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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79화 (79/237)

# 79

사이비

양떼들이 염소의 지휘를 받아 늑대 두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골프장의 푸른 잔디 주변에 시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미 서지현과 나는 일반적인 상식을 한참 뛰어넘어 있었다.

"활, 활을 쏴라!"

한 녀석이 그렇게 외치자 녀석들이 우리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화살들. 나는 웃음을 머금은채로 그 화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프 스케어가 발동되어 느려진 세상 속에서, 나만 멀쩡하게 움직인다.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들은 나와 서지현의 몸에 닿는 일 없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

광신도들이 그 장면을 보고 침묵했다.

"왜, 쫄리냐? 하늘아버지가 니들 기다리고 있다잖아. 내가 존나 빨리 보내줄게."

프릭션 컨트롤로 잔디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면서, 나는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들 사이를 날뛰기 시작했다.

"선지자님..."

그런 소리가 들리고, 가마 위에 앉아있던 최 바오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들의 나에 대한 믿음이 이토록 부족했단 말이냐."

나는 그 말에 바람개비를 한 번 휘둘러 엉겨붙은 피를 털어내고는 말했다.

"믿음이 아니라 레벨이 부족한거겠지."

"장비랑 스킬도 부족하죠."

서지현이 자신에게 달려든 녀석의 머리통을 폭발로 날려버린 다음에 한 마디 거들었다. 가마 위에 있던 최 바오로가 그대로 오른손을 아래로 강하게 내리 누르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다.

"커흡..."

찡,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뭔가 알수 없는 힘이 그대로 내 몸을 내리누른다. 순간적으로 다리가 휘청하고, 몸이 그대로 엎어질 뻔한다. 이게 그, 염력인가 뭔가 하던 건가. 생각보다 훨씬 강하잖아.

"무릎을 꿇어라."

내 전신을 내리누르는 힘이 아까보다 더 강해진다. 견딜 수 있다. 나는 그렇다고 쳐도, 서지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서지현이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뭐가 일렁거리는게 보인다. 마력을 운용해서 견디고 있는건가.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을 걸 봐서는 서지현도 견디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래, 혼자서 랜드 클리어를 했다고 하는 말이 완전히 헛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가마 위에 앉아있는 최 바오로의 표정도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녀석의 생각대로였다면 우리는 그대로 저항도 못하고 찍 바닥에 눌렸어야 하는데, 그러는 일 없이 서 있었으니까.

"... 처리해라. 저들은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좀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그 와중에 몇 녀석이 슬금슬금 나에게 접근했다.

"누가, 못 움직인다는거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휘둘러지는 검을 피하고, 그대로 광신도 녀석의 배에 바람개비를 박아넣었다.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몸이 꽤나 지친다. 몸을 움직여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몇 배의 힘을 더 사용해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녀석들이랑 싸워주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놈!"

그 와중에 몸을 꽉 누르고 있던 힘이 서서히 옅어지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내가 서 있던 장소를 피했다. 나를 내리누르는 약해졌다는 건 저 녀석이 스킬을 취소했다는 건데, 우리가 힘들까봐 걱정해서 스킬을 취소했을리는 없잖아. 다음에는 그냥 내리누르는게 아니라 제대로 된 공격이 우리를 노릴거다.

가마 위에서, 녀석이 손을 휘젓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골프장의 잔디가 뭔가에 쓸려나간다. 저 녀석이 쓰는 염동력 자체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쓸려나가는 잔디는 확실히 눈에 보인다. 나는 안전한 범위까지 곧바로 몸을 쭉 미끄러뜨리며 뒤로 빠졌다. 그리고 코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

"지가 무슨 애덤 스미스도 아니고."

서지현은 그런 시시껄렁한 소리를 한 다음에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지현아, 무조건 여기에서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굳이 여주로 돌아가는 대신 이천을 선택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사이비 교주인 저 최 바오로는 랜드 클리어를 성공시켰기 때문에, 녀석과 싸우는 건 랜드 클리어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운 길 두고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는 시간 떄문이다.

여주는 아직 랜드클리어가 되지 않은 모양이고, 안에 들어가면 분명히 랜드 마크를 찾아내는 것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랜드 마크를 찾아서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에는 못해도 며칠이 걸린다.

며칠에 걸려서 비교적 쉬운 길을 걸어가느냐. 아니면 오늘 당장 저 녀석을 요리하고 이미 랜드 클리어가 끝난 이천을 거쳐 서울로 가느냐.

우리가 선택한 건 조금 더 어렵지만 빠른 길인 이천이었다. 내 말을 들은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 손에 들어올렸다.

"그건 알고 있어요."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다가 땅에 낫을 박아넣고,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달려들던 사람들이 확 솟구치는 흙기둥에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

나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서 곧바로 가마 쪽으로 달려들었다.

다시금 귓가에 찡,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달려들던 내 몸이 그대로 뭔가에 퍽 두들겨 맞고 뒤로 쫙 밀려난다.

"이게...!"

그리도 다시 귀에 들리는 찡, 하는 소리. 이 소리가 들리면 저 자식이 염동력을 쓰는 모양이다. 아, 야생감각 스킬이 이런식으로 발동하는 건가. 나는 찡, 찡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멀쩡하게 잔디가 잘 박혀 있던 땅이 퍽퍽 까이기 시작한다.

"새끼, 뒷땅 엄청 까네."

골프장 가면 욕 엄청 먹겠다 이놈아.

나는 그런 소리를 하면서 조금씩 녀석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다시 찡,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 정도로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내가 서 있는 곳 일대를 넓은 범위를 통쨰로 밀려고 들겠지. 나는 곧바로 훌쩍 하늘로 뛰어올랐다. 뭔가가 밀어내는 힘이 다리를 툭 치고 지나간다. 다시 땅에 발을 딛은 나는 곧바로 가마 쪽으로 달려들었다.

일단 거기에서 내려와라.

나는 가마를 받쳐 들고 있던 녀석들 중 몇 녀석을 공격했고, 가마의 한 쪽이 기울어지며 그대로 박살나버린다. 가마 위에 앉아있던 최 바오로가 몸을 살짝 띄워서 무너진 가마 옆에 선다.

"그렇단 말이지."

녀석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나와 서지현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고 양 손을 모은 다음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아버지, 저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도 또한..."

저 기도를 다 들어주는 병신이 세상에 어디있냐. 이미 녀석이 손을 모았을 떄 나는 녀석에게 달려든 상태였다. 녀석은 하던 기도를 멈추고 황급하게 손을 들어올렸다.

녀석에게 휘둘러진 검이 공중에 딱 멈춘다.

"양치기는 어린 양들에게만 관대하다. 네놈들은 늑대일지니. 내가 자비를 내릴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뭔가가 확 하고 당기려 든다. 나는 곧바로 프릭션 컨트롤로 마찰을 조절해 검을 꽉 붙잡은 채로 역으로 잡아 당겼다. 염동력으로 내 무기를 빼앗을 생각이었던 모양이지?

"자비 같은 소리 하네."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녀석이 곧장 공중에 떠 뒤로 물러나며 양 손을 휘저었다. 죽은 시체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이 모조리 허공으로 떠올라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무기의 회오리는 나를 중심으로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대로 산산조각나라!"

회오리 너머에서 들리는 최 바오로의 목소리.

"미안한데."

보이지 않는 염동력보다는 차라리 이 편이 나한테는 더 좋아. 어디에서 위협이 접근하는지 알면, 자연스럽게 점프 스케어가 발동하니까. 내가 서있는 장소로 밀려드는 무기들을 향해 달려든 나는 순식간에 무기 몇 개를 처리하고는 길을 뚫어 그 장소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곧바로 보이는 최 바오로의 얼굴. 다시금 검을 휘두르자, 어차피 무기를 빼앗는 건 힘들다는 걸 깨달은 최 바오로가 염동력을 활용해 내 검을 막아낸다.

"네 놈들이 나를 해할 수는 없어!"

끼기긱 하는 강철음과 함께 에노테르를 들어올린 서지현이 하늘에서 최 바오로를 향해 내려찍혔다. 서지현이 휘두른 낫이 그대로 녀석의 주변에 둘려쳐져 있는 역장 비슷한 것에 막혀버렸지만...

서지현의 에노테르는 저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다.

나는 곧바로 바람개비와 함께 뒤로 빠졌다.

"터져라!"

내가 뒤로 빠지는 것을 확인한 서지현이 곧바로 에노테르의 끝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투쾅. 하는 굉음과 함께 벽에 막힌 것처럼 허공에 고정되어있던 에노테르의 날 끝에서 폭발이 터져나오며 최 바오로의 몸을 휩쓸어버린다.

"크어... 허어... 이 년이!"

"켁."

에노테르를 들고 있던 서지현의 배가 주먹 같은게 박혀든 것처럼 푹 들어가고, 그대로 허공에서 뒤로 튕겨져 나간다. 나는 곧바로 점프에서 서지현을 받아들었다.

"괜찮아?"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 대신 엄지를 한 번 올렸다.

"덕분에 육체랑 체력이 많이 늘어서.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에요."

"시끄러, 입에 흐르는 토마토 주스나 닦고 말해."

내 말에 서지현이 턱짓으로 최 바오로를 가리켰다.

"이 정도면 제가 이득을 본 것 같은데요."

폭발에 휩쓸렸던 최 바오로의 몰골은 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그럴듯하게 차려입었던 옷은 너덜너덜해졌다. 머리에 쓰고 있던 조잡한 삼중관은 바닥에 떨어져 박살나있다. 녀석이 기침을 하자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이 토해진다.

"선... 선지자님, 괜찮으신겁니까?"

자기들 보스 몸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자 뒤편에 있던 광신도 중 몇 명이 조심스럽게 최 바오로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는 나를 믿지 못하느냐, 나는 하늘아버지에게 선택받아 너희를 구원하러 온 자다. 나에게 티끌 한 터럭 만큼의 의심도 가지지 마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벌겋게 충혈한 눈으로 나와 서지현을 노려보다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하늘아버지, 이것 또한 당신이 나에게 내리신 시련이라면. 극복해보이겠습니다."

하늘에서 창 한 자루가 떨어져 녀석의 옆에 박혔다. 상아색의 창대에 금테가 둘러져 있는 화려한 녀석이었다. 딱 봐도 녀석의 무기 같아 보이는데.

뒤편의 광신도들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성창이다. 선지자님께서 하늘아버지가 내리신 창을 꺼내셨다. 선지자님의 말씀을 하늘아버지가 들어주셨다! 승리가 약속되었다! 이천 시를 해방한 하늘아버지의 진노가 다시 한 번 이 땅에 바로 섰다!"

그리고는 질질 처울기 시작한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얼척이 나가서 중얼거렸다.

"지가 무슨 주인공이야?"

힘은 왜 숨기고 지랄이야. 녀석이 창을 잡자 폭발로 인에 입었던 상처들이 서서히 회복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제, 나에게 품위는 없다. 이 창은 하늘아버지의 진노이니. 그분의 분노가 내 손에 들렸다. 나는 이 순간, 양치기가 아니라 한 마리 사냥개니."

녀석의 움직임이 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최대한 자기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서 움직임이 느릿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자식, 잘 싸우잖아. 마력 능력치만 높은게 아니라 체력이랑 육체도 꽤 올린 모양인데. 녀석이 들고 있는 창과 내 손에 들린 바람개비가 순간적으로 네 번 넘게 부딪친다.

"안 닿아."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나. 녀석이 들고 있는 창이 너무 길어서 후발선타의 조건이 충족되지를 않는다. 상대와 내가 서로를 동시에 때리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접근하려고 하면 곧바로 염동력이 나를 밀쳐낸다.

마력도 수준급, 체력과 육체도 수준급.

이 새끼, 레벨이 도대체 얼마인거야? 서지현과 나는 서로의 능력치를 공유하면서 표기된 레벨보다 높은 능력치를 받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은 문제 없이 우리의 공세를 견디며, 도리어 역공을 가하고 있었다.

"그 위세 등등하던 모습은 어디 간 거냐?! 으하하하하하하!"

녀석이 휘두른 창이 골프장 바닥을 찍고, 그대로 거대한 흙기둥이 치솟는다.

"우리도 대응한다!"

그걸 보다못한 우석진이 자기 편 녀석들과 함께 활시위에 화살을 먹여서 날리기 시작했지만.

"건방진 자식들이, 저항할 생각 하지 마라!"

최 바오로를 향해 날아가던 화살이 그대로 허공에 멈추더니, 나와 서지현을 겨누고 쏘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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