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70화 (170/237)

# 170

결투

남산의 순찰 이후 약 일주일 동안, 우리의 일과는 단순했다.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를 돌아다닌다. 도시가 최현우와 붙어먹었다는 증거를 발견하면, 그 길로 지부장 사냥을 시작한다. 증거를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최현우의 지배 아래에 있는 위성도시는 목걸이를 발동시키고 조금만 돌아다니면 도시 곳곳에 심어져 있는 고치들을 발견 할 수 있었으니까.

"젠장, 네 녀석들!"

지금 우리 앞에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발악하는 녀석은 의정부 시의 지부장 되시는 친구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모양이다. 무기도 좋고, 레벨도 적당히 높은 편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건 마력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 살다보면 자기가 잡고 있던 줄이 썩은 동아줄인 경우는 꽤 흔하잖아요."

그렇기에,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당당하게 선 채로 우리를 향해 쏟아넣었던 마법들은 그대로 서지현의 통제 하에 떨어져, 그를 공격했다. 마력을 통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녀석은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만한 실력이 없었다.

잠깐 사이에 다시금 푸른 색으로 빛나는 화살 한 무더기를 만들어내 우리를 향해 날려보내지만, 서지현이 살짝 한 손을 들어올리자 날아오던 화살들이 그대로 허공에 멈추고,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며 시끄러운 충격음을 낸다.

"괴물같은 년!"

서지현이 웃었다.

"아, 그건 칭찬으로 들을게요. 고마워요. 당신도 제법 잘 싸웠어요."

그 대사를 끝으로 서지현이 에노테르를 휘둘렀고, 녀석은 경악하는 표정 그대로 에노테르의 칼날을 목으로 받았다. 머리통이 바닥을 구르고, 머리가 없어진 목에서 피가 솟구친다.

"이걸로 두 번째인가?"

"네, 맞아요."

최현우가 남산에 처박혀서 몸을 뜯어 고치는 동안 우리는 방금 전에 처리한 의정부의 지부장과, 고양시의 지부장을 처리했다. 그 이외에도 주변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던전이라는 던전은 죄다 쓸어버린 덕분에 풍족하지는 않지만 4500-5000 사이의 포인트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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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 65

육체 : 85+27  체력 : 85+27

정신 : 50+35  마력 : 3+102

감각 : 140+41  기교 : 40+14

카테고리 : 반사신경 5단계, 마력 3단계

스킬 : 반사신경 카테고리(8), 전투 마법 카테고리(4)

수행 가능한 미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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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가 강해지는 동안 보냈던 시간은 나름대로 알찼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부지런히 발견된 장소를 쓸어내며 포인트와 경험치를 끌어모으는 동안 성남시에서는 생존자들의 분류를 끝낸 다음, 싸움에 참가시키기 어려운 사람들은 죄다 이천으로 보내고, 머무르고 있는 장소의 방어 강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우리는 성남으로 돌아갔다.

"일단, 남은 건 남양주와 인천 뿐이네요."

아직 잡아먹을 지부장은 둘이나 남아있으니까.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최현우가 움직이려 들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은 아직 남아있다. 성남으로 돌아가자, 저 멀리에서 우석진이 달려온다.

"뭐야."

내 말에 우석진이 대답했다.

"인천 쪽에서 움직임을 발견했어. 괴물들을 끌어모으는 중이더군. 움직임을 보면, 이르면 내일 새벽, 늦어도 오후에는 서울에 도착 할 거야."

이전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다는 건.

"시간이 된 모양이네."

최현우가 남산을 나서게 되었을 때, 녀석에게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도록 만드는게 목표였지만 일이 그렇게 잘 돌아가주지는 않았다.

"남양주도?"

"그래, 남양주도. 이미 방어를 준비 중이네."

이번에는 우리가 서울로 가는게 아니다. 최현우가 여기로 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만큼은 더 이상 최현우와 나 사이의 싸움에 기어드는 잡것들은 없겠지.

"알았어. 근처로 접근하게 되면 말해. 알고 있겠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우리는 최현우 말고 다른 녀석들에게는 신경 쓸 겨를이 없을거야."

몸을 뜯어 고쳐가면서 강해진 최현우를 상대하게 된다면 다른 녀석들이 무슨 꼴을 당하더라도 최현우에게만 집중해야 할 거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를 잡아 족치려고 이를 갈고 있을테니까.

"최현우만 붙잡아줘. 나머지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테니."

내일이라. 나는 잠깐 주먹을 폈다가 꽉 준 다음에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못 도망간다. 아니, 도망가게 둘 수 없지."

이번에 끝내야 한다. 최현우가 죽고 난 다음에도 할 일은 많다.

게다가, 벌써 두 번이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그 최현우를 두 번이나 놓아보내야했다. 제갈량은 맹획을 일곱번 잡아 일곱번 놓아줬다고 하지만 그건 제갈량이고, 나에게 세 번째는 없다. 서지현이 유자차를 데워서 나에게 건네주고 옆에 앉았다.

"그 녀석이 도망친다면, 이번만큼은 끝까지 추격해서 명줄을 끊을거야."

내 말에 서지현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야죠, 그럴 가치가 없는 녀석을 너무 많이 놓아줬어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와 서지현은 손에 들고 있던 유자차를 마저 끝냈다. 벌써 몇 년이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다. 나와 서지현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옹알이도 못하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될 정도로 긴 시간이다.

"이젠, 끝을 보자고."

나는 옥상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너진 도시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처참하다. 수많은 생각이 쉬지 않고 떠올라, 서로 뒤엉키고 풀어진다. 누나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 처음으로 복수를 성공한 순간. 그 이후로 이어졌던 살인. 교도소에서 보냈던 시간까지. 그 시간의 흐름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왔던 지독한 집착까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와중 시선을 옆으로 던지자, 서지현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보인다.

"피곤할텐데, 들어가서 자."

내 말에 서지현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나를 보다가 눈가를 비볐다.

"당신은?"

"잠이 잘 안 오네."

내 말에 서지현이 내 얼굴을 보다가 뺨에 키스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푹 자둬."

서지현이 마련된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건물 난간에 걸터 앉아서 멍하니, 계속 시간을 흘려보냈다. 느낌만이라면, 여태동안 보내왔던 세월보다 지금 이 순간 흘려보내는 이 밤이 더 긴 것 같았다. 어슴푸레한 새벽이 지나고, 저 멀리에서 동이 터온다.

"그래, 오는구나."

밖을 바라보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난간에 걸터 앉은 몸을 아래로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추락해 대지를 때린다. 쿵, 하는 진동음. 이걸로도 깨어난 사람들이 꽤 있겠지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생존자를 향해 말했다.

"가서 사람들 다 깨워. 오고 있다."

"알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외치고 달려가며 사람들에게 외치고, 대충 만들어낸 종을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가, 건물의 옥상 위에서 녀석들이 다가오는 곳을 바라봤다.

"계속 여기 있었던 거에요?"

잠에서 일어나 준비를 마친 서지현이 나를 확인하고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보니까."

서지현이 내 말에 픽 웃고는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혹시, 어릴 적 수능 볼 때도 이랬어요?"

그런 거랑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서지현이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두들기기 시작한다.

"싸우다가 졸지 마세요."

설마 싸우다가 졸겠냐.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자 서지현도 마주 웃은 다음에 잔 하나를 건내주었다.

"믹스 커피?"

근데 왜 이렇게 진하지. 서지현이 내 표정을 보고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 잔에 믹스 네 개를 넣었어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하하, 하고 웃은 다음에 커피를 바라봤다. 이거 마시면 위장에 빵꾸 날 것 같은데. 한 모금 마신 나는 그 지독한 단맛에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 말했다.

"기왕에 독살을 하고 싶었다면 확실하게 다섯 개를 넣지 그랬어."

다섯 개 넣었으면 확실히 죽었을텐데.

"한 잔에 네 개가 한계더라고요. 그 이상은 녹지 않아요."

우리가 옥상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주변에 머무르고 있던 생존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여 지정된 장소에서 무기를 들고 대기한다.

"아, 이제 나도 보인다. 저기, 뭐가 잔뜩 꾸물거리네요."

한 손을 들어 눈가를 가리고 있던 서지현이 마침내 다가오는 괴물들을 발견한 모양이다. 서지현이 다가오는 녀석들을 인지 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나는 녀석들의 대략적인 모습까지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녀석에게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나는 어렵지 않게 최현우의 모습을 잡아 낼 수 있었다.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고, 몸에는 후드가 달린 망토를 뒤집어 쓴 모습이다.

"가면은 뭐 하러 쓰고 있는거지."

"드디어 자기 상판이 변태처럼 생겼다는 걸 자각한게 아닐까요."

마침내, 다른 사람들도 성남으로 접근하는 최현우와 그 일당들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녀석들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최현우가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 항복해도 늦었다. 이 지구 어디에 있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녀석들은 단 한 녀석도 살려두지 않겠다. 너희 중, 살아나가는 자는 없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가 지금 찾아왔으니, 너희는 두려움에 떨며 그 최후를 기다려라.

녀석의 외침은 마력을 품고, 크게 울려퍼진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지현이 한 마디 한다.

"뭐, 혹시 전할 말 있으면 전해드릴까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저 녀석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짜증나 미치겠는데, 대화까지 나누라고?

"필요 없어."

어차피 뒤질 녀석과 대화를 뭐하러 해. 저건 시체가 걸어다니는 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겠다. 최현우가, 자신을 따르는 온갖 괴물, 그리고 자기 편에 붙어먹은 졸개들과 함께 우리가 있는 곳으로 밀려오기 시작한다.

김용천이 사람들을 격려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최현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우리를 노리고 쏟아지는 화살과 마법. 날아오는 화살은 내가 막아내고, 우리를 노리고 쏟아지는 마법은 서지현이 통제권을 빼앗아 다시 녀석들을 향해 쏟아낸다.

"네 놈."

최현우가 눈에 들어온다. 휘두른 수확자가 녀석의 팔에 막힌다. 뭐야, 무기는 안 쓰는 거냐.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팔에다가 뭘 박아넣은 건지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칼날을 살덩이로 막아낸 주제에, 칼날이 닿은 부분에서 날카롭게 끼긱, 하는 소리가 난다.

"오랜만이다, 뒤져."

- 유언 잘 들었다.

지랄하고 있네. 새끼 이거 성대도 갈아 끼운거냐. 목소리가 왜 이래.

나는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아 침을 묻히며 뒤로 살짝 빠졌다. 바닥에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진다. 서지현의 작품이다. 그리고 최현우의 발 아래에서 강렬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는다.

"놀고 있었던 건 아닌 모양이네요."

서지현의 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녀석이 잠깐 비틀거린 다음에 다시 자세를 바로잡는다. 녀석이 나와 서지현을 바라보다가 얼굴에 뒤집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사람의 얼굴을 구성하는 건 당연히 눈 코, 귀, 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렇게 막 붙어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잖아.

"뭔데 저건, 성형수술 실패 부작용 같은 건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왼쪽 귀가 붙어있어야 하는 장소에 입이 붙어있고, 코가 턱에 붙어있다. 눈알 하나는 뺨에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이마에 붙어있다. 최현우의 얼굴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얼굴 여기 저기에 돋아나 있는 종기가 퍽퍽 터지며, 역겨운 색깔의 고름을 줄줄 쏟아낸다.

이상한 곳에 붙어있는 녀석의 두 눈이 나를 노려본다.

- 닥쳐라. 네 년놈들을 잡기 위해서 모든 걸 포기했다. 곱게 끝날거라 생각하지 마라.

"어머,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이전보다 훨씬 보기 좋은데. 뭐, 그래도 여전히 추하지만. 여기 말고, 노틀담 대성당으로 가서 종지기로 지원해보는 건 어때요?"

서지현의 놀리는 것 같은 말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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