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마녀가 사는 저택
다음날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미리 정해놓은 일과에 따라 행동하며 하루를 보냈다.
만들어 놓은 초대형 통발에서 만족스러운 양의 경험치를 회수하고, 다른 장소들을 돌아다니면서 포인트와 경험치를 추가로 수급한다.
정해진 일과를 마친 나와 서지현은 다시 안전구역으로 돌아왔다.
"분위기가 꽤 어두운데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표정이 별로 밝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도 지금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는 분위기. 김용천이 우리를 보고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 돌아왔나."
나는 김용천의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
"분위기 꿀꿀한데, 무슨 일이야."
내 말에 김용천이 입술을 씹으며 대답을 돌려줬다.
"정찰을 나갔던 사람들이 다쳤어. 급한대로 상처를 치료했는데 영 예후가 좋지 않아."
서지현이 그 말에 턱을 쓰다듬고 대답했다.
"제가 한 번 봐볼게요. 뭔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서지현의 말에 김용천이 그녀를 잠깐 바라보았다.
"자네가?"
서지현이 김용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일단 세상이 이 꼴이 나기 전에는 간호사였으니까요.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 말에 김용천이 서지현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인 다음에 말했다.
"부탁 좀 하겠네."
나와 서지현은 곧바로 다친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 교실로 향했다. 교실에는 사람들이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눈 주변의 핏줄이 타르처럼 썩어있고, 팔과 다리의 색도 검게 죽어있었다.
"... 이건 병이 아닌 것 같은데."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녀석들의 몸에서 마력이 느껴진다. 서지현처럼 본격적으로 마력운용을 배운 건 아니지만, 높은 마력 능력치를 쓸 구멍이 생기면서 어렴풋이 마력을 느낄 수는 있게 되었으니까. 뭐, 마법을 통해서 걸리게 한 질병일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저주네요. 작동 방식이 당신이 놀이동산에서 입었던 상처와 비슷해요. 효과는 다르지만."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마에 손을 올렸다. 서지현이 이마 위에 손을 올리고 나자, 닿은 부분에서 검은 기운 같은 것이 일렁거리며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마력이다. 서지현은 잠시 뒤에, 팔다리와 눈 주변의 핏줄이 검게 썩어있던 사람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장난 아니네. 능숙하잖아. 이 정도면 저주를 방호할 방법은 필요 없는거 아니야?"
내가 배운 핸디 매직은 야매라서 저런 걸 하지는 못한다. 정통 카테고리를 밟은 서지현은 이런 것도 해낼 수 있구나. 서지현은 곧장 다른 사람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며칠 전에 당신 상처에 깃든 저주를 뽑아내 본 적이 있어서 그런 거에요. 게다가, 이건 꽤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서 싸움 중에는 불가능해요."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곧바로 누워있는 사람들의 몸에서 저주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 서지현은 손을 적신 환자들의 진땀을 손수건으로 훔쳐내고는 말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네요. 다른 손상은 없으니까. 금방 정신을 차리겠죠."
다섯 명의 환자 몸에서 저주를 뽑아내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확실히 실전에서 써먹기는 힘들어 보이네.
"옆에서 구경하기만 했다고 했으면서."
결국 내 몸에 걸려있던 저주를 뽑아낸 건 서지현이었구나. 내 말에 서지현이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괜히 말해주면 미안해서 펑펑 울까봐 숨긴거에요. 다른 뜻은 없고."
어쨌뜬, 사람들의 몸에 깃들어 있던 저주를 죄다 뽑아내는데 성공한 서지현은 나와 함께 문을 나섰다. 앞에는 김용천이 서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
서지현은 자신의 앞에 들이밀어진 김용천의 얼굴을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부상이 아니라 저주였어요. 다 뽑아내는데 성공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릴거에요."
서지현의 말에 김용천이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흔들고는, 곧장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김용천을 보던 서지현이 뒷머리를 긁으며 한 마디 했다.
"누가 보면 자기 동생이라도 살려낸 줄 알겠네요."
"그러게."
잠깐 복도를 걸어가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저주에 걸렸다라."
서지현이 내 말에 음? 하는 소리를 냈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상대한 과자 녀석들이 우리에게 저주를 거는 경우는 없었잖아."
저주를 거는 과자는 없었다. 안전지대의 생존자들이 찾아낸 장소를 적어도 여덟 곳은 털어먹었지만, 그 중에서 과자가 아니었던 녀석들은 단 하나도 없었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있다가 나를 바라봤다.
"저 사람들이 저주에 걸린 장소를 찾아가서, 그 원인을 조져놓으면 떨어질 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나와 서지현은 복도를 걸어가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서 김용천이 들어가 있을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군. 말이 되는 이야기야."
우리가 설명을 하는 동안에 한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신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물..."
곧바로 김용천이 녀석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물을 조금 마신 그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김용천의 말에 녀석이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마녀. 마녀였습니다."
저주와 마녀라. 단팥빵에 우유만큼이나 좋은 궁합을 자랑하는 조합이지. 스타트가 좋은 걸. 녀석이 잠깐 기침을 하고 나서 입가를 닦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저희가 정찰했던 곳은 덕성리 일대였습니다. 논과 밭 말고는 별로 눈에 띄는게 없는 곳이었지요."
덕성리라. 서지현이 곧바로 지도를 확인해서 동그라미를 치고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 일대에요. 정확한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지현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찾아간 곳은 덕성 2교 인근이었습니다. 그 장소 인근에는 원래 주유소가 하나 있어야 하는데, 주유소 대신 커다란 저택이 한 채 있었습니다. 담쟁이 덩굴로 뒤덮히고, 처음 보는 온갖 날벌레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음산한 곳이었지요."
그는 말을 하고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택을 바라보고 있던 와중 하늘에 구름이 끼더니, 주변에 음산한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저택에 난 창문에서 몇 쌍의 누런 눈동자가 우리를 바라봤고, 불어오는 바람이 가지에 스치면서 흐느끼고..."
말하는 녀석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시지가 떴습니다. 미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에, 저는 2000pt가 넘어가는 보상을 주는 미션은 용인의 랜드 클리어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어요."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덜덜 덜리는 손을 꽉 잡고는 침을 삼켰다.
"솔직히 욕심이 났습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들 하죠. 우리는 마음을 크게 먹고, 안에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런 선택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젠장맞을."
그래, 모르면 용감하다. 2000pt나 주는 미션이라는 건, 그 값을 할 정도로 어렵다는 뜻이다. 당연히, 죽을 가능성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된다.
"우리는 저택으로 접근했지만,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저택의 벽을 감추고 있던 담쟁이 덩굴 아래 숨어있던 수십개의 입이 정체 불명의 가락을 노래하며 깔깔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갔던 사람들 중 두 명이 그대로 정신을 잃고 입에서 피를 토하거나, 몸을 경렬하기 시작했죠. 공포에 질린 우리는... 우리는..."
녀석이 얼굴을 가렸다.
"공포에 질려 쓰러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저택의 발코니에 누군가 나와서 우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 미모의 여자. 창백한 피부와 붉은 입술! 틀림 없습니다. 그 존재는 섬뜩하고 사악하게 빛나는 노란 눈동자로 우리를 깔보며, 비웃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 뭐 국문학과 같은 곳을 다니던 녀석인가. 공포에 질린 녀석 치고는 표현이 굉장히 유창한데.
"그건 마녀라는 단어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안전지대로 도망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팔다리가 점점 검게 변하고, 몸을 타고 흐르는 피가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 살아있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노래 가락이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겠지만, 가락을 한 번 들려줘."
내 말에 녀석이 나를 빤히 보고 있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고 자신이 들었던 가락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음치는 아니었다.
가만히 멜로디를 듣고 있던 나는 살짝 숨을 들이켰다. 옆에서 서지현이 말했다.
"우리가 놀이동산에서 들었던 퍼레이드의 음악이에요."
그래, 그 음악과 비슷한 가락이다. 물론, 우리가 들었던 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 들어봤던 우리가 유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두 가락은 서로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그 저택은 우리가 조져야 하는 퍼레이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라면 최소한, 그 검은 염소라고 불리는 괴물과 접점이 있거나. 그리고, 그건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주유소라."
서지현이 그 남자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정확한 위치를 좀 부탁드려요."
서지현의 말에 남자가 펜으로 지도의 한 쪽에 표시를 해주었다. 서지현은 그 지도를 다시 집어넣었고, 김용천이 우리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다들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알았어. 괴롭히는 건 여기까지. 다시 돌아가마."
서지현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얻었다.
"분명히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머무르는 교실롣 돌아온 서지현이 단언하듯이 대답했다.
"그래, 게다가 과자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지."
"마마 델리 생각이 나네요."
시뻘건 살덩이로 뒤덮혔던 도시 안에 이질적으로 열려 있던 레스토랑. 그리고 그 안에서 상대해야 했던 건 기괴한 살덩이들 대신 동물 머리를 하고 있던 요리사와 웨이터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마 델리의 레스토랑을 클리어하면서 얻게 된 것은 살점 공예가를 죽이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
"과자 투성이 세상에서 홀로 과자가 아닌 집에 머무르는 마녀라."
안동 시의 클리어와 닮은 점이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클리어하는데 성공하면 그 퍼레이드의 음악에 대한 저항은 물론이고, 저주에 대한 대항책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 두가지가 퍼레이드의 공략을 사실 상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요소였으니까. 이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우선은 목표한 레벨부터 달성하고 나서 그 저택으로 향해보자."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해당 미션이 주는 포인트를 고려해보면 미션을 클리어하고 얻게 되는 경험치도 상당할텐데요. 굳이 50을 맞추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야 그렇겠지만.
"레벨 업을 충분히 하고 나서 진행하는 편이 클리어가 훨씬 수월할거야. 게다가, 재수가 좋으면 원래 목표로 했던 레벨 이상을 성취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목표치를 초과 달성해서 나쁠 건 없다. 서지현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수긍했다.
"좋아요. 게다가 깨어난 다른 사람들이 뭔가 다른 정보를 더 제공해 줄 지도 모르니까요."
다친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다. 김용천과 생존자들이 용인시 주변을 뒤지고 다닌 행위는 확실한 성과의 형태로 다가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