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알 사냥
죽다가 살아난 사람들은 기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죽다가 살아나는 과정에서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몰랐을 것이 분명한 이천의 생존자들이 도움을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술 한 잔이 없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밤이겠지.
그래서 수원시에 머무르게 된 생존자들은 간만에 술과 밥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남들 쉴때 일하는게 진짜 자증나는 일이라고들 하지만, 나와 서지현은 수원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이동하는 중이었다.
"피곤하지 않아?"
내 말에 서지현이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피곤하죠. 마음 같아서는 그냥 돌아가서 당신 끌어안고 잠이나 자고 싶은데. 우리가 지금 밤마실을 나온 건 아니니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온거다.
"집중해서 해결하고, 빨리 돌아가서 쉬자고."
"그러죠."
안양이나 안산에 탐색을 나간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성남시로 보냈던 사람들은 돌아와서 우리에게 정보를 전달해줬다. 녀석들이 괴물을 찍어내는 사랑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몬스터 주식회사는 중원구에 모여있다. 오늘 우리가 목표로 잡은 장소는 거기다.
"아주 그냥, 쇼핑몰 안에 있던 식량이라는 식량은 다 꺼내서 먹어 치울 기세던데요. 아까 스파게티 삶는 거 보셨어요? 아주, 대야를 꺼내놓고 삶더라고요. 게다가 스파게티용 소스를 무슨 상자 단위로 꺼내서는..."
뭔가 좀 아쉬운 모양이네. 하긴, 서지현이 식탐은 제법 있는 편이니까. 먹고 싶은게 많은데 위가 작아서 슬픈 짐승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것 같다.
"돌아가서 파스타 해줄게."
이야기를 나누고 잇으려니 서서히 성남시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괴물이다."
우리는 곧바로 길 옆으로 몸을 숨겼다. 싸우면 당연히 이기지만, 싸우고 싶어서 성남까지 온게 아니다. 괴물이랑 싸우는 건 몇 시간에 걸쳐 수원에서 아득바득 싸운 걸로 충분해. 터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침을 뚝뚝 떨어뜨리던 괴물 몇 마리가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
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바로 서지현도 나를 따라서 움직인다. 우리의 목적지인 괴물 생산 공장이 성남의 남쪽인 분당에 있었다면 더 빠르게 도착 할 수 있었을텐데. 천상 고속도로를 타고 분당을 넘어 쭉 올라가야 한다.
"저거에 걸리면 재미는 없겠는걸요."
커다란 눈알 덩어리가 검은 점액질에 휘감긴 채로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중이다. 눈 안에다가 LED 스탠드라도 쑤셔 박아놨는지 자체 발광가지 하면서 사방을 비춘다.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눈깔 괴물들을 제외하면, 성남 시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뭐, 통금이라도 있는 건가."
"사람들 통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덕분에 우리 가는 이 길이 조금 더 험난해졌다. 딱 봐도 주변에 돌아다니는 것들을 아주 잘 보게 생겼는데...
"최대한 안 걸리도록 해보고, 걸리면 바로 달리자."
여기까지 온 이상 빈 손으로 갈 수는 없고, 기왕에 뭔가 성과를 거둘 거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거둬야 한다.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걸릴 떄 걸리더라도 조금이라도 목표에 더 가까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걸리면 별 수 있나. 넵다 뛰어야지.
허공을 싸돌아다니는 눈깔 라이트를 피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그 눈깔들 중에 엉겨붙은 덩어리가 좀 큰 녀석에게서 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밤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허락받지 않은 인원의 외출은 금지되어있다. 통행자가 지적을 받으면 즉시 소유한 통행증을 제시하도록, 제시하지 못할 경우 당사자 및 당사자가 소속된 그룹에 불이익이 가해진다.
이야, 거기에 더해서 연좌제도 있는거냐. 아주 그냥 역사를 거꾸로 사는 녀석들이구만. 녹음시켜놓고 트는 것 같은데. 목소리를 들은 서지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성남시 안에 머무르는 생존자들의 불만이 꽤 쌓여있겠는데."
"그러게요, 어쩌면 내부에서 적절한 호응을 기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에는 연좌제가 마음에 걸려."
그런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서 있는 제도가 연좌제잖아. 니 옆 집이 이상한 수작을 부리면 너도 좆된다. 라는 큰 틀을 가지고 있는 상호 감시체계. 적극적인 호응을 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일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성남시를 따내고 난 다음 여기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을 자연스럽게 흡수 할 수 있을거야."
"생존자가 많이 남아있기를 바래야겠네요."
수원이 지금은 가까스로 자기 방어 정도만 할 수 있는 수준의 인원이 모였지만, 앞으로도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두지는 않을거다. 어느정도 조직의 규모가 불어나게 된다면 그 이후에는 녀석들도 우리의 일을 도와 줄 것이다.
정확히는, 도와야겠지.
우리가 지금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녁부터 새벽까지 싸우고 쉬지도 못한채 다시 성남에 와서 잠입액션을 찍고 있는데, 이렇게 개고생해서 도움을 준 녀석들이 우리를 안 돕는다고? 그 꼴을 내가 두 눈 뜨고 볼 생각이 없다.
숨어서 돌아다닐 떄 또 손거울 만한게 없지. 서지현과 함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간 나는 곧장 손거울을 켜 주변을 확인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런."
여기로 더 갈 수는 없겠는데. 눈깔이 떠서 돌아다니는 중이다. 어쩔 수 없지. 서지현을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가리킨다.
"..."
여기도 안된다. 나는 곧장 손을 뻗어서 서지현을 제지했다.
"꺄아아악!"
서지현이 지른 소리는 아니다. 우리가 숨어든 골목길에 다 무너져 가는 집 안에서 여자의 비명이 울려퍼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뭔데 또 이건. 비명소리를 들은 눈알들이 곧바로 우리가 있는 골목으로 날아오는게 보인다.
"도와줘요, 누구 없어어어흡!?"
안 좋은 일을 당하려는 모양인데. 나는 잠깐 주변을 훑어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지현이 내 옆구리를 툭 치고는 비명이 들린 곳을 가리킨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저 안으로 들어가서 잠깐 숨어야 할 것 같다.
"일이 안 플리려고 하니까."
여기에서 왜 갑자기 여자 비명이 뿌려지는거야. 미치겠네.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뭐 하나 보이는게 없다. 중원구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우리가 지금 야탑동에 있으니까... 한 2km 정도 가면 되는 건가. 가만히 들어보니 아까 비명이 들렸던 무너진 집 안에서 무슨 짐승 같은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더 이상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소음 확인, 제 3 등급 거주 구역. 치안 유지는 필수 사항이 아님.
가장 먼저 도착한 녀석이 그런 소리를 내고는 관심을 끊는다. 하지만...
- 신원을 밝히고, 통행증을 제시해라.
덩달아 이쪽으로 왔던 몇 개의 눈알이 결국 우리를 발견하고는 빛을 비춘다.
"이거 참."
어쩔 수 없지. 나는 그 녀석을 보다가 웃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손을 꺼내 뻐큐를 날리고 말했다.
"로켓단이다.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닐 예정이니까 방해하지마 병신 새끼들아."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서지현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도착해야 한다. 그 동안 천천히 움직이던게 장난이었다는 듯이, 우리는 말 그대로 바람을 가르며 중원구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하늘을 날아다니던 눈깔들이 시끄럽게 꽥꽥 거리는 사이렌 소리를 미친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닥쳐, 닥쳐. 그리고 너도 닥쳐."
나는 달리면서 사이렌을 시끄럽게 울리는 녀석들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단검을 맞은 녀석들이 더 이상 사이렌 소리를 내지 못하고 하나씩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크게 변하는 건 없겠지.
달리는 와중 눈에 들어온 모란역 12번 출구라는 단어. 여기부터는 이제 중원구다.
수많은 오피스텔과 모텔 따위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에는 실 같은게 서로 꼬여서 만들어진 커다란 고치가 몇 개 씩 달려있었다. 크기는 대충 옥상에서 가끔 볼 수 있을 만한 물탱크 정도의 크기다. 이 일대를 돌아다니던 괴물들도 보인다. 뭐, 여기에서 태어나는 녀석들이니 당연히 이 주변에 머무르고 있겠지.
- 크아아아1
녀석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꽤나 흉포한 괴성을 내지른다.
"싸워 줄 필요는 없어, 알지?"
우리는 여기에 건물 부수러 온 거지 괴물 잡으러 온 게 아니니까. 내 말에 서지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부가 있을까요!"
달리는 와중에, 눈에 보이는 알이라는 알은 죄다 터뜨리면 된다. 건물의 벽으로 달려간 나는 그대로 건물 벽을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며 달라붙어 있던 고치 하나를 박살냈다.
주르륵, 안에 채워져 있던 누런 액체가 쏟아진다. 안에 넣었다고 하는 남자와 여자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뭐지, 다 녹아내리기라도 한 건가. 다시, 벽을 타고 달리던 나는 고치 하나를 발견하고 그 녀석도 박살냈다. 마찬가지로 안에 채워져 있던 액체가 쏟아지지만, 이번 녀석은 그것 뿐이 아니라 안에 건더기도 있다.
"망할."
말도 안 나올 정도로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무언가. 나는 고치 안에 들어있던 건더기의 정체를 확인하고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 박살낸 고치도, 바닥에 떨어진 잔해를 슬쩍 사려보니 내장 쪼가리가 두 개 보인다.
하나는 남자한테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생식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한테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생식기관이다. 당연히, 이제 막 쪼갠 고치 안에 들어있던 말도 안 되는 크기로 부풀어 올라 있는 장기는 여자 몸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장기였고.
괴물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생식 기관 한 쌍만 남겨두고는 다 녹여버린 모양이다.
"끔찍해.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알이랑 주머니만 남겨놨네요."
그래, 남자는 알만 남아있고, 여자는 주머니만 남아있다.
저 고치 안에 들어있는 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얄팍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서지현이 손에서 불덩이를 뿜어내고, 나는 단검을 던지고 검을 휘두르며 중원구의 건물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인기 엄청 많네요."
서지현이 살짝 뒤를 돌아 본 다음 기가 막히다는 것 같은 어투로 한 마디 했다. 서지현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우리 뒤를 열심히 쫒아오는 괴물들이 한 가득이다.
"아주 그냥, 아이돌이 따로 없구나. 그만 따라와 이 자식들아!"
녀석들 중 몇 놈이 우리 쪽을 향해서 걸쭉한 가래침을 탁 하고 뱉었다.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 타액은 벽에 닿자 푸쉬쉬,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빵꾸를 뚫어버린다. 평상시에 이빨을 얼마나 안 닦았으면 침 뱉었다고 건물에 구멍이 나냐.
우리는 부지런히 녀석들을 몰고 다니면서 이 구역 안에 있을 알 사냥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는거야. 건물 위에서 다시 한 번 힘껏 뛰어오른 나는 슥 주변을 훑어봤다. 저기 하나 더 있네. 광합성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고치는 대부분 높은 건물의 외벽이나 옥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길 안내 할게!"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 뒤를 따라 달린다.
"커... 허?!"
그 와중에 뭔가가 씨잉, 하는 소리를 내고 날아와 서지현을 맞춘다. 나와 함께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있던 서지현의 어깨를 덮고 있던 케이프가 박살난다. 서지현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박살나고 남은 케이프 잔해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몸 주변에 보호막을 둘렀다.
"..."
다시 한 번 저 멀리에서 쏘아지는 새하얀 빛줄기. 이번에는 나를 노리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점프 스케어가 발동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투사체는 전력 투구한 프로 야구 선수의 패스트 볼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장식된 화살이었다. 뽑아서 휘두른 수확자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과 서로 부딪쳤다. 내 몸이 뒤로 약간 밀리고, 화살은 궤도가 틀어져 내 뒤에 있던 건물에 쑤셔 박힌다. 쿠쿵, 하는 소리와 함꼐 화살이 박힌 건물 유리창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죄다 다 터져 나간다.
"얼씨구."
누가 보면 화살이 아니라 미사일이라도 쏴붙인 줄 알겠네. 날아온 화살의 하얀 궤적은 아직 허공에 그어져 있다. 활 쏘기 전문이라도 되는 건가. 위력 한 번 기가 막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