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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78화 (78/237)

# 78

사이비

옷을 다 갈아입고 나서 내가 문을 열자, 우석진이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는 크흠, 하는 소리를 냈다.

"... 냄새 나냐?"

어젯밤의 향취. 내 말에 우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안 나는게 더 힘들기는 하겠다.

"그것보다, 녀석들이 찾아왔어."

녀석들이라.

"그 샘물동산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

내 말에 우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빠른 시일 안에 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설마 그게 지금 이 시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교주는?"

내 말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온 모양이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준비 마치고 나가볼테니, 너는 적당히 시간 끌고 있어."

설마 그 정도도 못하면서 골프장에서 서른이 넘어가는 사람들 두목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우석진이 돌아가고, 나와 서지현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냈다. 몸을 닦아낸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기가 막히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랗고,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였다. 열두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 가마를 받쳐 들고 있다. 가마 옆에는 꽤 아름다운 여성 여섯이 화사하게 옷을 갖춰 입은 채, 어디서 주워온건지 모를 향로를 천천히 흔들면서 연기를 뿌리고 있다. 가마 뒤에는 무장한 사람들이 거의 150명 정도, 그 가마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건지 손가락 하나 꿈지럭거리는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마 위에는 소위 카톨릭 신부복이라고 불리는 하얀 수단을 입은 남자가 머리에 어설프게 흉내낸 교황의 삼중관 비슷한 걸 쓰고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이상 지체하지 말고 밝혀라. 너희는 하늘아버지의 뜻을 받아 모두를 구원할 나, 선지자의 앞길을 막는 가시덤불인가? 아니면 춤추고 노래하며 기쁜 마음으로 천국의 문에 들어갈 어린 양들인가?"

딱 봐도 저 녀석이 최 바오로라고 하는 녀석인 모양이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거다. 선지자와 하늘아버지라. 어디에서 주워 들은 건 있어서는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꼴이 거의 사이비 종교 계의 키메라 같은 수준인데. 우석진은 대답을 하지 않고 이제 막 내려온 나와 서지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봐, 대가리에 쓰고 있는 그 모자 안 무거워?"

옆에서 서지현이 픽 웃으며 대답했다.

"20세기 들어서는 카톨릭 교황도 쓰지 않는 물건을, 그것도 어설프게 카피해서 대가리 위에 올려놓고 있는 사람이 무겁고 자시고가 어디있겠어요. 그저 화려하다고 하면 녹은 금도 마실 기세네."

우리가 입을 열자 가마 위에 앉아있던 녀석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향로를 흔들고 있던 여자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말을 조심하라. 앞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알고."

앞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아냐니. 사극에서나 튀어나올 법 한 대사를 21세기 망한 대한민국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는 대답했다.

"우리가 누군지는 아냐?"

내 말에 다시금 가마 위에서 최 바오로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린 양이거나, 구원의 길로 가는 방주를 막는 풍랑이거나. 너희들이 나를 향하여 말하는 말씨가 곱지 못하지만, 길을 모르는 어린양들은 양치기를 보면 피하는 법이다. 나는 너희들의 우매함을 이해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들장미와 야생화가 흐드러진 길을 보여주마. 따라오라. 너희들은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또한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그러셔? 나는 그 말에 가마를 받쳐 들고 있는 녀석들을 슥 보고는 대답했다.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친구들 몰골이 왜 저래?"

"현세의 삶에서 이어지는 고통은 속죄다. 지구 상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그대들의 죄악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린 벌이니. 내가 보여주는 길을 순종하며 따르는 자들이 이 생에서 흘리는 피땀과 견디는 굶주림은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천국의 문을 두들기며 보상 받을 것이니라. 이 세상에 티끌없이 깨끗한 존재는 나 하나 뿐이니."

자기 역할에 단단히 취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저런 식으로 말해서 사람들을 홀리는 건지. 녀석은 이제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너희들은 모두 죄인이라. 이해했느냐, 너희는 모두 죄인이라는 말이다! 말하라, 나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무엇이느냐!"

그의 외침에 뒤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무장한 사람들이 모두 입을 열었다.

"당신의 오른손에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들려있고, 왼손에는 너희의 죄를 사하여 줄 하얀 빛을 들고 있사옵니다. 우리에겐 그것이 보입니다."

가마 위에 앉아있던 최 바오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는 번들거리는 광기가 보였다.

"너희를 어여삐 여겨 하늘아버지께서 나를 이 땅에 내리셨다. 너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땅히 당신을 향한 봉사의 삶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니. 이 세상에서 당신을 향해 봉사하는 기쁨 속에 속죄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턱,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 양 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내가 너희를 용서하겠다.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나를 향한 헌신과 봉사 속에 살아가라.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문 앞의 천사가 물어볼 것이다. 너희에게 불타는 칼을 겨누며 외칠 것이다. 너희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여기에 당도했느냐! 그리하면, 너희는 준비한 대답을 말하라. 너희를 천국의 문으로 향하도록 허락한 자가 누군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시 뒤편의 고개 숙인 사람들에게서 들려왔다.

"하늘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내려주신 선지자, 최 바오로가 우리를 여기로 보냈습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주먹으로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내려쳤다.

"그리 말하라, 그러면 천사의 눈에 경외심이 자리잡을 것이고, 겨누고 있던 이글거리는 불칼이 그 힘을 잃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일만 사천의 천사가 나팔을 불며 너희를 환영할 것이다. 푸른 잔디와 들장미가 깔린 언덕 위 맑은 샘물이 샘솟는 장소에서, 너희는 마음의 안식과 풍요를 얻게 되리라! 너희는 이 말을 믿느냐!"

"몸과 마음을 다해, 선지자님의 말씀을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다시금 녀석의 눈이 우리를 향했다.

"보이느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대답이다. 내가 이들의 정성을 알고 있으니, 곧 하늘아버지께서도 이들의 정성을 헤아리고 있음이라. 하늘아버지가 준비하신 테이블은 넓고 크다. 너희들이 앉을 자리 또한 마련해 주실 것이다. 너희는 나의 가르침을 받들고, 믿음을 가져 나를 위해 봉사하라. 해야 마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태이고, 흠모하고 숭상해야 하는 자를 외면하는 것은 교만이라. 하늘아버지는 이러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

좋아. 확실히 미친 놈이 맞기는 하다.

"개소리 참 잘 들었다. 내가 개소리 듣고 나서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서 너처럼 장황하게 말하지 못하는 건 좀 미안하네."

말을 마친 나는 손에 바람개비를 쥐고 입을 열었다.

"우석진, 어떡할까. 혹시 저 장황한 개소리를 듣고 마음이 바뀌거나 했으면 말해."

골프장 사람들의 리더는 내가 아니라 우석진이다. 그리고 나는 대가를 받고 녀석을 도와주기로 한 용병 일 뿐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시선을 돌려 우석진을 바라봤다.

"그럴리가 있냐.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부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서 준비한 것들인데. 그걸 홀랑 들어서 저 개소리 지껄이는 또라이 교주놈에게 바칠 수는 없지!"

대답을들은 나는 가마 위에 앉아있는 최 바오로를 보고 웃었다.

"귓구녕이 뚤려있으면 들었겠지. 뒤지기 싫으면 다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너랑 니 뒤에 시열해있는 머저리 새끼들까지 싹 다 포함해서."

최 바오로가 눈을 반개한채로 입을 열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아. 앞에 서 있는 것들이 보이느냐."

"그렇습니다."

최 바오로는 오른손을 살짝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다 입을 열었다.

"저들은 가시덤불이다. 너희를 하늘아버지에게로 인도하려고 하는 나의 앞에 뻔뻔하게 가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는 저 장애물을 정리하거라. 내가 너희들을 굽어 살피고 있다."

"선지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그리 될 것입니다."

마침내 가마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들이 고개를 들고 무기를 치켜들고 우리를 노려본다. 좋아, 그럼 해보자는 걸로 알겠어. 곧바로 우석진이 활을 꺼내들었다. 나는 녀석을 보고 말했다.

"그냥 구경이나 하고 있어. 우리도 밥 값은 해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에 우석진이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기대하마."

사이비 종교 광신도 친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우리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지현아."

서지현이 나를 보고, 나는 툭 하고 내가 들고 있는 바람개비를 건드렸다. 이미 충전이 끝난 바람개비는 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대충 이 정도만 해도 서지현은 내가 바라는 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개비의 버튼을 누르고 휘두르자, 폭풍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서지현이 뿜어낸 불꽃이 바람개비에서 쏟아지는 폭풍에 휘감겨 맹렬하게 전방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달궈진 바람과 그 안에서 넘실거리는 불꽃이 뒤엉켜 날뛰기 시작한다. 달려들던 사람들 중 스물 정도가 열풍에 휩쓸려 비명을 지른다.

머릿 수가 많을 때 치는 선빵으로는 이거 만한게 없다니까.

"왜, 가시덤불에 찔리니 좀 아프냐?"

불에 휩싸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자 맹렬하게 달려들던 녀석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뒤편으로 물러난 가마에서 외침이 들린다.

"뭣들 하고 있어, 하늘아버지와 내가 너희들을 굽어 살피고 있다! 너희는 두려움 없이 나아가라는 말이야! 너희는 무엇이 두려워 그러고 있느냐! 나를 믿지 못함이냐!"

그리고 갑자기 하얀 빛무리가 무기를 든 광신도 친구들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열풍에 직격을 피해 죽음은 면했지만,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던 자들의 상처에 하얀 빛이 머무르더니, 그대로 치료되기 시작한다.

"선지자님...!"

고작 화상 치료된 것 가지고는 광신도 녀석들이 울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우리를 보며 외쳤다.

"선지자님이 우리는 굽어 살피신다. 저들에게 죽음을!"

지랄이 났다. 지랄이 났어. 나는 녀석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나에게 달려드는 녀석의 머리통을 그대로 붙잡고, 바람개비로 녀석의 허벅지를 찔렀다.

"야, 짜가리 선지자. 이것도 치료해 보시지."

주르륵, 피가 흘러내리는 상처는 분명 겉보기에는 굉장히 가벼워보이는 상처였다. 나에게 붙잡힌 녀석이 외쳤다.

"선지자님, 저는 믿습니다!"

하얀 빛이 바람개비에 찔린 상처에 머무른다. 하지만, 상처가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바람개비에 박혀 있는 파백은 장식이 아니거든. 그리고,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모습을 본 최 바오로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나에게 큰소리를 쳤다.

"네가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드느냐. 하늘아버지가 너의 사이한 뜻을 알고 치료를 거부하셨도다!"

"아, 그러셔? 이 친구가 믿음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안 하는 거야?"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TV에 나와서 공중부양하겠답시고 껍죽거리다가 실패하면 늘상 하는 소리가 그거던데.

"약속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순교한 자들은 하늘아버지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천국의 문이 바로 열릴 것이니. 구원이 머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은 하늘아버지가 나와 함께 앉을 테이블을 마련해 주시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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