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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33화 (133/237)

# 133

수도권 연합

기절해 있던 녀석이 끄으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힘겹게 눈을 뜬다. 나는 녀석을 보고 활짝 웃었다.

"잘 잤어?"

내 말에 녀석이 움찔하고는 도망치기 위해서 다리를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녀석의 정강이를 팔로 내려찍자, 곧장 비명을 지르며 녀석이 부러진 자기 정강이를 양 손으로 감싼다.

"얌전히 있어야지."

물어볼게 있거든. 녀석이 으아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모습을 바꾸려고 하자. 나는 그대로 녀석의 뺨을 한 대 때리고 어깨에서 단검을 뽑아 녀석의 손등을 내려찍어 땅바닥에 박아버렸다. 녀석이 하려던 변신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떤다.

아이고, 이 화상 같은 자식들아. 변신을 할 수 있으면 변신을 미리 해둬. 왜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변신하겠답시고 기를 쓰는거야. 우리가 그거 보면서 감탄하다가 변신 끝나면 박수라도 쳐줄 줄 알았냐.

"미안한데, 뭐 좀 물어보자."

내 말에 녀석이 눈을 번들거리면서 대답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거다."

"이야, 대담한 발언인데."

그건 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지. 우리가 요령이 꽤 좋거든. 그 비슷한 느낌으로 고집을 부리던 녀석들 대부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뭐든지 말할테니 제발 그만해달라고 애원을 했어. 너라고 예외일 것 같아?

녀석의 손등을 꿰뚫은 단검을 바라보며, 나는 쇼크의 손동작을 취했다. 녀석의 몸 주변에 스파크가 튀며, 녀석이 비명을 지른다.

"이러고 싶진 않은데. 너도 아프고 나도 귀찮잖아."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건 마조히즘에 찌든 녀석들이나 내릴 판단이 아닐까? 내 말에 녀석이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괴물 같은 자식들."

지랄, 변신을 하다가 말아서 기괴한 모습이 되어있는 주제에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고 떠드는 거야. 아, 괴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희들이 다루는 괴물,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거지?"

내 말에 녀석이 하! 하는 소리를 낸다.

"그걸 내가 말해 줄..."

녀석이 갑자기 자기 한 쪽 눈을 감싼채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서지현이 서늘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우리가 질문하면, 당신은 대답해요. 한 번 더 건방지게 굴면 눈알의 먹물을 진짜로 다 끓여서 그걸로 컵라면을 익혀 먹을테니까."

더럽게 아팠나보다. 녀석이 입에 거품까지 문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봐, 강단 있게 저항 하는 척 해도 오래 못 버티잖아.

"이제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는데. 설마 그 사이에 질문을 까먹지는 않았겠지."

내 말에 녀석이 심호흡을 하며 대답했다.

"각, 각 지부에는 사랑의 집이라는 게 수십 채 씩 만들어져 있어."

사랑의 집이라. 이름 센스가 왜 그따위야.

"남자와 여자 하나를 재료로 해서 만들어지는 구조물인데... 하루에 두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의 괴물을 생산할 수 있지."

남녀 한 쌍을 넣어 놓으면 매일 괴물을 생산하는 구조물이라. 그 생산 과정이 어떨지는 굳이 가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애초에 이름이 사랑의 집 이 지랄일 떄부터 뭔가 수상하다 싶었지. 작명 센스 참 더럽다. 돼지갈비집 간판에서 돼지가 웃으면서 엄지 올리고 있는 것 만큼이나 모순적이군.

어쨌든, 집 하나가 하루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괴물의 숫자는 정해져있지만, 그런 건 집의 개수를 늘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뜻이다. 집에 밀어넣을 남자와 여자가 부족한 것도 아닐테니까.

"그 사랑의 집인지 뭔지 하는 것의 개수, 네가 알고 있는대로 말해."

내 말에 녀석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덜덜 떤다.

"그건, 그건 몰라. 나 같은 녀석이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서지현이 손을 뻗어, 검지로 녀석의 눈꺼풀 위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저런, 그래요? 이거 어떡하지. 그럼 뭐라도 잘 생각해서 떠올려 보는건 어떨가요. 안 그러면 많이 아플텐데."

녀석의 시선이 자신의 눈 위를 쓰다듬는 서지현의 손가락에 고정되어 있었다. 안색을 퍼렇게 바꾸고 있던 녀석이 황급하게 뭔가를 떠들기 시작한다.

"그래, 구역, 구역이 나눠져 있어. 각 지부별로 생존자들을 몰아넣는 구역과, 집과 괴물들이 모여있는 구역이 구분되어 있지."

잘 쥐어 짜면 마른 걸레에서도 물방울이 나온다고들 하더니만. 역시 옛말 틀린게 하나도 없다니까.

"그 구역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봐."

내 말에 녀석이 머뭇거린다. 서지현이 다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가 발악적으로 외쳤다.

"젠장,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고! 하지마, 진짜 하지마!"

녀석은 서지현을 귀신 보둣이 보면서 더는 모른다는 이야기만 간헐적으로 외칠 뿐이었다. 심지어 오줌까지 지리고 있다. 저 몰골을 보아하니 더 뽑아낼 만한 정보는 없는 모양이다.

"알았어 임마. 그만 진정해. 편하게 해줄게."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줄기에 수확자가 박혀들고, 뭐라고 계속 외치던 녀석의 입에서 게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흘러내린다.

녀석의 숨통을 끊은 다음에, 나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상황이 이래서는...

"이시은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와야겠는데."

녀석들이 매일같이 괴물을 찍어 낼 수 있다면, 결국 괴물을 만들어내는 그 둥지라는 것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이길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당연히, 우리의 도움 없이 수원시의 생존자들 만으로는 둥지를 파괴하러 가기는 커녕, 수원으로 밀려오는 병력들을 막아내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이시은이 이천에서 생존자들의 도움을 얻어내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최소한 우리가 돕지 않아도 수원 시를 지키는 건 가능하겠지. 그렇게 되면 나와 서지현은 수원을 떠나서 서울 주변의 위성도시를 순회하며 만들어진 둥지를 파괴하는데 집중 할 수 있을거다.

생산 기지에 피해가 생기면 만들어지는 괴물의 숫자도 줄어들테고, 그러면 수원에서도 마침내 이전까지의 수비적인 태도를 버리고 공세로 전환 할 수 있겠지. 그렇게 서서히 밀고 올라가서 서울로 진입하면 된다. 나는 떨리는 손을 바라보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당신, 마음이 급해진 것 같아요."

그러게. 이제 진짜 코 앞에 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소모되는 시간은 더 길어지게 생겼으니. 억지로 똥 참으면서 화장실 앞에 섰는데, 누가 안에서 이미 일을 보는 중이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어차피 그 자식, 당신이 죽이지 않는다면 무병장수할 팔자에요."

그래, 지금 녀석의 상황이라면 서지현의 말대로 내가 죽이기 전까지는 떵떵거리면서 잘 살 것이다. 괴물들 편에 붙어먹기로 했으니 괴물들이 녀석을 공격할 리도 없고, 이미 생존자들 사이에서도 자기 위치를 공고히 만들어 놓았으니 생존자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지도 않을테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어차피 30년짜리 계획을 잡고 있었잖아요?"

그래, 그 긴 시간을 버티는 것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양반도 그냥 양반이 아니라 사대부 수준이지.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최현우에게 착실하게 엿을 먹이는 중이니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다. 계속하다보면 엿을 먹이는 걸 넘어서 녀석에게 칼빵을 먹여 줄 수 있다.

"해 지고 있네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점심 먹고 바로 튀어 나온 것 같은데 왜 벌써 해가 지고 있냐. 끄응,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돌아가자, 한 일주일 할 고생을 오늘 다 한 것 같은 기분이야."

"배고파요."

그럴 때가 되었다. 힘은 힘대로 쫙 빼고, 시간은 시간대로 훅 날려버렸으니까. 탈진한 상태로 앉아서 쉬던 나와 서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수원 쪽으로 돌아갔다.

스팸 구워서 강냉이 통조림이랑 함께 씹고 있는데, 이경석이 찾아왔다.

"정말 단 둘이서 처리하는데 성공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엄청나게 지치는 일이었다.

"가능하면 다음부터는 함께 싸우는 편으로 방향을 잡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내 말에 서지현이 입에 물고 있던 숟가락을 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해볼 만한 일은 아니에요. 게다가 언제 또 몰려올 지 확신이 없고."

둘이 해결 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나날이 지속된다면 분명히 피로가 쌓인다. 피로가 쌓이면 실수가 생기고, 둘이서 수백이랑 싸우는 와중에 실수가 생기면 십중팔구 치명상으로 이어진다.

"그러겠습니다. 두 분이 이번에 고생해주신 사이 머무르고 있는 쇼핑몰의 방비를 충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 모두 쉴 생각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으니까요."

그렇겠지. 방벽이 약하면 당장 위험에 빠지는 건 자기들이니까. 나는 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녀석들에 대해서 알아낸 것들을 말해주었다.

"그럼, 결국 그 사랑의 집인지 뭔지 하는 것을 박살내야 한다는 뜻이군요."

이경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시은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두 분이 수도권 연합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나와 서지현은 이미 의견을 모아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수원의 생존자들이라면 가능하죠. 두 분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 빈 자리가 굉장히 크겠지만..."

"그래, 단순히 수원의 생존자들 몇 명이 자리를 비우는 정도라면 그 빈자리가 크지는 않겠지."

내 말에 이경석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몸이 날래고, 몰래 움직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을 몇 명 추려내서 보내면 될 겁니다. 가서 싸우라는 것도 아니고, 이후에 두 분이 더 이상 수원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정보들을 파악하는 것 뿐이니까요."

"위험한 일이 될 것이 뻔해요. 하겠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성공 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불확실하고. 게다가..."

서지현이 순간적으로 말을 주저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지는 알 것 같다.

"보낸 사람이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지금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막상 상대의 영역 안으로 발을 딛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면 전의를 상실하고 그대로 항복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서지현의 말에 이경석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실력도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저희가 안전지대에 머무르면서 랜드 마크나 주변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할 수 있었던 건 다 이유가 있죠."

그래, 이 친구들이 이래 보여도 그 해골 바가지 주변에 몰아치던 모래 폭풍의 온도까지 측정 해 볼 정도로 대담하게 정보를 수집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몰래 움직이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 필요했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가보지 않고도 이런 저런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야."

어쩄든, 나중에 우리가 조사에 들여야 하는 시간을 줄여 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거기에 덤으로, 성남은 확실히 수도권 연합의 편에 붙은 모양이지만 수원과 서울 사이에 있는 도시가 성남만 있는 건 아니다. 당장 안산이나 안양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런 것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이시은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우리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빨리 움직일 수 있으면 더 빠르게 수도권 연합의 힘을 약화 시킬 수 있겠지.

내 말에 이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을 한 번 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경석이 우리 앞에 맥주를 몇 캔 내려놓고 인사를 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야말로. 바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네."

이경석은 대화를 마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문을 나섰다. 슬쩍 창 너머를 확인하니 사람이 몇 명 기다리고 있었고, 이경석은 빠르게 그 사람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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