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병원 남녀
창을 피하며, 곧장 녀석의 배를 향해 어깨를 들이밀고 단검을 몇 개 발사했다. 퓨퓩 하면서 날아간 단검이 서큐버스의 배에 박혀든다.
하나, 둘. 그대로 어깨로 단검이 박혀든 배를 힘껏 들이 받았다. 서큐버스의 배에서 북 찢어지는 소리 비슷한게 난다.
서큐버스가 그대로 붕 날아가 바닥을 몇 번 구르고,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아윽, 우웨에에..."
녀석이 구역질을 하는 사이, 곧바로 남아있는 서큐버스에게 달려들었다. 두려움에 찬 눈으로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갯짓을 하기 시작한다. 주변으로 다가가자 다시 바람이 온 몸을 핥고 지나간다.
"으아아아아!"
지나친 쾌감으로 멈칫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목젖으로 칼을 찔러넣었다. 칼날이 뒷목을 뚫고 나오고, 날려고 발악하던 서큐버스는 이내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입으로 피를 흘리며 뒤졌다.
"한 분이라도 지켜라!"
사람들이 자기 배를 부여잡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서큐버스의 주변을 감싼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픽 웃었다. 이쯤에서 슬슬 입을 좀 털어볼까. 지금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다 조져버릴 몸 상태가 아니거든.
"니들 병신이냐?"
내 말에 녀석들이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니들 뒤에서 구역질 하고 있는 서큐버스, 니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텐데. 제대로 날지도 못하고, 무력하잖아."
내 말에 그제서야 몇몇 녀석들의 눈빛이 변했다.
"일주일이 뭐야. 지금 이대로 날개 꺾고 다리 박살내면 1년이고 2년이고 니들 맘대로 할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버리고 지키겠다고? 생각이 없는건지 충성스러운건지 모르겠다."
이 녀석들이 서큐버스를 감싸고 도는 이유는 뻔하다. 뭐 숭고한 목적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신처럼 숭배하거나 떠받드는게 아니다. 쉽게 말해서 어떻게라도 한 번 저 여자랑 자보겠다고 들이대는 욕심이다.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나를 노려보던 시선이 자기들이 보호하고 있던 서큐버스에게로 향한다.
"너희들, 지금 무슨 생각하는거야!? 저 녀석을 죽여!"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던 서큐버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주변에 있는 남자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당연히, 그 명령은 간단히 무시되었다. 남자들이 서큐버스에게로 슬금슬금 다다가기 시작한다.
무슨 생각이긴, 변태같은 생각이겠지.
"저 녀석 말이 맞아. 너,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비웃는 것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축하해. 서큐버스. 오늘 밥 한 번 배 터지게 먹겠네."
공짜 뷔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이 정도로 퍼먹으면 배탈이 나지 않을까.
녀석들은 바로 눈 앞에 서 있는 나에게는 이제 관심이 없었다. 뒤편에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버렸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을 추스리기 시작한다.
휙, 하고 뭐가 던져진다. 날아가는 물건을 살펴보니, 그 서큐버스가 입고 있던 갑옷같지도 않은 금속 속옷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하니까."
녀석들이 다시 돌아갈 곳은 뻔하다. 내가 향하는 세브란스 병원이다. 그대로 돌려보내면, 내가 서지현을 구하는 걸 막으려고 들겠지. 녀석들의 눈에는 지금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녀석들의 뒤로 다가가서 그대로 한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허공으로 머리가 날고, 피가 바닥에 뿌려지지만 모두 거기에는 관심이 없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막 서큐버스의 사타구니에 거시기를 가져가고 있던 녀석의 죽음을 끝으로. 등산로에서 마주친 녀석들과의 싸움은 끝났다.
"이야,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녀석을 한 번 슥 훑어봤다. 날개는 내가 부러뜨린게 아니다. 방금 전에 내 손에 죽은 다른 녀석들이 작살내놓은 거다.
"내가 할 일이 줄었네."
곧바로 서큐버스의 목을 붙잡은 나는 그대로 들어올린채 말했다.
"페로몬, 풀어. 방법이 있을 거 아니야."
내 말에 녀석이 커헉, 커헉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파랗게 변한 꼬리의 보석을 흔들었다. 잠시 뒤, 몸 안을 날뛰던 민감해진 감각들이 잦아들었다.
"후우."
나는 그제서야 바닥에 주저 앉아 쉴 수 있었다. 죽는 줄 알았네. 잠깐 그렇게 앉아서 쉬고 있던 나는 새로 붙잡은 서큐버스를 슥 훑어봤다.
"정찰계급이라, 그럼 아는 것도 더 많겠네."
그럼 비로봉에서 사로잡은 서큐버스는 더 이상 필요없다. 내 말을 이해한 서큐버스의 표정이 확 굳는다.
"제발, 그러지마. 아니, 그러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려요...!"
이제와서 애원하냐? 아까 하늘에서 알짱거리며 사람 놀릴 때는 즐거웠겠지.
"..."
슬쩍 돌아보니, 비로봉에서 확보한 서큐버스는 전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 순간 반짝였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꺼져버린지 오래였다. 그럼, 심문의 시간이다. 이 서큐버스에게 질문을 했을 때, 내가 저 녀석에게 들었던 대답과 정확히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면 저 불구가 된 서큐버스가 나에게 했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겠지.
거 뭐냐, 경찰들이 무장 강도들 심문 할 때 따로 불러서 이런 식으로 취조 한다고 하던데.
"어제 하늘에서 떨어진 여자 어디있냐."
내 말에 서큐버스가 대답을 주저한다.
"고민할 시간 없다. 물어보면 바로 바로 대답해."
나는 곧바로 단검을 뽑아 녀석의 허벅지를 쑤셨다. 바람개비로 쑤셨다가는 자칫 실수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상처를 입으면 정신이 깎이고, 능력치가 0이 되면 식물인간이 되잖아.
"대답하기 싫은가봐? 그럼 하지마. 얼마나 버티나 보자. 계급이 높다고 했으니 좀 버티겠지."
말을 마친 나는 박혀있던 단검을 다시 뽑아서 녀석의 입 안에 밀어었다. 곧바로, 자랑스럽게 자신을 정찰계급이라고 소개했던 서큐버스가 입을 열었다.
"마하게여... 마하게여...!"
나는 그 말에 곧바로 입 안에 넣었던 단검을 다시 빼고는 뺨을 단검으로 툭툭 치며 웃었다.
"착하네. 그럼 이제 대답해."
"인간들이 머무르는 병원으로 옮겼어요."
그래, 여기까지는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건...
"옮긴 이유는?"
"여왕님이 새로 쓸 몸으로 삼으신다고, 그러시겠다고 하셔서. 저기, 의식을 치르는 조건. 그거, 처녀. 숫처녀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보름달이 뜰 때 까지는 손끝 하나 건들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또... 아, 지금은 자고 있을 거에요.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계속 재워두라고 하셨어요."
공포에 질린채 횡설수설 아는 것들을 토해놓기 시작하는 서큐버스. 비로봉에서 잡은 서큐버스와 일맥상통한다. 그럼 전부 사실인 모양이군. 서지현은 살아있고, 지금 안전지대로 설정된 세브란스 병원 안에 갇혀 있다. 급조한 거짓말이라면 이렇게까지 두 서큐버스가 하는 말이 같을 리 없지.
"고생했다. 이제 둘 다 전역해라."
사실 확인이 끝났으니. 이제 둘 다 필요 없다. 바람개비를 뽑아든 나는 빠르게 두 괴물의 목을 그었다. 더 이상 데리고 다닐 필요도 없고, 괴롭힐 이유도 없는데 굳이 끌고 다니면서 고통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두 녀석의 숨을 끊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깊게 안도의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등산로를 내려오면서 계속 걱정되던게 바로 진짜 살아있는지의 여부였는데, 무사했구만. 게다가 안전지대 안으로 끌려갔다니.
"구하고 나서 몸을 좀 추스리게 하고..."
이 날개달린 녀석들의 보스 명줄을 따고 랜드마크를 작살낸 다음, 원주시를 떠나면 된다.
조금만 쉬자. 너무 지쳤다. 방금 전의 싸움은 적이 강력한게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의 감각이 맛이 쭉 가버렸던게 너무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이 장소에서 쉴 수는 없다. 쌓여있는 시체들이 영 살풍경스럽기도 하고, 방금 전에 죽인 서큐버스들이 동료를 부르는 페로몬 같은 걸 뿌렸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자리를 벗어난 나는 근처의 매점 안에 기어들어가 주저앉았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 하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 몰라."
곯아 떨어져 있다고 했으니 꿈에도 모르겠지. 나는 내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최현우 죽이고 나면 남은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소중한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 더 살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서지현이 오지 않자 나는 고민 끝에 최현우의 생사를 확인하는 대신 서지현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상점에 했던 질문도 서지현에 관련된 질문이었지.
그런 행동이 뭘 의미하는 건지, 내가 모를수는 없다.
최현우를 죽인다.
원래는 깔끔하게 마침표로 끝나 있었던 문장이었는데. 마침표가 쉼표로 변했다. 여전히 최현우를 죽이는게 최우선 순위다. 나는 서울 가서 그 새끼를 내 손으로 죽여버릴거다.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런 저런 고민을 이어가던 나는 혀를 한 번 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구해놓고 생각하자."
나 좋다고 붙들어 놓을 수는 없는 거잖아. 서지현이 나와 동행해서 여기까지 온 걸 생각해보면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관음사가 나올 것이다. 거기부터는 치악산이 아니라 원주시 행구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7km 정도만 더 가면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다.
"가는 길이 또 기가 막힌 고통이긴 하겠지만."
한 세트 조졌다고 끝이 아니잖아. 이 도시에 서큐버스가 몇 마리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배회하는 게 안동시의 붉은 포식에 맞먹을 정도의 일이라면 그 숫자도 굉장히 많다는 뜻이다.
"일단, 내 목적이 뭔지는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으니까."
서지현을 찾는게 목적이라는 걸 아는 서큐버스는 다 죽었다. 비로봉에서 사로잡았던 서큐버스가 다른 서큐버스들에게 내 목적을 전달할 모종의 방법이 있었다면, 방금 전에 마주친 소위 전투계급이라고 하는 녀석들이 내 목적을 모를리가 없지.
그러니까, 서지현은 내가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안전지대 안에 있을거다.
"원주시에서 움직이는 방침도 바꿔야겠어."
앞으로는 모습을 숨기고 이동해야 한다. 한 번 싸워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그 서큐버스 녀석들과 대책 없이 싸우는 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위험했다. 그냥 레벨 높고 장비 좋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녀석들 위로 몇 개나 더 계급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잖아.
사람을 강제로 흥분시키고, 몸의 감각을 멋대로 뒤틀어버리기까지 하는 녀석들이다.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바람 불면 가버리는 선천적 다감증 걸린 야한 게임 히로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그보다 더 위에 계급들이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나 잡아봐라 하고 원주시를 쏘다니는 건 자살행위다.
"그래도 랜드 클리어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아마, 안동시와 비슷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면 분명히 그 녀석들에게 쥐약인 뭔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단순히 참는 거 말고, 제대로 무효화 할 수 있는 수단을 얻기 전까지는 최대한 밖을 돌아다니는 서큐버스들의 눈을 피해서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어차피 안전지대 안에 들어가면 밖을 돌아다니는 서큐버스들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게다가, 어차피 나는 사람이니까 원주시에 도착한 생존자 흉내를 내면 서지현을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함께 싸워서 병원을 차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사탕이 있네."
나름대로 계획을 생각하며, 구멍가게 안의 찬장을 살펴보다가 사과맛 사탕 몇 봉지를 챙기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