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서울로 가는 길
고무에 떠오른 흉측한 얼굴들이 내 살점 한 번만 먹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며 달려든다.
"저 풍선들은 네가 처리해줘."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옆으로 확 털었다.
화염에 닿은 풍선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하고, 풍선에서 튀어나온 날카로운 이빨들이 나를 노리고 딱딱 부딪친다. 녀석들을 요령 좋게 피하면서 삐에로에게 도착하자, 녀석이 연기와 함께 사라진 다음, 옆에서 단검을 내지른다.
내 목줄기를 노리고 서서히 다가오는 단검. 하나 둘, 박자 맞춰서 검을 휘두른다. 수확자에 속력이 확 붙었다. 자신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오는 수확자를 확인한 삐에로가 공격을 멈추고 그대로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 혹시 주변에서 튀어나오나 싶어서 살펴봤는데...
저 멀리에서 계속해서 연기로 변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저 멀리 순간이동으로 도망치는 녀석의 모습이 보인다. 아예 마음 먹고 도망치려고 하면 따라잡기가 힘들 정도다. 저래버리면 어쩔 수가 없지.
"이야, 저게 살아가네."
모자에서 풍선 쏟아낼 떄 부터 알아봤다. 잘가라. 또 오지 말고.
결국 이 싸움에서 나름대로 적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었던 것들은 전부 죽거나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수원의 생존자들과 싸우고 있던 수도권 연합의 사람과 괴물들도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야, 여기에서 다 잃어버리면 진짜로 다음이 없으니까. 어차피 지금도 딱히 미래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쫓자."
우리 입장에서는 저 녀석들에게 다음이 없을수록 좋다. 나와 서지현은 도망치는 녀석들의 뒤를 쫓아가며 검을 휘두르고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만, 제발 그마아아안!"
도망치던 녀석 중 몇 놈이 적의를 잃고 그렇게 외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지. 뒤편에서 그 소리를 들은 이시은이 매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말귀 알아듣는 녀석들은 무기 버리고 양 손 들어!"
아, 받아 줄 생각인 모양이네. 여기는 그럼 이시은을 비롯한 사람들이 상황을 정리 할 수 있도록 바톤을 넘기도록 하자. 나는 계속해서 도망치는 괴물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그리고 너도 죽어."
어깨에서 뽑아낸 단검에 쇼크를 두르고 던지면서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며 달리기 시작하고, 내 위에서는 연신 폭음이 터져나가며 서지현이 하늘 위를 날며 아래로 폭격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서지현의 폭격이 지나가고 나면 괴물들은 보통 둘 중 하나다.
죽었거나, 어디 몸에 불편한 부분이 생겼거나. 그럼 나느 그 뒤를 쭉 따라가면서 죽은 애들을 불쌍하게 생각하며 애도 해주고, 몸이 불편해진 녀석들은 마침내 육신의 굴레를 벗게 해주는 충실한 선행을 베푸는 중이었다.
"이거, 완전히 기계나 다름 없는 녀석들이잖아."
검은 염소가 찍어내듯이 만들었던 과자들도 제대로 된 지성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지만... 이것들은 더 심하다. 지금 후퇴 명령이 내려진 상태여서 그런지 녀석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들의 고향 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느낌은 무슨 토끼를 몰이 사냥 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정작 영양가는 없네요."
"그러게 말이야."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 시장에서 파는 공갈빵보다 더 한 녀석들이다. 이렇게 허우대가 멀쩡한데 잡아도 도통 레벨이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나와 서지현의 레벨이 높아서 필요한 경험치가 많은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요 며칠 사이에 잡은 괴물을 쌓아놓으면 동네 뒷산 정도는 하나 쌓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레벨이 하나도 안 오르지. 심지어 서지현은 방금 전에 내가 몰래 넘겨준 참령으로 일종의 보스급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나불거리는 아가리도 잡았잖아.
"뭐, 그 알에서 태어나는 것들은 원래 경험치를 안 주는 모양이지."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 없다. 안 주면 안 주는거지. 왜 안주냐고 불만을 가져봤자 변하는 건 없는 법이니까. 인생에 뭐 열심히 했다고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 다 그렇게 아쉬운 거 참아가며 사는거지.
쏟아지는 불꽃들, 그 뒤를 쫒는 칼질. 그렇게 도망치는 괴물들의 뒷꽁무늬를 쫓아가며 우리는 부지런히 괴물들을 갈아버렸다.
"그래도 한 50마리 정도는 돌아가는데 성공한 것 같네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50마리라. 수원으로 들어올 때 숫자를 생각해보면 그 정도 살아서 돌아갔다는 건 그냥 아무것도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동하자."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나를 보고 이내 눈을 크게 뜨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돌아가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서지현이 멍하니 내 등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등, 안 아파요?"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계속 아프네."
어디에 쓸리기라도 한 건가. 내 말에 서지현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등에 그 화상, 언제 입은거에요, 꽤 심한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에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손거울을 이용해 내 등을 확인했다.
"이게 뭐야."
참 넓게도 화상을 입었다. 아예 모른채로 괴물들 뒤를 쫓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고통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입은 상처인지 모르겠네.
"폭죽."
그러고 보니 그걸 등에 후려맞은 기억이 있기는 하다.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이건 이기고도 진 기분인데."
이제는 어지간한 수준의 랜드 마크도 클리어 하는데 큰 문제점이 없을 정도로 강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다니.
최현우가 그런 녀석들을 몇 마리나 가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만약에 서울에 진입했는데 그런 녀석들이 한 백 마리 정도 기다리고 있다가 환영 파티 열어주면 즐거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게 되지 않을까.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인거죠. 돌아가요. 화상이 덧나면 답도 없어요. 그때는 진짜 포션 사서 발라야 하는데. 이런 것 때문에 상점에서 포션을 사는 건..."
그래, 여기에다가 포션을 스는 건 포인트를 시궁창에 버리는 셈이다.
어쩔 수 없지. 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가서 다 잡아 족치는데 성공해도 그 뒤에 남아있는 구역 안의 생존자들을 통제해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정도 화상이라면... 상처 씻어내고, 소독 한 다음 항생제 연고 정도를 바르면 충분할 거에요."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배낭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서 상처를 처리했다.
"끝, 이제 돌아가죠."
나와 서지현은 곧장 쇼핑몰로 복귀했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밝았다. 당연히, 이번 승리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으니 이렇게 밝아 질 수 있는거다. 최소한, 이제 죽지 않으려고 싸우는 단계는 넘어가게 되었다.
"형님, 혹시 뭐 술 같은 건 안 없습니까? 이렇게 좋은 날에."
몇 녀석이 김용천에게 활달한 목소리로 말하자, 김용천이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곧장, 옆에서 이시은이 고개를 저었다.
"어림도 없어. 재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정 먹고 싶으면 직접 담궈서 내년 이 맘 때 쯤 먹어. 세상이 망한지가 언제인데 즐거운 일만 생겼다 하면 술을 챙겨먹으려고 들어?"
단호하고 차가운 한 마디에 김용천과 음주 교섭을 시도하던 녀석들이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래, 뭐 이시은이 사람들 제안 중에 들어 줄 가치가 없는 걸 단칼에 쳐내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지.
"엄청 매운 닭발이랑, 쿨피스 같은 조합이네요."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서지현의 평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가 매운 맛을 확 부리면 콜피스가 와서 달달하게 식혀놓고. 애들이 쿨피스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달려들면 갑자기 닭발이 나타나서 매운맛을 확 끼얹어 버린다.
이시은이 나와 서지현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 둘은 먹고 싶으면 먹어도 괜찮아. 필요하면 말해, 보내줄테니."
뭐야 그건. 고생했다고 특별 대우라도 해주겠다는건가. 이시은이 내 표정을 보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이천에서 도움이 온 당일 안 먹었잖아. 뭐, 특혜 같은 건 아니야. 은행에 저축한 돈 꺼내서 쓰는거랑 비슷한 거지."
그렇게 말하니 또 말이 되기는 하네. 준다고 하면 거절 할 생각이야 없지만... 서지현이 대답했다.
"오늘은 못 먹어요."
등짝에 화상 입은 녀석이 술을 퍼먹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 어디 다쳤을 때는 술은 냄새도 안 맡는 편이 좋다.
이시은이 그래? 라고 대답한 다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적당히 양을 덜어내서 숙소 쪽으로 보낼테니까, 먹고 싶을 떄 알아서 챙겨 먹어."
말을 마치고 나서 잠깐 나를 바라보던 이시은이 서지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삼계탕 보내줄테니, 챙겨 먹어둬. 잘 먹어야 빨리 나을 거 아니야."
삼계탕? 서지현이 그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시은이 픽 웃고는 말을 덧붙였다.
"그 뭐였지, 팩으로 된 거."
아, 그거? 하긴, 그런 식으로 조리해서 팩에 담아 파는 건 아직 먹을 수 있겠지. 쇼핑몰이니까 찾아보면 그런 것들은 얼마든지 있었을테고.
"아참, 피곤할 텐데. 그래도 이야기를 들어두고 싶은게 있어."
나는 이시은의 말에 김용천을 슥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은 괜찮아. 어디 사는 김 모씨 처럼 자는 중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 보다 삼천배는 좋지."
내 말을 들을 김용천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까. 화를 낼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할 생각이야? 물론, 최종적으로는 지금 취약해진 세 도시를 모두 흡수해야겠지만... 오늘은 이미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정도로 늦은 시간이니 어쩔 수 없어도. 내일 아침에는 출발해야 할 거 아니야."
이시은의 말에 나는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성남 또는 안양을 생각 중인데."
내 말에 이시은이 음, 하는 소리를 내고 고민하다가 말했다.
"나는 성남 시 쪽이 좋다고 생각해."
서지현이 이시은의 의견을 듣고 대답했다.
"거리는 안양 쪽으로 가는 편이 더 빠를 텐데요."
"맞아, 하지만... 성남을 거쳐 서울로 진입하려면 성남시의 중앙을 통과해야 하잖아?"
그에 비해 안양은 그렇지 않다. 서울로 가고 싶다면 안양의 외각을 슬쩍 거쳐서 과천을 통과해 진입하게 된다.
"어차피 한 곳은 확실하게 점령하는 편이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도시 외곽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 보다는 확실하게 도시 중앙을 통과해 지나가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건가.
"그럼 그렇게 하지."
내 말에 이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사람들에게는 주지시켜 놓을게."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나와 서지현은 숙소로 올라갔다. 우리가 머무르는 곳으로 잠시 뒤에 보내진 물건은 소주와 삼계탕이었다. 나는 그걸 확인하고 나서 곧바로 말했다.
"나중에 먹자."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죠?"
맥주도 아니고 소주랑 삼계탕을 따로 따로 먹을 수는 없잖아. 햄버거 세트 시켜서 햄버거만 먹고 감자튀김은 내일 아침에 먹는 거랑 비슷한 행위다. 어차피, 배는 그렇게 고프지도 않으니까. 우리는 대충 몸을 닦아낸 다음에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
"그 최현우라는 녀석의 집은 어디에 있어요?"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성북동."
죽일 예정이었으니까,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았었다. 당연히, 8년 지난다고 조사했던 내용을 까먹을 정도로 물러터진 증오도 아니고.
"저택에 건물이 4개 있고, 넓이는 약 3000평 정도. 저택 안에 자체적으로 발전기 같은 것도 갖추고 있는 걸로 알아."
당연히, 그 저택 안에 필요한 전기는 그걸로 전부 공급 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하, 하는 소리를 내고 이불을 끌어올려 입가를 가린다.
"전기라, 혼자 종말 이전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네요."
뭐, 세상이 망하고 나서 다들 평등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더럽게 부유했던 자식들은 우리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는 모양이지.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이 있잖아. 어차피 내 손에 죽을테니 3대까지 더 먹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그응, 그응 하는 코 고는 소리가 낮게 들린다. 자기가 말 걸고는 자버리다니. 피곤했나보네.
이렇게 끝날 밤이 아니었던 것 같은 기분인데. 뭔가, 조금 더 즐거운 밤이 될 거라고 기대했었던 것 같은 기분인데.
어쩌겠어,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