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교회 부수기
원주 시를 떠나기 위해 최종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서큐버스 여왕에게도 통할지 어떨지는 확신 할 수 없지만, 최소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과정까지는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는 구슬을 얻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안동시에서는 해가 지면 아무것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으니까. 밤이라고 굳이 안전지대에 콕 쳐박혀 있을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것들은 전부 챙겼다.
"나가볼까."
내 말에 서지현이 낫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햇다.
"서둘러야겠네요."
속도가 중요하다. 밥 먹고 좀 쉬었다가 느긋하게 내일 아침 출발 할 수는 없다. 녀석들도 이쪽으로 자기들이 키우던 가축들을 보낸 걸 안다. 녀석들에게서 소식이 없으면 수상하게 여기고 대비를 시작하겠지.
"먼저 서큐버스들의 식당부터?"
"그래."
원주시의 큰 교회 하나를 뜯어고쳐 서큐버스들의 식당으로 만든 건 제르멩일 것이다. 우리가 거기를 작살내놓으면 녀석이 다시 개보수 작업을 할 것이다.
"완전히 부수면 안되는게 중요해."
그 교회를 완전히 작살내면, 다시 짓는 대신 차라리 다른 장소를 알아보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제르멩이 작업을 하는 장소를 특정 할 수 없게 되고, 우리가 기회를 봐서 녀석을 습격 할 수 없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그렇게 어려운 계획도 아니다.
식당을 반쯤 박살내고, 무너진 식당을 개보수 하기 위해 무너진 식당으로 찾아온 제르멩을 족친다. 제르멩을 흠씬 고문해서 서큐버스의 여왕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혹시 그 괴물의 능력을 무력화 할 만한 수단이 있는지 알아낸다.
서지현이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교회도 분명히 제르멩이라는 괴물에 의해서 괴상한 방식으로 뜯어고쳐져 있겠죠. 정신을 집중할 환경이 있다면 제가 어느정도는 무력화 시킬 수 있을거에요."
"그럼 건물을 완전히 부술 필요는 없겠네."
서지현이 건물 안에 설치된 것들을 어느정도 무력화시키면 복구를 하려고 들지, 다른 곳으로 아예 식당을 옮길 생각을 하지는 않을거다.
정리를 마친 우리는 세브란스 병원의 정문을 나서 교회로 향했다. 교회 주변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모습을 숨겼다.
"엄청 크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내가 여태동안 살면서 봐왔던 교회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거대한 것 같다.
"새 건물 같죠?"
"그래, 세워져 잇는 머릿돌의 글자를 확인했는데, 준공년도가 올해 2월 이더라."
서지현이 내 말에 저런, 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명색이 교회인데 예수님 생일 한 번 맞이하기도 전에 서큐버스들 손에 떨어져버렸네요."
"그 점을 노리고 제르멩이 이 건물을 택했다고 하면 좀 과대해석이겠지?"
"그거야 모를 일이죠."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주변을 살펴봤다. 하늘 위로 몇 마리의 서큐버스들이 날아다니는게 보인다. 교회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높게 솟아오늘 거대한 십자가의 팔 언저리에 서큐버스 몇 마리가 걸터앉아, 맥주잔 안에 담긴 액체를 벌컥벌컥 마시며 웃고 떠드는게 보인다.
"생각보다 건물이 너무 커서, 안에 얼마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네요."
흘러나오는 빛에 비치는 그림자만 해도 벌써 몇 개를 봤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서큐버스와, 건물 밖으로 나가는 서큐버스들이 계속 바뀐다.
"이건 식당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벌집인데."
교회를 건드리면 드글드글하게 서큐버스들이 쏟아져 나오겠지.
"그럼 우리는 벌집 박살내러온 오소리네요."
"뭐야, 저 벌집 안에 들어있는거 먹을 생각이야?"
난 별로 먹고싶은 생각 없는데.
"전 아까 저녁 먹어서 별로 생각이 없어요."
잠깐 농담이 오가고, 나는 바람개비를 꺼내 버튼을 누르고 어깨에서 단검 한 자루를 뽑아냈다.
교회에 자리잡고 난교파티를 하는 서큐버스 처리라. 거의 8년만에 좋은 일 한 번 해보겠군.
"가자."
"화려하게? 아니면 은밀하게?"
"화려하게."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곧장 대답했다. 은밀하게 할 거 뭐 있어. 서큐버스들의 수작이야 이제 빤히 보이고, 대비책도 있다. 쌈박하게 들어가서 싹 조져버리자고.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손을 들어올려 교회의 정문을 향해 휘둘렀다. 엉덩이에 칼침 맞은 야생마처럼 격렬하게 날뛰는 거대한 불덩이가 교회의 정문을 후려 갈켰고, 폭음과 함게 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뭉게 뭉게 일어나는 먼지를 뚫고 교회 안에 들어가, 다시 커다란 문을 하나 박살냈다. 문 너머에는 거대한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예배당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큼지막한 맥주 잔에 누런 액체를 한 가득 담아 든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를 바라보는 막대한 수의 서큐버스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가장 가깝게 자리잡고 있던 서큐버스의 팔을 날려버렸다. 서큐버스가 팔이 복도에 떨어지며, 들고 있던 맥주잔이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손님 받아라."
그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서큐버스들의 표정이 굳었다.
"너는..."
나는 대답 대신에 손부채질을 하면서 얼굴을 구겼다.
"냄새 하고는. 뭘 먹고 있는거야. 니들, 교회에서 그런거 막 퍼먹고 있으면 목사님이 오셔서 이 놈, 할 텐데. 십일조는 냈냐?"
서큐버스 중 한 명이 서지현 쪽으로 시선을 주고는 입을 쩍 벌렸다.
"이를 어째, 저 여자...!"
그 외침에 몇몇 서큐버스들이 서지현에게 시선을 던지고는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처녀가 아니잖아. 왜?! 분명히 그떄 잡았을때는..."
뭘 놀라고 그래.
여자랑 남자가 사람 한 명 없는 거대한 병원에서 함께 밤을 보내게 되면 일어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지. 심지어 그 동안 함께 해온 시간이 길다면 더더욱. 서큐버스들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나와 서지현은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럼, 여왕님이 깃들 몸이 없어진거잖아!"
녀석들이 일제히 발악하듯이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날갯짓을 하는 서큐버스들 중에 몇 녀석들이 자신들의 꼬리에 달려있는 보석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좀 있어보이는, 녀석 하나가 서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새 가슴을 하나 구하고 싶었는데. 여왕님의 몸이 될 수 없으면 상관없겠지?"
서지현이 그 말에 픽 웃고는 손으로 크게 호를 그렸다. 궤적을 따라서 불덩이가 허공에 생겨난다.
"능력이 되서 떠드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슬쩍 서지현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지현아."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이미 활용하고 있어요. 헬렐레는 걱정하지 마세요."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대로 교회의 기둥을 재빠르게 타고 올라, 날아다니는 녀석 중 하나의 날개를 잘라냈다. 날개를 잃은 서큐버스가 추락한다. 떨어지는 녀석의 뒤통수를 향해 단검 하나를 던진 나는 그대로 프릭션 컨트롤을 활용해 척 하고 교회의 벽에 잠깐 달라붙었다가, 다시 벽을 박차고 날았다.
손에서 거미줄만 뽑아내면 마블 영화에 출연해도 되겠는걸. 특수 효과가 필요 없으니 제작비도 절감되겠네.
"원숭이 새끼 같은게...! 그러는 것도 오래 가지는 못할걸?!"
원숭이라니, 거미라고 해줘. 녀석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보석을 빛내며 꼬리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을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안쓰럽기도 해라.
녀석들이 우리에게 별 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걸 보고 슬슬 눈에 띄게 당황하게 시작한다.
"... 어째서?"
서지현이 그 말에 대답 대신 보석 하나를 살짝 들고 흔들었다. 그 보석을 본 서큐버스들이 눈을 크게 뜨고 뒤로 물러선다.
"호위계급의 보석이잖아. 설마, 보낸 인간들이 당한거야?"
밥 먹다 뒤통수 맞아서 정신이 없는건가. 우리가 녀석들에게 당하지 않았다면 여기에 어떻게 찾아왔겠냐.
"죽은 여자들에게서 가슴이나 허리 같은 거 뜯어내지 말고 뇌를 좀 뜯어내서 갈아 끼우지 그래?"
호빵맨처럼 말이야. 새 머리가 필요하겠는걸. 당황하던 녀석들 중 하나가 몸을 살짝 떨면서 중얼거렷다.
"페로몬이 없어도 네 놈들 정도는 처리 할 수 있어."
당당하게 선언한 서큐버스의 몸 주변에 작게 마법진이 몇 개 떠오른다. 서지현이 그걸 보고 있다가 눈썹을 살짝 꿈틀했다. 허공에 떠오르던 마법진이 다시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한다.
"저런, 당당하게 말한 것치고는 별거 없잖아."
그 사이에 나는 녀석의 날개를 꽉 붙잡고는 등에 검을 박아넣었다. 가슴팍으로 칼날이 튀어나오고, 비명과 함께 서큐버스가 추락하기 시작한다. 나는 추락하는 녀석의 머리를 밟고는 다시 허공으로 몸을 띄워올렸다. 다른 녀석들도 나를 조준하고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둘 중 한 가지 경로를 따라, 정해진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기 전에 나에게 죽거나, 내가 마법을 피하고 나서 한 반격에 죽거나.
강철제 속옷을 입은 녀석 몇 명이 무기를 챙겨들고 나에게 달려들었지만, 페로몬에 당했을 때도 가지고 놀았는데 지금와서 내가 이 녀석들이 휘두르는 무기에 맞아줄리가 없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다.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은 서큐버스들 사이에 나와 서지현은 양떼 무리 안으로 달려든 늑대나, 벌통 안으로 들어간 장수말벌 한 쌍과 비슷하다. 몇 마리나 바닥에 떨어졌을까. 원래는 예배당으로 쓰였을테고, 지금은 서큐버스들의 식탁이 되어버린 공간 안에 녀석들의 시체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녀석들이 주저하다가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교회를 버리고 달아날 구멍을 찾기 시작한다.
"왜, 페로몬이라도 뿌려보지 그래?"
니들 여기에서 학살 당하고 있다고. 그럼 더 많은 서큐버스들이 찾아오겠지. 그럼 우리가 돌아다니면서 니들 조질 필요도 없을 거 아니야. 다 불러봐. 아주 오늘 네 놈들 멸종시켜버릴라니까.
뿌린다고 해도 바로 지원군이 올 수는 없을거다. 내가 비로봉에서 잡았던 서큐버스가 페로몬을 뿌렸을 때도 구조하러 오는데 몇 시간이 넘게 걸렸다.
녀석들이 마시던 정액과, 몸에서 쏟아낸 피가 바닥을 적시는 와중에, 결국 녀석들이 도망을 선택했다.
"쫒을 필요는 없겠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닥을 유심히 살피다가 얼굴을 구겼다.
"위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거기가 핵심인 것 같으니."
우리는 예배당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원래는 뭐 담임목사실이나, 부목사실 같은 사무실들이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 공간이었지만. 그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런 상식적인 광경이 아니었다.
"참나."
사지가 묶인채로 신음하고 있는 남자들이 보인다. 아랫도리에는 뭔가 호스 같은게 연결되어있었고, 사타구니에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생식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녀석들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입에도 호스가 물려져 있었으니까. 그 꼴을 하고도 쾌감을 느끼는지 허리를 요상하게 비트는 꼴이 참 보고 있기 더럽다.
"... 저것들에게서 짜낸 건 지하로 보내지는 모양이에요. 안전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착취한 걸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네요."
서지현은 눈쌀을 찌푸린 채로 그들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신음하는 녀석들을 보고 있던 나는 검지로 한 녀석을 가리키고, 공간 끝에 자리잡은 녀석을 다시 한 번 가리켰다.
"이 녀석부터 저 녀석까지는 신입인 모양인데."
생식기가 비대해진 정도가 그렇게 굉장하지는 않다. 심각한 녀석은 무슨 대들보랑 공룡알 같은 걸 다리 사이에 달고 있는 수준인데, 이 녀석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당신이 남자를 너무 많이 죽여서 식량이 부족해진 모양이죠."
그런 모양이다. 도망친 녀석들 전부가 오지 않길래, 나머지는 어디에서 뭐 하고 있나 했더니 여기에서 사육당하고 있었군. 나는 바람개비를 들고 한 녀석의 가슴팍을 쑤시며 말했다.
"녀석들 배도 곯게 하고, 이 새끼들도 딱히 정감이 가지는 않지만 일단 편하게 해주자고."
이게 뭔 꼴이야. 니들 지금 행복하냐?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묶여 있는 녀석들의 목을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