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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205화 (205/237)

# 205

황동 요새

요새의 위치와 형태는 특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내 설명을 들은 서지현이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겉에 번쩍거리는 금속은 분명히 그거겠죠."

황동을 닮은, 소위 미신이라는 기준에 부합할 만한 것들을 거부하는 힘을 가진 금속. 서지현이 그 요새의 외벽을 때려부수는 건 불가능 할 것이다. 효과가 굉장히 좋은 편이었으니까. 게다가, 금속이 무슨 파장 같은 걸 내뿜는 모양인지, 그 금속이 주변에 있으면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곤란해지는 모양이다.

하긴,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금속을 부술 수는 없어도 금속 안에 담긴 화약의 격발 같은 건 서지현이 막을 수 있었어야 했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다.

"어떻게든 뒷길을 찾아내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요새의 심장을 멈춰야 해."

대포들이 움직일 때도 마찬가지고, 주기적으로 요새에서는 막대한 압력의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요새의 구조물들이 동력으로 사용하는 증기를 뿜어내는 동력원이 있을 것이다. 그걸 무력화 시키면 요새 전체가 작동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요새의 파괴라고 불릴 만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성공하면 랜드 마크 클리어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그럼 안으로 들어갈 만한 방법을 찾아내는게 우선이겠네요. 외부에서 보급을 받는 통로가 있었나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 게다가, 이건 굳이 목걸이를 통해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는 사실이다.

"평택에 와서, 살아 숨쉬는 괴물을 만나 본 적 있어?"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평택을 돌아다니는 괴물들은 전부 기계다. 아마, 그 요새 안에 있는 괴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대신, 증기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괴물들이다. 보급을 따로 받을리가 없다.

"하지만, 연료는 필요 할 거 아니에요."

그래, 확실히 서지현의 말대로 물을 데워 만들어지는 증기를 동력원으로 쓰기 위해서는 물을 덥힐 동력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점은 목걸이를 통해 확인한 게 있다. 나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요새가, 땅 아래로 엄청 깊어. 그 지하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야. 그리고... 그 지하와 연결되어있는 관이 수백개 정도 있는데. 하나같이 엄청나게 뜨거웠어."

내 말에 서지현이 눈을 껌벅거리다가 대답했다.

"설마, 지열?"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몇 km 나 땅 아래를 파고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새에 동력을 공급하는 증기를 끓이기 위해서 녀석들이 사용하는 건 지하 깊은 곳 아래에 존재하는 뜨거운 열기다.

"그 정도 깊이를 파고 들어가는데 성공한다고 쳐도, 열기가 관을 타고 올라오다가 식지 않을까요? 제가 열역학 같은 건 잘 모른다고 해도, 상식이잖아요."

몇 km 단위로 긴 파이프를 통해 열을 전달한다면, 당연히 그 열은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차갑게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녀석들의 요새는 그 몇 km가 넘어가는 파이프가 끌어올린 열을 동력원으로 사용해, 멀쩡히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목걸이의 감각 초월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목걸이의 감각이 닿는 곳부터 요새 내부까지 연결된 파이프가 전달하는 열기는 전혀 변화가 없었어."

확인 할 수 있는 지하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요새까지 이어진 파이프 안의 온도는 한결같은 온도로 뜨거웠다. 물론, 서지현이 직접 확인했다면 온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겠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물 정도는 우습게 끓일 정도로 유의미한 온도를 고스란히 전달한다는게 문제지. 내 말에 서지현이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뭐 또 기가 막히게 대단한 합금 같은 걸 사용하는 모양이죠."

그렇겠지. 애초에 요새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미신들을 막아내는 물질도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금속이다. 그와 비슷하게, 최대한 열을 보존 할 수 있는 종류의 합금을 사용한다고 해도 딱히 놀라울 일은 아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평택에 머무르는 괴물들의 컨셉은 증기 기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초고도 기계문명 같은 느낌이니까.

"그럼 연료 보급로도 없다는 거네요."

보급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완전 자동화 요새.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건 그런 물건이다.

"결국, 요새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증기배출구를 통해 들어가는게 최선인 것 같은데."

그 뭐냐, 루크 스카이워커가 데스스타 조질 때랑 비슷하게 말이지. 내 말에 서지현이 어우, 하는 소리를 냈다.

"우리가 증기 배출구 쪽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저 요새가 증기를 배출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죠?"

그럼, 알다마다. 그대로 증기로 푹 익힌 야들야들한 수육이 되겠지. 게다가 증기를 배출하는 주기를 생각해보면, 사실 뛰어들었다가 솟구치는 증기에 휩싸여 익어버릴 확률이 굉장히 높다. 물론, 원래는 서지현이 있기 떄문에 열로 인한 피해는 생각할 필요가 없겠지만.

"게다가, 그 금속 때문에 안에 들어가면 저는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텐데... 솟구치는 증기라고 하면 열을 통제할 자신이 없어요."

서지현이 열을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은 두 가지다. 엄청난 고열, 또는 엄청나게 날뛰는 대기. 그래서 수원에서도 열사폭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열을 통제하기 힘들어했다. 하물며 고압으로 뿜어지는 증기라고 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다른 방법 있어?"

있다면 말해줘. 나로서는 이런 방법 말고는 도저히 생각나는게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내 말에 서지현이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미친 척 하고 저 수백 정이 넘어가는 기관총과 수십 문이 넘어가는 대포가 지키는 정문을 때려부수고 들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잠깐 고민하던 서지현이 이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하늘을 떠다니는 영사기들 기억해요?"

당연히 기억하지. 뭐 엄청 옛날 일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몇 분 전 이야기잖아.

"녀석들, 방향을 바꿀 때 고압의 증기를 뿜어내서 그 힘으로 이동했죠. 그리고, 그 증기는 굉장히 뜨거웠던 걸로 기억해요."

그야 증기니까. 차가운 증기가 세상에 어디있어. 근데, 그 크지 않은 사이즈의 영사기가 도대체 어떻게 물을 끓여서 증기를 만들어 내는 거지. 나는 서지현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영사기를 뜯어내서 살펴볼까."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쩌면 지열을 끌어올리는 파이프에 사용되었던 금속과 같은 재질의 금속을 발견 할 수 있을거에요."

그렇게 작은 영사기가 증기를 데우기 위해서는 결국 외부의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열을 최대한 보존 할 수 있는 금속이 필요하다. 지열을 끌어올리는 파이프와 비슷한 재질이겠지.

"그 금속을 뜯어내서 충분한 양을 확보해 사람 둘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통을 만드는데 성공하면."

증기의 배출 여부와는 상관없이 증기 배출구를 통로로 이용 할 수 있게 된다.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부의 열을 보존한다는 뜻은, 반대로도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 외부가 아무리 뜨거워도, 금속으로 만든 통 안의 내부는 이전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다치지 않고 증기 배출구로 진입 할 수 있다.

"그래, 이제야 좀 계획이라고 불릴 만한 형태가 되었네."

병원에서 나와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영사기들을 죄다 잡아서 족친 다음, 그 안에서 열을 보존하는 금속을 뜯어낸다. 빈 드럼통의 무게가 한 20kg 정도 나갔었나. 그럼 20kg 정도만 확보하는데 성공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가공인데.

"열로 가공 할 수 있을까?"

지열을 퍼올리는 파이프도 우리가 확보하기로 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을거다. 아마, 녹는 점이 상당히 높을텐데. 일단 샘플을 하나 뜯어내서 가져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곧바로 병원을 나와 바로 보이는 영사기 하나를 최대한 손상 없이 해치우고, 그 금속 잔해를 가져왔다.

"자."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잔해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서지현이 주먹만한 은청색의 구체 하나를 찾아냈다. 은청색의 구체는 만약의 화재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차가운 냉각수가 가득 차 있는 상자 안에 담겨 잇었다. 이러니 박살내도 용암이 흐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구체가 박살나도 급속으로 식어버렸을테니.

"이거 같은데."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한 번 갈라봐 주세요."

수확자를 꺼내 힘껏 휘두르자 꽤나 단단한 느낌의 저항과 함께 은청색의 구체가 반으로 잘렸다, 그 안에서 시뻘건 용암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한 1000도 정도는 버티는 모양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용암이라니. 이걸로 물을 끓여, 그 증기로 방향을 전환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 서지현이 과연, 이 금속을 녹일 수 있을까. 서지현이 내 표정을 보다가 픽 웃었다.

"이거 왜 이래요. 저 건물 한 채도 통째로 녹여서 액체로 바꿔버린 여자에요. 마력만 통한다면 저런 고철 요새 따위는 정면에 큼지막하게 구멍도 뚫어버릴 자신이 있어요."

맞아, 최현우를 제거할 때 그랬던 기억이 있다. 서지현은 반으로 잘려진 구체를 노려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속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리고 마침내 은백색의 구체는 시뻘겋게 빛을 뿌리다못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다행이네요, 마력이 통해요."

그리고, 마침내 도출된 결과는 점성을 띈 채 주르르 흘러내리는 살벌하게 뜨거워보이는 쇳물이었다.

"몇 도야?"

내 말에 서지현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5800도에요."

지독하네. 그 정도면 제트엔진 같은 거에 들어가는 합금이나 세라믹 같은 것 보다 몇 배는 더 내열성이 뛰어난 거 아니야? 21세기의 신소재과학이 고작 증기기관이나 돌리는 고철덩이들에게 밀리다니. 저 미친놈들, 이런 금속을 만들 능력이 있다면 차라리 핵융합 발전 같은 걸 하란 말이야. 병신같이 물 끓여서 증기로 기계 돌리지 말고.

"어쨌든, 녹일 수 있어서 다행이네."

어차피 대단한 주물을 하자는게 아니다. 그냥 녹여서 통 모양으로 굳히는데 성공하면 된다. 서지현이 녹아내린 금속을 바라보다가 손을 휙 저었다. 금속이 순식간에 다시 식으면서 시뻘건 용암의 형태에서 다시 청백색의 금속으로 돌아간다. 서지현이 그걸 다시 녹여보기 시작한다.

"한 번 녹였다가 다시 굳히면 내열성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네요. 그래도 여전히 굉장한 수준이에요."

"증기 정도는 견디겠지?"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 대신 엄지를 올렸다.

"떨어지는 충격에 깨지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자를 때 감촉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튼튼해. 적절한 두께만 유지하면 떨어졌다고 박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좋아요. 그럼 이 금속으로 근사한 통돌이 한 번 만들어 보죠."

계획은 세웠다. 어차피 통 모양으로 빚어낸 금속은 배낭 안에 넣어갈 것이다.

"통 안은 최대한 밀폐해야 할 테니, 호흡에 쓸 공기도 필요하겠네요."

그건 안동에서 했던 일을 반복하면 된다. 비닐에 공기 담아서 배낭 안에 넣으면 되겠지. 게다가 이번에는 증기 배출구로 떨어지는 잠깐 동안 쓸 공기가 필요한거니, 이전처럼 가방을 통째로 비울 필요도 없다.

"좋아, 그럼 부지런히 그 영사기들을 때려잡아 안에 숨어있는 청백색 금속을 뜯어내자고."

영사기에서 금속을 뜯어내 통 모양으로 만들고, 그 통과 호흡에 필요한 공기를 챙겨서 요새의 증기배출구까지 들키지 않고 접근한다. 그리고 통 안에 들어가서, 그대로 증기 배출구 쪽으로 떨어지며 무사하길 기도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야 그 방법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른 방법을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이 없다.

"증기가 배출되면서, 떨어지던 통이 다시 쑥 하고 솟아오를 수도 있어요."

그걸 막기 위해서는 증기가 밀어내는 힘을 이겨낼 만한 무게추도 필요하다. 그건 증기로 인해 달궈져도 상관없으니, 그냥 통 아래에 묵직하게 금속 덩어리를 달아놓는 걸로 충분할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계획을 다듬은 우리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크게 하품을 한 번 했다.

"금속 수집은 내일 일찍 일어나서 하자."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안 쉬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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