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알 사냥
녀석은 우리를 활로 겨눈채 입을 열었다.
"네 놈들이었군 그래, 수원에서 사람 성격 긁던 개새끼들이."
저런, 아가리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그래, 우리다. 수원에서 개새끼들 성격 긁던 사람들이. 활 좋은데?"
새하얀 날개 한 쌍을 이어붙여 활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물건이다. 천사가 쓸 것 같은 활인데, 주인이 개새끼네. 장비가 슬퍼하겠어.
니들이 개새끼지 왜 우리가 개새끼냐. 멀쩡한 사람들을 생식기만 남겨놓고 죄다 녹여서 마물 생산하는 공장으로 만들어버린 주제에 지가 사람이란다. 어이가 없네. 녀석이 내 말에 픽 웃고는 중얼거렸다.
"수도권 연합 성남 지부에 잘 왔다. 이제 죽어."
말을 마친 녀석이 꽤 빠른 속도로 화살을 쏘아붙이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씽씽거리는 맑은 소리를 내면서 나와 서지현을 향해 하얀 빛살이 쏟아진다. 한 방 한 방에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지, 위력은 아까와는 다르게 그럭저럭인 수준이다.
하지만 저거랑 놀아 줄 수는 없지. 딱 봐도 저 녀석이 성남의 최고봉인 모양인데. 물론 상대해서 제거하거나 생포 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저 녀석과 함께 달려들고 있는 괴물과 졸개들의 숫자가 썩 부담된다. 오늘은 성남시의 괴물 공장을 부수는 데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지현아, 지지야. 무시하자."
"알았어요. 저런 거랑 놀면 나쁜 버릇 들겠죠?"
서지현은 녀석이 쏘아내는 화살을 방어막으로 막아내고, 나는 날아오는 화살들을 튕겨내거나 피하면서 계속 이동하기 시작했다.
"..."
갑자기, 녀석의 공격이 확 멈췄다. 이건 수상한데.
"조심해요."
"너도."
녀석이 나를 향해서 화살을 날렸다. 시간이 느려지고, 날아오는게 보인다. 갑자기 공격을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면 강한게 날아오는 법이지. 나는 살짝 긴장한 채로 그 화살을 살피며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크흑?"
작은 구멍이 만들어지고, 화살이 그 구멍 안으로 쑥 들어간다. 그리고, 갑자기 발목에 느껴지는 통증. 발목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내가 확인 할 수 있었던 건, 화살 바로 뒤 편에 만들어져 있던 또 다른 작은 구멍이었다. 뭐야 이건, 화살이 공간이동이라도 하는 건가.
"젠장맞을 새끼. 조준 유도가 안 먹히니 정타를 먹이질 못하네."
녀석이 발목에 화살을 얻어맞은 나를 보고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서지현이 그런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놀라는 대신, 곧장 손을 뻗어 나를 감싸안은 채로 계속 달리기 시작한다.
"꽉 잡아요!"
서지현이 그렇게 외치고는 발을 한 번 크게 구르자, 그녀의 발뒤꿈치 뒤에서 폭음이 터져나오며 확 하고 가속도가 붙는다. 나는 서지현에게 안긴 채로 발목을 꿰뚫고 박힌 화살을 뽑아냈다. 젠장, 이게 그냥 길거리 뒤져서 찾아낸 신발도 아니었는데 그냥 꿰뚫어 버리다니.
배낭 안에서 포션을 찾아 꺼낸 나는 곧바로 그 액체를 발목에 쏟아넣었다.
"조심해, 저 자식 화살을 순간이동시켜."
정확히 말하자면 작은 웜홀 같은 걸 만들어서 거기로 통과시키는 모양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한 번 더 할 것 같은데요."
그래, 공격이 또 멈췄다. 나를 맞추기 힘드니 서지현을 노릴 생각인 모양이다. 나는 서지현에게 안긴 채로 눈을 부릅뜨고 단검 한 자루를 어깨에서 뽑아놓은 채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활시위가 당겨진다. 나는 활 끝에 걸린 화살을 바라보다가 힘껏 단검을 던졌다. 하얀 빛살처럼 쏘아진 화살이, 내가 미리 던져둔 단검에 맞아 궤도가 확 틀어진다. 원래 화살이 지나갈 예정이었던 경로에는 작은 구멍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화살이 그 구멍으로 날아가는데 실패했다.
"역시."
저 구멍 안으로 못 넣게 하면 되는 거군. 성가신 새끼.
"마법 같은 거 같은데. 마력은 안 느껴져?"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녀석이 가진 스킬이거나..."
아니면 저 근사해보이는 날개활이 가진 옵션이겠지. 딱 봐도 랜드 클리어 하고 얻은 물건 같아 보이는데.
"친구야, 하나만 물어보자!"
내 말에 녀석은 대답하지는 대신에 다시 활을 쏴붙이기 시작한다. 문제 없다. 어차피 언제 단검을 던져야 하는지 대충 타이밍은 감을 잡았다. 게다가 어차피 순간이동 화살을 쏘기 전에는 공격을 한 동안 멈추니까. 지금 와서는 다시 그 공격에 당하지 않는다.
"그거 너 죽으면 못 쓰게 되는거냐?"
이전에 어떤 사이비 교주 새끼가 사용하던 창은 주인을 가리던데. 네 물건은 그런게 아니었으면 좋겠어. 꽤 유용해 보여서 기회가 되면 나도 한 번 써보고 싶거든.
녀석은 당연히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싸늘하기는.
"좋아, 하나 더 찾았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건너편 건물 옥상 위에 만들어져 있는 고치를 향해 훌쩍 뛰어오르며 외쳤다.
"지현아. 너는 그대로 쭉 직진하고 있어, 금방 따라갈게!"
"넵!"
서지현이 먼저 가고, 나는 옥상에 착지한 나는 그대로 쭈욱 미끄러지면서 수확자에 쇼크를 걸고 고치 안에 박아넣었다. 파파팍 하는 소리와 함께 튀는 창백한 스파크, 그리고 고치가 익으며 흘러나오는 역겨운 연기와 냄새.
"그 이상 파괴 하게 둘 것 같냐!"
녀석이 다시 공격을 멈추고 서지현을 노려본다. 어차피 나는 제대로 맞출 수 없으니, 일단 쏘기만 하면 제대로 원하는 장소로 화살을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서지현을 노릴 생각인 모양인데.
"어딜."
구멍에 못 넣도록 하는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건 알았다. 그렇다면 저렇게 열심히 집중하고 있을 때 방해하는 건 어떨까. 순식간에 만들어진 장밋빛의 궤적이 녀셕에게 쉐도하고, 녀석이 결국 서지현에게서 시선을 치우고 나를 노려본다.
"이... 자식이이!"
"흐흫. 야, 삐졌냐?"
나는 놀리는 것 같은 말과 함께 약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밀어넣고 녀석에게 몇 번 흔들어준 다음에 앞서가고 있는 서지현과 합류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우리는 더 성남시에서 괴물과 화살을 피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뭐 하냐, 놀고 있을 거냐?! 구속 마법은 어디에다가 팔아먹었어?'
그 외침에 서지현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제발 써주세요. 절 묶어주세요. 구속 마법 좋아요. 해주세요. 지금 바로."
서지현의 간절한 애원이 하늘에 닿아, 녀석들이 우리를 구속하기 위한 마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서지현이 곧바로 아싸, 하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뻗었다.
"좋았어. 이제 내꺼."
멀쩡하게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반투명한 쇠사슬이나 나무 덩굴 같은 것들이 갑자기 방향을 확 틀어서 녀석들을 묶어버린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사람을 봐가면서 써야지. 결국 구속 마법 같은 것도 안 통하니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부지런히 우리 뒤를 쫒아다니는 것 말고는 없었다.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이런 기분이려나. 약 2시간 뒤, 나와 서지현은 서른 두 번째 고치를 부수는데 성공했다. 저 멀리에서 여명이 밝아온다. 이제 슬슬 빠질까.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마침내 우리를 뒤쫒고 있던 녀석들의 규모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뭐 대단한 분 행차하셨다고 200마리나 따라붙었던거야."
더럽게 많네. 부끄럽게시리. 서른 두 개라고 하면 거의 절반 이상은 부순 것 같으니.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잘 있어 얘들아. 우리 또 보자, 꼭!"
나는 그런 말을 남긴 채 서지현과 함께 다시 수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수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분당 쪽을 통과해야 한다. 고치들이 자리잡고 있는 구역을 넘어 분당구 쪽으로 들어서니 이제 막 일어난 사람들이 멍하니 나와 서지현, 그리고 그 뒤를 쫒는 무리를 바라본다.
그 와중에 다시 날아오던 화살이 뚝 멈춰있었다. 또 화살 순간이동 시키려는 거지?
슬쩍 뒤를 돌아본 나는 타이밍에 맞춰 단검을 날렸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아가던 화살이 단검을 맞고 궤도가 뒤틀려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데 실패했다.
"으아아아아!"
나는 놀리는 것 같은 어투로 한 마디 던져주었다.
"어떡해... 진짜 열받겠다."
내가 봤을 때는 저 녀석 저거, 지금 혈압약을 먹어두는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분당을 달리고 달려, 우리는 마침내 녀석들의 구역을 완전히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녀석들은 수원까지 우리를 쫓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200마리 가지고는 한참 부족한 전력이니까.
도주를 멈춘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나서 말햇다.
"역시, 운동은 밤 운동이 최고지. 아, 재미있었다. 야식 먹을래?"
"이 시간이면 아침 식사인걸요."
그런가, 그럼 아침 먹지 뭐.
수원으로 도착하자, 곧바로 이시은이 우리를 찾아왔다.
"고생했어."
나는 수원시 한 쪽에 놓여있는 것들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쌓여있는 백지는.
"이건 다 뭐야?"
내 말에 이시은이 엄지를 척 올리고 나서 말했다.
"성남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파악한 정보는 우리도 확보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썩 행복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더라."
그야 그렇지.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회복하기 전까지는 방어에 참가 할 수 없으니까. 대신 뭔가 다른 일을 시키려고. 여기에다가 성남시 안의 생존자들에게 보낼 메세지를 적을거야."
아,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잠깐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삐라?"
내 말에 이시은이 픽 웃었다.
"그 표현도 썩 괜찮네. 그래, 삐라. 어차피 두 사람이 계속해서 수원 인근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그 사랑의 집인지 뭔지 하는 것들을 부순다면 안에 있는 생존자들도 궁금증이 생길거 아니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 궁금증을 파고 들어 삐라를 뿌리겠다는 건가. 나쁜 생각은 아니다. 우리가 성남에서 크게 한 번 논 다음 수원으로 돌아 올 떄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봤으니까.
"그래서 뭐, 도망치는 길에 뿌리기라도 해달라는 건가?"
내 말에 이시은이 대답했다.
"힘들 것 같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건 아니고. 그것도 재미있겠네. 그런 문구도 좀 넣어보지 그래. 지금 가입하면 사은품 증정!
"그나저나 아픈 사람들까지 부려먹으려 들다니."
내 말에 이시은이 대답했다.
"할 수 없는 일을 시키는게 아니잖아. 아픈 사람도 회복을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어."
그래, 알았다. 나한테 피해가 가는 일도 아니니까.
"나랑 지현이는 아침 먹고 잘거야. 어지간히 급한 상황 아니면 깨우지마."
설마 이천에서 사람까지 추가로 왔는데 또 못 막아서 밀리고 그러지는 않겠지. 나는 약간 피곤한 눈을 하고 서지현과 함께 우리 방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스파게티?"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조금 많이 만들어 주세요."
사실 파스타라고 해도 뭐 신선한 토마토를 쓸 수는 없다. 그냥 시판되는 소스에다가 파스타 면을 비비는 거니까. 스파게티는 금방 완성되었고,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곧장 이불을 펴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