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달콤한 세상
나는 그 과자들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거나 준다고 다 주워먹는거 아니라고 배웠어.
그 순간 생강빵 병사들의 표정이 확 변했다. 화이트 보드를 들고 있던 병사가 뭔가를 휘갈겨 써서 다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당장 우리를 먹어]
녀석들의 움직임이 슬슬 변하기 시작한다. 과자로 만든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활을 든 병사들은 활시위에 화살을 먹이기 시작한다.
"그래, 뭐 자꾸 먹이려고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런 대접이 익숙하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손에 힘을 주었다. 기껏해야 과자로 만든 새끼들 주제에. 다 박살내주마. 바람개비와 사탕으로 만들어진 창이 서로 부딪치며 끼기긱, 하는 소리를 낸다.
"망할 놈의 사탕, 도대체 뭘로 만든거야."
설탕으로 만든 사탕이 왜 쇠로 만든 칼이랑 부딪쳐서 버티는거냐. 저거 사탕 아닌거 같은데. 휙 하고 휘둘러지는 칼날에 일부러 살짝 옷깃을 스치게 해봤는데, 면도날에 스친것처럼 싸악 하고 옷깃이 잘려나간다. 기가 막힐 노릇이군.
"이 녀석 칼 사과맛 같은데. 먹어볼래?"
내 말에 서지현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생강빵 병정을 폭발로 날려버리고 대답했다.
"별로 생각없어요. 이런 불량식품들."
그럼 말고.
화염에 휩싸여 터져나간 생강빵 병정들은 굉장히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뭐, 설탕이 열에 닿았으니 카라멜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지. 배가 고플 지경이구만. 박살난 과자들을 보고 있던 나는 옆으로 살짝 걸음을 옮겼다. 내 코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과맛 사탕칼날.
그렇게 강한 건 아니다.
"먹을 걸로 장난이라."
나는 그대로 생강빵의 머리를 내 이마로 한 번 들이받고 바람개비를 휘둘러 그대로 반으로 쪼개버렸다. 쪼개진 생강빵이 그대로 쓰러지고, 그 너머로 보이는 또 다른 생강빵이 나를 겨누고 활시위를 당긴 것이 보인다.
날아오는 하얀 화살. 냄새를 맡아보니 박하향이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화살을 피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생강방을 발로 차서 녀석에게 날렸다.
저 멀리에서 푸쉬쉬시 하는 김 새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가리 대신 커다란 오븐을 달고 있는 이상한 괴물이 오븐에서 뜨거운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오븐이 벌컥 열리고, 생강빵 병정 몇 마리가 오븐에서 튀어나왔다.
"얼씨구, 니가 뭐 항공모함 같은거냐."
짜증나는 자식이네. 나는 얼굴을 구긴 채로 녀석을 노려봤다. 생강빵 병사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저 녀석이 계속 만들어낸다면 제거하는게 의미가 없잖아. 결국 처리해야 하는 건 저 녀석이다.
"열, 뽑아내 볼게요."
서지현의 말과 함께 걸어다니는 오븐의 머리통에 서리가 끼기 시작하면서 틈새로 흘러나오던 불꽃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오븐에서 뽑아낸 열은 서지현에게 덤벼드는 생강빵 병사들을 새카맣게 태우는데 이용되었다. 과자에 설탕을 얼마나 많이 때려박아서 만든 건지, 과자가 타오르면서 카라멜 냄새가 확 퍼진다.
바람개비를 들고 서리가 낀 오븐에게 달려든 나는 그대로 그 오븐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오븐이 박살나고, 우리를 향해 적의를 불태우던 생강빵 병사들이 생명을 잃고 바닥으로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다.
"...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네요."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잖아."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나는 주변을 훑어보다가 문을 하나 찾아냈다. 박살난 오븐의 잔해를 뒤져보니 작은 열쇠 하나가 나왔다. 살짝 끈적거리는 질감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열쇠는 내가 봐둔 문에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고. 우리는 벽을 넘어 용인시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었다.
"..."
나와 서지현이 벽 너머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상식의 영역을 벗어난 광경이었다. 용인시의 모든 것이 빵과 과자, 사탕과 초콜릿 같은 걸로 변해있는 세상. 서지현이 멍하니 주변을 살펴보며 꺼낼 단어를 고르다, 어렵사리 한 마디를 했다.
"최소한, 밥을 굶고 살지는 않겠네."
서지현이 지도를 펼쳐서 살펴보며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양지면 송문리 근처에요. 안전지대인 고등학교까지는 한 7km 정도 가면 되겠는데요."
나는 그 말에 옆에 근처에 방치된 차를 몇 대 가리켰다.
"저걸 타고 갈 수는 없을까."
내 말에 서지현이 흠, 하는 소리를 내고 차 쪽으로 다가가서 확인한 다음에 고개를 저었다.
"안돼겠는데요, 이건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에요. 자동차 모양을 한 디저트네요."
빨간색 자동차 근처로 접근하자, 곧바로 확 하고 달큰한 딸기향이 확 밀려온다.
"강물이 좀 이상한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서지현과 함께 강가로 다가갔다. 깔려있는 자갈은 자갈 모양 초콜릿으로 변해있었고, 그 자갈들 사이를 타고 흐르는 강은 사이다로 변해있었다. 강물에 손을 집어넣자 순식간에 기포가 달라붙고, 손을 다시 꺼내자 끈적이는 당분이 손에 엉겨붙어있다.
"역시 마법이 걸려있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채로 말했다.
"근처 아무 가게나 한 번 들어가보죠."
우선은 도대체 이 반짝! 달콤한 마법 파티셰 라고 하는 현상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파악하는게 우선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간 나와 서지현은 할 말을 잃었다. 가게 안에 방치되어있는 통조림과 음식들.
"전부 과자로 변했어."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 주인이 앉아서 쉬고 있던 걸로 보이는 의자의 쿠션은 마시멜로우로 변했고, 통조림은 통째로 씹어먹을 수 있는 과자가 되었다.
"설마, 이 안에서 먹을 수 있는거라고는 이런 것들이 전부인건가."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아니면 상점에서 구매한 영양바와 물, 또는 바깥에서 공수해온 식량 정도가 있겠네요. 꾸준히 비축해두어서 다행이에요."
"우리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러고 보니 이 구역에는 특별한 규칙이 적용되고 있다고 했지. 영양바 3개, 물 3L라. 단순히 칼로리와 영양소, 필요한 수분만 생각한다면 그걸로도 충분히 생존 할 수 있을거다. 나는 시험 삼아서 배낭에서 영양바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고 씹었다.
"젠장. 더럽게 맛없네."
콘크리트 가루를 구정물에 반죽해서 굳혀놓은 것 같은 맛이다. 이거 정말 먹어도 되는 음식 맞아? 서지현이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영양바를 살짝 뜯어내서 입에 넣고 씹은 다음에 몸을 떨었다.
"용인 시의 생존자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었겠군요."
그래. 마법에 걸려 과자로 변해 달콤한 냄새와 향기를 풍기는 온 천지의 디저트냐. 아니면 이 지지리도 맛없는 영양바냐.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짐작이 되는 것 같은데."
당장 이 맛없는 영양바에서 시선을 살짝 아래로 돌리면 뜯어 먹을 수 있는 달콤한 페스츄리로 만든 벽장과, 마시멜로우로 변한 쿠션이 보인다. 저걸 버리고 이 맛대가리 없는 콘크리트맛 영양바를 씹으라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건 예상보다 더 엄청난 스트레스일텐데."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게 땅기는 법이죠."
그래, 며칠은 몰라도 오래 참을 수는 없을거다.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사람의 욕구는 굉장하니까.
우리는 가게를 나와 고등학교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거리에 사람의 시체 하나가 걸려있었다. 공격을 받은 모양이다. 녀석에게로 다가간 나는 코를 큼큼거린 다음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딸기시럽?"
이거 피가 아니라 시럽이다. 손을 뻗어서 시체를 만져보니, 사람의 살이 아니라 빵의 감촉이 느껴진다. 이런 걸 인테리어랍시고 한 건 아닐테고...
"생명이 없는 건 전부 과자로 변해버리는 모양이네요."
그래, 죽고 나면 시체까지도 과자로 변하는 모양이다. 서지현이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살피다가 얼굴을 확 구겼다. 지도가 서지현의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다.
"언제 변한거야."
딱 봐도 또 뭔가 단맛나는 음식으로 변해버린 모양인데. 서지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내가 짊어지고 있는 배낭을 가리켰다.
"그건 어때요?"
나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멀쩡한데."
"내용물이 변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실험삼아 작은 통조림 하나를 꺼내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속제 깡통 그대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걸 들고 걸은지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귀신같이 통조림은 통조림의 모양을 한 과자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가방 내부의 물건은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멀쩡 할 수 있었던 거고, 일단 밖으로 꺼내면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과자로 변해버리는 모양이다. 서지현이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배낭이 과자로 변하지 않은게 다행이네요."
그러게, 배낭이 과자로 변해버렸다면 우리가 여태동안 쟁여놓았던 물자가 전부 날아갈 뻔했다.
아마 미션을 클리어 하고 받은 아이템이나, 상점에서 구매한 물건들은 변질되지 않는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쯤 내가 소지하고 있는 파백을 비롯한 장비들이 모두 과자로 변했어야 정상이니까.
그나마 그건 다행이네.
잠깐 안도의 숨을 내쉬던 나는 몸이 끈적거리는 걸 느끼고 한탄했다.
"이런 씨팔."
소지하고 있는 장비들은 과자로 변하지 않았지만, 입고 있는 옷은 과자로 변해버렸다.
내 중얼거림에 서지현이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입은 옷과 신발이 끈적거린다. 당연히, 이유는 옷이 디저트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낮에 도시를 알몸으로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우리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참으면서 계속 움직이기 시작했다.
"풍경 자체는 뭐라고 해야 할까. 동화적인 느낌이네."
온 천지에 과자가 한가득이라니. 어릴 때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꿈꾸는 세상이 이렇지 않을까. 모든 물건들이 과자로 변해서 그런지 색깔도 알록달록하게 총천역색으로 물들어 있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꾸했다.
"그래서 더 짜증나는 것 같아요."
그건 그래. 이 망할 놈의 설탕옷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은데. 안전 지대에 도착하면 바로 갈아입어야겠다. 부지런히 고등학교를 향해 걸어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중얼거렸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가 애들을 배불리 먹인 이유가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거였지."
"... 요즘에는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말이 좀 다른 식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뭐 말은 틀린 말이 아니네요."
서지현은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잠깐 있다가 말했다.
"그럼, 용인시의 괴물도 인육을 먹는 걸까요."
"추측일 뿐이야."
키워서 잡아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도시 전체를 이렇게 과자와 디저트로 뜯어 고칠 이유가 없잖아.
"끄어어어억."
거리를 걸어가던 우리는 옆 골목에서 들린 소리에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확인해보자. 나는 곧장 손거울을 날려서 소리가 들린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나는 손거울을 통해 보이는 영상을 확인한 다음 눈을 비벼야 했다. 저게 뭐야.
"표정이 왜 그래요? 괴물이에요?"
나는 그 말에 어음, 하는 소리를 낸 다음 대답했다.
"괴물같은 사람들인데. 뭐라고 해야 하나... 위험해보이지는 않으니 직접 육안으로 확인해보는게 어때."
내 말에 서지현이 흐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나와 함께 소리가 난 골목 쪽으로 접근했다.
"괴물같은 사람들이라."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쓰게 웃었다.
"돼지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아요?"
거기에는 대충 봐도 비정상적인 체구를 가진 사람 몇 명이 홀딱 벗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주변의 사물을 뜯어먹는 중이었다.
"뭐야, 니들은."
살이 너무 쪄서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모양이다. 살이 흘러내린다는 단어 말고는 어떻게 다른 단어로 설명하기가 힘든 몰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