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눈먼 자들의 도시
내 대답을 들은 녀석이 불쾌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온 이유가 뭔가?"
내가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녀석의 부하로 보이는 녀석 하나가 다가가서는 뭐라고 속삭이자, 안 그래도 꽤나 불쾌한 표정이던 녀석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젠장맞을 꼬맹이 자식, 그렇게 조심하라고 말했건만."
"아이 잘못은 아니지."
우리가 쫓으려고 마음 먹었다면 네가 직접 돌아다녔다고 해도 추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걸.
"그 정보, 출저가 어디인지 궁금한데."
내 말에 녀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우리의 주 수입원이 바로 그 정보다. 남들에게 알려 줄 수는 없어."
"에이, 우리 사이에 왜 그래? 남도 아니고."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그럼 남이지, 혹시 나 아나?"
이제 얼굴 봤으니 아는 사이지. 그 와중에 뒷짐을 진 녀석의 손에서 작게 딸각, 하는 소리가 났다. 뭘까, 만나서 반갑다고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려는 건가. 녀석이 내 쪽으로 다가오면서 한숨을 쉬었다.
"좋아, 알았다고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지. 좋게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있을거야."
나는 녀석의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야 할 이유는 없는데."
내 말에 녀석이 어깨를 으쓱했다.
"협조 해주겠다니까, 이렇게 사람을 못 믿을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는 뭐하러 온 거야. 어차피 내가 한 대답도 믿을 수 없을텐데."
말이야 틀린 말이 아니지만, 글쎄다. 니가 나를 안으로 들여서 이야기를 나눌 게 도대체 뭐가 있는데. 녀석이 내가 땅바닥에 박아넣은 창을 턱짓으로 가리킨 다음에 말했다.
"자네 실력이 제법이라는 건 충분히 알았어. 어쩌면, 우리가 자네를 도와주는 만큼 자네도 우리를 좀 도와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는게 어떻겠나."
부탁할 일이라. 나는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픽 웃었다.
"그런가, 어디 한 번 이야기나 들어보지."
"좋아, 이제 좀 서로 이야기가 되는 군. 따라와."
나와 서지현은 녀석의 뒤를 따라 고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이 근처에서 보이던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녀석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근처에 살았다고 하면 살았고, 안 살았다고 하면 안 살았지."
내 말에 녀석이 하핳, 하는 소리를 냈다.
"비밀이 많은 친구들이군."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교장실 문을 열며 우리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들어가지. 꽤 아늑하게 꾸며놓았다고."
서지현이 나를 슬쩍 쳐다봤다. 주변에 따로 숨어있는 녀석들은 없어 보였다. 고요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서지현이 움직여서 교장실 안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 내가 들어갔다.
"뭐, 술은 양주 정도면 괜찮겠지."
녀석이 그렇게 말하고 서지현을 슬쩍 본다.
"혹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라도 한 잔 줄까."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차보다는 술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녀석이 술을 따르기 시작한다. 나는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며 신경을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뭔가 굉장히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프스스, 하는 물 속으로 가루 떨어지는 소리. 새끼 이거, 시킬 일이 있는게 아니라 먹이고 싶은 약이 있었던 모양이구만. 녀석이 술을 따르는 동안, 나는 서지현의 손목을 잡고 손바닥을 펼쳤다.
"..."
서지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별 다른 말 없이 서지현의 손바닥에 한 글자를 썼다.
독.
서지현이 알아들은 모양인지 표정을 굳힌 다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에, 녀석이 테이블 위에 술이 담긴 잔 세 개와, 땅콩 같은 것이 담겨 있는 작은 그릇을 하나 내려놓았다.
"이야기 나누기 전에, 간단하게 한 잔씩 하고 시작하지."
녀석을 보던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별로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닌데. 내가 간이 좀 안 좋거든."
내 말에 녀석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차라도 한 잔 줄까?"
"내가 차를 안 좋아해서."
녀석이 잠깐 침묵한 채로 나를 바라봤다.
"그럼 물은?"
"내가 원래 물을 안 마셔서."
녀석이 나를 보는 눈에서 점점 뭔가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게 보인다.
"원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독을 탄 술이라면 더더욱 싫어하기 마련이잖아. 게다가 그런 짓을 한 녀석이 타주는 차나 따라주는 물도 먹기 싫은게 당연하고. 아마, 양해해 줄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말에 녀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뻐벅, 하는 소리와 함꼐 녀석의 몸에 내 주먹이 두어 대 정도 휘둘러진다. 나에게 달려들던 녀석이 주먹을 맞고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비틀거린다. 녀석에게 다가간 나는 그대로 어깨 관절을 탈구시켰다.
"으아아아아!"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뒤늦게 무장한 녀석들이 무기를 챙겨서 교장실 안으로 들이닥치려고 하지만, 이미 문은 물론이고 창문까지 죄다 서지현이 만들어낸 화염에 휘감겨 있었다.
"물론 나는 간단한 장난에는 유쾌하게 반응해주는 편이야. 안 그래도 즐길 거리가 많이 줄어든 세상인데, 조금이라도 웃을 일이 있으면 좋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흐읍, 하는 소리를 내며 녀석의 왼팔을 잡았다. 다시 한 번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왼 어깨까지 탈구된다. 녀석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지고,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른다.
"이봐, 일어나. 어이!"
나는 녀석의 뺨을 몇 대 후려갈겼다. 약하게 한다고 했는데도 꽤 힘이 들어갔던 모양인지, 녀석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흐릿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하던 대화 마저 해야지."
내 말에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몸을 부르르 떤다. 서지현이 만들어낸 화염이 교장실을 감싸고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불곷이 흔들거리는 주변의 물건들은 전혀 불에 그을리지 않고 있었다.
"이런, 씨파알..."
녀석이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손으로 녀석의 턱주가리를 잡아 들어올리며 말했다.
"정보, 불어. 너희들은 어떻게 서울에 단체 실명 사태가 찾아오는 시간을 알아내는 거지?"
내 말에 녀석이 내 얼굴에 피가 섞인 가래침을 탁 뱉으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니 깔치 따먹고 있으려니, 앙앙거리면서 알려주던데? 니 아랫도리에 달린거 사이즈가 초소형이라는 것도 저 년한테 들었다!"
"어머, 말 참 이쁘게 하네."
서지현이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에 검지를 빙빙 돌렸다.
"아.. 그으으으..."
녀석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로 양 다리를 오므린채로 덜덜 떨기 시작한다. 양 팔이 탈구되어서 제대로 저항도 못 하는 채로, 녀석이 너무 큰 고통에 제대로 비명조차 못 지르고 있다.
"지현아."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 다리를 오므린채 몸을 덜덜 떨고 있던 녀석이 다시 조금씩 정신을 차린다. 나는 녀석의 가슴팍을 발로 누르면서 얼굴을 들이대고 말했다.
"물어본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해. 니 알주머니에 차 있는 올챙이가 다 구워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씨... 파아아아악?!"
뭐라는 거야. 욕을 할 거면 욕을 하고, 비명을 지를 거면 비명을 질러.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하려고 하다니.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그런 주제에 녀석은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깡따구하고는."
서지현의 수비드 공법을 견뎌낸 녀석은 이 녀석이 처음일거다. 심지어 수비드 공법이 들어간 부위도 굉장히 아픈 부위인데. 아무래도 대답을 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별 수 없지."
이 녀석들은 더 커다란 조직의 지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 지금 이 녀석들이 조직의 본부라면 더 잘된 일이고.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서류를 뒤질 수 밖에."
증인 없다고 재판이 안 열리나? 증인이 없으면 증거를 확보하면 될 일이지. 생각해보면 어차피 증인보다는 증거가 더 중요하잖아. 마찬가지로 이 녀석의 자백보다는 글로 써져있는 서류의 신뢰도가 몇 배는 더 높다. 애초에, 우리를 속이고 교장실 안으로 불러서 독을 탄 술을 먹이려고 한 걸 보면, 이 새끼 입에서 나오는 건 이산화탄소 빼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밖에 있는 녀석들도 쓸어낼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없다. 생각이 변했거든. 나는 바닥에 누워서 신음하는 녀석의 머리통에 수확자를 박아넣은 다음, 창문을 통해 운동장으로 나가며 말했다.
"내가 밖에 남아있는 녀석들을 처리할테니. 학교 안으로 들어온 녀석은 네가 맡아."
"문제 될 거 없어요."
밖으로 나가자 한 대 여섯 명 정도가 나를 보고 당황하다가, 슬금 슬금 도망치려고 든다.
"어딜 가려고."
곧바로 앞을 향해 팔을 휘두르자, 창백한 스파크가 원뿔형으로 쫙 퍼지며 녀석들의 몸을 타고 흐른다. 으브브브븝,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이 몸을 덜덜 떨고, 그 사이에 나는 재빠르게 녀석들의 멱을 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하나가 발악을 하듯이 내 뒤편에서 뭔가를 집어 던진다. 이야, 철봉을 뽑아서 던지네. 힘도 좋아라.
고속으로 날아오던 철봉이 내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방어막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대로 철봉을 발로 차올린 다음 철봉을 잡아 녀석에게 집어 던졌다. 철봉은 그대로 녀석의 배룰 꿰뚫었고, 그러고도 힘이 남아 녀석을 아예 학교 벽에 박아버렸다.
"학생들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나중에 시간 나면 치워버려야지. 나머지 녀석들도 정리를 마치자, 마침 맞게 서지현도 창 밖으로 상반신을 내민채 손을 흔들었다.
"끝났으면 오세요!"
서지현이 잠깐 있다가 픽 웃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 빨리 안오면 지금 제 하반신 쪽에 숨어있는 남자가 저에게 못된 짓을 할 지도 몰라요."
얼씨구. 농담을 해도 꼭 저런 걸 한다니까. 잠깐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곧장 창문을 넘었다.
"네 하반식 아래에 있는 남자... 못된 짓을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에게 독을 탄 술을 먹이려고 했던 이 녀석들의 두목은 꽤 심한 꼴을 하고 서지현의 발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시커멓게 변한 숯 같다. 아까 저 녀석이 나에게 침 뱉으면서 했던 말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사람 좋은 척 하면서 끌어들여서 독 먹이려고 했던 것도 있고. 녀석을 슬쩍 바라본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부터 뒤져볼까?"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우리는 교장실을 뒤지는데 착수했다.
이미 해가 지고, 그 사이에 한 번 더 우리의 시야에 어둠이 드리워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2시간을 포함해서 총 여덟시간이 소모되었다.
우리는 긁어 모은 서류를 살펴본 다음에 머리를 긁었다.
"머무르고 있는 곳은 대충 좁혀지는데. 남산 아니면 여의도. 하지만 남산은 아니겠지."
녀석들은 최현우와는 별 다른 관련이 없다고 추측 중이었지만 방금 전에 싸우면서 거의 확실해졌다. 최현우에게 마크를 받았다면 우리와 싸우면서 변신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봤을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럼 최현우 몰래, 아니면 최소한 자기들은 몰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식으로 이윤을 내고 있었다는 건데. 최현우 코 앞이라고 할 수 있는 남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았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