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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96화 (96/237)

# 96

전투 파밍

터널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를 하던 모 노점상은 사방을 휩쓸고 다니는 우리라는 이름의 인적재난에 치여서 이슬로 사라졌다. 터널 근처에 남아있는 건 그 친구가 애지중지하며 끌고 다녔을 아이스크림 트럭과, 애처롭게 울려퍼지는 구슬픈 오르골 사운드 뿐이다.

이제 저 트럭이 돌아다니는 일은 없을거다. 끌고 다닐 주인이 뒤졌으니까.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에서 검을 뽑아내고는 입맛을 다셨다.

"미안하다. 태풍에 날아가는 간판을 맞고 죽었다고 생각해."

그렇게 강한 녀석은 아니었기 떄문에 포인트를 많이 주지는 않았다. 한 700pt 정도. 솔직히 좀 쪼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뒤질 뻔했지만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 만으로 오천을 넘는 포인트를 번 직후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걸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녀석을 죽이고 나서 얻게 된 것은 검은색 코트였다.

"좋아요, 이걸로 하나 끝장냈으니."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도를 살펴보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툭 하고 쳤다.

"이곳은 어떨까요."

다음 목표는 용인시를 가로지르는 탄산음료 바다에 사는 젤리로 만들어진 커다란 이무기였다. 다른 말로는 왕꿈틀이. 이무기보다는 이쪽이 더 이미지에 부합하는데.

- 키야아아아아아!

오색 찬란한 캔디로 만들어진 큼직한 송곳니를 드러내고 꿈틀거리는 젤리 지렁이. 왕꿈틀이라고 하면 저 정도 사이즈는 되어야지. 나와 서지현은 녀석을 응시했다.

"키야아아아 좋아하시네. 기껏해야 말캉거리는 젤라틴 덩어리 주제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녀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서지현은 뛰어오르며 큰 폭발을 일으켜 녀석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다. 곧바로 녀석의 머리가 서지현을 노리지만. 녀석의 머리가 서지현을 덮치는 것 보다, 휘둘러진 에노테르가 녀석의 입천장에 박히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저런, 저게 저렇게 박히면 이후에 굉장히 아픈 광경이 펼쳐질텐데.

에노테르 끝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뿜어지는 거대한 폭발. 정수리까지 뻥 하고 뚫려버린, 탄산음료 강에 사는 왕꿈틀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덜너덜해진 머리통에 서서히 다시금 젤리가 차오르기 시작한다. 제법 회복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녀석의 입이 쩍 열리고, 고운 입자의 밀가루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녀석의 입에서 만들어진 아주 작은 불꽃. 밀가루는 그 불꽃에 반응해 강렬한 폭발로 주변을 휩쓸었다.

- 그르르르.

분진 폭발이 만들어낸 장관을 바라보던 왕꿈틀이가 꿈틀했다.

우리는 멀쩡하다. 뭐,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다. 이미 한참 전에 과자로 변해저린 우리의 옷가지는 방금 전의 폭발로 너덜너덜해졌다. 상관없다. 돌아가기 전에 배낭에서 옷을 꺼내서 다시 갈아입으면 될 일이다. 몸을 휩쓴 폭발로 인해 생긴 작은 생채기들. 하지만 그것 뿐이다. 폭발은 우리에게 치명타가 되지 못한다.

"밀가루 브레스라니. 고작? 젤라틴 드래곤, 넌 용족의 수치다."

산성 브레스도 아니고, 화염 브레스도 아니고. 기껏 심호흡한 다음 뿜어내는게 밀가루라니. 무슨 제빵사십니까?

나는 재빠르게 녀석의 몸에 바람개비를 박아넣고 뛰어오르기를 반복하며 녀석의 머리에 올라타는데 성공했다. 그대로 녀석의 몸을 미끄럼틀 삼아 쭉 내려가며 녀석의 등짝을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서지현의 폭발로는 입은 큰 피해는 어느정도 회복하는데 성공한 모양이지만.

어디 또 해봐.

이것까지 치료할 수는 없을걸. 잘려나간 젤리 덩어리가 탄산음료의 강으로 풍덩풍덩 떨어지기 시작한다. 걸레짝이 된 이무기가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흘리며 비틀거린다. 하늘 높이 뛰어오른 서지현의 낫이 그대로 휘둘러지며 녀석의 머리를 쩍 갈라버린다.

대가리르 꼿꼿하게 세운채 반항하던 이무기는 결국 그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몸을 뉘였다. 서지현은 폭발을 몇 번 일으키며 무사히 땅에 착지하고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

"네, 이 정도면 금방 회복될 거에요."

서지현의 양 팔에는 희미하게 멍자국 같은 것이 드문드문 생겨있었다. 괴력이라고 했나, 스킬의 부작용 같은 거다.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근육을 혹사한다. 멍자국을 바라보던 나는 한 마디 했다.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가정폭력이라도 휘두르는 줄 알겠... 미안."

순간적으로 나는 하던 말을 멈춰야 했다. 서지현에게 들려주기에는 썩 적절하지 않았던 농담이었다. 지나치게 흥분한 와중에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버렸네. 내 말에 서지현이 픽 웃고는 대답햇다.

"가정폭력이라면 제가 잘 알고 있는데... 이런 가벼운 상처와 비교 할 만한 행위는 아니에요. 맞아 본 적은 없지만 사랑의 매 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는 가족 같은거 없었어요. 당신이 제 첫 가족인걸요."

내가 저지른 실수를 저렇게 받아준 것은 고맙지만, 저 반응 때문에 오히려 더 미안한 느낌이 든다. 서지현이 내 표정을 보다가 픽 웃고는 내 엉덩이를 손으로 한 번 짝 때렸다.

"고작 그런걸로 의기소침하기는. 그나저나, 슬슬 해도 지고 몸도 좀 피곤한 것 같아요."

확실히, 거의 8시간을 날뛰어서 그런지 슬슬 몸이 지친게 느껴진다. 물론 조금 더 무리를 한다면 계속해서 이 과자를 쓸어내는 폭풍을 유지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아마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게 굉장히 고역일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러죠."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서 오늘의 성과를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포인트 1600, 레벨은 4 올랐다. 걸어가던 와중에 서지현이 머리를 긁었다.

"이렇게 3일만 더 하면 용인에 걸어다니는 과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겠는걸요."

"글쎄... 용인 시의 현 상황은 놀이동산에서 자고 있는 검은 염소가 꾸는 꿈이잖아. 번식 같은 걸 해서 숫자를 늘리는 형식은 아닐 것 같은데. 이상하잖아."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왜요, 암컷 도너츠가 수컷 도너츠랑 서로 부둥켜 안고 '온다, 온다! 내 안에 당신의 커스터드 크림이 한 가득! 위험한 날인데! 아가 도너츠가 생겨버려! 팥앙금밖에 모르던 몸이 커스터드 크림을 알아버렸! 커스터드 크림 갱장해여어어어어!' 같은 소리를 하며 번식을 할 수도 있잖아요."

서지현의 대답을 들은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뭔데 그게, 푸드 포르노 같은 거냐.

"그거 참 듣기만 해도 위장이 꼴리네."

위꼴이라는 단어가 이런 식으로 쓰이는게 맞는 건지는 모르겟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제대로 된 쓰임새 같기도 하다. 학교 근처에 도착한 나는 서지현을 보고 말했다.

"일단, 위에 코트라도 한 벌 걸쳐."

내 말에 서지현이 자기 몸을 이리저리 보다가 말했다.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보여주면 안되는 부분은 다 크림이나 잼 같은 걸로 가려져 잇는데."

서지현의 말에 내가 뭐라고 하려들자, 곧바로 서지현이 배낭에서 코트를 꺼내서 몸을 가렸다.

"농담이에요. 미치지 않고는 이 몰골로 돌아다니기 힘들죠."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다. 우리의 몰골을 본 김용천이 한 마디 했다.

"그 꼴을 하고도 안먹다니. 의지가 대단하잖아. 사냥은 즐거웠던 모양이군."

즐겁다기보다는, 정신을 차려보니 온 천지에 죽은 과자가 널려있었다는 편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겠지만.

"씻고 오는 편이 좋겠죠."

단 냄새 풀풀 풍기고 있으면 여기에 남아있는 사람들만 힘들다. 김용천도 벌써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나잖아. 김용천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곧바로 머무르던 교실 쪽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몸을 닦은 다음에 과자로 변해버린 옷들을 학교 밖으로 던져버렸다.

"제가 봤을 때는,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해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렇게 착실하고 성실하게 사냥을 해서 레벨업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까놓고 말해서 진행속도가 느린 편이다. 오늘 하루종일 그 난리를 피우고도 얻은 성과라고는 천 조금 넘는 포인트와 레벨 네 개가 고작이었다.

"대형 악어들에게 화염 방사를 뿌렸을 때와 같은 쌈박한 방법이 필요하긴 한데."

물론, 지금 우리 레벨이 된 상황에서는 굳이 소방차 끌고 와서 기름 뿌리고 불을 지를 이유가 없다. 그냥 달려들어서 칼질하기 시작하면 그 개고생을 할 필요도 없이, 더 빠른 시간에 강물 근처에서 쉬고 있던 악어들에게 평화로운 안식을 선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건 어떨까."

"이런게 뭔지 알아야 반응을 해드릴 수 있겠는데요."

까칠하기는. 나는 서지현의 말에 픽 웃고는 대답했다.

"과자 괴물들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과자를 주잖아?"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들을 다 챙겨서 한 곳에 몰아놓으면."

내 말에 서지현이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네요. 우리가 찾아다닐 필요없이."

지들이 알아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올 것이다. 그럼 우리는 거기에 머무르고 있다가 싹 다 쓸어버리면 된다.

"건물을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겠네요."

롤러코스터를 무너뜨리면서 확 레벨업을 했던 것처럼.

"김용천이 우리의 계획을 들으면 썩 좋아하지는 않겠는데."

암세포가 생명이라고 말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착하디 착한 인격자니까. 당연히 이 계획에는 반대할 것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어꺠를 으쓱했다.

"그렇겠죠. 괜히 분란 만들기는 싫으니, 들키지 않게 몰래하죠."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과자를 먹은 녀석들에게는 희망이 없어요."

덩치가 문제가 아니다. 김용천의 말에 따르면 과자를 먹은 녀석들은 그거 말고 다른 걸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는 모양인데. 랜드 클리어에 성공했다고 그게 싹 풀리고,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로 변한 몸을 누가 송곳으로 콕 찔러서 살을 쫙 빠지게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서지현의 말을 들은 나는 잠깐 있다가 휙휙 손을 저었다.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는 그런거까지 일일히 하나하나 줄 정도로 착한 사람들은 아니야. 쓸데없이 자기 합리화 하지 말자고."

우리가 그 정도로 호인이었다면 원주시에서 서큐버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하나 가져가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 죽었을거다. 아니, 거기까지 갈 이유도 없다. 안동시에서 끝장났을거다. 대충 계획의 갈피를 잡은 우리는 어느 건물에 몰아넣는게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김용천 씨가 사람들을 보내서 주변을 조사하고 있어요. 당연히, 조사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일을 벌이면 들키겠죠."

이미 조사가 끝난 지역에서 일을 벌여야 한다.

"마침, 우리가 뚫어놓은 역북터널에서 위로 쭉 올라가면 여수곡 터널이라는 곳이 있네."

터널이라는 점이 더욱 더 마음에 든다.

"놀이동산 쪽으로 통하는 터널 입구를 막아놓고, 그 끝에다가 사람들을 몰아놓으면..."

녀석들에게 과자를 먹이고 싶어하는 과자 괴물들이 터널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할거다. 충분히 숫자가 쌓였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대로 반대편 입구에서 자리잡고 터널 안쪽으로 나아가며 괴물들을 쓸어내면 된다. 그냥 통째로 터널을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는 좀 아까운 계획이다.

"어쩐지 통발 낚시 같은 느낌이네요."

규모가 좀 크기는 하지만 통발 낚시와 크게 다를 건 없다. 터널이 통째로 통발이 되는 거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그쪽에 가서 모여있는 과자 괴물들을 쓸어내면 되는거고. 그 와중에 틈틈히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 김용천과 생존자들이 새로 찾아낸 곳으로 가서 포인트 벌이 겸 추가 경험치 획득을 진행하면 되겠지.

"폭렙은 몰이사냥이 왕도라고들 하던데. 역시 옛말에 틀린게 하나도 없다니까."

이 정도면 딱히 손색이 보이지는 않는다. 계획이 완성된 기념으로 가볍게 나와 서지현은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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