀다. 둘 다 나랑 서지현이 잠자리 가지는 와중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이 있지.

이시은의 대답을 들은 서지현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들킬까봐 걸어놨다고 생각한 거야?"

서지현의 말에 이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노크 했을 걸."

미치겠네. 저런 오해를 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한 번 오르골의 소리를 듯고 맛이 간 녀석이 침대에 묶인채 난동을 피우며 충혈된 눈알을 까뒤집고 입으로 읍읍하는 소리를 낸다. 이시은이 그 장면을 보며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거, 회복에는 얼마나 걸려?"

이시은의 말에 나는 음, 하는 소리를 냈다.

"들은 시간이 길지는 않으니까.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

설사 회복한다고 해도 최소한 오르골 소리에 대한 깊고 독한 트라우마 정도는 남을거라고 생각한다. 내 말에 이시은이 왼손을 들어 얼굴을 가린채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노래를 굳이 틀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

나는 그 말에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카피라와 싸움이라도 한 번 해보기 위해서는 저 정도는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이동 준비를 하는 동안 계속 저 오르골을 틀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저거 들으면서 심지어 밥까지 소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정신줄을 끊는데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저 노래를 들은 녀석도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눈깔을 파내려 들었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니, 장담하는데 그냥 방치했으면 벌써 자기 눈을 파냈으리라.

"저 꼴을 당한 사람이 생겼으니, 최소한 이후에 피해자는 발생하는 일이 없겠네. 다른 사람들도 모아놓고 분명히 교육을 해둘게."

이시은은 딱히 우리를 원망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야, 원망하는 것도 이상하지. 우리는 분명히 경고를 해두었으니까. 가볍게 받아들인 사람에게도 분명히 잘못이 있다. 그건 그렇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만한 점이 있는데.

"세상 누가 잠자리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저런 협박성 문구를 달아둬?"

내 말에 이시은이 대답했다.

"잘은 모르지만. 두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을걸."

이 녀석들에게 우리는 무슨 이미지로 어떻게 남아있는 걸까. 단체로 모여서 회식하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고기 한 점을 우리에게 주지 않고 자기가 집어 먹으면 소주병으로 머리통 까는 사람 같은 걸로 남아있는 거 아니야?

"기껏 다른 사람들 걱정해서 적어놨더니."

물론 우리는 남에게 무슨 일이 생기건 크게 신경쓰는 편이 아니다. 우리 앞가림 하는 것도 힘에 부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고문을 써붙여 놓은 건, 적응되지 않은 일반인이 저 오르골 소리를 들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고, 경험해 본 결과 그게 사람이 경험하지 않는 편이 무조건 좋을 정도로 끔찍하니까 특별시 신경을 써준거다.

근데, 나랑 서지현이 잠자리 가질 때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써붙여 놓은 경고문으로 받아들였다고? 세상 세상 살다보니 별 괴상한 오해도 다 받아보네.

"그나저나, 저 남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이 뭔지 알아?"

서지현은 이시은을 대충 안심시키고 나서 말을 이었다. 이시은이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서지현을 바라봤다.

"준비가 거의 끝났어. 내일 새벽 4시 30분 중으로 추려낸 병력과 물자가 지정된 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야."

그럼 우리도 개화동으로 향하게 된다는 소리다.

"우리 숙소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30m 정도 떨어진 곳에 마련될거야."

내 말에 이시은이 대답했다.

"알았어. 저 사람이 미친 이유와 관련있는거지?"

이시은의 말에 서지현이 픽 웃고 대답했다.

"아니,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야."

이시은이 서지현의 말에 으, 하는 소리를 냈다.

"농담 들어 줄 기분 아니야."

"그래? 진담이었는데."

서지현이 빙글거리며 놀리는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이시은이 잠깐 서지현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아, 내가 준 선물은 사용해 봤어? 반응이 어때?"

이시은이 서지현의 말을 듣고는 울컥한 표정으로 서지현을 바라봤다.

"맞아, 그 선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준 거야? 의도가 뭐였어?!"

서지현이 이시은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다.

"왜? 사람이 기껏 정성스럽게 준비한 건데. 윽박지르다니, 서운하게."

"그런 걸 보낸 의도가 수상하다는 뜻이야!"

이시은의 말에 서지현이 음, 하는 소리를 내고 대답했다.

"속옷이 뭐가 어때서."

서지현의 말에 이시은이 대답했다.

"그건, 속옷이 아니었잖아. 세상에 그런 속옷이 어디있어? 설마 그런 속옷 입고 다니는 거야?"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시은과 서지현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이상한 걸 선물한 모양이다. 이번 선물은 속옷이었던 모양이다. 이시은에게 준 걸 보면 절대로 정상적인 속옷은 아니었던게 확실하다. 격렬한 반응을 보면, 엄청 야한 속옷이었거나 뭐 불끄니 야광으로 번쩍거리는 속옷이었거나 한 모양이다.

"고맙다면서 넙죽 받아 갈 떄는 언제고."

서지현의 가벼운 핀잔에 이시은이 팍 하고 반응한다.

"내용물을 몰라서 그런거잖아. 애초에 내가 상자 안에 담겨있는게 그런 걸 줄 알았으면..."

한동안 뭐라뭐라 말하던 이시은이 결국은 제풀에 지쳐 서지현을 노려보다가 어후! 하는 소리를 내고 나갔다. 잠깐 문을 응시하던 나는 서지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저러다 애 울겠다."

내 말에 서지현이 픽 웃었다.

"울어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는 한 번 울려볼까."

가만히 보면 확실히 좀 꼬인 성격인 모양이다. 갓 태어난 조카가 너무 예뻐서 관심을 가지기는 했는데. 괜히 한 번 울려보겠다고 엉덩이 꼬집는 사람들 있잖아. 저 가학적 본능의 먹이가 내가 아니라는 점이 참 감사하네.

"그런 점에서는 이시은도 꼬였단 말이지."

저렇게 오면 놀림당하고 괴롭힘 당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서는 서지현에게 한 바탕 골탕을 먹은 다음 돌아간다. 마치 나름대로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장 지금만 해도 이시은이 오르골에 헤까닥 돌아버린 녀석을 발견했던 이유가 우리 방에 오고 있던 중이였기 때문이잖아. 마조히스트와 사디스트가 만나면 찰떡궁합이라고 하더니, 이게 그런 상황인걸까.

정말 싫다면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찾아오지 않는게 당연하잖아. 심지어, 선물을 줘도 거절하는게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시은도 확실히 자기가 서지현에게 골탕먹는 걸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오르골로 손을 뻗어 다시 멜로디가 흘러나오도록 했다. 밀려오는 압박감 속에서, 나와 서지현은 다시 일상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속옷을 준 거야?"

빨아놓은 옷을 개면서 물어보자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냥..."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내가 개놓은 빨래를 배낭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반창고였어요. 별거 아니죠?"

나는 빨래를 개던 손을 멈추고 허어 하는 소리를 내며 탄식했다. 세상에, 반창고를 속옷이랍시고 상자에 넣어서 준 건가. 그건 내 생각마저도 초월하는 선물인데. 아마 이시은도 서지현이 준 이상 정상적인 속옷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겠지만, 막상 떡 하니 상자에 놓여있는 반창고를 눈 앞에 두었을 때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한 장?"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한 장이라니, 제가 무슨 이시은을 변태로 보는 줄 알아요? 세 장 넣어줬어요. 사람이 정숙해아지."

세 장이라. 굳이 어디어디에 붙이는 건지는 서지현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한 장이나 세장이나, 둘 다 매한가지로 사람을 변태로 보이게 할 뿐 아니라, 정숙하지도 못한 속옷이다.

"그 정도면 이시은이 속옷이 아니라고 할 만 하네."

화를 낸 것도 이해가 간다. 상자 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눈에 선하다. 반창고를 바라보는 눈에 떠오른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데 몇 초나 걸렸을까. 내 말에 서지현이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경험담을 들어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나도 한 번 해볼까 했는데. 당신이 그렇게 반응하는 걸 봐서는 포기해야겠네요. 어쩔 수 없죠."

저런, 난 그럴줄도 모르고...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훌륭한 속옷이었어. 입지는 않았지만 아마 입었다면 분명히 김용천도 좋아했을거야. 바보같은 이시은. 그런 훌륭한 속옷을 마다하다니, 보는 눈이 없네."

내 말에 서지현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차 떠나고 손 흔들어봤자 이미 늦었어요."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엎드려서 멈춰달라고 빌면 가던 차도 불쌍해서 멈춰주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개놓은 옷을 서지현에게 넘겨주었다.

"궁금해요?"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얼굴에 써 붙어 있지 않아?"

내 말에 서지현이 희미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는 대답했다.

"언젠가는 한 번 입어볼게요."

"그 언제가 정확한 날짜로 변할 수는 없을까."

내 말에 서지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날이 정해지면 두근거림이 없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출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손꼽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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