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서 나는 탈옥했다-84화 (84/237)

# 84

달콤한 세상

무기를 들고 싸우던 녀석들은 모두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신경쓰이는 점이 있긴 한데."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 말이죠?"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거지. 이렇게 된 상황에서 싸울 줄 모르는 인원을 도봉리에서 계속 농사 지으라고 방치해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30분 정도 시청 건물을 뒤지던 나와 서지현은 할 말을 잃었다.

"..."

넓은 공간 안에 사람들이 죄다 죽어있었다. 바닥에는 엎질러진 음식물과 음료수 캔이 보인다.

"식사에 독을 탄 모양이네요."

이 자리에 죽은 사람들은 식사를 할 당시에 음식에 독이 섞여 있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컵에 담겨 있는 물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싹 비어 있었다. 단숨에 들이킨 모양이다.

대충 짐작이 간가. 독이 섞인 물과 밥을 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겠지. 당장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데 밥과 물이 주어지니 허겁지겁 먹어치웠을테고... 결과는 지금과 같다.

건물 안을 뒤지자 튀어나온 건 공업용 시안화수소였다. 아마, 인근 공장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시체들을 살펴봤다.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죽은게 아니에요."

그래, 우리가 오기 전에 이미 죽여놓은거다.

"모두가 광신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네."

직접 나와서 칼을 들고 싸우는 녀석들은 광신도였다고 해도, 그 아래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강제 노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그 광신도들 정도의 충성심이 있을리는 없으니까.

"우리가 도착하면 내부에서 분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 한거야."

이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가 따로 없었을테니까. 미리 내환의 가능성부터 잘라버린거다. 내 말에 서지현이 벽에 기댄채로 이마를 쓸어올렸다.

"효율적이고 행동력이 넘치는 또라이가 이래서 무섭다고들 하는군요."

무기 들고 뛰쳐나왔던 새끼들은 우리가 전부 죽였다. 그리고, 무기를 들고 뛰쳐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가 죽인 새끼들이 이미 죽여놓았다. 나는 시체들을 슥 훑어보았다. 아마, 지금 밖에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겠지.

우리는 잠깐 그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천 시청 건물을 나왔다. 건물에서 나온 우리를 보고 우석진이 아직 주변에 살아서 신음하던 녀석에게 화살을 쏘아붙이며 말했다.

"어떻게 되었나?"

"전부 죽었어."

내 말에 우석진이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저 아이들의 부모도?"

우석진의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죽인게 아니라, 광신도 녀석들이 죽였어요. 우리가 오기 한참 전에."

뭐, 어쩌면 우리가 죽인 광신도 중에 저 아이들의 부모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새끼들까지 부모로 쳐주고 싶지는 않다. 정말로 우리에게 덤빈 녀석들 중에 저 아이들의 부모가 있었다면, 그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칼을 쥐여주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거잖아.

자기 자식을 고기방패로 내세우는 부모라...

내 시선이 서지현에게로 향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은 부모도 있는 법이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서지현의 말에 동의의 뜻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들에게 무기를 들려주었던 이유와 목적도 뻔하다. 아이들이 검을 들고 달려들면 우리가 당황할테니, 그 틈을 노려 뭐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을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당황해도 저런 녀석들에게 당할 수준은 아니었으니 그 정신나간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우석진의 표정이 꽤나 어두웠다.

"그럼, 이천 시의 사이비 종교 본거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정말 저 아이들 뿐이로군."

"노동력 확보는 포기해. 어차피 우리가 오기 전에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네 말을 순순히 들을 녀석은 없었으니까."

내 말에 우석진이 대답했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네. 이 아이들을 보고 나서 나도 항복을 받아줄 마음은 싹 가셨었으니까. 게다가, 저 아이들도 자라고 나면 분명히 한 사람 몫을 잘 해낼 수 있을거야.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나질 수도 있지."

결국 망한 세상에서도 아이들이 미래다. 이 아이들이 지금부터 무두질과 농사 같은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 성인이 되었을 떄는 대충 10년차 경력이 있는 베테랑이 될 테니까. 지금 당장만 본다면 큰 도움도 안되는 아이들을 먹여주고 키울 이유가 없지만.

우진석과 최미진 부부는 꽤 먼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을 짜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우리들이 맡아서 교육하고 키우겠어. 사람들도 이 결정에 반대하지는 않을거야."

그래라. 어쨌든, 이걸로 이천 시에 더 이상 사이비 종교는 없다. 썩 기분이 좋은 승리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이걸로 만족할 수 밖에 없겠지.

"시청에 있는 물자와 장비 같은 건 알아서 사용해. 우리는 보급품 정도만 충분히 챙기고 바로 용인으로 출발할거야."

물론,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전부 끝내버렸지만...

어차피 우리가 들고 갈 수 있는 짐에는 한계가 있고,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을 전부 끝내고 나서 용인 외곽에 자리잡게 된다면 이천시에 남아있을 우석진과 최미진 부부의 도움도 필요하다. 우리가 일을 마칠 때 까지 이들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충분한 무장과 보급품은 반드시 필요하다.

"고맙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서의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네."

악수와 함께 인사를 나눈 우리는 이천 시청 안에서 물자를 챙긴 다음 아직 굴러가는 차 한 대를 확보해서 용인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서지현이 입을 열었다.

"입이 조금 심심한데요."

그래, 운전하는 와중에는 그럴 떄가 있지. 나는 서지현의 입 안으로 사탕을 하나 까서 넣어주며 말했다.

"용인의 랜드마크라고 하면..."

서지현이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돌려주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놀이동산 아닐까요? 뭐, 괴물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용인이라고 하면 그 거대한 놀이동산을 떠올릴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뭐, 이천 시와 마찬가지로 이미 랜드 클리어가 끝났을지도 모르지."

"아닐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가봐야 알 일이지만. 어차피 놀이동산 가도 관람차에서 불꽃놀이 보면서 키스하는 일은 없을걸."

내 말에 서지현이 하, 하는 소리를 내고 대답했다.

"제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건 기대하지 않아요. 그냥, 장미꽃을 한 이천 송이 정도 준비해서 하트 모양으로다가 이쁘게 깔아주고,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숨어있는 5층 케이크와 엄청 비싼 샴페인 한 병 정도 준비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아, 거기에 더해서 커다란 에드벌룬에 지현아 사랑해, 같은 현수막도 걸어서 띄워주면 충분하네요. 소박하죠?"

소박같은 소리 하네. 세상 망하면서 소박이라는 단어도 덩달아 사라져 버린건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허허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놀리는거지?"

"그럼 진짜로 할 생각이었어요? 감동인데. 프러포즈는 원주시 병원에서 해주신 말로 충분해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용인시로 향하던 우리는 얼마 가지 못하고 거대한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뭐 시적인 비유 같은게 아니라 진짜 벽. 그 벽 근처에서 차를 멈추고 내린 우리가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 앞에 문자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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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랜드 클리어 - 용인

목표 : 안전지대로 설정된 용인 고등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반짝, 달콤한 마법 파티셰!' 라는 정체 불명의 마법에 시달리고 있다. 마법을 멈추기 위해서는 용인 시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랜드 마크'를 제거해야 한다.

※ 미션을 수락하지 않으면 용인으로 진입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해당 미션을 클리어 하기 전까지는 용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미션은 일회성입니다.

※ 해당 구역에는 특수 룰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영양바의 개수가 하루 세 개, 물은 하루 3L로 상향 조정됩니다.

보상 : 6000pt, 장비(랜드마크 제거 참가자 한정), '반짝! 달콤한 마법 파티셰' 현상의 소멸. 설정된 구역 밖으로의 이동 제한 해제(구역 내부의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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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달콤한 마법 파티셰?

무슨 놈의 이름이 그따위야. 어린애가 지은거냐.

어차피 지나가야 하는 장소다. 우리는 고민의 여지 없이 미션을 받아들이고 세워진 벽으로 다가갔다.

"안동시 이후로 이런 벽을 보는 건 간만이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우리는 벽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런 벽을 넘어본 경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벽은 항상 공통점이 있었다.

거울로 된 벽과 고기로 이루어진 벽. 모두 다 이 너머의 상황과 연관이 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벽 쪽으로 접근했다.

"이건... 과자 같은데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손가락으로 벽을 살짝 긁어보았다. 벽 위에 코팅되어있던 아이싱이 서지현의 손톱에 긁혀 나온다. 뭔지도 모르는 걸 먹을 생각은 없는지, 서지현은 배낭에서 물티슈를 꺼내서 손을 닦았다.

"과자라."

"마법이 걸려있어요. 어떤 마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먹어서 좋을 건 없어 보여요."

그냥 과자도 아니고 마법이 걸려있는 과자라고 한다. 벌써부터 불길해지는데. 난데없이 과자로 만들어진 벽이 왜 튀어나오는거야. 헨젤과 그레텔 같은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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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 슈가 러쉬

목표 : 용인으로 향하는 길목이 막혀있다. 지나가기 위해서는 입구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보상 : 650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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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이 좀 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벽을 지나가는 행위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자로 된 벽이라.

"뒤진 마마델리가 보면 참 좋아라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괴물은 요리를 좋아했던거지 먹는 걸 좋아한 건 아니지 않아?"

뭐, 덩치를 생각해보면 먹는 것도 좋아하기는 했겠네.

어쨌든, 수원으로 가려면 용인은 통과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냥 부술 수 있나 싶어서 서지현이 벽에 에노테르를 박아넣고 폭발시켜보았지만 벽이 생각보다 훨씬 두꺼웠다. 게다가, 박살나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 조각들이 순식간에 다시 박살난 부분에 달라붙어 원상태로 회복된다.

"별 수 없네요."

들어가야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알기 쉽도록 커다란 초콜릿에 커다란 슈크림 빵으로 만들어진 문고리가 달린 형태였다. 근처로 다가가는 것 만으로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슈크림 빵을 살짝 잡고 돌리자, 그대로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제일 처음에 보이는 것은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분수가 물 대신 꿀을 줄줄 흘리는 광경이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설탕옷을 입힌 러스크가 테이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식탁보는 오색빛깔로 꾸며진 쫀드기. 설탕 공예로 만들어진 식기 위에는 케이크와 디저트가 한 가득이다. 먹을 수 없는 걸로 만들어진 것은 이 공간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저걸 다 먹으면 당뇨랑 충치는 예약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몸에 피 대신에 설탕이 흐르겠는걸. 덕분에 용인이 어떤 컨셉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주변의 문이 열리고 뭔가가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생강빵으로 만들어진 병정들이라."

전형적이군. 녀석들이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사탕의 끝을 뽀죡하게 깍아 만든 창이었고, 몸에 입고 있는 갑옷들도 당연히 온갖 디저트였다. 손에 들고 있는 활도 가만히 살펴보니 활시위는 젤리고 활대는 계피사탕이다. 활이 저 모양 저 꼴인데 화살이 뭘로 이루어져있을지는 안 봐도 뻔하겠군.

도대체 뭐야 이게, 먹어치워서 죽이라는건가. 나와 서지현은 무기를 꺼내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생강빵 병정 중 하나가 놀란 표정을 지은 다음, 다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보드 위에 초콜릿으로 글자를 써 보여주었다.

[저를 맛있게 먹어주세요. 함께 달콤한 시간을 보내요.]

서지현이 그 글자를 보고 있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당신 샤워하고 나오면 침대 위에서 한 번 정도 시도해 볼 만한 대사네요."

"시끄러. 집중해. 저렇게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경우, 진짜 먹었다가는 별로 좋은 꼴을 보지 않기 마련이지."

그 유명한 감자칩처럼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게 되거나, 무기력증에 빠져서 하루하루 과자먹고 똥 만드는 기계로 전락하거나. 생각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여러가지다. 녀석들 중 몇 명이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의 접시를 들어올려 우리에게 내밀었다.

하, 뭐하자는 건데. 츄라이 같은 거냐?

귓 속으로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다. 마 함 무봐라, 직인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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