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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45화 (145/237)

# 145

서울로 가는 길

나와 서지현은 녀석들을 끌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 여기에서 물어보시지."

나는 김용천의 말에 히죽 웃었다.

"좀 프라이빗한 질문을 할 생각이라서."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용천을 바라봤다.

"예를 들면 오늘 입은 팬티 색깔 같은 거요."

서지현의 말에 김용천이 허어, 하는 소리를 냇다. 서지현은 픽 웃고는 김용천에게 다가가서 턱짓으로 이시은 가리키며 낮게 말했다.

"이시은 양에게 한 번 물어보지 그래요? 알려 줄 지도 모르는데."

이시은이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입을 쩍 벌렸다.

"아으, 어으... 미쳤어?!"

미쳤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아으 어으는 뭐냐. 서지현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시은을 보다가 픽 웃고는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와서 포로들을 슥 훑어봤다.

"적당히 놀리기도 했으니, 이제 이것들 데리고 가죠."

그러자. 나와 서지현은 포로들을 질질 끌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 중에, 서울 들어가 본 녀석 있나?"

내 질문에 녀석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라니까. 나는 녀석들 중 하나의 머리를 잡고 쇼크를 걸었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녀석의 머리통을 구워버린 다음, 남아있는 포로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서울에 가본 친구가 필요해. 그리고 그런 친구는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내 말을 들을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녀석들 중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선착순이라는 뜻이에요. 서울에 가본 사람 하나. 그 사람은 살아요. 나머지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녀석의 뺨을 쓰다듬었다. 서지현의 손이 닿자 녀석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서지현의 손이 쓰다듬은 곳을 따라 그녀 손 모양의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는다.

"지금부터 한 명 씩 끌어내서 이야기를 들을거야. 그리고, 서울을 가본 적이 있는 녀석이 나오면 나머지는 그 즉시 죽게 된다."

내 말에 한 녀석이 으으으, 하는 소리를 내고 우리를 노려봤다.

"너희들이 생존자들의 리더도 아닌데, 그럴 권한이 있을까?"

"멍청한 질문이군."

귀여운 자식, 하는 말 보게. 나는 녀석을 바라보다가 픽 웃고는 전기에 머리가 구워져서 쓰러진 시체를 들어올렸다.

"이건 살아있는 걸로 보이나?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녀석들을 다 산채로 나무 기둥에 묶어서 굶겨 죽여도 아무도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못해."

말을 마친 나에게 질문을 던진 녀석에게 시체를 툭 하고 던져준 다음에 말했다.

"제일 앞 줄, 가장 오른쪽에 있는 녀석부터 시작하지."

말을 마친 나는 녀석의 옷깃을 휘어잡고 끌고 가며 히죽 웃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취업 면접 본다고 생각해."

아, 이러면 더 부담이 되려나. 녀석을 끌고 구석으로 간 나는 머리를 툭 친 다음에 말했다.

"난 서두르는 편을 선호하는데."

내 말에 녀석이 침묵한 채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서울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다."

나는 그 말에 히죽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 넌 올바른 선택을 한 거야."

이제 아는 걸 다 불어봐. 도대체 거기는 어떤 상황인지 한 번 들어나 보자.

"안으로 들어서면, 주기적으로 눈이 먼다."

나는 녀석의 말을 듣고는 하, 하는 소리를 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눈이 먼다니. 진짜로 먼다는 소리는 아닐 거 아니야."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서울로 진입하면 안전지대로 도착하기 전까지는 하루에 다섯 번, 2시간씩 눈이 멀어. 새벽, 낮, 오후, 일몰 직후, 마지막으로 밤."

기가 막히는군.

"언제 눈이 머는지, 정확한 시간이 필요한데."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항상 바뀐다. 재수가 없으면 새벽에 눈이 멀었다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낮이 찾아와서 네 시간 연속으로 눈이 멀어있는 경우도 있어."

"괴물들도?"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괴물들은 눈이 머는게 아니라, 눈이 멀었을 때 공격을 해올거야. 최현우가 만들어낸 괴물이 아니라 원래 랜드마크가 생길 떄 부터 존재하던 괴물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볼 수 없다는 걸 잘 활용하지. 상대하기 까다로울거다."

아, 그러셔? 어쨌든, 2시간씩 다섯 번 눈이 멀면 다 합치면 하루에 10시간은 장님이 된다는 뜻이군.

"최현우는 어디에 머무르고 있지? 안전지대?"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연합장은... 남산에 머무르고 있다."

남산? 나는 그 말에 하, 하는 소리를 냈다. 성북동에 있는 자기 집은 버려두고 난데없이 남산으로 왜 간 거야.

"자세하게 말해봐. 거기가 안전지대인 거냐?"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안전지대도 아닌데 남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니. 뭐, 어차피 괴물 편에 붙어먹기로 했다면야 서울의 패널티라고 할 수 있는 간헐적 시각 상실에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N 서울 타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나도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어. 소수의 인원만이 출입을 허가받는다고 들었어."

나는 그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소문 정도는 들어봤을거 아니야."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면 타워라고 할 수도 없겠군. 원래 타워가 자리잡고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검은색 돔이 자리잡고 있다고 들었다. 재질이 굉장히 튼튼해서, 부수는 건 불가능 할 지경이라고 하던데."

돔이라. 그 국회의사당 위에 올려져 있는 녹색 지붕 같은 건가.

"입구는?"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저었다.

"해당 장소를 감싸고 있는 돔에는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없어."

나는 그 말에 얼굴을 약간 구겼다. 입구가 없다니. 녀석이 묶인 채로 땅을 한 번 툭 치고 말했다.

"남산 1,2,3 터널. 셋 중에 하나에 N 타워로 통하는 길이 숨겨져 있을거다."

나는 그 말에 픽 웃었다.

"확신하는 이유가?"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남산이 어떤 모습인지 두 눈으로 확인할 기회가 있으면 알게 될 거다. 물론, 그 전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 보면 바로 알 거라고 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뭐, 거짓말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녀석만 나에게 서울에 대한 정보를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다른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 녀석과 비슷한 말을 하면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한게 아니라는 건 증명된다.

"좋아, 그럼 다음 질문, 랜드 마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은데."

"... 정말 지독하게 캐내는 군."

나는 그 말에 픽 웃었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너 말고도 말할 녀석들은 썩어나니."

내 말에 녀석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랜드 마크에 대해서 아는게 많지는 않다. 천으로 눈을 가린 더러운 노인이라는 정도."

저런, 아는게 많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겉모습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수준인데.

어디에 머무는지, 머무를 때는 뭘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 지 같은 구체적인 대답을 기대했는데. 뭐, 어쩔 수 없겠지.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녀석들도 하나씩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략적으로 일치했다.

몇 시간 뒤, 조사를 마친 나는 잠깐 녀석들을 훑어봤다. 녀석들의 눈에는 작은 희망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살려 둘 수는 없다. 서울에 갔는데 다시 성남에 머무른다는 건 최현우로부터 표식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최현우가 그 표식을 가지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이다. 굳이 올릴 필요도 없는 폭탄을 차에 싣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야기는 잘 들었다. 하지만 풀어줄 수는 없지. 여기에서 모두 죽어줘야 할 것 같아."

내 말에 녀석들의 눈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분노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 개같은 새끼."

나는 그 말에 입맛을 다셨다. 개새끼라.

"성남에 있는 생존자들을 고치 안에 집어 넣어서 생식기 말고는 아무것도 남게 하지 않은 녀석들이 하기에는 좀 웃긴 대사인데."

내 말에 녀석들이 외쳤다.

"우리는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맞아, 히틀러 아래에서 일하던 나치들도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 자기들은 명령 받아서 한 일이고, 원해서 한 일이 아니고 어쩌구 저쩌구.

"괜찮아 자식들아. 어차피 우리도 사실 뭐 니들이 나쁜 일 해서 벌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뭐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남들 잘못까지 판단해서 죽이고 살리고를 결정하겠어. 그냥, 해야 해서 죽이는 것 뿐이다. 수확자를 뽑아 든 나는 녀석들 얼굴을 슥 훑어봤다.

"영화 대사였었나. 나쁜 사람 착한 사람의 판단은 신이 하는 거라고 하던데."

그리고, 한 녀석의 목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우리 역할은 신이 빨리 판단하실 수 있도록 후딱 올려보내주는 거고."

정리가 끝났다. 나는 칼을 한 번 크게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남아있는 장밋빛 궤적이 사라지기를 기다린 다음, 칼집 안에 수확자를 밀어넣었다. 서지현이 머리를 긁었다.

"간헐적 맹인이라니. 곤란하네요."

그러게, 지금부터 눈을 감고 살면서 적응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나는 귀가 좋으니까 어떻게든 된다고 쳐도."

감각 능력치는 눈만 좋아지게 만드는 건 아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는 대충 알아 차릴 수 있다. 눈을 뜨고 있을 때 처럼 정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행동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지는 않을거다.

문제는 서지현이지. 내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마력을 활용해서 주변을 파악하면 될 테니까. 자주 해본 일이 아니라서 익숙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시각의 보조 느낌으로 사용하는 수단이었지만..."

서울로 진입해서 2시간 동안 눈이 멀게 되면 우리는 눈 말고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 주변을 파악해야 한다. 시각이 없어지면 지도를 볼 수도 없으니,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가능한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거다.

"정작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건 랜드마크인데, 오히려 최현우의 위치를 더 확실하게 특정지어 버렸네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랜드 클리어를 먼저 완수해야 한다. 최현우 녀석을 잡기 위해서 한창 싸우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지부장 녀석의 시체도 한 번 살펴볼까?"

물론 시체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시체에서 뭔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다못해 녀석의 사무실에 남아있는 서류 정도라도 확인할 수 있겠지. 나와 서지현은 곧장 유성천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녀석의 사무실로 향했다.

"... 어우"

나도 그렇고 서지현도 그렇고, 시체는 꽤 많이 봐왔기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지현의 입에서 어우, 하는 소리가 나왔다.

참 끔찍하게도 죽었다. 오공분혈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게 이 시체가 아닐까. 그 시체를 살펴보던 나는 시체의 머리를 한 번 툭 쳐봤다. 머리에서 통. 하는 맑은 소리가 들린다.

"뇌가 없는데."

두개골은 멀쩡하지만 안에 내용물이 하나도 없다. 서지현이 녀석을 살펴보다가 내 쪽으로 뭔가를 보여주었다.

"... 이거 봐요."

녀석의 손등에는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최현우가 새겨넣은 표식인 모양이네."

제르멩이 우리에게 새겨넣었던 표식은 시커먼 X자 모양이었다. OX라. 제르멩이 일부러 노리고 한 짓일까. 그 자식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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