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
결투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이마가 축축하다. 실눈을 떠 주변을 살펴보니 주변이 밝은 느낌이다. 벌써 해가 뜬 건가. 다시 한 번, 이마 위로 뭔가 축축한게 툭 하고 떨어져 주륵하고 흘러내린다. 도대체 뭔데 이게.
"... 히익."
나도 모르게 병신같은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지현이 곧바로 눈에 서지현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왜 졸고 있는 서지현의 얼굴이 보일까. 그리고 서지현의 입에서 주르륵, 뭔가가 흘러나와 내 이마로 떨어진다.
이것도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이냐. 참 애매한 기분이다.
"저기."
내 목소리를 들은 서지현이 커흐헉, 하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한 번 내고는 몽롱한 눈으로 입가를 훔친다.
"아, 저기. 일어났어요?"
그래, 일어나기는 했는데.
"내가 네 무릎을 배고 이마로 침을 받고 있는 이유가?"
이게 그 유명한 중국 물고문인가 뭔가 하는 건가. 그런거 치고는 지금 머리를 받치고 있는 배게가 엄청 편안한 느낌인데. 피곤한 기색을 숨긴 채 서지현이 서둘러 내 이마의 침을 닦아냈다.
"당신 어제 엄청 떨었어요."
아, 아무래도 잠들어 있을 때도 여전히 공포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땀을 한 가득 흘리고, 신음소리 흘리고, 눈 감은채로 울고... 보다 못해서 깨우려고 했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해준게 무릎배게였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의식적으로 악몽을 꾸기 위해서 노력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고마워. 다리는 안 아파?"
"에이, 허벅지 위에 사람 머리 하나 올려놓았다고 쥐가 날 정도는 아니에요."
몇 시간이나 그러고 있었을텐데. 능력치가 높아서 괜찮다고 해도 그 자세로 조는 건 중학교 떄 선생님이 내린 벌을 충실히 수행해야 느낄 수 있는 경험이잖아. 복도에서 무릎꿇고 있어. 잠을 좀 자서 그런지, 아니면 서지현이 잠을 자는 대신 불편한 자세로 꾸벅꾸벅 졸아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그 으스스 오한이 돋던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맑은 정신이 다시 머리 속으로 돌아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지현이 살짝 휘청거리고, 나는 그런 서지현을 잡아주었다.
"그래서, 쥐가 날 정도는 아니라고?"
내 말에 서지현이 별 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돌렸다. 드리워져 있던 커튼을 열자 햇살이 쏟아진다.
"얼마나 잔거야."
"다른 사람들은 먼저 성남으로 돌아가라고 해두었어요."
잘 했네. 어차피 우리가 꼭 그쪽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 서지현만 움직인다면 안양에서 성남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할 수도 있겠는걸.
"조금 자두는 게 어때."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서 자도 괜찮아요. 그리고, 앉아서 조는 것도 잠으로 쳐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대충 몸을 닦고 난 다음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최현우는 남산에 계속 머무르고 있을까."
지금 상황이라면 녀석이 도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 나와 서지현은 계속해서 서울을 두들길 생각이고, 최현우는 이제 그걸 막을 수단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치를 새로 채워넣은 생존자는 모두 해방되었고, 녀석이 꽤나 애지중지 하던 것으로 보이는 강한 괴물들도 이제 고작 두 마리 남았다.
"서울에서 도망쳤다고 해도, 멀리 가지는 못할걸요. 걱정 할 필요 없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서지현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 친다. 앉아서 조느라 허리에 무리가 간 모양이다.
"엎드려 봐."
내 말에 서지현이 네? 하는 소리를 내고는 이내 내가 시키는 대로 이불 위에 엎드렸다. 나는 서지현 위로 올라가서 허리 쪽을 손으로 눌러주기 시작했다.
"으윽. 윽."
서지현이 눈을 감고 그런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새삼스럽게 허리가 가늘다는 생각이 은다. 이 안에 내장이 어떻게 다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네. 실전압축내장 같은 건가. 꽤 집중해서 허리나 어깨 같은 곳을 주물러 주고 있으려니, 낮게 소리를 흘리던 서지현이 말했다.
"혹시."
"혹시 뭐."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직도 고추 아파요?"
나는 그 말에 픽 웃고는 서지현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어깨가 살짝 움츠러든다.
"너는, 허리 아픈거 아니었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위에 올라탄 남자가 한 30분 정도 주물러주니 다 나은 것 같은데요."
안마를 해준 보람이 있는 대답이네. 나는 살짝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현의 몸을 뒤집었다. 뒤집었다기보다는, 내가 손을 가져가자 서지현이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뒤집었다. 서로 눈이 마주친다.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성남으로 향하는 중일텐데."
내 말에 서지현이 키들거리면서 양 손을 뻗어 내 얼굴울 감쌌다.
"원래, 남들 일할 떄 쉬는게 제일 꿀맛인 법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서지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흘렸다. 성남에 도착하고 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와 서지현은 이렇게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다. 무진장 바빠야 했으니. 하지만 이제서야 기회가 생겼다.
나도 따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고, 서지현도 따로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며칠 전 부터, 우리는 서로를 격렬하게 원하고 있었다. 다만, 충족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나를 보던 서지현이, 옆으로 손을 뻗어 이불을 끌어와 나와 자신의 몸을 함께 덮어버린다.
그 사이에 나는 손을 등 뒤로 밀어넣어 브레지어를 풀어내리고, 키스를 한다. 참,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난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처음에는 다소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불을 덮은 채로도 순식간에 서로의 옷을 벗겨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이라니까.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주무르기 시작하자. 손이 가슴 속으로 푹 잠겨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가슴 위의 젖꼭지를 빙글빙글 괴롭히자, 서지현의 입에서 단 숨이 흘러나오며 순식간에 유두에 힘이 들어가 단단해진다.
"별로 만진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다니, 엄청 야해졌네. 젖꼭지도 조금 커진거 같고."
풍만한 가슴에 걸맞게 색소가 연한 젖꽃판은 원래 큰 편이었지만, 팽팽하게 힘이 들어간 젖꼭지는 분명히 예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당신이 툭하면 만지니까, 손이 닿는다는 생각만해도 뜨거워져서."
서지현이 작은 목소리로 변명하기 시작한다. 엄지와 검지로 단단해진 유두를 집어올려 빙글빙글 돌리자 서지현이 턱을 아래로 당기고 신음소리를 흘린다.
아래로 손을 가져가서 확인해보니, 이미 아래쪽은 미끌거리는 애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우면 이렇게 눈물을 흘려?"
내 말에 서지현이 윽, 하는 소리를 내고는 마찬가지로 손을 뻗어 내 자지를 쓰다듬는다.
"당신도 엄청 서럽게 울고 있잖... 아흐윽."
손가락이 서지현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혹시나 다칠까 조심스럽게 안으로 정작 사람이 걱정한 보람도 없이, 서지현의 몸 안이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강하게 문 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움직이자, 양 허벅지를 넓게 벌리고 앓는 소리를 흘리기 시작한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액체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서지현이 입을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확, 하고 손가락을 무는 힘이 더 강해졌다. 이불 아래로 머리를 집어넣고 단단하게 솟아오른 젖꼭지를 입에 문고, 혀로 굴리기 시작한다. 그 사이 질 안에 들어간 중지는 벽의 위쪽을 비비고, 엄지가 클리토리스를 매만진다.
가슴을 애무하는 내 머리를 양 손으로 꽉 끌어안은채, 서지현의 허리가 꾸물거리기 시작한다. 젖꼭지에서 입술을 뗀 나는 서지현을 바라봤다. 이제 그거 필요할 것 같은데. 고무장화. 내 표정을 보던 서지현이 눈웃음을 지으며 양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그냥 해도 괜찮아요."
"괜찮다니."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오늘은 98% 확률로 안전한 날이에요."
대답을 들은 나는 서지현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게나 정확한 수치라니. 신뢰도가 높아지는데."
"그렇, 하으윽."
서지현이 대답을 끝내기 전에, 천천히 내 몸이 그녀의 몸 안으로 잠겨들어가기 시작한다. 꼭,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나 기대하지만, 항상 기대하고 있던 것 이상으로 서지현의 몸 안은 기분좋다. 심지어 오늘은 몇 배는 더 기분이 좋다.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서지현과 내 호흡이 함께 거칠어진다. 서로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마주치고, 내 입에서 토해지는 호흡과 서지현의 입에서 토해지는 숨결이 서로 뒤섞인다.
키스하지 않고 있는데도, 키스하는 것 같은 기분. 모든게 다 섞이고 있다. 땀과 땀이, 호흡과 호흡이, 살과 살이. 서로 뒤엉킨 채로 비벼지고, 뒤섞여진다. 행복한 기분이 온 몸을 타고 돈다. 그 사이, 내 자지를 받아들인 서지현의 질이 이따끔씩 꽉 하고 수축했다가 풀리기를 반복한다.
호흡만을 뒤섞고 있던 입술이 서로 마주쳐 타액을 교환한다. 손을 뻗으니, 뭉실뭉실한 느낌의 가슴에 손가락이 파묻힌다. 한층 더, 질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서지현의 양 다리가 내 허리를 꽉 휘감고, 허리가 약간 들린다. 내 목을 휘감고 있던 팔을 푼 서지현이 자기 얼굴을 가렸다.
"그러지, 말라니까."
나는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가리고 있는 서지현의 손을 치우고, 점점 속도를 올렸다.
"잠깐, 잠깐... 안돼요. 나, 아."
서지현이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몸을 달달 떤다. 서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참기 힘들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도 참기 힘들어 보인다.
다시 얼굴을 얼굴을 가리려고 하는 그녀의 손을 막은 채, 나는 서지현과 눈을 마주친채 속도를 높였다.
"으으응!"
얼굴도 안 가리고 어쩔 줄 모르던 서지현이 이내 자기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몸을 떨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한계에 달해있던 몸을 타고 충겨과도 같은 감각이 날뛰기 시작한다. 서지현이 흘린 애액이 내 사타구니를 적시고, 나는 그녀의 몸 안으로 정액을 쏟아넣었다.
서지현이 멍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더, 격렬하게 해도 괜찮았는데."
나는 땀에 젖어 서지현의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대답했다.
"잠 많이 못 잤잖아."
안 그래도 피곤할텐데.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자봤자 꿈 꿀텐데. 제가 꿀 수 있는 가장 좋은 꿈이 지금 이 상황인걸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리고 서지현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절 할 때까지 해줄래요?"
잠에서 깨었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오후에는 성남에 도착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원래 예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라지. 우리는 밤 여덟시가 되어서야 안양에서 성남으로 출발 할 수 있었다.
서지현이 걸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안양에서 성남까지는 서지현을 업고 가야 했다. 서지현을 업고 프릭션 컨트롤을 이용해서 이동하고 있으려니, 업혀있는 서지현의 입에서 으윽,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살살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