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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208화 (208/237)

# 208

황동 요새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격벽이 우그러든다. 나는 손을 휙휙 털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더럽게 튼튼하네."

힘으로 치자면 나도 분명히 사람은 아니다. 발로 차서 자동차를 날려 건물에 때려박히게 할 정도의 힘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격벽은 비브라늄으로 만들기라도 한 건지 참 오래도 버틴다. 대충 3분을 쉬지 않고 두들겼더니, 이제서야 뜯어질 생각이 좀 드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발차기를 날리자 격벽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넘어갔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격벽 너머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던 기관총 포대와, 희안하게 생긴 이족보행 증기로봇들이 서 있었다. 격벽으로 틀어막아 놓은 사이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모양이다. 감동적이기도 해라. 정면에 서 있던 약 3m 정도 되는 깡통 로봇들이 증기를 푸슈슈 뿜어내며 손 대신 팔에 붙어있는 톱을 매섭게 돌리기 시작한다.

"뭐, 주스라도 만들 생각인가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푸화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를 뿜어내며 나를 향해 돌진하는 기계를 멍하니 바라보다 수확자를 꺼내들고 가장 앞에 있는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아니,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푸슝, 하는 소리와 함께 뒤편에 있던 녀석들이 회전하고 있던 톱날을 발사한다. 후발선타가 발동 한 건 좋지만, 이대로라면 이 녀석은 죽여도 날아온 톱날이 내 머리통을 싹 밀고 지나갈 기세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총소사.

"강해진게 아니라."

대가리가 좋아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까지 싸움에서는 그렇게까지 상대가 체계와 조합을 갖춰 우리를 상대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냥 히힉, 로켓 장전되었다. 쏜다! 히힉, 주포 조준 끝났다, 쏜다! 으헹, 적이 온다. 보고 쏜다! 같은 식의 단순무식하고 직관적인 행동만을 했다면...

지금은 일부러 톱날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전방에 배치된 톱날 깡통들의 돌진 전까지 기관총들이 사격을 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일제 사격을 하는 정도의 지능을 보여준다. 애초에, 격벽 너머에 병력을 대기시켜두는 것 자체도 이전까지 이 고철 덩어리들이 할 수 있는 생각이기는 했었는지 의문이다.

"중앙 관제탑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거지."

자기 인식형 해석기관이라.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강해진 상대와 머리가 좋아진 상대, 둘 중에 어떤 녀석이 더 까다로울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머리가 좋아진 쪽이 약간 더 까다로울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 누런 요새는 우리가 까다롭게 생각 할 만한 방식으로 강화되는데 성공했다.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톱날, 그리고 방금 전에 나에게 휘둘렀던 톱날이 나의 다리짝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어딜,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그대로 톱날을 회전시키는 팔을 손으로 집은 나는 그대로 내리 누르며 그 팔 위에 올라 탄 채, 녀석의 머리통에 수확자를 박아넣고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끼리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가리 속에 들어있던 톱니바퀴들이 박살난 채 바닥으로 떨어지고, 녀석이 동작을 멈춘다.

그 사이, 기총소사를 이어가던 기관총을 향해 서지현이 에노테르를 집어 던졌다. 콱 하고 기관총 중 하나에 박혀든 에노테르의 꽁무늬에서 폭발이 몇 번 일어났다.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에노테르가 더 깊숙하게 박혀들어 기관총을 무력화 시킨다.

잠깐 사이 깡통 기계 다섯 개와 기관총 세 대를 무력화 시킨 우리는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디를 통해서 이동해야 하는지는 대략적으로 짐작하고 있다.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

다음 격벽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 우리를 환영하는 건 조금 다른 구성을 가진 병력들이었다. 대부분이 원거리다. 서지현이 서 있는 녀석들 중 하나를 노리고 에노테르를 던지자 목표가 된 녀석에게서 목소리가 나왔다.

- 대응 시스템 가동.

녀석의 몸체를 노리고 날아가던 에노테르가, 깡통 로봇의 몸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궤도가 뒤틀려 이상한 곳에 박힌다.

"장난하지마."

반응 장갑 같은 거냐? 물론 원리야 많이 다르겠지만. 결국 자기 몸에 일부러 폭약을 심어놓고 있다가 공격이 날아오면 터뜨려서 막아낸다는 원리는 같다. 서지현도 어이가 나갔는지 잠깐 멍하니 바닥에 박힌 에노테르를 보다가 다시 폭발을 일으켜 자신의 손으로 회수한 다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건 어때."

배낭에서 K-2 소총을 꺼낸 서지현이 탄창을 장전하고 녀석들을 향해 마구 갈기기 시작했다. 날아간 총알이 녀석들의 몸체를 때리고, 몸에 심어져 있던 폭약들이 마구 터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녀석들의 몸에 설치되어 있던 폭약을 죄다 터뜨려 버린 서지현이 다시 낫을 집어 던졌다. 쾅, 하는 폭발과 함께 빠르게 회전하며 쏘아져 나간 낫이 이번에는 제대로 녀석들의 몸에 쑤셔 박힌다.

그리고, 덕분에 나도 폭약 터질 걱정 없이 녀석들을 요리 할 수 있었다.

"처리는 할 수 있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우리의 공격을 파악해서, 일부러 근접 공격을 해야 하는 녀석들을 제외하고, 서지현이 집어 던지는 에노테르에 대한 대항책까지 나름대로 생각해냈다. 이거, 시간을 오래 끌면 뭐 건담 같은 거 튀어나와서 빔 사벨 휘두르는거 아니야?

점점, 녀석들은 우리의 공격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우리를 대상으로 뭔가를 실험하는 것 같은 느낌 아니야?"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거리 공격 위주로 구성된 병력이 반응장갑 비슷한 걸 뒤집어 쓴 채 계속 나오다가, 갑자기 이번에는 장갑으로 떡칠한 강철 돼지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죠."

에노테르의 날이 제대로 박혀 들지 않을 정도로 지독하게 튼튼한 녀석들이었다. 수확자로도 제대로 된 손상을 입힐 수 없었기에, 이번에는 절혼의 효과에 의존해서 녀석들을 때려잡아야 했다. 마치,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처럼 무수한 무기와 다양한 방어 체계를 준비해서 우리를 상대했다. 심지어, 개 중에는 참령의 공격을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서, 타격을 입으면 그대로 타격받은 부위의 철판을 분리해 버리는 식의 기계도 있을 정도였다.

"아마, 중심부에는 지금까지 실험한 것들을 집대성한 최종병기가 자리잡고 있겠지."

그렇다고 교전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녀석들이 만들어낸 근거지에서, 녀석들이 모르는 우회로를 이제 막 여기에 도착한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마침내, 약 2시간에 다다른 전투 끝에 우리는 엄청나게 거대한 격벽 앞에 도착했다. 거대하다, 저 격벽이 세워진 구멍으로 5층 건물 서너 채 정도는 한번에 통과 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다.

"온도가 후끈해졌는데요. 거의 다 온 모양이에요."

서지현의 말대로, 슬슬 열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우리는 목표로 한 장소에 거의 다 접근한 모양이다. 나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목걸이를 접어 격벽 너머를 확인해보고 탄식했다.

"망할 새끼. 진짜로 건담을 만들었잖아."

정확히 말하면 건담은 아니다. 그렇게 미적으로 세련된 디자인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높이가 20m 정도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깡통 로보트다. 굳이 비유하자면... 모 게임에 나오는 블리츠크랭크가 가장 닮지 않았을까. 물론, 실제로 외양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나는걸 어떡해.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요새의 심장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저 거대한 깡통 로봇을 뚫어야 한다. 아마,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상대했던 로봇들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가 최대한 반영된 물건이겠지. 그리고 저 녀석을 떄려 부수는데 성공하고 나면 바로 도착하는 곳이 심장이다.

"다만, 저렇게 커다란 기계는 없었던 것 같은데."

지열을 퍼올려 동력으로 쓰는 장소에는 이전에는 없던 거대한 기계가 세워져 있었다. 크기로 치면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깡통 로봇은 비교도 안 될 만한 크기다. 거대한 공동 중에서, 지열을 퍼올리는 기계를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저 기계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따로 무장은 없고, 대신 그 숫자를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진공관이 배치되어 있다. 아마, 저게 그 잘나신 자기 인지형 해석기관인 모양이지.

"가자."

어찌 되었건, 격벽을 때려 부숴야 하는데... 갑자기 둔중한 소리와 함께 문 위쪽으로 증기가 팍팍 치솟으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 대상 확인. 격멸 프로토콜 개시.

그리고 그 너머에 서 있던 우리의 적 거대한 깡통 로봇께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머리통에 달려있는 두 눈에서 빛이 번쩍번쩍 빛나며 우리를 비춘다.

"덩치도 크고, 장갑도 두껍네."

어차피 참령 앞에서 덩치와 방어력은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이어진 싸움의 정보를 수집했으면 거기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방호책을 세워두었을거라 생각한다. 푸쉭, 하는 증기 소리와 함께 녀석의 등 뒤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어깨 위에 척 하고 올려진다. 딱 봐도 엄청 커다랗고, 저기에서 튀어나오는 포탄을 맞으면 사지가 멀쩡하기 힘들어 보이는 무식한 크기의 구경을 자랑하는 물건이다.

"미친 자식들."

어차피 우리가 여기까지 왔으면 요새가 다소 부서져도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인가.

- 요격기 발진.

녀석의 가슴통이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이전에도 봤던 그 풍선달린 영사기 30대 정도가 튀어나온다. 다만, 외양은 나름대로 업그레이드를 반복한 모양인지 우리가 이전까지 상대하던 영사기들과는 꽤 달느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풍선에 의존해 공중을 떠다니기는 하지만...

증기가 뿜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떠다니는 영사기들이 큼지막한 작살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끄트머리에 가느다란 철선이 달려 있다. 뭘 위해서일까.

내가 급하게 쏘아진 작살들을 피하기 시작하자, 작살의 뒤편에서 증기가 뿜어지며 궤도를 바꿔 다시 나를 노린다. 유선유도 로켓이라.

"TOW잖아."

아주, 별 걸 다 만드는구나. 나는 급하게 수확자를 휘둘러 몸을 노리고 날아오는 작살들을 쳐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깡통께서 그 전지전능한 주먹을 휘둘렀다.

"씨발."

이건 숫제 주먹이 아니라, 무슨 트럭이 나를 뺑소니치러 달려 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저거에 제대로 치이면 한 방에 이세계로 떠날 것 같은데. 나는 어금니를 꽉 물고 수확자를 들고 나를 뺑소니치러 오는 그 거대한 주먹감자를 향해 휘둘렀다. 온 몸의 뼈마디가 다 울릴 정도로 격렬한 충격이 몸을 타고 퍼진다음, 나를 향해 휘둘러진 주먹을 멈췄다. 수확자 이거 되게 튼튼하네.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슬쩍 수확자 너머의 주먹 상황을 바라봤다.

"아니, 임마!"

수확자 부러지는 걱정을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구나.

주먹의 프레임이 이중 구조였다. 나를 때린 건 바깥 쪽의 금속제 프레임이고, 그 뒤편에 위치한 프레임은 마치 주퇴복좌기라도 되는 것처럼, 뒤로 쭉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증기압을 뿜어내며 돌진하기 시작한다. 안쪽의 프레임이 폭주기관차처럼 증기를 뿜으며 고속으로 쇄도해 외부 프레임을 강하게 때렸다.

"커헉."

가까스로 주먹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나는 2차로 전달된 충격을 다시 한 번 몸으로 받아낸 채 뒤로 쭉 밀려났다. 나 이거 알아. 일본 만화책에서 본 적 있어. 이중극점이었나? 바닥을 한참 구르다가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구역질을 한 번 하고 입가를 훔쳤다. 눈 앞이 핑핑 도네. 슬쩍 서지현을 보니, 그녀도 사정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를 노리고 공격했던 작살 TOW를 발사하는 영사기들은 이제 서지현을 노리고 있었다.

당연히, 발사된 작살을 향해 폭발을 일으키는 걸로는 궤도를 바꿀 수 없다. 기가 막히게 증기를 뿜어내며 다시 궤도를 바로잡는 작살의 성능 때문에, 서지현도 방어를 포기하고 회피로 전환한 채 자신을 노리고 쏟아지는 작살들을 피하는 중이었다.

"너, 내가 열한대 때리고 나면 그 외부 프레임 분리할거지?"

기계는 대답이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분리하지 않을 거다. 아마 로켓 펀치 비슷하게 날려서 나를 공격하려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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