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성묘
눈 앞에 보이는 두 개의 납골함. 하나는 어머니의 성함이, 다른 하나는 누나의 이름이 써져 있는 함이었다.
"이게 얼마만에 찾아오는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멍하니 그 함을 바라봤다. 보고 있으면, 몸 안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슬픔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일까. 마음 한 구석에 빽빽하게 만들어져 있던 치덕거리는 감정의 거미줄이 다시 한 번 요동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이름 석자. 나와 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유리판처럼 쉽게 부술 수 있는 게 아니다.
故 문서연.
故 오나현.
그리고 두 사람의 사진.
어머니의 이름과 누나의 이름. 이미 죽었기에 내 말이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도대체 이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납골함 옆에는 찾아냈던 일기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납골함 쪽으로 돌렸다.
"..."
서지현이 내 손을 잡더니, 뭔가를 건네주었다. 손수건이다. 나는 침을 삼키고, 손수건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을 훔쳤다.
"잠깐 나가 있을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서지현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를 악물고 목메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한테 혹시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뻗어 나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유리벽을 쓰다듬었다. 유리 너머의 유골함과, 유리에 비춰진 내 얼굴이 동시에 시선에 들어온다.
"5분만, 아니 1분..."
그렇게 많이도 필요없다. 딱 한 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마를 유리에 가져간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 방울들.
"8년이나, 8년이나 지났네요. 그 동안 한 번도 못 찾아와서 죄송해요. 사정이라는게 있어서."
격해진 감정으로 더워진 입김이, 유리창에 닿아 하얀 흔적을 뭉게뭉게 만들어내고,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교도소에 갔어요. 사람을 죽였거든요. 두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하도록 강요한 개새끼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 남았어요. 두 사람이 이 이야기를 살아서 듣고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줬을지 모르겠네."
나로서는 그 반응을 상상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마, 평생 동안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녀석들을 내 손으로 죽이고, 교도소에서 8년을 살다가 벗어났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두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처음에 죽인 녀석은, 고등학생이었어요. ㅇㅇ 국제 고등학교를 다니던 녀석이에요."
나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냥 혼잣말이라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는 주말 말고 나올 수 없는 고등학교라고 하던데, 뭐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가 다 그런가봐요. 근데 그 녀석은 집에 돈이 좀 많아서 그런지, 그런거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나가서 노는 모양이었어. 자주 가는 술집도 있다길래, 위치를 알아두었죠."
양주 같은 거 시켜놓고 여자를 끼고 노는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한 동안 기다렸더니 무슨 약 같은 거에 취한채로 나오더라고요. 녀석이 타고 온 외제차가 있길래, 기사를 몰래 덮쳐 기절시켜 묶어놓고, 안에서 기다렸어요."
그리고 녀석이 탔다. 나는 녀석을 고등학교가 아니라 야산으로 끌고 갔다. 약과 술에 취해있던 녀석은 돌아가! 라고 말한 다음 그대로 곯아 떨어졌었지.
"면허증 따고 처음 몰아보는 차였지만, 밤이 늦어서 그런지 돌아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죠."
나는 차를 몰고 야산으로 향했다. 녀석의 입을 막고, 밧줄로 사지를 묶고, 약과 술에서 깰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조금 더... 쉬울 줄 알았어요."
귀뚜라미 같은 것들이 울고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초가을 밤이었던 것 같다. 아니, 초가을 밤이 맞았다.
정신을 차린 녀석은 입에 테이프가 발라진채로 발악을 하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막 약에서 깨어난 녀석은 핏발이 선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꺼냈을 때, 내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녀석이 지린 오줌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왜 진짜로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은 그렇게 드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모기나 바퀴벌레를 잡는 것과는 틀렸다. 읍읍 거리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나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녀석.
증오와 두려움이 서로 키 재기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두려움이 크냐, 아니면 이 녀석에 대한 증오감이 더 크냐.
"물론, 나는 증오감이 더 컷어요. 그러니까 녀석의 몸에 칼을 박아넣었겠죠."
사람의 피가 얼마나 뜨거운지 그떄 처음 알았다. 사람이 칼에 찔리면 나오는게 피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그떄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이 죽을 떄 어떤 얼굴로 변해가는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 알게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 뿐이었다.
칼이 살을 뚫고 들어가고, 몸의 근육이 박혀들어간 칼을 붙잡는 느낌. 옷 위로 번지는 시뻘건 피. 녀석의 눈이 서서히 흰자위를 드러내고 돌아가기 시작하고 꿈틀거리던 몸이 서서히 멈췄다. 처음 녀석을 죽인 다음, 나는 한참 동안 토악질을 했다.
"누나랑 어머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어. 복수 같은 것 때문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멈출 수는 없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다 잊고 살아가라고 말해도 나는 그렇게 못해요. 어떻게 잊어, 내가 어떻게 잊고 살아."
나는 유골함 앞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다가 이를 악물고 가슴을 붙잡았다.
"두 사람이 나에게 어떤 사람들이었는데. 다 끝나고 나서도 아마 후련하지는 않겠죠. 왜냐하면, 처음 녀석을 죽였을 때 그랬으니까."
죽은 시체를 보면서 나는 후련함을 느낄 줄 알았다. 이게 시작이라고, 몸에 열정이 불타오를 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녀석을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는 분명히 칙칙하고 꾸덕거리는 증오가 불타오르며 내 몸에 열기와도 같은, 광기가 섞인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마침내 첫 녀석을 죽이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에, 심지어 입에는 미소도 걸려있었던 것 같다.
해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자축이라도 할 생각으로 맥주 몇 캔을 사서 집에 돌아왔을 때, 싸늘한 공간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내 어머니와 누나가 살아 돌아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래, 변한 건 하나 뿐이었다. 이제 나는 범죄자가 되어서 쫒길 거라는 사실.
그리고 아마, 전부 죽이고 나서도 내가 보게 될 풍경은 이런 광경 뿐이라는 생각.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어요."
정말로 남은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의 목표는 남은 녀석들을 죽이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끌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넣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굶고, 여기저기 구르고 다쳐서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고. 그래도 나는 미친 새끼처럼 그 일에 집착했다.
다 끝나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냥 단념하고 살게 된다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던 기회나 작은 즐거움, 삶의 충실함 따위들은 첫 살인과 함께 같이 죽어버렸다. 나는 그 녀석과 함께 나에게 남아있던 그 가늘고 희박하고 초라한, 만약과 어쩌면이라는 가능성과 미래도 함께 죽였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교도소에서 탈옥할 기회가 생겼어요."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잠깐 서지현이 건네준 손수건을 바라보다가 그걸로 얼굴 위로 흘러내린 눈물들을 훔쳤다.
"원래 나와서 할 일은 하나 뿐이었는데."
나는 손수건을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잠시만. 소개시켜드릴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서지현이 멍하니 해가 저물어가는 산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별 말 없이 내 쪽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손수건."
나는 그 말에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꺼냈다. 서지현은 그 손수건을 받아들고는 다시 접어서 물기가 없는 부분으로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잘 닦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래요? 눈물 자국은 좀 남아있던데요."
"같이 들어가자."
"그래요."
어머니와 누나의 납골함 앞에 선 서지현은 배낭 안에서 챙겨왔던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향을 피우고, 접시 위에 챙겨왔던 것들을 꺼냈다. 그릇에 어포나 약과 같은 것을 올리고, 향을 피운다.
서지현이 그릇을 내 쪽으로 내밀자, 나는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술이 담긴 잔을 앞에 두고 살짝 뒤로 물러나 절을 한 서지현이 입을 열었다.
"서지현이에요. 이 사람이랑 만난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네요.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해도 꽤 많은 일들을 함께 했어요. 지금은,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결혼을 할 생각이고요. 세상이 두 분이 아직 살아계실때와는 좀 많이 달라져서, 정확히 결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렇게 인사를 한 서지현이 가만히 막걸리와 납골함 앞에 놓인 사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두 분이 어떤 사람들인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네요.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아무리 조심해도 며느리를 힘들게 하기 마련이라고 하던데. 게다가 제가 출신 성분이 좋은 여자가 아니라서. 아마 대부분의 시어머니나 시누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이 결혼을 반대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서지현은 말을 마치고 나서 납골함이 들어있는 유리를 가볍게 손으로 훑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서지현은 나를 한 번 본 다음에 눈을 감았다.
"저는 이 사람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가슴이 아파요.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상처가 이렇게도 깊은데. 저로서는 이 사람의 마음에 남아있을 상처를 전부 낫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그게 너무 힘드네요."
그리고, 우리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저 그래도 요리도 제법 할 줄 알고, 집안일도 나쁘지 않고... 이 사람 발목 잡는 일도 아마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고 집안이 좀 엉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간호사이기도 하고.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어요."
말을 마치고 나서 잠시 뒤, 서지현이 배낭에서 잔 하나를 더 꺼내더니 말했다.
"어머니, 그리고 형님. 저도 한 잔 할께요. 괜찮겠죠? 방금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대답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네요."
말을 마친 서지현은 잔에 막걸리를 따르더니 쭉 들이키고 잔을 내려놓은 다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이 근방에 머무르면서 자주 찾아올게요."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니, 해가 다 저물어서 밤이 되어있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머무를까요."
그래야 할 것 같다.
"납골당인데, 무섭지 않아?"
서지현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옆에 착 달라붙더니 연기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여기 너무 무서워, 안아 줄 수 있어? 히익, 꺄아아아."
나는 그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대답했다.
"음, 글쎄."
내 말에 서지현이 하, 하는 소리를 내고 입에 사탕 하나를 던져넣고는 아작거리며 씹었다.
"괜찮아요. 제가 귀염성이 없는 성격이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귀염성이 없는 성격은 아니지. 다만 방금 전에 그건 좀 어색하긴 했다. 해가 저물어 밤이 되자, 나와 서지현은 납골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잠자리를 마련하고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