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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84화 (184/237)

# 184

혹한기

사냥이 끝나고, 서지현이 다시 후끈하게 달궈놓았던 주변의 온도를 유지하지 않기 시작하자, 언제 따뜻했던 적이 있기는 하냐는 식으로 사방이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다. 당연히, 방금 전에 죽은 괴물들의 시체도 영하 35도의 온도 아래에서 꽝꽝 얼어가기 시작한다.

[미션 클리어]

"가자."

문자를 확인한 나는 서지현과 함께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1300pt라.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이렇게 틈틈히 발견되는 미션들은 어지간해서는 랜드 클리어를 하기 전에 받아서 처리해두는 편이 좋다. 랜드 클리어가 끝나고 나면 몇 개나 남아있을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보이는 미션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다 조지다보면 최종적으로는 랜드 클리어로 가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안동에서 경험해 봤다. 레스토랑 미션을 클리어하자 살점공예가를 처리할 방법이 생겼지.

"사실, 필요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랜드 클리어라고 한다면 이제 나름대로 전문가가 되었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레벨과 장비, 경험을 생각해보면 굳이 랜드 클리어에 필요한 아이템을 모으지 않아도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 장비와 육체를 가지고 안동에 뚝 떨어진다면,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 살점 덩어리들을 싹 쓸어내면서 곧바로 살점 공예가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에 도착하고, 녀석을 조질 자신이 있을 정도니까.

"아니에요, 의외로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래? 고견을 들어보고 싶은데."

내 말에 서지현이 가볍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파주는 춥죠?"

무슨 질문이 그 따위야. 뭐라도 대답을 해줘야 할 지도 모르겠네.

"설마 지금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거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각으로 알고 있는데. 빨리 뺨이라도 때려서 정신차리게 해줘야 하나. 스키파카에 달라붙어있는 털 투성이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서지현이 대답했다.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추측일 뿐이지만. 이런 환경을 만들어내는 랜드 마크라면 클리어를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불이겠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에요."

글쎄다.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데. 내 표정을 보던 서지현이 어휴, 하는 소리를 내고는 양 팔로 자기 허리를 짚는다.

"만약에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불을 만들어내고, 유지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장비라고 한다면 유용해요. 제가 사용하는 공격은 화염을 만들어내고 그걸 통제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거든요?"

서지현의 말을 듣고 있던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밟아야 하는 절차가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든다는 거군."

서지현이 스스로 화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공격 할 수 있을 거다.

"약간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이긴 한데. 파주의 랜드 클리어를 위해서 찾아내야 하는 장비가 네가 생각하고 있는 종류의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고."

서지현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제 예상이 맞다면 큰 도움이 될 거에요. 필요한 수준의 화염을 만들어내는데 들어가는 마력이, 통제하는데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많거든요. 물론, 큰 규모의 화염을 일으키고 싶다면 여전히 마력을 동원해서 화염을 만들어내야겠지만."

소규모 교전에서 서지현이 소모하는 마력의 양은 확연히 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럼, 이번에는 정석대로 진행하기로 하자."

랜드 마크를 찾아내자마자 작살내는게 아니라, 착실하게 그 중간과정으로 안배되어 있을 녀석을 잡는게 우선이다. 물론, 서지현이 원하는 종류의 장비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랜드 클리어에 도움을 주는 장비라는 건 매한가지다.

거기에 더해서, 어차피 랜드 클리어를 하려고 들면 또 그 망할 놈의 장미 향기와 함께 카피라가 어깃장을 놓을테니. 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운정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정호수공원 남서쪽의 널찍한 8차선 교차로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을 한 번 살펴봤다.

"저 정도 높이면 어떨까요?"

서지현이 가리킨 건 교차로와 거의 맞닿아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높이도 적당해 보인다.

"그럼, 다녀올게."

말을 마친 나는 곧장 아파트를 기어올랐다.

"이런 씨, 높은 곳에 올라오니 더 춥네."

나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아파트 꼭대기에 올라가니 바람이 지독하게 매섭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목걸이의 모서리를 접은 채 주변을 살펴봤다.

"저건 뭐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채로, 나는 멍하니 한쪽을 바라봤다. 시야에 잡히는 건 아파트지만, 어차피 네 가지 감각을 닫아놓은 상태의 시각은 더 이상 시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의 눈은 멀쩡히 서 있는 다른 아파트를 꿰뚫고, 그 너머를 확인하고 있었다.

"꽤 크잖아."

얼마나 큰지 여기에서 대충 봐도 8km 는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건 보이지 않지만, 저 뜨거움 만큼은 이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다른 곳은 죄다 영하 35도를 자랑하는 맹추위를 자랑하는데, 저기만 혼자서 어마어마한 뜨거움을 자랑하고 있기에 그런 건 아닐까.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 고층 빌딩이 떡 하니 서 있으면 멀리에서도 잘 보이는 법이잖아. 뿜어져 나오는 열기의 원인은 그렇게 크지 않은 모양인지 시야에 잡히지 않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뿜어내는 열기는 눈에 잡힐 듯 선명하다.

"열기라."

마침맞게 3분의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아파트에서 곧장 뛰어내렸다. 싸아아아, 하는 느낌과 함께 안면 마스크를 뚫고 밀려들어오는 냉기. 그리고 내 몸이 땅바닥에 닿으며 쿵, 하는 소리를 냈다.

"뭔가, 보이는게 있어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이 방향으로 8km 정도 거리에, 뭐가 있어?"

내 말에 서지현이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봤는데,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너무 멀어서 다른 건 보이지 않았어. 시야에 잡힌 건 딱 한 가지야."

대답을 들은 서지현이 지도를 꺼내들고 거리를 잰 다음에 하하, 하고 웃었다.

"탄현이네요. 그리고 말씀하신 위치는 아무리 봐도... 영어마을로 보이는데요?"

파주영어마을?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나는 영어 공부를 밤에 해서 낮에는 영어 할 줄 모르는데."

"그건 또 신박한 논리네요."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머리에 뒤집어 쓴 털모자를 다시 한 번 여몄다.

"그나저나, 도대체 뭘 본 거에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열."

내 말에 서지현이 히죽 웃으며 내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턱을 약간 들어올리며 자랑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봐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그 태도를 보고 있던 나는 쯔, 하는 소리를 내고는 대답했다.

"거기에서 얻는 장비, 엄청 뜨거워서 다른 장비는 착용하지 못하는 식이었으면 좋겠네."

내 말에 서지현이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 대답했다.

"멋대로 생각하세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나도 알아.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였어. 일단, 목적한 소기의 성과는 달성 한 것 같다. 저게 랜드 마크 제거를 위해서 꼭 필요한 장비가 아닐 가능성은 낮다.

"바로 출발할까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러다 얼어 죽겠어."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그래요."

육체가 튼튼해진 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만큼 체온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격렬한 운동을 해야 한다. 그냥 두툼하게 입고 걸어다니고, 별 것도 아닌 유사 북극여우 모가지 꺾는 정도로는 땀이 나지 않는다. 다른 말로는 체온이 올라가지 않는다. 사실 우리에게 그 정도는 그냥 서 있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노동이었다.

물론, 서지현이 마력을 사용해서 온도를 높여 준다면야 다시 몸을 녹이고 움직일 수 있겠지만.

"어차피 탄현이라고 하면 금촌에 들렀다가 갈 수 있잖아."

운정에서 탄현으로 가는 길은 금촌을 거쳐 가는 경로도 있다. 그럼, 굳이 추위를 견디는데 서지현의 마력을 낭비하지 말고, 금촌에 잠깐 들러서 몸을 녹이고, 식사를 한 다음 탄현으로 가도 괜찮을거다.

"그럼, 금촌에 들러서 몸을 좀 녹이고 가죠."

우리는 그렇게 경로를 잡고 금촌으로 향하는 걸음을 서둘렀다.

"굉장히 어수선해 보이는데요."

지금이 몇 시였더라. 대충 오후 3시 정도 되어보이는데.

"뭐, 한창 바쁠 시간이잖아. 어수산 할 만도 하지."

서지현의 의문에 간단하게 대답하면서, 우리는 위병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두 분."

근무를 서고 있던 여자가 우리를 알아봤다. 민혁이 아마 따로 전파를 해둔 모양이다.

"민혁 소령은?"

성과가 있었으니, 보고를 해줘야겠지. 이야기를 들으면 그 친구도 한 시름 놓을거다.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지금, 군인들과 함께 야동동 쪽으로 긴급 출동했습니다."

야동동?

"거긴 뭐하러 간 거지."

"야동동 일대에서 땔감으로 쓸 목재를 채취하던 사람 몇 명이 갈라져 있는 땅 사이로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병들과 함께."

나는 그 말에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갈라진 땅이라. 눈이 있으면 보고 피할텐데. 하긴, 날씨가 이 모양이라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몇 명이나 간 거야?"

내 물음에 녀석이 대답했다.

"병사 열 셋, 부사관 둘, 장교 하나입니다."

그럼 장교로 나간게 민혁 소령인 모양이네.

"어쩔까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뭐, 이런 소소한 빚은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몸 녹이는 건 조금 뒤로 미뤄야겠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경계를 서는 여성에게 되물었다.

"정확한 위치를 말해 주세요. 저희도 도우러 갈 테니."

서지현의 말에 여자가 잠깐 메모를 확인한 다음에 우리에게 곧장 위치를 알려주었다. 장소를 알아낸 우리는 주둔지로 들어가는 대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서둘러야겠지?"

"여기에서 그렇게 먼 장소도 아니에요. 게다가 가게 된다면 어차피 구조는 당신이 혼자서 해도 충분할테고."

곧바로 몸이 후끈하게 덥혀진다. 천천히 얼어붙어가는 느낌이던 발가락과 손가락에 다시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후끈하게 덥히고, 가 볼까요."

우리는 현재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위병소의 여자가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근데 아저씨는 왜 벗고 계시는 걸까. 팬티 하나 입고 호령을 하고 있는 민혁 소령의 모습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시선을 돌려보니, 입술이 파랗게 변한 채 덜덜 떨고 있는 어린아이 두 명이 보인다. 아이들의 몸 위를 덮고 있는 군복의 어꺠 위 약장을 보니, 민혁 소령이 벗어 준 모양이다.

"밧줄이 더 필요하다. 빨리 누가 가서 가져와!"

갈라져 있는 땅이라.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크레바스라고 하던가. 어쨌든 사람들이 저 틈새 사이로 빠진 이유를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저 크레바스 위를 눈 같은게 살짝 덮고 있었던 모양이다. 크레바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민혁 소령의 외침에 병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향해 배낭에서 로프를 꺼내 건네주었다.

"자, 로프."

필요한 물건을 예상하지 못한 빠른 시간 안에 받은 민혁 소령이 곧바로 로프를 받으면서 말했다.

"좋았어."

도와주려고 왔지만, 딱히 도와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은 신속하게 처리되는 중이었다. 서지현이 팬티 바람의 민혁 소령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주변의 온도를 올렸다. 주변이 따뜻해지자, 민혁 소령이 말했다.

"아직 괜찮으니, 구조한 사람들부터."

"저기 눈 녹고 있는거 안 보이나요?"

서지현의 말에 민혁 소령이 슬쩍 구조된 민간인들 쪽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다소 명령조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소령이면 군생활을 꽤 오래 했다는 거잖아. 상황이 급박할 때 명령조로 말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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