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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10화 (110/237)

# 110

모래의 도시

대충, 수원의 컨셉이 뭔지는 알 것 같다. 안전지대 밖에서 물 먹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거지. 나는 우리의 진로를 막고 있는 모래 폭포를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볼 것도 없지?"

너무 많이 해본 일이다. 저 문을 넘어야 한다. 안에 들어가면 또 뭔가가 기다리고 있겠지.

"뭐, 미라 같은게 튀어나오려나."

사막하면 이집트고, 이집트 하면 미라잖아. 미라가 아니라면 뭐 전갈이나 독사 같은 걸 생각해 볼 수도 있을거다. 사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라는게 전반적으로 그런 것들이다보니.

"가능성은 충분하네요."

거대한 문 쪽으로 다가가자, 쏟아지는 모래가 문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기 짝이 없다.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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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모래를 넘어

목표 : 수원의 안전지대로 향하기 위해서는 모래의 폭포를 넘어야 한다. 쏟아지는 모래의 폭포를 견디며 서 있는 문으로 들어가, 모래의 폭포를 통과하라.

보상 : 85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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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깐 서로를 바라본 다음, 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열려 있던 문이 다시 둔중한 소리와 함께 닫힌다.

온 천지에 울려퍼지던 모래 쏟아지는 소리는 문이 닫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화악, 하고 천장에 커다란 빛덩이가 떠올랐다. 그 덩어리가 쏟아내는 건 빛 뿐이 아니라 굉장한 열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있으면 뭐 큰일이라도 나는 건가.

"커다란 자칼을 타고 다니는 코브라 대가리를 한 파충류 인간이라."

게다가 그 코브라 머리 인간들은 머리 위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그 뭐라고 하더라. 터번은 다른 거고, 아랍인들이 주로 쓰고 다닐 것처럼 생긴 건데.

맞아, 쉬마그.

우리의 눈 앞에 서 있는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녀석들의 손에는 만곡도와 방패가 들려있었고, 등에는 활을 매고 있었다.

인류 대신에 코브라가 지성을 가지고 진화해서 사막에 문명을 이루었다면 저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만나서 반갑다."

숫자는 50마리 정도. 녀석들이 내 말을 듣고 우리와 눈을 마주치더니 샤아아악! 하는 소리를 낸다.

"우리 말은 못 알아듣나?"

서지현이 옆에서 한 마디 했다.

"그럼 빵상이라고 한 번 해봐요."

아, 그게 언제적 외계어야. 난데없이 빵상이 튀어나오네. 녀석들은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타고있는 자칼의 고빠를 확 움직여 우리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슬프네."

저 녀석들은 나룸대로 우리를 잡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텐데. 나는 칼집에 넣어놓고 있던 수확자를 뽑아들었다.

"더운 곳에 사는 것들이니까, 화염을 잘 견디지 않을까요."

나는 그 말에 얼굴을 구겼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럴리가 없잖아."

더위랑 화염은 완전 다른 개념이다. 그렇게 치면 사막에 사는 전갈들은 프라이팬에서 달달 볶아져도 안 죽나? 서지현은 주변을 돌다가 화살을 날리는 녀석들을 향해 손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손의 궤적을 타고 만들어진 작은 화염구 몇 개가 자칼을 타고 달리는 녀석들의 머리에 떄려박힌다. 서너 마리가 머리통에 불꽃이 붙은 채 비명을 지르다가 타고 있던 자칼에서 떨어지고, 다른 녀석들이 타고 달리던 자칼에 밟혀 죽었다.

"그런 건 아니네요."

우리 주변을 돌던 녀석들이 본격적으로 화살을 쏘아붙이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화살들. 자연스럽게 느려진 시간.

그래, 어디 한 번 이번 기회에 시험해보자. 나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마구 허공에 수확자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밋빛의 궤적이 사방을 뒤덮고. 나는 뽑아들었던 수확자를 다시 검집 안에 집어넣었다.

칼집으로 수확자가 돌아가며 철컥, 하는 소리를 냈다. 허공에 남아있던 궤적들이 기다렸다는 듯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들은 퍼지는 궤적에 닿아 허공에서 잘려나가 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날아간 궤적들 중 몇 개가 우리 주변을 돌고 있던 녀석들 중 몇 녀석의 몸을 썰어버린다.

"이야, 방금 되게 애니매이션 같은 연출이였어요."

그러게.

"여기에서도 공식은 통용되는 모양이네."

주는 포인트가 낮으면 쉽다. 주는 포인트가 높으면 그만큼 어렵다. 1000pt도 주지 않는 미션은 우리 둘이 막 기를 쓰고 싸워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연습을 하는 기분으로 싸워보자고.

"이런 건 어떨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허공에 수확자를 휘두른 다음, 그 궤적을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높게 뛰어올랐다.

허공에 뜬 상태로, 땅을 향해 마구 검을 휘두른 나는 아래로 떨어지면서 칼집에 다시 수확자를 집어넣었다. 철컥, 하고 칼집과 검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나와 서지현이 서 있던 곳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 장밋빛 폭격이 쏟아진다.

"바람개비야 미안해."

내가 만들어낸 결과를 감상한 다음, 작게 중얼거렸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바람개비지만... 사용해 본 결과, 아무리 봐도 새로 얻은 수확자의 성능이 훨씬 우월한 것 같다.

우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던 녀석들 중 상당수가 방금 전의 공중 폭격으로 개박살이 나버렸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녀석들 중 공격에 스친 녀석들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팔과 다리가 서서히 검게 잠식되기 시작한다.

"아, 황무지 발가락."

새로 얻은 신발을 까먹고 있었네. 생각해보면 사막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황무지라고 해야 하잖아.

"당신이 해결하세요. 익숙해지는 데에는 실전이 최고라잖아요."

서지현은 무기를 바꾸지 않았다. 새로 얻은 무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건 나 뿐이다.

"그래. 후딱 정리해주지."

익숙해지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살짝 스친 생채기를 보고는 머리를 긁었다.

"이거, 조심해야겠는데."

날아가는 참격에는 피아 구분이 없다. 내가 깔아두기를 잘못해버리면, 수확자를 다시 칼집에 꽂았을 때 날아가는 참격이 내 명줄도 노리는 경우가 생긴다. 서지현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코브라와 자칼들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말했다.

"한 3분 정도 걸린 것 같네요."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어."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보다 보니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을 모두 도륙내고 나서 주변의 벽을 살피던 나는 벽돌 하나를 그대로 꾹 눌렀다. 벽돌이 안으로 쑥 들어가면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반대편의 벽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앉으며 길을 열어준다. 나와 서지현은 멍하니 그 너머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세상에."

"수원이 아니라 우리 지금 뭐, 사하라 사막 같은 곳에 온 거냐."

모래 천지다. 심지어 우리 앞에 펼쳐진 도로도 모래에 절반 정도 파묻혀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사막의 유적 발굴 현장 같네요."

그러니까. 도로 뿐 아니라, 건물도 모래언덩에 파묻힌 채로 꼭대기 부분이나, 옆구리 부분 같은 곳만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다. 서지현의 표현처럼, 모래에 파묻힌 고대의 유적 같은 느낌이다.

"수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이 않은 광경인데. 제르맹이 보면 참 좋아라 하겠군."

수원(水原), 물의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이렇게 빼짝 마른 모래 사막으로 변해버리다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잖아. 게다가, 숨통을 옥죄는 지독한 더위도 그대로다. 잠깐만에 입술이 빼짝 마르기 시작한다.

"선크림으로는 어림도 없겠는데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뭔가를 꺼내들었다. 아까 도마뱀들이 뒤집어 쓰고 있던 쉬마그다. 한 동안 쉬마그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던 서지현이 약간 짜증이 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이 씨."

그리고는 대충 머리 위에 뒤집어 쓰고 눈만 내놓고 나머지 부분은 싹 다 쉬마그로 대충 휘감아서 가려버렸다.

"이야, 100원짜리라도 하나 던져주고 싶어지는 몰골인데."

방금 전에 싸운 도마뱀들은 제법 사막의 전통 부족 같은 느낌이었는데, 서지현이 대충 뒤집어 쓴 모습은 거지꼴이다.

"시끄러워요. 모로 가도 해만 가리면 되는거잖아요. 당신도 머리 구워지기 전에 대충 뒤집어 쓰세요."

하긴, 그러는게 좋겠다. 뭐 피부가 타고 그러는게 문제가 아니라, 머리통이 바짝 구워지는 기분이다. 서지현이 모래에 파묻혀 있는 자동차의 본네트를 확인하더니, 달걀 하나를 꺼내서 그 본네트 위에 까넣었다. 곧바로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버린 달걀.

"드실래요? 모래가 좀 씹힐지도 모르지만."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모래로 덮힌 수원을 걸어가려니 그냥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저 멀리에서 뭔가 살벌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와 씨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멍하니 저 멀리에서 밀려오며 요동치는 누런 안개를 응시했다. 저건 황사 같은게 아니다. 아니,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황사도 당연히 저런 종류에 속하는 거겠지.

"빨리, 숨을 곳을 찾아보죠."

저거에 휩쓸리면 온 몸이 모래 투성이가 되는 건 물론이고 폐 속도 모래로 가득차게 될 거다.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젠장맞을, 죄다 모래에 파묻혀서...!"

서지현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물도 유리창이 박살나고, 안에 모래가 가득 쌓인 상태다.

"버티자."

내 말에 서지현이 몸을 떨었다.

"끔찍해. 잘못하면 숨이 막힐 거에요. 배리어를 치고 버텨야겠는데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그거고, 일단 호흡기는 도마뱀들이 쓰고 있던 쉬마그로 가린 상황이다.

"뚫는 건... 불가능하겠죠?"

"다가오면 알겠지."

결국, 모래폭풍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다. 모래가 일어나며 시야를 가리기 시작하자, 서지현이 곧장 내 옆으로 와서 배리어를 만들었다.

"우와악."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이 만들어낸 배리어를 멍하니 바라봤다. 폭풍에 휘날리는 모래가 부딪치면서 계속해서 배리어의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배리어 밖을 휘몰아치는 바람은 마치 성난 장수말벌 수천마리가 귓가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 같은 흉악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내 말에 서지현이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손가락 네 개를 폈다.

"이 정도라면 한 여덟시간 시간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

그 와중에 뭔가가 훙 하고 날아와 서지현의 배리어를 강하게 후려친다. 모래에 파묻힌 채 극히 일부분을 내놓고 있던 건물에서 뜯어져 나간 간판이다. 그것 이외에도 풀어닥친 모래폭풍이 품고 있는 온갖 종류의 잡동사니들이 서지현의 배리어에 부딪치며 우당탕 쿵탕 하는 소리를 낸다.

"정정, 이런 상황이라면 네 시간이에요."

나쁘지 않은데.

"앞으로 나아간다면?"

서지현이 내 말에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네 시간. 하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 괜찮겠어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래가 온 천지에 휘날리면서 시야를 상당히 가렸지만,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주변의 사물이나 길 같은 건 파악이 가능한 수준이다. 모래폭풍과 정면으로 싸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감각을 높여놓은 덕분이지."

"좋아요, 그럼 한 번 믿고 이동해볼까요."

나와 서지현은 모래폭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푸른 연옥을 통해서 봤던 장면에 이런 건 없었잖아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본 건 이런 사막으로 변해버린 수원이 아니었다. 건물들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기는 했지만, 이런 풍경은 확실히 아니었다.

"둘 중 하나겠지. 북수원은 이런 모습이 아니거나, 아니면 푸른 연옥이 나에게 보여줬던 장면은 수원이 이 작살이 나기 전의 상황이었거나."

두 가지 가정 중에 어떤 것이 사실인지는 북수원으로 향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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