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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80화 (80/237)

# 80

사이비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는 화살들을 모조리 튕겨낸 내가 우석진을 향해 외쳤다.

"그냥, 뒤로 빠져!"

지금 이 상황에서 어설픈 도움은 오히려 우리에게 엿만 먹이는 꼴이다.

"나는 만인의 위에 서기에 합당한 존재다. 나에게 굴복하여 봉사하거나, 죽어라! 아니, 네놈들은 이 자리에서 그냥 죽어버려! 나는 선택받았다!"

"염병한다. 뭐, 디지바이스라도 주웠냐?'

선택받은 아이 이 지랄 하고 있네.

뭔가를 던지는 건 썩 좋은 생각이 아니다. 녀석이 창을 들지 않은 손을 들어올려 휘젓자, 그대로 바닥에 버려져 있던 무기들이 들어올려져 녀석의 몸 주위를 감싸고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참나."

무기의 폭풍에 휘감겨 보호받는 와중에 녀석의 창이 쑤욱 하고 튀어나온다. 서지현이 던진 불꽃이 재빨리 창을 때리고, 그 바람에 방향이 틀어진 창이 서지현의 엎을 스치고 지나간다. 창은 다시 허공에 멈춰 있다가, 다시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잠깐, 저 좀 지켜줘요. 틈을 만들어 볼 테니까."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를 노리며 허공을 누비는 창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 창을 조종하면서 아까처럼 우리의 몸을 마구 짓누르는 행위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서지현이 그 사이에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회오리를 바라봤다.

갑자기 주변의 기온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 왜 이렇게 시원해졌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조금 지나자 좀 싸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입에서 입김이 흘러나올 정도로 추워졌다.

"크... 으아아아아아!"

주변이 이렇게 추워졌는데, 최 바오로가 휘감고 있던 회오리에서는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마구 날뛰고 있었다.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살랑거리는 일렁임이 아니다. 저런 아지랑이는 아마 날아가는 제트기의 제트엔진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회오리가 잦아들기 시작하고, 허공을 누비며 우리의 목숨을 노리던 창도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아... 하아..."

서지현은 양 팔로 자기 몸을 감싸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저는 한계에요. 이 이상은... 기대하지 마세요."

그 말을 끝으로 서지현이 풀썩 쓰러졌다.

몸 상태가 걱정이 되지만, 서지현이 자기 보살펴 달라고 한 일이 아니다. 몰아치던 무기의 폭풍우가 멈춘 자리에, 몸에 화상을 잔뜩 입은 최 바오로가 덜덜 떨고 있었다.

녀석에게 접근하자, 아직 대기 중에 남아있던 열기가 확 하고 몸을 덮친다. 세상에, 이 녀석 주변은 도대체 얼마나 뜨거워져 있었던거야. 얼마나 뜨거웠는지, 이 자식 풍성하던 머리숱이 다 타버려서 민둥머리가 되어있다.

"이... 이익!"

내가 달려드는 걸 본 녀석이 급하게 나에게 손을 휘저었다. 곧바로 휘둘러진 검이 염동력으로 막힌다. 녀석이 숨을 몰아쉬며 한 손을 옆으로 뻗자, 뒤편에 떨어져 있던 그 근사한 창이 다시 녀석에게로 날아온다.

"어딜."

나는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창 쪽으로 손을 뻗어, 창대를 꽉 잡고 프릭션 컨트롤로 마찰을 확 높였다. 자기 주인을 찾아가던 창이 내 손에 잡힌채 옴짝달싹 못하기 시작한다.

"내놔라, 이 자식!"

그리고, 녀석이 창 째로 나를 번쩍 들어올린 다음, 그대로 바닥으로 창과 나를 내려 찍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창을 잡은 채 내 몸이 골프장에 처박힌다.

"이걸로는 좀 부족할걸?"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을 잡은 채 밖으로 기어나왔다. 떨어지면서 입은 상처는 녀석의 창이 회복시켜주기 시작한다. 그걸 보고 있던 녀석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그 손을 놓아라. 하늘아버지께서 나에게 내리신 진노의 창에 네 놈 따위가 어찌 감히 손을 대느냐. 내 것이란 말이다! 나의 것!"

그리고, 다시금 붙잡고 있는 창을 확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붙잡고 있던 창을 놓았다. 강한 힘을 당겨진 창이 그대로 녀석의 팔에 박혀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녀석이 자신의 팔을 뚫고 들어간 자기 창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바람개비를 틀어막고 있던 염동력이 약해졌다. 나는 그대로 힘을 꽉 주어서 녀석의 어깨를 향해 휘둘렀다.

살을 가르고 들어가던 바람개비가, 뒤늦게 녀석이 발악하듯이 사용한 염동력으로 중간에 막히고, 그대로 나는 바람개비와 함께 뒤로 확 날아갔다. 날아가는 와중에, 야생감각이 쉬지 않고 찡, 하는 소리와 함께 경고를 날린다. 퍼퍼퍼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염동력이 마구 두드리기 시작한다. 날아가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채로 그 염동력 구타를 흠씬 얻어맞았다.

다리 한 짝과 갈비뼈가 그 충격에 으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으흑... 흐윽..."

녀석은 그렇게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팔에 박혀든 자신의 창을 꽉 잡고, 그대로 쑥 뽑아내며 비명을 질렀다.

"되었다. 되었어. 이제 회복하기만 하면."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우리를 보며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네놈들은 몰라도, 나는..."

녀석이 창을 잡자. 하얀 빛이 녀석의 몸을 감싸며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나는 그걸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병신 새끼."

다른 상처는 전부 회복되었다. 바람개비가 어깨를 절반 정도 자르고 들어갔던 그 깊은 상처만 제외하고.

"어... 어째서."

녀석은 당황하며 자신의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훔쳐 멍하니 바라본다.

"그 상처는 안 나을거다."

그리고, 녀석이 당황한다.

"이 메시지는 뭐야. 정신 능력치가...?"

나는 그 말을 듣고는 히죽거리며 배낭에서 재생 포션을 하나 꺼내서 들이켰다. 이제 부러진 뼈들은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 할 거다. 나는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상처는 깊다. 파백이 남긴 상처로 인해 주기적으로 감소하는 정신 능력치는, 입은 상처의 크기에 비례한다. 저 정도면 정신 능력치가 감소하는 걸 넘어서 거의 줄줄 흘러나가는 수준이겠지.

그리고 0이 되면 식물인간이 된다.

"누구든, 저 녀석을 죽여!"

광신도들이 웅성거리면서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선지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덤빌 새끼 있으면 덤벼. 죄다 그 잘나신 하늘아버지 똥구녕에 처박아줄테니."

덤비는 녀석은 없었다.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던 자기들의 교주님께서 저 꼴이 되어서 외치는 모습은, 광신도들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했다.

"하, 하늘 아버지께서 기다리신다!"

그 와중에, 한 녀석이 그렇게 외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던 녀석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쓰러진 시체의 옷깃에 바람개비의 피를 닦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들을 훑어봤다.

"뭐해? 덤비라니까."

녀석들의 눈이 공포로 떨리기 시작한다. 귀에 다시 찡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대로 몸을 옆으로 피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파인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박력이 없다. 감소한 정신 능력치가 염동력에도 영향을 주는 걸까. 이 정도면 그냥 맞아줘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이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건... 나는, 나는!"

허우적거리는 녀석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지며, 눈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내, 녀석은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며 손에 창을 꼭 쥔 채로, 그대로 말을 잇지 못한다.

"죽었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죽은 건 아니다. 식물인간이 된 거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서, 그대로 바람개비를 녀석의 목줄기에 박아넣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광신도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이내 도망치기 시작했다.

"..."

물론, 당장 쫒아가서 저 녀석들도 족치는게 최고로 좋기는 하다. 근데, 지금 내가 굉장히 피곤하다. 아직 부러진 뼈는 다시 붙는 중이고, 두들겨 맞으면서 생긴 피로는 그대로 몸에 남아있다. 나는 쓰러져 있는 서ㅣ지현에게 다가갔다.

"살아계세요?"

내 말에 서지현이 쓰러진채로 대답했다.

"일으켜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졸지에 과부 되는 줄 알았잖아."

내 말에 서지현이 머리를 잔디에 파묻은채로 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녀를 부축하자, 서지현이 한 팔을 내 어깨에 감았다.

"방금 전에 그건 뭐야."

주변은 차가워졌는데, 최 바오로 주변의 공기는 말도 안되게 달궈져 있었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스킬 마스터 하면서 얻은 거에요. 열역학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던데. 주변의 열을 멋대로 조종하는 거죠."

그래서 주변은 입에서 김이 올라올 정도로 추워졌는데, 저 사이비 교주 녀석 주변의 공기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던 거군.

"그거 부작용이 심한데. 한 번 쓰고 뻗어버릴 정도라니."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사용한 범위도 범위였고, 녀석이 무기를 회전시키면서 만들어낸 바람 때문에 주변의 열을 통제하는게 엄청 어려워져서 그런거에요. 평범하게 적절한 규모로 쓰면 이렇게 뻗지 않을걸요."

그러시겠지. 말하는 모습을 보니 단순한 현기증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부축을 그만두자 서지현이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업어줘요."

"미안한데, 나는 방금 뼈가 부러졌었거든?"

내 말에 서지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상에, 나를 부축할 때가 아니잖아. 물약은 마셨어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서지현은 말짱히 자기 두 다리로 대지를 딛고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상당히 멀쩡해 보인다?"

그 사이에 다 회복했나보네. 내 말에 서지현이 뒤늦게 깨닫고는 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놀라서 일어섰더니 다시 어지러워. 부축 해줘요, 빨리."

시끄러 임마. 나는 잠깐 서지현의 귀를 잡아당겼다.

"이천이라."

서지현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무사히 끝내서 다행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여주로 갈 걸 그랬나봐요. 엄청 힘드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가능하면 이천을 거쳐서 용인으로 가고 싶었어. 서울로 향하는 다른 경로가 있는 건 알지만."

랜드 클리어가 끝난 이천시의 사이비 교주를 떄려잡고 가는게 훨씬 빠르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 어느정도 핑계였던 감이 있다.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죠. 굳이 그 경로로 가고자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실례인가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 사이비 교주를 때려잡는데 성공하고 나면 말해줄 생각이었다.

"용인 시 외곽에, 어머니랑 누나가 쉬고 있는 납골당이 있어."

이 사실을 바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서지현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무리해서라도 무조건 이천을 통과하는 경로를 고집하지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으니까.

물론 용인의 납골당도 언젠가 꼭 들러야 하는 장소기는 했지만, 그 최 바오로라는 녀석을 이 장소에서 떄려잡는데 실패한다면 용인을 거쳐가는 경로는 포기할 용의도 충분히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납골당에 가서 쉬고 있는 누나와 어머니를 보는게 아니라, 서울에 가서 그 새끼를 잡아 죽이는 거니까.

내 말에 서지현이 아, 하는 소리를 내고는 잠깐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우리는 이천 거쳐서 용인으로 간 다음, 성남시를 거쳐서 강남으로 향하는 거에요. 저도, 당신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는게 예의잖아요?"

서지현이라면 저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흘리다가 대답했다.

"고마워."

내 말에 서지현이 눈을 흘기고는 옆구리르 살짝 꼬집으며 대답했다.

"이건 고마울 일이 아니라, 미안한 일이에요. 왜 저한테 말을 하지 않은거에요. 아직도 제가 남 같아 보여요? 조금 서운한데."

"... 미안해."

내 말에 서지현이 픽 웃고는 내 등을 탁 쳤다.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요. 말 안하고 있다가 용인 도착해서 말했으면 분명히 화를 냈을거에요."

서지현이 앞장 서 걸어가다가 한 마디 했다.

"오늘 밤에는 각오해요, 반드시 남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테니까."

별로 무서운 협박은 아니었다. 그야, 침대 위의 혈투에서는 내가 현재 2연승을 달리고 있는 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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