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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56화 (156/237)

# 156

눈먼 자들의 도시

팬클럽에 쫓기는 톱가수가 이런 기분일까.

고개를 뒤로 돌리면, 차가운 표정으로 무수한 괴물들과 함께 내 뒤를 쫓는 최현우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건물의 옥상 위를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다가, 그대로 훌쩍 뛰어 건물에서 건물 너머로 이동했다.

건물에서 다시 뛰어내려 가로등 위로, 가로등에서 다시 뛰어올라 건물 위로. 그렇게 우리는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나는 프릭션 컨트롤을 유지한 채로 서지현을 가슴에 안고 슬라이딩을 했다. 이 녀석들이랑 놀아 줄 생각 없다. 일단은 서울을 벗어나는게 우선이다. 마찰력을 잔뜩 높힌 나는 그대로 고층 건물의 외벽의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후읍."

그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본 나는, 녀석이 단검을 든 채로 심호흡 하는 장면을 봤다. 글쎄, 이 거리에서는 닿을리가 없는 단검을 잡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 게다가, 녀석은 하늘 위에서 뭔가를 타고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녀석 뒤로 길다랗게 하얀 궤적이 남아있다.

병신이 아닌 이상 폼 잡으려고 저러고 있지는 않겠지. 심호흡을 마친 녀석의 손이 움직이는게 보인다. 나는 곧장 박자에 맞춰 뛰어올라 반대편 건물에 가 붙었다.

"... 허."

내 눈에 보이는 건, 방금 전까지 내가 달라붙어 있던 건물이 그대로 서걱, 하고 베어져 둔중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거의 30층은 되어 보이는 고층 건물을 무슨, 짚단처럼 가로로 이쁘게 두 동강을 내버리냐. 저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 와중에 단검을 든 녀석의 손등 위에 떠올라 있는 하얀색의 동그라미가 보인다.

"제르멩 이 나쁜 새끼."

기왕에 도와줄 생각이라면, 저렇게 화끈하게 도와야 할 거 아니야! 니 친구는 저렇게 손이 큰데, 너는 왜 그렇게 손이 작냐.

쉬울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거 생각보다 더 빡세겠는데.

"그만 좀 쫒아오지?"

나는 그렇게 외치면서 뒤편을 향해 쇼크를 한 번 쫙 뿌렸다. 거기에 더해서 서지현도 기세 좋게 다시 화염을 뿜어냈다.

"피곤하다면서."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나저나, 저게 그 최현우인가요."

"그래."

내 대답을 들은 서지현이 나에게 안긴채로 최현우를 바라보다가 한 마디 했다.

"기분 나쁘게 생겼네요."

"그래? 그런데로 곱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좋아하지 않을까?"

외모의 평가는 냉정해야 하잖아. 내 말에 서지현이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덮쳐드는 늑대 몇 마리를 막기 위해 화염으로 이루어진 벽을 확 올리며 대답했다.

"싫어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남주인공으로 나올 법한 면상이에요."

"그거 칭찬아니야?"

엄청 흥한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 주인공도 잘생겼다는 식으로 묘사되고.

"변태새끼처럼 생겼다는 뜻인데요."

저런, 욕이었구나. 녀석은 말 한 마디 없이 우리 둘을 응시하면서 계속 뒤쫓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골목 쪽에서 또 괴물들이 한 다스 정도 튀어나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어, 길이 막혔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허공에 궤적을 남기고 그걸 손으로 잡거나, 발로 밟으면서 녀석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제 길이 열렸네."

화살이나 단검 같은 것들이 우리를 향해서 쏟아지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못 피했으면 나와 서지현은 성남을 포함한 다른 도시에서 추격전 할 떄 벌써 죽었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다고 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해낼 수 있지. 서지현이 허공에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자, 맹렬하게 날아오던 화살과 단검들의 궤도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엄한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건, 내가 요령 좋게 피하면 된다.

"이 자식들."

오, 드디어 말하는구나. 녀석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아 보인다. 그 와중에 녀석의 팔뚝에서 뭔가 시커먼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녀석의 표정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우리 뒤를 쫓던 괴물들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우리 뒤를 쫒던 막대한 숫자의 괴물들이, 일부만 남기고 어디론가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야, 서울에 무슨 일 있나봐?"

나는 히죽거리면서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성남의 생존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거다. 나는 슬쩍 서지현을 보고 말했다.

"지현아, 너는 그 쪽에 합류해. 합류하면, 바로 사람들에게 말해서 즉시 성남으로 돌아가라고 말해. 그리고, 너는 서울과 구리 사이에 있는 북부 간선도로에서 기다려줘."

오래 쉬지는 못했고, 정신적으로 지쳐있다고 해도 몸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다. 성남에서 온 녀석들과 합류하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거다.

"당신은?"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나는 저 녀석이랑 놀아줘야지."

"무리하지마요."

"그럴 생각 없어. 멀쩡한 여자를 생과부 만드는 건 너무하잖아."

죽일 수 있다면야 죽이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리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저 녀석도 언제까지고 나를 쫓을 수는 없을거다. 그렇게 되면 서울이 걱정일테니.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품에서 그대로 뛰어올라 폭발을 일으키며 나와 다른 길로 향했다.

"..."

녀석은 잠깐 서지현을 바라본다. 나는 히죽 웃으며 수확자를 흔들었다.

"니가 필요한게 이거지?"

내 말에 녀석이 별 다른 말 없이 턱짓을 했다. 그와 함꼐 움직이고 있던 다른 괴물들이 서지현의 뒤를 따라 움직인다. 녀석의 눈은 내가 들고 있는 수확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이 검에 박혀있는 참령에.

"직접 보게 되니 너무 좋아서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이네."

원래 사람이랑 이러고 있을 때 빈정거리는 건 자주 하지만. 이번처럼 할 때마다 기분이 상쾌해지는 경험은 없었다. 빈정거리는 것도 대상에 따라서 기분이 팍팍 변한다니까. 서지현은 무사히 성남의 생존자들과 합류할 거다. 우리 뒤를 쫓고 있는 괴물들 중에 위험한 녀석은 없었으니까.

"이 이상 시간 끌 생각 없어."

녀석의 이마에 힘줄이 몇 개 팍 돋아나고, 얼굴 색이 점점 붉게 변하기 시작하며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이거 봐라?"

확 가속이 붙은 녀석이 내 바로 뒤까지 쫒아와서, 그대로 단검을 휘둘렀다.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 미는구나? 그럼 소원 들어줘야지. 죽어. 나는 휘둘러지는 단검을 확인하고는 곧장 수확자를 휘둘렀다.

후발선타가 발동되고, 휘두른 수확자가 기가 막힌 속도로 녀석의 목줄기를 노리고 달려든다.

그 순간 녀석의 단검이 나와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여 후발선타로 휘둘러진 수확자를 막아냈다.

"크흑."

"커허."

나와 녀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런 신음소리를 흘렸다. 굉음과 함께 나와 녀석 주위에 있던 공기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쫙 밀려나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건물들의 유리창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우수수 박살난다.

그리고 다시 녀석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나에게 휘둘러진다.

녀석이 공격한다. 후발선타가 발동해 내 공격이 먼저 녀석에게 닿는 상황이 된다. 갑자기 녀석의 단검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휘둘러진 수확자를 막아낸다.

순식간에 다섯 번 넘게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 쿠쿠쿠쿵, 하는 우뢰 소리 비슷한 굉음이 마구 일어나며 무기를 휘두른 당사자를 제외한 주변의 풍경이 계속 파괴적인 형태로 뒤틀리기 시작한다.

"크흐..."

배운 스킬 덕분인지, 나의 공격과 최현우의 방어는 서로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력 이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과 방어가 부딪치면서 뿜어져 나오는 충격을 몸으로 받아내기가 상당히 버거울 정도다.

"이상한 개수작을 배워서는."

"개수작이라. 있는 집안에서 배워먹은 쌍놈 새끼 아가리에서 튀어나오는 말이 그렇게 교양 없어서야 쓰나."

잠깐의 틈, 그 사이에 나는 쇼크를 걸고 어깨에서 바로 단검을 날려보냈다. 쇼크를 머금은 단검, 최현우는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은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며 자신을 노리는 단검을 쳐내기 시작한다. 단검이 튕겨져 나가면서, 담고 있던 쇼크는 착실하게 녀석에게 전달되지만, 녀석의 몸에서 튀는 스파크는 녀석의 몸 주변이 잠깐 일렁거리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 꼴에 마력 저항도 있다 그거지?

쿠웅, 다시 한 번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고, 이번에는 서로 공격이 끝난 다음 간격을 벌리는 대신, 최현우가 무기를 맞대고 있는 쪽을 선택했다. 끼기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최현우는 서로 무기를 맞댄 채 상대를 노려본다.

"너 같은 녀석이 가져서 좋은게 아니다.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 무지렁이 자식이."

아, 대화 시간인가. 약간 거친 호흡과 함께 내뱉어진 최현우의 대사. 나는 히죽 웃고는 마찬가지로 약간 헐떡이며 대답했다.

"이야, 괴물 똥꼬 핥아주는 비데가 말도 하네. 신기하기도 하지. 인공지능 뭐 그런 건가?"

녀석이 얼굴을 팍 구기고는 확 힘을 주었다. 니가 힘 주면 어쩔건데. 나도 마찬가지로 손에 힘을 확 주자, 녀석은 하늘로 튕겨 나가고, 나는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크으."

도로에 발이 닿자 포장된 아스팔트며 보도 블럭 같은게 기괴한 소리를 내며 금이 쩍쩍 간다. 다리를 타고 확 전달되는 충격. 그냥 있을 수는 없지.

나는 다시 도로를 따라 쭉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하늘에 떠 있던 최현우가 내가 서 있던 자리 위에 내려 꽂히며 안 그래도 바짝 마른 논처럼 금이 가 있던 아스팔트 도로를 싹 갈아 엎어버린다.

"내놔 이 새끼야."

"실력 되면 빼앗아 보시던가. 주변 사람들이 달라고 하면 다 가져다 바치니까, 아주 세상 사람들이 다 너 새끼 면상만 보면 오줌 질질 싸는 줄 아나봐?"

가지고 싶으면 노력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노력을.

서울을 벗어나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젠장맞을 새끼!"

녀석이 그런 나를 보고 크게 외치며, 단검을 허공에서 몇 번 휘두른다. 날카로운 반짝임이 긴 궤적을 남기며 나를 노리고 날아온다. 나름 유도 기능이 있었던 모양인지, 녀석들이 나를 추적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를 맞추지는 못했다.

그리고, 녀석이 갑자기 추적을 딱 포기했다.

"뭐해, 난 아직 쌩썡한데. 우리 함께 서울에서 제주까지 달려보자고, 이 쌍놈의 새끼야."

녀석은 더 이상 내 쪽으로 오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더 쫓아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군."

그 와중에도 녀석의 손등 아래에서는 뭔가가 쉬지 않고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나는 그 꼴을 보고 있다가 히죽 웃었다.

"니 보스가 그만하고 돌아오라고 하든? 뭐, 원래 남 똥꼬 빨아서 주워먹는 콩고물이 다 그런 법이잖아. 노예 새끼는 주인님 말을 잘 들어야지."

녀석이 이제와서 돌아간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동안, 서지현에게 말을 전달받은 성남의 생존자들은 다시 돌아갔을거다. 그러고도 남을 시간을 벌었으니까. 녀석은 그런 나를 보고 몸을 한 번 크게 떤 다음에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뒤쫓아 갈 수는 없다. 성남의 생존자들과 서지현이 돌아갔으면, 그 사람들과 싸우던 괴물들은 다시 할 일이 없어졌을거다. 여기에서 무리하게 최현우를 뒤쫓으면 이번에는 저 녀석을 포함해서 그 괴물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한 번 싸워 본 결과, 내가 거기까지 감당할 자신은 없다.

"그것보다 더 효과가 좋고, 확실한 방법이 있지."

몇 마리나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서울에서 최현우가 나를 추적하는 와중에 뒤를 따르던 괴물 중에는 이전에 만났던 삐에로나, 거대한 아가리 같은 무지막지하게 강한 녀석들은 없었다. 대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괴물의 수가 많은 편이었다.

"최정예는 전부 가평으로 보낸거야."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안 이상 다시 서울로 그 괴물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 틈을 노려서, 그 녀석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겠지."

서지현은 서울과 구리 사이를 연결하는 간선도로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합류해서, 가평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로 쪽을 한 번 지키고 있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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