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눈먼 자들의 도시
머무르는 숙소로 들어온 나와 서지현은 별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냥, 식사를 때우기 위해서 꺼내든 영양바를 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김용천의 제안이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한참의 침묵 끝에 던진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완전히 불가능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생존자들이 살아남아 있다면, 괴물을 만들어내는 고치도 아직 숫자가 불어나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고치의 숫자가 증가하지 않았다면, 괴물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지현이 말을 덧붙었다.
"당신과 최현우의 실력은 비등하죠? 하지만 거기에 제가 있잖아요. 당신과 최현우가 아니라, 우리랑 최현우가 싸우게 되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최현우도 중상을 입겠죠.'
그래, 그건 확실하다.
"당연히 최현우도 그걸 알고 있을테고..."
"거기에서 최현우는 선택을 하겠죠. 목동을 지키고 있는 병력을 일부 빼돌려서 우리 쪽으로 함께 오거나, 아니면 혼자 오거나. 혼자 오면 최현우에게 중상을 입힐 수 있겠지만, 김용천의 계획은 확실하게 실패해요."
지키는 병력이 많을테니. 서지현이 가진 힘에 대해서는 최현우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중상을 입기 싫어서 목동을 지키는 괴물 중 일부를 빼돌린다면, 한 삼백 마리 정도는 끌고 와야 할 거다.
그리고 그 만큼 목동의 방비는 허술해질테고, 그럼 김용천의 계획이 성공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것도 아니고, 적군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계획이라니. 차라리 눈 감고 포커를 치지."
어려운 일이다. 그냥 치고 빠지는게 아니다. 그냥 치고 빠지는 거라면 재빠르게 들이 닥쳐서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적이 오기 전에 도망치면 될 일이지만, 이건 보호하며 이동해야 하는 생존자들이 있다.
다소의 피해를 입는 정도로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실패하게 된다면 성남에 긁어모아두었던 생존자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성공한다면 물론 문제가 될 건 없어요. 우리 둘이 매일같이 서울로 가서 고치를 때려부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오겠죠."
이러나 저러나, 엎치나 뒤치나. 어쨌든 고치를 새로 채워넣는 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안전한 길과 위험한 길, 두 선택지가 도달하게 되는 목적지는 같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한다. 아이한테 물어봐도 아는 사실이다. 처음 와보는 곳에서 밥 먹는데, 사람 많은 식당에서 먹을래 아니면 사람 적은 식당에서 먹을래? 어지간한 사람들은 사람이 제법 있는 곳으로 가서 식사를 한다. 사람이 없는 식당보다 맛이 안정적일테니.
하지만 문제는, 김용천이 한 말이 여전히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는 거다. 이빨에 고춧가루 낀 것처럼.
"혓바닥은 아주 청산 유수야."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목걸이의 별을 만지작거렸다. 생존자들이 살아남아 있다면, 이걸 통해서 수용된 장소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이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천장으로 시선을 던졌다. 최현우는 개새끼고, 김용천은 보기 드문 성인 군자다.
"그리고 우린 미친 년놈들이죠."
그래, 어떻게 보면 사람 하나 죽이겠다고 이 위험한 세상에서 한 곳에 짱박히는 대신 안동에서 서울까지 온 녀석들이다. 이게 제정신이라면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냥 풀어주어야 한다.
"예전에 말했었죠? 제가 단무지 갉아먹으면서 성매매 알선자에게 전화했다가 포기한 일."
까먹기도 힘든 이야기였으니까. 당연히 기억한다. 자기 엄마처럼 되기 싫고, 자기 엄마가 시키려고 했던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서지현은 그 지독한 현실을 참았다.
"당신의 누나 말인데요..."
"그만."
내 대답을 들은 서지현이 곧장 침묵했다.
나는 양 손으로 얼굴을 벅벅 비볐다. 그래, 내 누나가 죽은 이유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최현우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누나가 피해를 입었다. 저항할 수 없는 약자였던 내 누나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건 누나 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나도.
누나의 극단적인 선택은 자살이었고, 나의 극단적인 선택은 연쇄살인이었다.
"그건 아무 상관 없어."
내 가족들의 인생이 작살난 것은 분명히 아픈 기억이고, 그로 인해서 원래는 하지 않았을 판단을 내린 적도 꽤 있는 걸로 기억한다. 당장 교도소를 나와서 서지현을 구한 것만 해도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나의 죽음을 아무 곳에나 가져다 붙인다고 내가 다 넘어가주는 건 아니다.
모로 가도 최현우만 죽이면 되는 거잖아.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일이다. 그냥, 어떻게든 최현우의 모가지를 따버리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걸로 끝이지.
왜 자꾸 거기에 이것저것 개똥같은 철학이 시비를 걸고 있는 걸까. 밖을 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가는 중이었다.
"좋아."
나름대로 결정을 내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숙소를 나왔다. 서지현은, 가만히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녀오세요. 어떤 결정을 내려도 저는 당신 편이니까."
내가 갑자기 일어난 이유를 서지현은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문을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김용천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아내고, 녀석에게로 향했다. 걸어가는 시간은 짧지만 길어서, 순식간에 녀석이 머무는 곳에 도착한 듯 했지만 머리 속은 오랫동안 고민하기라도 한 것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
김용천이 책상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려서 놀란 모양이다. 이제 더 놀랄 일이 있을거니 그런 표정은 조금 있다가 짓는게 좋을 걸.
"잘 들어, 이 망할 정의쟁이 새끼야."
내 말에 김용천이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목적은 최현우를 죽이는 거야.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고. 그 일 하나 해내려고 8년을 교도소에서 썩고, 이 길 가다가 물려 뒤져도 대단할 거 없는 한국땅을 안동에서 서울까지 가로질러왔어. 알아?"
"알고 있습니다."
개뿔, 넌 아무것도 몰라. 알긴 뭘 알아. 나처럼 산 것도 아니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면서. 니 대가리 속에 그런 아름다운 꽃동산이 펼쳐진 이유를 내가 도저히 짐작 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녀석도 내 사정은 전혀 이해 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녀석은 나를 바라보다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오현석 씨."
"시끄러, 아직 말 안 끝났어."
나는 녀석의 말을 끊어버리고, 테이블에 놓인 물잔을 싹 비우고,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지금 대화가 끝나고 나면 서울로 가서, 최현우 자식이 싹 다 잡아 모은 생존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거다. 살아있으면 살아있다고 말하고, 죽었으면 죽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주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다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일 해가 지면, 나와 서지현은 서울로 들어가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 개같은 놈의 고치를 작살내기 시작할거야. 최현우는 당연히, 그걸 막기 위해서 우리 쪽으로 올 수 밖에 없고. 녀석들의 가장 큰 전력인 최현우가 우리와 싸우느라 묶인다면, 목동을 습격했을 때 압도적으로 패배하지는 않을거다."
"그럼... 제 제안을 수락한 걸로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락 같은 소리 하네. 말 끝날 때까지 기다려. 성남의 생존자들을 다 끌어모아서 서울에 잡힌 녀석들을 구할지, 아니면 그냥 우리 제안대로 여기에서 얌전히 있을지는 네가 결정해. 전자를 선택하면, 최현우는 내 뒤를 쫓던 괴물들을 싹 끌어모아서 너희 쪽으로 보낼거야."
숫자가 드글드글할 거다. 몇 번 봐서 알고 있다.
"최현우가 괴물들을 너희 쪽으로 보낸다면, 나는 그때부터 최현우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 둘 거다. 당연히, 그러다 죽일 수 있게 된다면 죽여버릴거고."
그러기 위해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네 제안이 실패해서 서울에 붙잡힌 생존자들을 구하는데 실패하면, 퇴각은 꿈도 꾸지마. 다른 새끼들은 몰라도, 너는 거기에서 싸우다 뒤져라."
내 말에 김용천이 몸을 살짝 움찔했다.
"구하자는 제안은 네가 한 거다. 고로 그로 인해 발생할 결과의 책임은 내가 아니라, 너에게 있지. 실패해서 녀석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피해만 한 가득 입은 주제에 비처비척 성남으로 돌아오잖아? 넌 나한테 죽는다. 널 죽이고 나서, 나는 지현이와 함께 성남을 뜰 거야. 그리고 다시 최현우를 죽이기 위한 준비를 하겠지. 다시 처음부터!"
이 새끼 부탁 한 번 들어줬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다면, 사실 상 내 복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건 문방구 앞에서 백원자리 동전 넣고 하는 뿅뿅이처럼 컨티뉴? 지랄 하면서 100원짜리 동전 하나 밀어넣으면 이어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내 복수를 그 꼴로 만들어 놓은 새끼가 헤실헤실 웃으면서 살아 숨쉬며 돌아다닌다고? 내가 그걸 그냥 둘 것 같냐. 절대로 그냥 못 두지.
여기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는 상황이 되어도 괜찮다. 그 정도 시간은 참을 수 있다. 그래도 교도소에서 출소 기다리는 것 보다는 훨씬 짧게 먹히니까.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한 분노는 이 녀석에게 풀 것이다.
"대답은? 지금이라도 그냥 곱게 얌전히 있을거면 말해."
그렇게 되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 몫이 된다. 서울에서 영문도 모르고 고치가 되는 사람들의 목숨은 다 내 탓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거 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내 말에 김용천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실패하면 거기에서 죽겠습니다."
고민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용천이 가볍게 결정을 내린 건 아닌 것 같았다. 테이블 앞에서 녀석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던 나는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좋아. 하지만 네 결정과는 상관없이 나와 서지현은 내일부터, 매일 밤 서울로 가서 고치들을 때려부술거야."
내 말에 김용천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 서울에 잡힌 생존자들이..."
"손실된 고치를 벌충하기 위해서 희생당하겠지. 하지만 고치를 부수지 않으면 당장 하루 하루가 지날 떄 마다 새로 만들어진 고치, 또는 지금 남아있는 고치들에서 온갖 괴물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그냥 두라고? 안 될 말이지. 서울의 생존자들을 최대한 온전히 살리고 싶다면, 준비는 내일 밤까지 끝내."
그걸로 끝이다. 더 이상 할 말 없다. 지금 나는 협상이나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최후 통첩을 하러 온 거다.
성남의 생존자가 전부 뒤지는 한이 있어도, 나는 서지현과 함께 하기로 한 일을 계속 할 거다. 그 와중에 김용천이 제안한 일을 실행할 기회를 한 번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잘못되면 나는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복수할 기회를 찢어버리게 된다.
김용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로 인해서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딱 거기까지다. 복수의 달성에 필요한 시간의 강제 연장. 그로 인해서 생기게 될 내 허탈함과 분노를 감당하는 건 김용천의 몫이고. 녀석이 그걸 감당 할 수 있는 방법은 거기서 뒤지거나, 아니면 돌아와서 나에게 뒤지는 것 말고는 없다. 할 말을 마친 나는 다시 돌아가기 위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오현석 씨."
시선을 슬쩍 돌리자, 김용천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녀석의 말을 들은 나는 건조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뒤지면서도 그 대사를 할 수 있나 한 번 보자고."
뭐가 감사해, 미친 또라이 자식. 저거 이제 보니 착한 놈이 아니라 미친 놈이었군 그래. 방금 대화의 도대체 어디에서 감사함을 느꼈다는 거야. 미쳐도 심하게 미쳤는데.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이 머무르는 방을 나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꼐 내 바로 뒤편에서 문이 닫혔다.
서지현에게 돌아가자, 그녀가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사과맛 사탕.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그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바로 서울로 가서, 최현우 자식이 서울 어디에 생존자들을 몰아두고 있는지 찾아낼거야."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린 모양이네요."
나는 서지현에게 김용천과 나눈 대화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입으로 착한 일이 어쩌구, 힘이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그 정도는 감당할 각오가 되어있어야지."
"이시은이 불쌍해지겠네요."
뭐, 그거야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루에 두 번이라."
이번에는 가서 뭘 때려 부수는게 아니라 얌전히 가서 살펴보고 다시 돌아오는 거니까 일이 조용하게 진행된다. 조용하면 시선을 끌지 않으니 싸울 일도 없겠지.
1시간이 지날 때마다 바로바로 목걸이를 통해 감각을 접어서 주변을 파악하고, 충전이 되는 동안에는 직접 몸으로 뛰어서 찾아보면 된다.
"네 생각은 어때?"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당신 생각이랑 같죠."
"그런 소리 말고."
생각이 궁금한거다. 내 말에 서지현이 살짝 고민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조금 바보같은 결정이긴 하죠."
시원하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바보같은 결정이긴 하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사실 지금이라도 방법은 있어요. 서울을 정찰 해 본 척 하고 거기에 생존자 다 죽었는데? 라고 해버리면 되겠지만."
서지현의 입에서 어휴, 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럴 거라면 지금 김용천을 찾아갈 이유가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서지현이 잠깐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결정은 이미 났어요. 자주 말하지만,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아요. 실패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죠. 우리도 그렇고, 김용천도 그렇고. 자기 목숨줄이 걸렸으니 대충하지는 않겠지만. 생존자 파악은, 바로 출발할 거에요?"
"그래야겠지."
빨리 끝내야 돌아와서 좀 쉴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