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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105화 (105/237)

# 105

퍼레이드의 파괴자들

더 이상 음악의 연주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우리에게 확 유리해지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가면을 쓴 괴물들은 많았고, 거기에 더해서 보스 두 마리까지 합세하게 되었으니까. 일단, 걸려있던 시간 제한이 사라진 것에 만족하는 중이다.

퍼레이드는 이동을 멈췄으니까. 우리의 손목에 걸려있던 입장권은 떨어져나갔다.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도 괜찮지만, 여기까지 상황을 좋게 만들었는데 뒤로 빠질 생각은 없다.

"으윽."

근육 가면이 내려찍은 지팡이를 배리어로 막은 서지현이 뒤로 쭉 밀려나면서 낮게 신음했다. 몇 마리가 남았지. 내가 음악 지휘자를 죽이는 동안 서지현도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닌 건 확실하다. 숫자는 꽤 많이 줄었다. 대충 30마리 정도가 남았고, 거기에 더해서 내가 데려온 보스 두 마리. 다 합하면 32마리다.

밀려나는 서지현을 받아낸 나는 입을 열었다.

"괴물이 많지만, 실제로 제거해야 하는 녀석은 둘이야."

저 지팡이 들고 있는 근육 가면이랑, 쇠사슬을 휘감고 채찍질 하는 SM 가면. 두 녀석을 처리하는데 성공하면 검은 염소라는 녀석은 잠에서 꺨 거다.

"자다가 갑자기 깨면 기분이 좋을리 없죠."

그래, 사람과 동물, 괴물을 막론하고 자다가 갑자기 깨어난 상황에서 기분이 좋을리는 없을거다.

남은 녀석들이야 어떻게 되던지 우리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혹시라도 검은 염소가 자다가 꺤 화풀이를 우리에게 쏟아내는 건 무섭다. 이미 제르맹에게서 지금 저 퍼레이드가 잠들게 한 존재가 얼마나 살벌한 녀석인지는 충분히 설명을 들었으니까.

근육 가면과 SM 가면이 죽는 걸 확인하는 즉시 나와 서지현은 이 장소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거다. 여기에 남은 퍼레이드의 다른 괴물들은 뭐, 염소가 기분이 좋으면 살테고, 기분이 나쁘면 죽겠지.

서지현이 곧바로 근육 가면에게 화염구를 날렸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염구를 향해 녀석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강렬한 폭발이 일어난다.

"몸 한 번 좋네요."

그을린 양복 사이로 드러나는 무식할 정도로 튼튼해보이는 근육. 칼로 찌르면 칼이 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숨을 쉬익쉬익 몰아쉬던 녀석의 몸에 홍조가 번지기 시작한다. 뭐지, 흥분이라도 한 건가.

- 으아아아아!

녀석은 이내 자신의 양복 상의를 찢어버리고 근육을 드러낸채 전차처럼 우리를 향해 쇄도한다. 발이 땅에 닿을 떄 마다 포장재에 쩍쩍 금이 간다. 순식간에 우리 앞에 도달한 녀석이 매서운 속도로 지팡이를 휘두른다. 코 앞을 지나간 것만으로도 쐐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이어지는 내려찍기. 나는 휘둘러지는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그대로 박자에 맞춰서 검을 내밀었다. 내 검이 닿는 순간과, 저녀석이 지팡이가 내 몸을 때리는 순간은 일치한다. 그럼 후발선타지. 제 아무리 근육을 키워봤자 칼 맞으면 다 끝이야!

휘리릭, 하고 날아온 쇠사슬이 내 검에 휘감기며 타이밍이 어긋났다.

"아니, 이게 아닌데!"

본능적으로 주먹 두 번을 쥐자 나를 감싸는 배리어가 만들어져 지팡이를 막아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배리어는 의도와는 다르게 순식간에 작살난다. 그 잠깐의 순간 녀석이 휘둘러지는 지팡이의 경로에 바람개비를 가져가는데 성공한 나는 그대로 온몸에 힘을 주고 충격에 대비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나는 날아가다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몇 번 굴렀다.

"허억, 허억."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달려드는 다른 괴물들. 나는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뱉고는 녀석들이 내지른 지팡이와 휘둘러지는 쇠사슬 따위를 확인했다.

지팡이 네 개, 쇠사슬 다섯 개. 바람개비는 충전이 끝났다. 버튼을 누르고 바닥을 향해 바람개비를 휘두르자, 폭풍이 바닥을 향해 쏟아진 다음, 사방으로 매서운 바람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나를 향해 날아오던 쇠사슬과, 지팡이를 내지르던 괴물들이 순간적으로 주춤했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지금 뿐이다. 나는 곧장 하늘로 뛰어올랐다. 차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SM 가면에 휘두른 굵직한 쇠사슬이 내 발목을 감으려 든다.

"병신아, 안 통한다고!"

이미 경험해 봤잖아. 대가리에 구멍이 난 거냐. 발목에 휘감긴 사슬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프릭션 컨트롤을 사용했고, 내 발목을 꽉 잡고 있던 쇠사슬이 그대로 미끄러져버린다. 내가 착지할 예정인 곳에는 대여섯 마리 정도 되어보이는 괴물들이 자리 잡은채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서지현이 있던 곳에서 콰쾅,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폭발의 반동력으로 서지현이 내가 착지할 예정인 곳으로 날아왔다.

"저리가!"

서지현이 땅바닥에 낫을 내려찍자, 그대로 화염의 고리가 사방으로 쫙 퍼져나간다. 내가 착지할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이 화염에 휘감겼다. 서지현은 낫을 땅에 박은채 한 손을 들어올렸고, 녀석들의 몸에 엉겨붙어 타오르던 불꽃들이 그대로 녀석들의 눈구멍과 귓구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 크... 아아아!

녀석들이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르는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고, 탄내가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 나는 땅으로 떨어지며 단검을 뽑아내 쇼크를 휘감고, 던지기 시작했다. 퍽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몸에 단검이 박히고, 몸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한다.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사이 나와 서지현이 부지런히 녀석들의 목숨을 따냈다.

시체가 생겨나고, 이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나는 한 녀석의 머리를 잡아채 땅에 들이 받아버리고, 그대로 녀석의 위에 올라타고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노리고 찔러들어오는 지팡이. 두 개를 피하고, 나머지 하나는 나를 찌르는 타이밍에 맞춰서 바람개비를 휘두른다.

후발선타가 발동하면서 바람개비가 녀석의 목을 친다. 동시에 서핑을 멈춘 나는 휘둘러지는 쇠사슬을 피하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하늘에 떠 있는 나는 내 앞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녀석을 보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근육가면이잖아.

"이야, 니가 아주 단 둘이 오붓하게 싸우자고 판을 열어주는구나."

지금 우리가 죽여야하는 녀석 중에 하나가 나랑 공중에서 쌈박질 하자고 덤볐으니, 어찌 받아주지 않을 수 있겠어. 녀석이 나를 향해 지팡이를 내려찍고, 나는 녀석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슬을 휘두르는 SM 가면은 서지현이 상대하고 있다. 아까처럼 갑자기 쇠사슬이 날아와서 하던 일을 멈추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

갑자기, 녀석이 하려고 들던 공격을 멈추고 방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 행동이 이상하다고 눈치를 챈 모양이다. 녀석이 공격을 포기하는 바람에 후발선타는 발동되지 않았고, 대신 녀석은 내가 휘두른 바람개비를 막아내고, 공중에서 저 멀리로 튕겨져 날아갔다.

"지현아, 체인지! 그리고, 절대로 내 쪽으로 오지마. 절대로!"

말에 너무 생략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해했을까.

내 말에 서지현이 날아가는 근육가면과 떨어지는 나를 확인한 다음 뛰어올라 에노테르의 뒤꽁무니에 폭발을 일으키며 근육가면이 날아가는 쪽으로 향했다. 이해했구나.

그런 서지현을 보고 SM 가면이 사슬을 던졌지만...

"어딜, 넌 나랑 놀아야지."

사슬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던 내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1대 1이라고 한다면 서지현이 꿀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주변 반경 30m 안에 움직이는 것들은 다 적이지. 지팡이 몇 개가 나를 향해 들이밀어진다.

"이야, 고마워. 하나 필요했는데."

나는 한 녀석의 지팡이를 빼앗아서 땅에 깊숙하게 꽂아넣고, 휘둘러진 사슬 중 하나를 나꿔채서 빼앗았다.

"이제..."

그 사슬의 끝을 박아넣은 지팡이에 재빨리 휘감은 반대편을 손에 감아쥐었다. 이 사슬이 닿는 범위를 벗어나려고 들면 내가 알게 될 것이다.

[짐승의 시간]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여태동안은 한 번도 눈에 뵈이는게 없을 정도로 짐승의 시간을 유지한 적이 없었지. 이번에는 한 번 내 주변에 움직이는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떄까지 유지해보자. 내 주변에 남아있는 녀석들의 숫자는 대충 30명, 언제까지 유지해야 이 녀석들을 제거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고.

"하아, 하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서히, 몸에 서서히 피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엄청 추운 겨울날 새벽에 막 일어나자마자 덜덜 떨면서 밖으로 나가 윗옷을 벗은 채 뛰면 받을 법한 느낌.

나의 몸이 한계를 모르고 빨라지고, 강해지기 시작한다. 움직이는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다 뭉게졌다.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가버린다.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나의 감각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고, 그게 뭔지 인지하기 전에 또다시 다른 정보를 받아들인다.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제대로 분석할 여유가 없다. 뭔가 움직이는 것 같으면 공격한다. 그것 뿐이었다. 피아를 구분 할 여유가 없다. 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여 뭔가에 칼을 박아넣는다. 그리고 칼을 박아넣는 감각을 느꼈다 싶을 때는 이미 두셋 정도의 몸에는 더 칼을 박아넣고 난 다음이었다.

분석하기 전에 새로 들어오는 감각의 정보들 속에서 나는 분석을 포기하고 그냥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가지만 머리에 기억하고 있다. 팔에 휘감긴 사슬이 팽팽해지면 돌아간다. 움직이는 건 다 죽인다.

"으아아아아!"

뭔가가 나를 향해서 날아온다. 나는 그걸 그대로 맨 손으로 잡은 다음 당겼다. 뭔가가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허공에서 토막나버린다. 뭔가가 내 등에 닿는게 느껴진다. 몸을 돌려 내 몸에 닿은 걸 꽉 붙잡고 쇼크를 발동시킨 다음 아래에서 위로 쪼개버렸다.

뻐억, 하는 느낌과 함께 등짝에 뭔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뭔가가 있다. 나는 그쪽으로 달려들어서 녀석의 위에 올라탔다.

***

"이런...!"

서지현이 상대하고 있던 근육 덩어리는 서지현과 싸움을 이어가다가, 오현석에게 시선을 던지고는 곧바로 그녀의 공격을 모두 무시하고 오현석 쪽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오현석은 다른 괴물들은 거의 대부분 썰어버리고, 두어 마리 정도의 가면을 쓴 괴물들과, 그들을 통솔하는 보스 한 녀석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오현석이 자신의 주변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짐승의 시간이라는 기술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서지현도 설명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서지현은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벌려둔 상태에서 오현석에게로 달려드는 근육 덩어리를 향해 화염을 쏟아넣었다.

근육덩어리는 서지현이 쏟아낸 화염을 그대로 맞으면서, 자신이 들고 있떤 지팡이로 오현석의 몸을 힘껏 내려찍었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오현석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근육 덩어리의 몸 위에 올라탄채 마구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퍼버버버벅,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쓰러진 근육 덩어리의 머리통 주변의 땅이 통째로 박살나기 시작한다. 그 틈에, 다른 보스가 던진 쇠사슬이 오현석의 목에 휘감겼다.

"흐으, 커헉."

목에 쇠사슬이 감긴 오현석은 잠깐 숨이 막히는지 그런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눈이 충혈된 채로 계속해서 쓰러져 있는 근육 덩어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위험한 모습이다.

게다가, 저 상태에서 하나를 죽이는데 성공한 건 괜찮지만... 저 사슬을 든 보스까지 죽이면 그대로 퍼레이드가 멈춰버린다. 퍼레이드가 멈추면 검은 염소가 깨어날 것이다.

오현석은 지금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일테니, 당연히 검은 염소에게 달려들겠지.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예상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쇠사슬을 들고 있는 괴물은 서지현이 처리하면 된다.

"스킬 발동, 멈춰요!"

서지현의 말에 오현석은 대답하지 않고 숨을 계속 몰아쉬고 있었다. 점점 마음이 급해진다. 오현석이 짐승의 시간을 발동했다고 해도, 검은 염소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럴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잠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지현이 자기도 모르게 오현석에게 다가가면서 막말을 던졌다.

"야 임마, 오현석! 멈추라고! 잘못하면 당신, 죽을 수도..."

서지현의 눈 바로 앞에 바람개비가 들이밀어져 있었다. 그리고, 오현석이 놀란 표정으로 서지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있어요."

서지현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가까스로 그 한 마디를 뱉었다. 다행이, 바람개비가 서지현을 찌르는 일은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서지현의 외침을 오현석이 들었던 건지. 오현석은 서지현의 머리에 검을 박아넣기 바로 직전에 검을 멈추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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