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탈옥했다-89화 (89/237)

# 89

환장의 나라로 오세요

다음 날이 되었다.

나와 서지현은 자연스럽게 근무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들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당연하지, 이후에 우리가 할 예정인 일은 냉정하게 말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바리케이트 경계와는 다르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준비 끝?"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가지를 들어올려 가볍게 흔들었다.

"선생님, 다음에 혼낼 때는 제발, 교복 단추는 뜯지 마세요."

단추가 뜯어져 나간 교복을 바라보던 나는 입맛을 다신 다음에 대답했다.

"그게 그렇게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뜯어져 나갈 줄 누가 알았겠어."

"전혀요. 어젯 밤에 거의 무슨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너는 무서우면 키들거리며 웃는 타입이냐. 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서 바람개비를 들고 말했다.

"그럼, 김용천에게 가서 말하고 출발하자."

우리는 짐을 싸서 김용천에게로 향했다.

"가는 건가. 꽤 이른 아침인데."

그럼 일어났으면 출발해야지.

"앉아서 놀아봤자 뭐하겠어."

내 말에 김용천이 웃음을 흘리고 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녀와라."

그러지. 김용천은 문을 나서려는 우리를 보고 말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마. 너희 둘이 나가서 과자를 먹지만 않았다는게 확인되면 이 장소는 항상 열려있다. 언제나 다음을 생각 할 수 있을테니까. 살아서 돌아와라."

생존자 하나 하나가 중요해서인가. 아니면 김용천이라는 녀석의 사람됨이 너무 좋아서인가. 어쨌든 녀석의 말투와 표정은 꽤 진심이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성격은 아니지만, 며칠 더 보면 정이 들겠는데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오호, 하는 소리를 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서지현이 정을 줄 만한 사람이 있다니. 놀라운걸."

내 말에 서지현이 픽 웃고는 대답했다.

"그냥, 뭔가 체육관 관장이라기보다는 맹한 강아지 같지 않아요?"

김용천? 약간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 서지현이 잠깐 나를 보고는 한 마디 했다.

"물론 저에게는 당신 뿐이니 그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어요. 강아지 같은 남자라면 결국 내가 싸고 돌아야 하는데... 저는 굳이 개과 동물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늑대 쪽이 더 좋거든요."

"이야, 그럼 나는 뭐 늑대라는 소리인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개과라기보다는 고양이과죠. 그리고 저는 당신이 개이건 고양이이건 상관없어요."

나는 서지현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봐, 니가 그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하니까 옷이 전부 과자로 변해버렸잖아."

서지현이 내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더 걸어가기 시작하자 저 멀리에서 커다란 비행선이 돌아다니는게 보였다.

"좋아, 저건 또 뭐지."

비행기도 아니고 비행선이라니. 저런 걸 한국에서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물론 멀리서 보이는 물건이지만 딱 봐도 저것도 과자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기가 막히네."

둥둥 떠서 날아다니던 비행선이 바닥으로 뭔가를 뿌리기 시작했는데, 약간 신경을 집중해서 살펴보니 과자로 해당 지역을 거의 폭격하다시피 하는 중이었다.

"저거에 걸리면 좋은 꼴은 못 보겠죠."

그래, 오늘 목적은 놀이동산을 체크하는 거니까. 저런 거대한 비행선이랑 쌈박질을 뜨며 시간과 기력을 낭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꽃 피는 곳에 나비와 벌이 꼬인다고 하잖아. 저 설탕 폭격이 쏟아진 곳에는 분명히 그떄 봤던 사람들이 과자를 뜯어먹고 있을 것이다.

나와 서지현은 비행선이 지나가는 경로를 피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용인은 과자들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먹거리에게 역으로 지배당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은 안동에서 한 번 겪어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큰 규모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걸로 저 괴물들이 얻는게 뭘까요?"

골목에 숨어서, 사람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는 거대한 와플을 살펴보고 있던 서지현이 꺼낸 질문이었다.

"그러게, 아무리 봐도 잡아먹으려고 드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목적도 없이 계속 먹이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으 길거리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쉬며 먹고 자기를 반복할 뿐이고, 계속해서 살아있는 과자들이 돌아다니며 녀석들에 더 과자를 먹이고 싶어서 안달한다. 근데 단지 그것 뿐이다. 지금까지 놀아동산을 향해 이동하며 숨어서 관찰한 약 2시간 동안, 바닥을 굴러다니는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럴거면 왜 먹이는 거지. 나는 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붊명에서처럼, 저렇게 자꾸 먹이다보면 언젠가 뭐 진짜 돼지 같은 걸로 모습이 바뀌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결국은 가봐야 알겠네요."

놀이동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놀이동산으로 가까워 질 수록 돌아다니는 과자들의 숫자도 점점 많아져서, 들키지 않고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소모해야 했지만...

결국 도착했다. 서지현은 잠깐 입구를 바라보고 잇다가 한 마디 했다.

"어릴 적, 정말 어릴 적에는 딱 한 번이라도 여기에 와봤으면 했었죠."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슥 주변을 둘러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 여자가 나를 여기에 데리고 오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지만."

서지현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뭐 어때. 어쨌든 가족이랑 함께 온 걸로 칠 수는 있잖아."

남자와 여자가 가족이 되는 길은 형제자매만 있는게 아니지. 서지현이 내 말을 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놀러 온 건 아니지만요."

그래, 우리는 약 45만평에 달하는 이 말도 안되게 커다란 놀이동산 안에서 랜드마크를 찾아내야 한다. 사실 상,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지.

사실 놀러왔다고 해도 어트랙션을 탈 수 있을리가 없다. 작동할지 안 작동할지도 확실하지 않고, 작동시켜 줄 사람도 없으니까.

"좋아, 어디부터 살펴볼까."

일단 큰 구분으로는 이 놀이동산은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놀이동산 그 자체와, 거기에 붙어있는 거대한 워터파크.

"당연히, 놀이동산부터."

아지자기, 알록달록한 성벽의 디자인을 하고 있는 정문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딱히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모습보다, 훨씬 더 놀이동산 같아졌는데."

"그러게요, 건축 자재가 죄다 총천연색 사탕과 과자로 변해서 그런가."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쩍 근처에 놓여있던 팜플렛을 살펴봤다.

"하아,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겠는데요."

어차피 안으로 들어가기는 해야 하고,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은 글로벌 페어라는 구역이다. 놀이기구보다는 기념품을 파는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구역. 우리는 매표소를 넘어 놀이동산 안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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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즐거운 곳이, 더욱 즐겁게! 퍼레이드♬ All Night↗ The Wonder Sweets♥

목표 : 놀아동산을 배회하는 퍼레이드를 멈춰라.

보상 : 이용권 해제 및 5500pt

※ 이용권을 찬 채로 놀이공원 밖으로 나가면, 그 이유를 불문하고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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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0pt를 준다고? 이거, 대놓고 불길한데. 많이 준다고 좋아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다. 친구가 생일 선물로 아파트를 한 채 약속해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 메시지를 읽다보니 손목에 느껴지는 어색한 감촉.

우리의 손목에는 종이로 만든 알록달록한 팔지가 하나씩 채워져 있었다. 당연히, 뜯으려고 기를 써봐도 도대체 뭘로 만들어진 물건인지 손목에서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건 과자가 아니다. 서지현이 그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일 참 잘 돌아가네요."

물론 나가려고 시도를 해볼 수는 있겠지만, 미션에 쌈박하게 붙어있는 당구장 표시는 무시하고 시도할 만한 용기는 우리에게 없다. 메시지에 떠오른 경고는 문자 그대로 경고다. 개수작 부리지 말고 시킨 걸 하라는 강렬한 경고.

갑자기,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빠바밤, 하는 나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흥겨운 행진곡. 동시에, 움직일리가 없었던 온갖 과자로 만들어진 놀이기구들이 저 멀리에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별로 좋지 않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메시지의 경고대로 우리는 이 놀이동산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퍼레이드를 찾아내서 멈춰야 한다.

동네 시끄러워서 살 수 없다고 민원을 넣는 식으로 멈출 수 있을리는 없고, 당연히 퍼레이드를 멈추기 위해서는 물리력이 동반되어야겠지.

"기념품점 투성이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놀이공원의 시작이고 끝이잖아요. 첫물을 쫙 빨아먹고, 끝물도 쪽쪽 빨아먹기 위해서는 입구 근처에 기념품점이 한 가득 있을 수 밖에 없죠."

그렇게 쭉 이어지는 기념품점의 거리를 벗어나자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꽤 커다란 나무였다. 뭐라고 해야 하나, 굳이 따지자면 이쁘게 장식한 브로콜리 같은 모습이다. 나무 아래에는 선물 상자들이 한 가득 있었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서지현을 멈췄다.

"왜요?"

"나무 아래의 선물상자들, 마음에 걸리는데."

알록달록한 색깔의 엄청 커다란 상자들이 나무 아래에 한 가득 놓여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저 상자들은 어쩐지 우리를 엿먹이려 들 것 같은데. 엿을 먹인다면 당연히 뭐 가볍게 폭죽이나 터져서 놀래키는 식의 귀여운 엿을 먹이지는 않을거다. 서지현이 팜플렛을 슬쩍 본 다음에 말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고 싶으면 좋든 싫든 저 나무 쪽으로 접근해야 해요."

무기를 쥔 채로 나무 쪽으로 접근하자. 바닥에 놓여있던 커다란 상자들에서 뭔가가 띠용, 하고 튀어나왔다. 잭 인 더 박스라고 하나. 삐에로 대갈빡이 뿅 하고 박스에서 튀어나와 스프링에 걸린채 달랑거리는 걸?

- 으헤헤헤헤헤헤, 놀자!

저런 삐에로는 싫어. 뭐야 저게. 상자 안에서 사탄한테 삼만 팔천번 정도 따먹히면 삐에로 얼굴이 저렇게 변할까. 대걸레처럼 엉망진창으로 엉켜 있는 시뻘건 머리털, 코에 달려있는 흉측한 빨간코, 군데 군데 지워진 흔적이 보이는 하얀 분장과 눈가의 시뻘건 세로줄 화장.

그리고 누렇게 변색된 면도날같은 이빨이 가득 달린 커다란 입까지. 네 살짜리 애들도 저 삐에로는 해로운 삐에로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다. 더 짜증나는 건, 그런 몰골을 하고 있는 주제에 잘 살펴보니 이 망할 새끼도 과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녀석은 스프링에 매달린 채로 달랑거리며 폴짝 폴짝 상자 째로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좋아. 이 놀이공원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라는 사실은 이제 충분히 알았다. 삐에로의 머리통이 쭉 늘어나며 나와 서지현을 바라본다.

- 너희들은 과자가 아니구나! 히힛, 웃기네! 아하, 으하하하하하핬1

허파에 필로폰 들어갔냐. 왜 저렇게 쪼개고 지랄이야. 녀석은 그렇게 깔깔거리며 우리를 향해 자기 머리통을 휘둘렀다. 띠용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매서운 속도다.

- 으헤, 으헤! 어지러워! 으하하하하하, 아학! 아하학! 으히히히힉!

비명을 지르는 거냐, 웃고 있는 거냐. 점프 스케어가 발동되면서 녀석의 머리가 천천히 내 쪽으로 들이밀어지는게 보인다. 나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녀석의 머리를 이쁘게 세로로 쫙 갈라주었다. 피 대신에 딸기 시럽과 함께 안에 뇌 대신에 들어있던 것 같은 클로티드 크림이 뒤섞여 주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 으힉, 머리가 두개다! 밥도 두끼 먹나? 그런가? 으하하하하하, 웃겨, 아학!

시끄러 미친 새끼, 아니 과자야. 내 인생 지분을 니 웃음 소리로 채울 생각 하지 말고 대가리가 갈라졌으면 빨리 뒤져.

그리고 다른 상자들도 하나씩 띠용띠용 상자에서 뚫고 나와 머리를 흔들거리며 우리에게 접근한다.

녀석들 중에 몇 녀석이 갑자기 우우욱, 하는 소리를 내고는 갑자기 우리를 향해서 오바이트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자리를 피하자 질퍽이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쏟아진 토사물에서는 지독한 냄새 대신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확 올라온다.

이걸 쏟아내는 이유가 뭐야.

아, 혹시라도 입 안에 들어갈까봐? 아주 그냥 뭐라도 우리한테 먹이려고 기를 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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