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눈먼 자들의 도시
말을 전해 받은 우리는 바로 김용천을 찾아갔다. 녀석은 꽤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표정이 왜 그래."
내 말에 김용천이 아, 하는 소리를 내고 우리를 바라봤다.
"두 분이 나가고 나서, 서너명 정도의 생존자가 서울에서 여기로 왔습니다.'
나는 그 말에 응? 하는 소리를 냈다.
"겨우? 너무 적잖아. 최현우가 벌써 관리를 들어간 모양이네."
녀석 입장에서는 생존자를 잃고 싶지 않을테니까.
"그걸 관리라고 해야 할 지 어떨지. 직접 가서 한 번 들어보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서울에서 온 생존자들은 현재 2층에서 휴식 중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올라와서 이야기를 나눠보죠."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길래 표정이 저래. 궁금하면 별 수 있나, 내려가서 한 번 들어봐야지. 어차피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는 편이 더 신뢰도가 높을테니까. 우리는 김용천에게 대충 감사 인사를 한 다음에 그가 말했던대로 건물의 2층으로 향햇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누워있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서는 상체를 억지로 일으킨다.
"그러다 단명한다."
뭘 억지로 허리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어. 딱 봐도 영양실조는 기본 옵션이고, 거기에 더해서 어디 부러지고 다친 상처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데. 왜 이 정도 밖에 안 온거지?"
나는 말을 이어가면서 의자를 하나 슥 끌어 침대 앞으로 가져와 거기에 앉아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에서의 삶은 썩 마음에 들어하는 건가. 그럼 우리가 나쁜 놈들이겠군."
"그런게 아닙니다."
녀석은 피곤과 공포, 고통에 쩐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유가 뭘까."
"못 오는 겁니다."
"그건 또 흥미로운 대답이네. 우리가 랜드 클리어를 끝내서 다들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서울을 벗어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 말에 녀석이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배급을 받으러 나간 사람들이 모두 잡혀갔어요."
배급? 무슨 배급.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아하, 하는 소리를 내고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 회색 반죽?"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양바는 화폐로 쓰고, 그 대신 그 회색 반죽을 통해서 목숨을 연명한다.
"먹고 싶은 때깔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서지현이 티백과 물을 이용해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만들어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차를 받은 녀석이 홀짝거리며 차를 몇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하죠. 처음 그걸 음식이라고 받았을 때가 아직도 기억날 정도입니다. 토악질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 그거 맛없어 보이더라.
"식단 불평을 듣고 싶어서 여기 온 건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잡혀갔다고 했지. 하지만 이 녀석을 포함한 몇 명은 잡혀가지 않고 여기로 왔다.
"당신들이 잡혀가지 않은 이유는?"
내 말에 녀석이 곧장 대답을 돌려주었다.
"저를 비롯한 몇 명은 상한 음식을 잘못 먹고, 몸 상태가 나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배급 받은 죽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더군요."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서 납치 되었다고 확신하는 건가. 그걸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아서 안좋은 몸을 이끌고 배급받는 장소로 조심스럽게 찾아가봤는데..."
그는 말을 마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이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반항하는 자는 때리고, 억지로 끌고 가더군요. 그 와중에 사상자도 몇 명 생겼지만 그 괴물들과 최현우의 졸개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젠장, 사람을 무슨 짐승처럼!"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다시 후릅, 하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가 본 건, 그게 전부에요. 저를 비롯해서 상한 음식을 먹고 몸 상태가 좋지 않던 몇 명이 그 장면을 훔쳐보았고...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도망쳤습니다."
서지현이 그 말을 듣고 녀석의 몸 상태를 한 번 훑어 본 다음 나에게 눈짓을 했다.
"이야기, 잘 들었어. 그럼 푹 쉬라고."
우리는 사람들이 쉬고 있는 2층의 문을 나와서 마련해둔 숙소로 향했다.
"뭔가 음식을 잘못 주워먹었다는 말은 건 사실인 것 같았어요."
"그럼 아파서 배급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거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당신이 강남에서 확인한 것도 있잖아요. 당신이 본 것과 저 사람의 증언을 함께 고려해보면, 짝이 맞아 떨어져요."
그래, 성동구에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볼 수 있었던 피비린내들. 그 장면과 방금 전의 진술을 합치면 확실히 말이 된다. 우리는 다시 김용천에게 돌아가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잡아갔나? 라고 하는 건데."
짐작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갈아 넣을 생각인 모양이지."
탱크를 잃었으니 그 부족분을 알보병으로 채워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뜻이다. 잡혀간 생존자들을 고치로 바꾼 생각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녀석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는 건 확실해."
꽤나 극단적인 방법이다. 이로 인해서 생기게 될 반발 같은 걸 최현우가 생각하지 못할리가 없다. 당장 성남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는 마물의 숫자를 확 불려서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그 다음에는 어쩌려고. 그 뒤로는 괴물들과 부대껴야 할 텐데, 최현우가 괴물들 사이에서 그렇게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제르멩 친구와 계약을 한 최현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의 랜드 마크가 딴 주머니를 차려고 했다는 건, 최현우의 입지가 기껏해야 랜드 마크 언저리라는 거다. 결국 녀석이 군림해서 뜯어먹을 거 뜯어먹고, 빨아먹을 거 빨아먹을 수 있는 건 생존자들이 전부라는 건데. 제 살 깎아먹는 셈이다.
어쟀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김용천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들어보셨습니까?"
"그래,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던데. 서울 안의 생존자들을 끌어 모아서 뭘 하려는 건지는 뻔하잖아."
그 더럽게 맛없고 영양가도 없어보이는 회색 반죽을 먹으며 살던 녀석들이다. 무기를 쥐여준다고 갑자기 곰 같은 힘이 솟아날 리는 없다.
내 말에 김용천이 대답했다.
"사랑의 집이라는 걸 더 만들 생각인 모양이죠."
"단지 생각만 하고 있는게 아니라, 이미 더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고치를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오래 필요하지는 않을거다. 잡혀간 생존자들의 생존 여부는 장담 할 수 없다.
"아직 살아서 갇혀 있는 상황이라면 풀어 줄 수는 있어. 하지만 풀어준다고 해도 오래 가지는 못하겠지."
당장 위치를 찾아낸다고 하면 나와 서지현이 들이 닥쳐서, 녀석들을 풀어지 못할 건 없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우리도 장담 할 수 없다. 나와 서지현은 딱 둘이다. 얼마나 살아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을 챙겨가면서 서울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
속도가 느려지만, 금방 포위될거다. 내 말에 김용천이 대답했다.
"위치만 알려 주세요. 아직 살아있는 생존자들이 있다면, 구출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두 분은, 저희가 구출하는 사이에 최현우의 시선만 붙잡아 주세요."
말이 쉽다 이것아.
"녀석이 모를리가 없잖아."
내 말에 김용천이 대답했다.
"우리가 생존자들을 구출하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어도, 두 분이 붙잡아 둘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김용천의 말에 서지현이 한숨을 한 번 팍 쉬고 대답했다.
"글쎄요,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이네요."
말을 마친 서지현이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잠깐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잡혀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최현우의 발목을 붙잡아 둔다고 해도 서울 안에 있는 수많은 괴물들이 당신들에게로 향할 거에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냥 그 괴물들에게서 후퇴하는게 아니라, 거기에 잡혀 들어갔던 생존자들을 보호하면서 후퇴해야 할 테고.
좋든 싫든, 성남의 병력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입는 피해와, 최현우가 입는 피해는 그 성질이 완전히 달라요."
최현우는 하루가 지나면 다시 생산되는 괴물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전투 중에 입은 피해를 다시 복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구조한 생존자들이 병력으로 합류한다면, 오히려 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서지현이 대답했다.
"아니면, 구조하는 과정에 괴물들과 교전하다 엄청난 손실을 입고, 구조한 생존자들을 포기하고 그냥 성남으로 돌아올 수도 있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서지현이 하고 싶은 말은 대충 알아 들었다. 게다가...
"지금 성남시에 머무르는 생존자들의 숫자는 충분해."
최현우가 괴물을 만들어내는 고치를 몇 개를 더 만들었건, 우리가 계속 부수면 될 일이다. 최현우가 서울에서 조달 할 수 있는 생존자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고, 그 말은 만들어낼 수 있는 고치의 숫자도 한계가 있다는 거니까.
우리가 서울을 다니며 사랑의 집을 충분히 부수고, 마물의 숫자를 줄인다면... 지금 성남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바로 남산의 N 타워 쪽으로 나아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최현우를 죽일 거다.
"녀석이 뭘 하려고 하던 상관없어요. 우리는 이전에 성남시를 공략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울을 공략할 수 있어요. 훨씬 안정적이고, 확실하죠."
서지현의 말에 김용천이 대답했다.
"대신, 서울에 아직 살아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생존자들은 죽을 겁니다."
김용천의 무거운 목소리. 최현우가 설사 아직까지는 끌어모은 생존자들을 재료로 사랑의 집을 더 만들지 않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와 서지현이 계속해서 서울에 피해를 주게 된다면...
결국, 손실된 사랑의 집 개수 만큼을 모아놓은 생존자들을 통해 새로 만들게 될 것이다. 녀석으로서는 그거 말고는 상황을 타개할 방책이 없으니까.
"사랑의 집 하나를 부술 떄 마다, 둘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김용천의 말에 나는 허어, 하는 소리를 냈다.
"댁 사람 좋은 거야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전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 정도는 각오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말에 김용천이 대답했다.
"전투 중에 생기는 죽음이라면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서지현이 살짝 인상을 쓰고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
"이 싸움의 상당 부분은 우리 둘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어요. 알고 계시죠?"
서울 안으로 들어가는 건 우리다. 우리가 그 안에서 뭘 하던지 그건 우리 자유다. 돌려 말해서 그렇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안하겠다면 니가 뭘 어쩔건데? 라는 뜻이다.
뭐, 더 이상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겠다, 같은 식으로 반발 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는 별로 좋지 않을거다. 우리는 성남의 생존자들이 필요하니까. 필요한데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겠지.
이야기를 들은 김용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은 강하고, 실제로 이 싸움 자체가 두 분이 강하지 않았다면 성립되지도 않았을테니까요. 우리는 속절없이 당해야 했을테고... 사실 저도 아직도 이천에서 영양바나 씹으며 소수의 생존자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걸로 위안을 삼고 있었겠죠."
녀석은 그렇게 자기 비하로 말을 시작해서, 계속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서울에 잡힌 생존자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에도, 두 분이 그 생존자들을 구하는 대신 계속 고치를 파괴하기로 결정하시나면 저는 막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행위로 인해서 사람들이 죽는다는 건 두 분 모두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리고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고."
김용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두 분의 결정에 저항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에 남아있던 생존자들도 최현우가 그들을 희생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거스를 수 없었겠죠."
나는 그 말에 침묵했다.
"그 남자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두 분도 그 남자처럼 변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뭐든지 해도 괜찮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으니, 내 마음대로 한다.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대로 하지는 않는다."
말을 마친 김용천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최현우에게 잡혀 있는 생존자들의 생사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 번, 생존여부를 확인이라도 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다시 한 번만 제 제안에 대해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김용천이 열어준 문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