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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25화 (125/237)

# 125

음양석 참령

손으로 붙잡고 있던 궤적이 흐려지고, 나는 곧바로 다시 땅에 착지한 다음 갈라진 대지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쭉쭉 치고 나가던 와중, 육중한 벌레 몇 마리가 우리 앞에 턱, 하고 자리잡는다.

"장수풍뎅이라. 지현아, 쉴드 풀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녀석에게로 달려들었다. 녀석이 내 쪽으로 뿔을 들이밀고 돌진한다. 좋아... 나는 서지현의 손을 놓고, 대신 허리를 손으로 휘감아, 그대로 들어올렸다. 박자를 맞춰야 한다.

"으헉."

다리의 마찰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나는 손을 뻗어, 달려드는 장수풍뎅이의 뿔을 한 손으로 꽉 잡았다. 팔에 시큰거리는 감각이 잠깐 달린다. 카가가가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뒤로 쭉 밀린다.

하지만 그대로 나를 들이받을 생각이었던 장수풍뎅이의 돌진도 멈춰버렸다. 새까만 눈동자가 나와 서지현을 향한다. 그리고, 녀석이 그대로 머리를 위로 확 들어올렸다. 하나, 둘.

"지금."

나는 그대로 녀석의 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어 굉장한 속도로 하늘을 향해 튀어올랐다. 쒜에엑, 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야, 용머리!"

내 몸이 하늘로 튀어오른 속도는 수확자가 궤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땅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기다란 장밋빛 궤적이 나타났다. 길이는 한 50m 정도.

"이건 어떠냐?!"

나는 궤적을 발로 차서 앞으로 튀어나가며, 수확자를 칼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대로, 하늘에 그어져 있던 거대한 궤적이 거북을 향해 날아가 몸통을 후려친다. 날아간 수확자의 궤적이 거북의 몸통을 후려치자 쩌정, 하는 기가 막힌 소리가 난다.

분명히 충격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날려보낸 궤적이 후려친 건 등딱지의 옆 부분이었다. 등딱지에 자상이 남은 건 좋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녀석의 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리를 움직여 몸을 우리 쪽으로 돌렸을 뿐이지만, 땅이 비명을 지르며 쩍쩍 갈라진다.

"땅에 발이 닿으면 안될거에요!"

그래, 땅에 서 있으면 저 지진 떄문에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거다. 나는 허공에 궤적을 남기고 그걸 발로 밟으며 녀석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놓아주세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있던 팔에서 힘을 뺐다. 곧바로, 서지현이 들고 있던 에노테르를 휘두르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충격으로 서지현의 몸이 허공에서 앞으로 튀어나간다.

"공중전이라."

이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는 부지런히 허공에 궤적을 남기고, 그걸 밟거나 손으로 붙잡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북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등에 붙어있던 벌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말벌떼냐."

이 물 한 방울도 없는 삭막한 사막에 망할 놈의 말벌이 왜 있는거야. 아주 저 새끼 등딱지 위에 생태계가 하나 새로 차려진 모양인데. 부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마리의 말벌들이 우리를 향해 독침을 세우고 턱을 딸각거리며 날아든다.

푸화하악, 하는 소리와 함께 서지현이 들고 있는 에노테르에서 화염이 쏟아져 날아오는 말벌들을 휩쓸고, 화염에 휩쓸려 날개가 타버린 말벌들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역시 벌레 사냥에는 불이 직빵이라니까."

쏟아지는 화염을 피해 양 옆으로 갈라진 말벌들이 다시 우리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한다. 곧바로 손동작을 취한 나는 쇼크를 휘감은 단검을 몇 개 던졌다. 단검이 박혀든 녀석들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땅바닥으로 추락한다. 전기와 불이라. 포켓몬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깊은 상성이지.

부아아아앙, 하는 굉음이 들려서 옆을 돌아보니, 장수 풍뎅이가 전력을 다한 날갯짓을 하며 나에게 돌격하는 중이었다.

"탱크가 공중전을 하려고 드네. 미친건가?"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돌격하는 장수풍뎅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와 뿔로 나를 들이 받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래, 이리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녀석이 그대로 머리의 뿔을 휘두른다. 점프 스케어가 발동해 주변이 느려진다.

"하나, 둘."

박자 맞춰 휘둘러지는 수확자. 후발선타가 발동하며 녀석의 불이 내 몸을 들이받기 전에 녀석의 입 속으로 칼날이 먼저 쑤시고 들어간다. 그와 동시에 날아오던 장수 풍뎅이의 뿔을 발로 꽉 짓눌렀다. 쑤욱, 체액이 엉겨붙은 수확자가 뽑혀나왔다.

녀석은 퍼러럭, 하는 소리와 함께 날갯짓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그대로 땅으로 추락한다.

풍뎅이가 나를 들이받은 힘이 그대로 내 몸으로 전달되어, 골프채에 때려맞은 골프공마냥 다시금 거북이를 향해 튕겨져 날아간다. 그런 나를 향해 달려드는 말벌들.

"방해하지마! 니들 밥상 엎어버리게 전에!"

나를 향해 날아오는 말벌 중 하나의 머리통을 발로 후려차 박살낸 나는 곧바로 녀석의 시체를 밟고 다시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침을 내놓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녀석의 몸을 그대로 반으로 쪼갠다.

머리로, 머리로.

벌레의 몸을 밟으며, 또는 수확자로 만들어낸 궤적을 밟으며 나는 점점 녀석의 머리로 접근하는 중이었다. 허공을 달리는 내 주변에서 벌레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감전되서 떨어지는 녀석도 있었고, 어디 한 군데가 잘려나가서 추락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의 입이 다시 한 번 쩍 벌어졌다. 나는 황급하게 수확자를 휘둘러 궤적을 만들고, 한 손으로 그걸 꽉 붙잡았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의 굉음이 몸을 후려친다. 시야가 흔들리고, 순간적으로 방향감각이나 균형 감각 같은 것들이 엉망이 된다. 궤적을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쫙 빠진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나는 급한대로 나를 향해 날아오던 말벌의 머리통을 쪼개고, 그 시체를 밟고 다시 하늘로 뛰어올랐다.

아직도 어질어질하다. 하늘과 땅이 핑핑 도는 기분이다.

"이건 아니야."

바로 머리로 향햐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저 대가리가 소리 한 번 지르면 전달되는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외침 한 번으로 멍석말이 당하는 경험을 하게 해주다니. 차라리 등딱지 위에 올라타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머리로 향하는 편이 더 안전 할 것 같다.

저 거북 놈이 아무리 대가리를 돌려도 자기 등딱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돌릴 수는 없을 거 아니야. 새롭게 착륙 지점을 정한 나는 방향을 틀어서 등딱지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지현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인지, 나와 마찬가지로 등딱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두어 번 이어진 거북이의 외침과, 날아드는 온갖 벌레들의 습격을 피해 가까스로 등껍질 위에 쌓인 두터운 흙 위에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비옥하잖아."

말라 비틀어진 사막의 모래가 아니다. 색깔도 진하고, 발에 닿는 감촉도 축축한 제대로 된 흙이다. 주변에는 마구 자라난 나무와 풀들이 울창하다.

나는 뭔가를 입에 물고 옮기고 있던 거대한 개미들의 행렬을 발견했다. 녀석들이 옮기고 있던 시체 조각들을 바닥에 떨구고 자기들끼리 더듬이를 툭툭 건드리면서 우리를 응시한다.

배는 까맣지만, 허리와 머리 부분은 시뻘건 색이다. 불개미 같은 건가.

"옮기던 거나 마저 옮겨, 우리도 가던 길 마저 갈게."

당연히 우리 말을 알아들을리가 없지. 개미들이 우리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아, 갈 길 멀어 죽겠는데 왜 벌레들이 자꾸 꼬이는거야. 그 와중에 갑자기 우리가 올라탄 등껍질의 여기 저기에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뭔가를 푹푹 뿜어내기 시작한다.

"뭐야, 산 같은 건가?"

연기에 닿은 개미들이 뭘 하기도 전에 녹아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서지현이 곧바로 내 옆으로 달려와서 보호막을 쳤다. 뿜어져 나온 연기에 녹아내려 액체로 변해버린 개미들은 그대로 땅으로 빨려들어간다.

"아마 소화액 같은게 아닐까요? 이 거북도 뭔가를 먹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 등껍질에 흙을 쌓아두고, 생태계를 만든 다음 배고프면 저 소화액 안개를 뿌려서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녹여 먹는다는 건가. 식사 한 번 복잡하게 진행하네. 여기가 벌레들 안방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거북이의 식탁 위였던 모양이다.

"녀석의 한끼 밥으로 인생을 종칠 수는 없지."

뿜어져 나온 소화액 안개로 인해서 주변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건."

왠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게 아니라, 사람이 깎아서 세워놓은 비석이다. 비석에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陰石 切魂 封印 紀念碑]

익숙한 한자군. 음석 절혼이라. 나와 서지현은 잠깐 멈춰서 새겨진 글을 읽었다.

"마마 델리의 레스토랑에서 발견했던 페이지의 내용과 같아요."

그래, 음석 절혼과 양석 파백, 그리고 두 가지가 합쳐지면 만들어지는 음양석 참령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에 더해서 한 가지 문구가 더 추가되어 있었다. 음석 절혼이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이 거북이의 마빡에 박아두었다는 이야기.

"여기를 먼저 찾아왔어도 참령에 대한 이야기는 알 수 있었겠네."

어쩄든,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그렇게 새로울 내용은 없었다.

점점, 소화액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하다가 완전히 사라진다. 소화액을 뿌리는 범위는 거북이가 임의로 지정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소화액 연기가 사라지고 나자, 갑자기 땅이 꿈틀거리더니 뭔가가 쑥쑥 솟아오른다. 서너 마리 정도 되는 길쭉한 녀석들이 땅 위로 머리를 내밀고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저건, 지렁이인가? 녀석은 소화액 안개 속에서도 녹아내리는 일 없이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철 만하잖아."

크기만 빼고.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면서 지렁이의 입을 보는 건 처음이다. 별로 키스해주고 싶게 생기지는 않았네. 벌어진 입 안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한 가득 달라붙어있다. 녀석이 꿈틀거리다가 우리를 향해서 입을 벌리고,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물컹, 하는 감촉과 함께 나는 녀석의 머리통에 수확자를 쑤셔박고, 그대로 녀석의 위를 달렸다. 녀석의 몸이 쩌억 열리며 안에 들어있던 내장이나, 먹어치운 흙이나 토막난 벌레의 시체 조각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서지현이 그 내용물을 보고는 얼굴을 구겼다.

"무슨 놈의 지렁이가 육식을 한담."

"뭘, 등딱지 위에 생태계를 차린 거북이도 있는 판국에."

육식 지렁이 같은 건 그렇게 신기할 일도 아니잖아. 오히려 신기한 건 따로 있다.

"이 자식의 등딱지 위에 흙은 왜 안 마르고 있는 거지?"

원래는 수분이 쫙쫙 빨려서 말라 비틀어져야 정상인데. 심지어 아까 전의 그 지렁이도 표면이 맨질거리는게 매우 촉촉해 보였다. 서지현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흙을 한 줌 손으로 집어올렸다. 서지현의 손에 들린 흙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짝 말라버린다.

"으음."

서지현이 손에 쥐어진 마른 흙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에서 쿠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장수 풍뎅이 몇 마리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지현이 손에 쥐고 있던 마른 흙을 땅바닥에 확 뿌린 다음에 말했다.

"알게 뭐에요. 어차피 우리 목적은 이 녀석 마빡에 박혀있는 조약돌인데."

하긴, 그렇네. 우리가 알게 뭐냐. 무슨 신통한 일을 벌여서 땅을 촉촉하게 유지하고 있는지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생물학자도 아니고. 가던 길이나 계속 가면서 방해하는 녀석들을 싹 치워버리면 될 일이다. 거북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거북이 등 위의 생태계는 계속해서 우리를 노리고 있었다. 땅에 숨어있던 거미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아까도 봤던 말벌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기도 하고.

"굳이 상대해 줄 필요 없어."

우리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만 아니라면 녀석들을 굳이 상대하지 않고 녀석의 머리통을 향해 쭉쭉 내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는 녀석의 등딱지 위에 만들어져 있는 숲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발에 닿는 감각도 푹신한 땅의 감촉이 아니라, 단단하기 짝이 없는 가죽이다.

우리는 녀석의 목덜미에 올라와 있다.

"아주, 숲 넘어 산이구만."

목덜미의 길이도 짦은게 아니고, 녀석의 고개를 빳빳히 들고 있는 중이라서 꽤나 가파른 산행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손을 뻗자, 서지현이 자기 허리를 내 손 쪽으로 가져다 붙인다. 나는 그녀를 다시 끌어안고 등산을 시작했다.

"으아아아..."

우리가 녀석의 목덜미를 오르기 시작하자 녀석도 그걸 꺠달았는지 머리를 이리 저리 흔들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 끌어올린 마찰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녀석의 가죽에 붙어있던 손이 떨어지고, 우리는 허공으로 튕겨져 나갔다.

"젠장, 대가리 흔들면 우리가 못 올라갈 줄 아냐?"

등산은 포기다. 나는 수확자를 휘둘러 만들어낸 궤적을 발로 밟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허공에 수확자로 궤적을 만들어내며 쭉쭉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서지현은 나에게 허리가 휘감긴 채로 주변에서 날아오는 벌레들을 부지런히 화염으로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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