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눈먼 자들의 도시
내 대답을 들은 조희강이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대답했다.
"고맙다."
목소리가 떨리는 건, 역시 자기 가슴 위에 부어진 시뻘건 쇳물 떄문이겠지.
"고마워 하지 말고, 요청한 질문에 대답해야지."
"랜드마크의 이름은 모른다. 그냥 자신을 수행자라고만 칭하고 다니지."
그래, 서울 들어올 때 갑자기 사찰 나올 떄 부터 뭔가 그런 쪽에 연관이 있어 보이는 녀석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외모는?"
"눈을 천으로 가린, 삐쩍 마르고 냄새나는 노인이야. 항상 가부좌를 튼 채로 공중에 떠다니지."
이야, 공중부양이라니 아쉽네. 한국이 지금도 정상적인 사회를 유지하고 잇었다면 대통령 후보로 출마 할 수 있었을텐데. 대통령 후보 중에 그거 할 줄 안다고 주장하던 녀석이 하나 있었잖아. 다음은 머무르는 장소다.
"평상시에는 주로 봉은사 쪽에 머무르는 걸로 안다."
[미션 클루 획득]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안 좋아진다. 봉은사면 삼성동에 있는 사찰이잖아. 다른 말로는 강남구에 있다고도 하지. 강남구에 맞닿아 있는 곳은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가 머무르고 있던 송파구 바로 옆이다.
"부메랑도 아니고."
갔다가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니. 짜증나네. 괴물 주제에 승려 흉내를 내느라 또 머무르는 곳은 사찰이야? 그것도 하필이면 강남에 붙어있는? 동선 낭비 엄청 했는데. 그냥 강남 일대를 돌아다녔으면 운 좋게 얻어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왠지 손해 본 기분이다. 엄청나게 손해봤다기보다는, 맥도날드에서 불고기 버거 세트 시키고 빅맥을 단품으로 하나 더 시키고 난 다음, 빅맥을 세트로 시키고 불고기 버거를 단품으로 시켰으면 조금 더 싸게 먹었을텐데, 하는 꺠달음을 얻었을 때 느낄 법한 뭔가 조금 애매한 손해.
뭐, 확실한게 좋은거지.
"싸워 본 적은 있나?"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런 용기가 있는 녀석은 또 아니라서."
그렇군, 일단 위치를 알아낸 것으로 만족하기는 조금 아쉽다.
"서울에도 사랑의 집이 있겠지?"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북 지역 쪽에 밀집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밀집도가 놓은 건 북한산 국립공원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종로구."
그래, 이거라도 추가로 건져서 다행이다. 강북이라, 그럼 거기에서 날뛰다가 수원으로 내려가는 건 다소 힘들지도 모르겠는걸. 게릴라를 하게 되면 신경을 많이 써야겠어.
녀석이 잠깐 나와 서지현을 보고 있다 꽤 어렵사리 한 마디를 꺼냈다.
"머무르고 싶으면 머물러도 괜찮다. 다른 수작이 있어서 권유하는 건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마음은 고맙군 그래."
집까지 나눠 쓰는 건 좀 불안하다. 일단 녀석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는 다 들었다. 서지현이 대회의실을 휘감고 있던 불꽃을 거두자, 문 밖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무장한 채로 안으로 들이닥쳤다. 녀석들이 뭔가를 하기 전에, 조희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멈춰, 모두 무기 거둬."
녀석들이 그 말에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와 조희강을 번갈아 바라본다.
"약속했던 건 지키죠."
말을 마친 서지현이 손을 살짝 쥐자, 주변의 기온이 확 올라가면서, 조희강의 가슴 위에 고여 있던 시뻘건 쇳물이 다시 단단하게 굳어버린다. 녹아서 살점에 붙거나 하는 일은 없었기에, 조희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굳은 쇳덩이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길 비켜줘. 좋게 끝났으니."
조희강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약간 머뭇거린다. 이내 그가 얼굴을 구기고는 소리쳤다.
"귓구녕이 막혔냐!"
그제서야 녀석들이 우리에게 돌아가는 길을 비켜주었다.
"아, 짐도 돌려 줘야지."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압수했던 짐도 돌려줘라. 어차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
빠른 상황 판단과 적절한 조치는 장수의 지름길이지. 우리는 안으로 들어올 때 건네주었던 배낭을 받아 들고 슬쩍 인사를 하고 국회의사당을 나왔다.
"봉은사라."
꽤 유명한 사찰로 알고 있다.
"바로 가야겠죠?"
"그래야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생겼다. 게다가, 최현우가 가평으로 보낸 괴물들이 거기에 우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시간 문제다. 랜드 마크가 머무르는 장소의 위치를 알았으면, 바로 가서 처리해야 한다.
"두 가지 문제가 있겠네."
서울 시 안에 있는 생물들 전체를 주기저긍로 눈이 멀게 만드는 괴물이다. 당연히, 싸울 때 시력은 봉인된다고 봐야 한다. 그게 첫번째 문제이고,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검은 염소가 걱정되는거죠?"
그래, 우리가 랜드 클리어를 시도하려고 하면 곧바로 월드 앵커가 수원에서처럼 서울 시의 랜드 마크에게 힘을 팍팍 불어넣어줄 것이다.
"동시에, 최현우도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렇겠지.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가평으로 보내놓은 괴물들을 다시 서울로 불러들이는 건 무리라고 해도, 서울에 남아있는 괴물들이나 최현우의 하수인들이 봉은사로 향할 것이다.
"길어봤자 15분 정도."
그 이상 싸움을 이어가게 되면 일이 꼬일 것이다. 무조건 그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거기에 덤으로, 피해도 많이 입으면 안된다. 랜드 클리어를 끝내고 나면 최현우의 추적도 피해야 할 테니.
"충분히,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거에요."
일단, 조금 있으면 한 번 더 시야에 어둠이 드리울 것이다. 나와 서지현은 여의도의 수많은 건물들 중 하나에 기어들어가 시야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은 비슷하다. 한강을 타고 쭉쭉 나가다보면 강남구에 도착할 것이고, 강남구에서 한강에서 강남구 삼성동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다.
다시 한 번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충분히 봉은사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착하면 눈이 멀기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남는데. 어차피 우리가 봉은사에서 랜드 마크와 싸우기 시작한지 1시간이나 경과한 상황이라면 이미 그건 글러먹은 상황이니까,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겠지. 이미 한 시간이나 싸우고 있으면 최현우가 서울 안에 있는 괴물들을 죄다 끌고 와서 우리에게 시비를 틀기 시작할 테니까.
어둠에서 벗어나 한강변을 걷고 걸어 마침내 다시 돌아온 강남. 그리고 우리는 봉은사 근처로 접근했다. 사람이 없어야 정상이 사찰, 목탁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독경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나라 말이 아니에요."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의 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언어에는 조예가 깊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 저런 발음을 내는 언어가 있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기묘한 음성이었다. 그런 주제에 또 목청은 얼마나 좋은지 저 멀리에서 울려퍼지는 것 같은 소리지만 또랑또랑하게 목소리가 귀로 빨려든다.
"그래도, 너는 알아 들을 수 있지 않아?"
가슴에 장식해둔 검은색 장미에는 그런 기능도 있다고 들었는데.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입맛을 쩝쩝거리다 대답을 돌려주었다.
"륜락한 사바세계, 효오 독성의 경독은 비량이 개무하리. 뭐, 저한테는 그렇게 들리는데요. 알아 듣겠어요?"
세상에, 한글인 것 같긴 한데... 못 알아 처먹겠네. 저딴 단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또라이도 있나.
"집어 치우자."
뭔 소리하는지 안다고 변할 건 없다. 우리는 그 뜻 모를 말들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봉은사로 들어가는 문을 넘었다. 지도에 따르면 진여문이라고 써져있는 문이었다. 거기를 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 멀리에서 울려퍼지던 독경소리가 딱 멈췄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에, 남아있는 사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찰 인근에는 무너진 건물도 있었고, 외장재가 뜯어져 나가거나 콘크리트 아래에 숨어있던 철근을 드러내는 등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변했는데, 이 사찰 하나 만큼은 누구 하나 손을 대지 않은 모양이다. 혼자서, 시간이 멈춰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찰. 그 점이 다소 기괴하다.
"손님이 온 걸 알아차린 모야이죠."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하지만 지나치게 긍정적인 가설을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리가 들렸던 방향은 저 쪽이었어."
내 말에 서지현이 세워져 있는 안내도를 슥 본 다음에 대답했다.
"대웅전이네요."
소위 말하는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다. 주변이 들썩거리기 시작하고, 바닥에서 뭔가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맙소사, 더럽게 못생겼네."
삐쩍 마른 주제에, 배만 불뚝 튀어나온 기괴하게 뒤틀린 인간의 형태가 대지를 딛고 일어나 우리를 바라본다.
입이 얼마나 작은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입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제대로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녀석들이 끄억, 끄어억.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기괴하게 뒤틀다가, 우리를 향해 비명소리와 함께 달려들기 시작한다. 이것들이랑 놀아 줄 시간 없어.
그리고, 갑자기 미친듯이 시야가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확 어두워졌다가, 갑자기 확 밝아지기를 1초에도 10번 이상 반복한다. 나와 서지현은 녀석들을 무시하고 지나가려다가 입을 쩍 벌리고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눈 앞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인지하는 시작이 프레임 단위로 엉망진창 구겨진다.
"참나... 불교 나이트 같은 건가?"
무슨, 망할 놈의 사찰에서 이런 장난질을 부리고 있는거야.
시야가 어두워지기 전 시각에 남아있던 장면이 어두워졌다 밝아질때까지도 남아있어, 녀석들의 몸에 잔상이 마구 생겨난다. 뭐라고 해야 하지, 다 최적화가 거지같이 되어서 프레임 드랍이 극심한 똥겜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억지로 시각에 의존하는게 더 힘든 느낌이라, 나는 그냥 눈을 감은 채로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주변으로 다가오자, 서서히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수확자를 쥐고 있던 손에서 조금 힘이 빠진다.
"뭐야, 디버프 같은 건가."
녀석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살짝 눈을 뜨고 몸을 바라보자, 내 몸에서 희미하게 연기 같은 것이 일어나서 녀석들의 거의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입으로 빨려들고 있다. 디멘터냐? 누런 눈동자를 빛내며, 껌벅이는 시야 속에서 녀석들이 잔상을 마구 남기며 내 쪽으로 돌진한다.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는 알았다. 호기심을 해결한 나는 다시 눈을 감은 채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제법 날래다.
"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주제에 뭐 이렇게 빨라."
영양실조 걸린 사람같은 몰골을 한 주제에 뭐라뭐라 알 수 없는 신음소리를 중얼거리며 달려드는 꼴은 날다람쥐가 따로 없다. 녀석들의 공격을 피해 뒤로 훌쩍 뛰어오르자, 발에 소나무가 닿는다.
- 배고파, 배고파! 으아아아아! 배고파아아!
한 녀석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렇게 소리지르더니, 몸에서 쉬이익,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맹렬하게 나를 향해 달려든다.
"배고프면 식당 가서 밥을 사먹어 새끼야."
내가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건가. 니 배고픈걸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애초에 니들 입 크기를 생각해보면 물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은데.
"내가 입이라도 활짝 찢어줄까, 조커처럼?"
야, 입 벌려 수술 들어간다. 감고 있던 눈을 뜬 나는 코 앞에 보이는 괴물의 면상 중에서, 거의 바늘만한 크기의 작은 구멍을 노리고 단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바늘만한 구멍에 단검이 박혀들고, 그대로 휘두르자 입이 쫮 찢어졌다.
"입만 작지, 안에 들어 있을 건 다 있네."
찢어진채 너덜거리는 입 사이로 이빨이나 혀 같은 것들이 보인다. 깜박거리는 시선 때문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단검을 한 번 던졌다가 받은 나는 다른 괴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았어, 다음 손님?"
무료로 해주는 의료 봉사야. 눈치 보지 말고 이리 와 친구들. 둘이 하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정도로 기가 막힌 성형 수술이야. 의료보험은 적용 안되니까 걱정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