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랜드마크 파괴
쉬익쉬익 거리는 소리를 내는 뱀들이 꿈틀거리며 우리의 몸을 노린다. 그 와중에 팔은 계속해서 휘둘러지며 우리를 다시 바닥에 떨구려고 기를 쓴다. 그래도 팔 위에 올려진 모기 잡듯이 다른 팔로 떄려잡지 않고 있는 건, 우리가 올라탄 팔의 내구도가 그런 걸 견딜 정도로 튼튼하지는 않다는 뜻이겠지.
팍 하고 내밀어진 뱀의 머리가 내 뺨 옆을 스쳐지나간다.
- 너희는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수천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수천년을 살 것이다.
오래 산 건 자랑할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서지현의 공격을 막고 있던 광석판 중 몇 개에 마법진이 새겨지는 것이 보인다. 판때기는 우리를 겨눈채 검붉게 빛나고 있다.
"서지현!"
내 외침에 서지현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뱀의 머리를 잡아챈 다음 광석 판을 향해 불꽃을 쏘아냈다. 우리를 겨누던 판 중 두 개가 부서지고, 남은 하나가 우리를 향해 뾰족하게 부러진 뼛조각을 쏘아낸다.
티티티팅, 하는 소리와 함께 뼛조각이 검에 맞아서 옆으로 튄다. 그 사이에 서지현은 조각된 뱀들을 처리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다시 복구되려고 하지만 상관없다. 서지현이 뱀을 처리한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팔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 좀."
곧이어 바람이 귀를 스치는 소리가 매섭다. 나와 서지현은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무기를 팔에 박아넣어야 했다. 녀석이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화아악, 귀를 스치는 날카로운 바람의 소리가 끝나고 온 몸에 다시 한 번 격렬한 충격이 달린다.
지니고 있던 무기가 뽑혀나가고, 나와 서지현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둘 다 무기를 놓치지는 않았다는 점인데.
우리는 다시 바닥에 착지했다.
- 으하하하하하!
몸통 위에 올려져 있는 머리통이 그런 우리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다. 그리고 다시금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날뛰기 시작한다. 합체 로봇의 팔이 바닥을 한 움큼 움켜잡고는 우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바닥에 깔려있던 정체 불명의 타일은 물론이고, 그 아래에 있던 돌덩어리 같은 것까지 우리를 향해 쏟아진다.
나와 서지현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 쏟아지는 돌조각들을 피하고 막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틈을 봐서 다시 녀석의 팔 위에 올라타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햇다.
- 소용 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군!
다시 내 몸을 향해서 수많은 뼛조각들이 날아오고, 동시에 녀석이 내가 올라탄 팔을 이리 저리 흔든다. 최대한 버텨보던 나는 결국 그 몸부림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 저 자식, 그 사이에 올라탄 녀석을 떨치는 요령을 파악한 모양이군.
공중에 떠서 벽을 향해 날아가는 내 시선에, 뭔가가 들어온다.
금이 가고, 일부가 무너져 바깥과 통하는 구멍이 난 천장이다. 뭐, 밖이라고 해도 하늘에 떠 있는 대접이 전부 가려놓은 상황이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합체 로보트가 날뛰기 시작하면서 군데 군데 무너진 천장 사이로 드러난 콘크리트 기반... 무너진 구멍 위로 보이는 저장 탱크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등이 벽에 부딪쳤다.
"크으으..."
더럽게 아프네. 살점 공예가가 만들어낸 거대 로봇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공격을 쏟아내는 중이다. 나와 서지현을 그 공격을 막아내고 피하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내가 시간 벌게."
서지현이 대답했다.
"그럼 저는 뭘 할까요."
나는 서지현의 말에 날아오는 뼛조각들을 쳐내며 낮게 말했다.
"지상으로 올라가. 저 무너진 천장 보이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거기에서 떨어지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거 아니다. 나는 우리가 하수 처리장을 오기 전에 미리 파악했던 정보들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안동 하수처리장에서는 물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를 끌어모아서 소화조라는 곳에서 발효시키지."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메탄 가스는 구린 냄새를 제거하는 탈황 작업을 마친 다음, 저장탱크에 보관된다. 나는 턱짓으로 무너진 구멍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전에 내가 날아가면서 본게 바로 그 저장 탱크들이야. 탱크 아래의 기반에 낫을 박아놓고 터뜨리면..."
기반이 무너지면서 가스가 들어있는 저장 탱크들이 이 공간으로 떨어질 것이다.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터지면 아마, 저 비석을 받치고 있는 다리 정도는 완전히 박살나겠죠."
그럼 지상에서도 저 광석 덩어리에 접근 할 수 있다.
"정확한 시간이 터뜨려야 해. 가스통 굴러 들어오기 1분 전 쯤에는 짐승의 시간을 쓸 거야."
서지현이 내 말에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10분 뒤에는 자정이에요."
"좋아, 그럼 그때를 기준으로 하자."
"열심히 버티세요. 아, 그리고... 그냥 슥 가버리면 의심할테니."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리고 도망치는 척 연기해. 하는 김에 저 문도 무너뜨려 버려."
속일 거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 서지현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서진 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짓고 서지현을 바라봤다.
"야, 야! 어디가는거야?!"
내 외침에 서지현이 나를 살벌하게 노려보며 외쳤다.
"승산이 없잖아! 나는... 내가 여기에서 죽으려고 온 줄 알아?!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이길 수 있다고 하더니 이게 뭐야! 죽어야 하는 새끼는 너 하나로 충분해!"
너 지금 연기 맞지? 듣고 있으려니 진짜 버리고 도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로 살벌한데. 말을 마친 서지현이 부서진 문 너머로 발을 딛으며 이익, 하는 외침과 함께 화염을 쏘아내 문 위의 천장을 무너뜨려 길을 막아버렸다.
"이런 씨팔 년이!"
- 여자 쪽이 조금 더 머리가 좋았던 모양인데.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가올 죽음이라면, 피할 수 있을 떄 피해두는게 상책이지.
녀석의 머리통이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며 나를 응시한다.
- 어차피 파백을 가진 놈은 여기에 남았으니... 빠른 판단에 대한 칭찬의 의미로 그 여자는 그냥 보내주는 것도 좋겠군. 웃으라고, 그래도 하나 살아남는게 어딘가? 보자, 네 녀석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볼까.
녀석은 갑자기 여유를 되찾았다. 둘은 몰라도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 그래, 샹들리에를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네 녀석의 뼈와 살로 꽤 근사한 걸 만들 수 있겠어. 특별히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만들어 주지. 나중에 저 여자를 잡을 일이 생기면 그 여자의 기름으로 양초를 만들어 올려주마. 나중에 따로 회포를 풀라고.
살아있는 샹들리에라. 나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일부러 당황한 표정을 짓고 무너진 문 쪽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서지현을 마구 욕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그걸 보면서 즐겁게 웃는다. 그리고 비석을 깎던 조각용 도구 몇 개를 팔 쪽으로 날려보낸다.
- 이런 것도 재미있지 않겠나. 역시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창작욕구가 솟구치는군 그래.
왼 팔의 형태가 변했다. 팔에 용 머리가 달려있는 모습이다. 곧바로 용머리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괴성을 지른다.
용머리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는 몸을 던져서 그 공격을 피한다. 곧바로 용머리의 방향이 내 쪽으로 틀어진다. 자세히 보니, 용의 혓바닥에 마법진이 하나 새겨져 있다. 마법진이 검붉은 기운에 휩싸이고, 곧이어 거대한 뼈기둥이 나를 향해서 뻗어나온다.
"으으극..."
바람개비를 들어 막기는 했지만 뻗어나오는 힘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대로 검으로 뼈를 막은 채로 빠르게 뒤편의 벽을 향해서 밀려난다. 프레스기에 눌려지는 꼴이 될 거다.
나는 곧장 다리에 프릭션 컨트롤을 걸고 검으로 막아낸 뼈를 확 밀었다. 내 몸이 그 힘을 추가로 받아 뒤로 더 빨리 밀려나고, 나는 가까스로 방향을 틀었다. 뼈기둥이 벽에 처박힌다. 다행이 그 사이에 내가 껴 있지는 않았다.
- 그래도 제법 잘 버티는 군 그래.
나는 그 말에 숨을 잠깐 몰아 쉰 다음 말했다.
"계집 하나 없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어. 이제와서 질질 짜며 엥엥거릴 것 같냐."
녀석이 내 말에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 그런가. 그렇군. 좋아. 네놈, 이 몸의 제안을 한 번 들어보지 않겠나.
제안? 무슨 제안. 녀석은 나를 공격하기를 중단했다. 어쨌든 나에게 있어서 나쁜 상황은 아니다. 어쨌든 시간을 벌어야 하니까.
"이제와서 무슨 소리야."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 이제까지 왔으니 하는 소리지. 알겠지만, 나는 안동역에 들어 갈 수 없지 않나? 신선한 원자재를 추가로 확보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그 장소인데 말이야.
나는 그 말에 녀석을 응시했다.
"그래서?"
- 나는 못 들어가지만 너는 들어 갈 수 있지.
이런 식의 제안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는 입가를 슥 훔치고 나서 녀석을 바라봤다.
"그래서... 나보고 그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전부 밖으로 내쫒으라는 건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 지금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게 불가능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인간은 생물이고, 생물은 번식하는 법 아닌가. 나에게 필요한 건 재료를 생산하는 부화장이야.
재료로 쓸 사람을 키워서 제공 해 줄 수 있는 장소. 나는 그 말에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랜드 클리어가 필요한 도시를 지배하는 괴물들 중에서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녀석이 이 녀석 말고는 없을까?
그리고, 이 제안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임신한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면 시간이 꽤 걸릴텐데."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 문제 될 것 없지. 육신을 조금 가공하면, 임신해서 새끼를 치는데 일주일이면 족하다. 게다가, 최소한 한 번에 세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지. 네가 고민할 사안은 아니다.
인간 목장이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툭 하고 쏘아붙였다.
"내가 그런 일을 받아들일 것 같나?"
-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있나? 장비와 싸우는 정도를 보니, 여기에서 죽어버리기에는 꽤나 아쉬운 마음이 크겠지. 게다가, 너는 방금 전에 인간에게 배신당했을텐데. 복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는 말을 하고 나서 거인의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 지금 너의 패배는 사실 상 정해져 있다. 하지만 본인이, 이 살점 공예가께서 너를 높게 사기에 이러한 제안을 하는 거다.
들어올린 손 위에는 뭔가가 음산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 나의 표식을 받아 네가 나로 하여금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파백을 포기해라.
"내가 얻는 건?"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 나에게 힘 있나니. 육신과 이어진 생의 고리를 끊고, 네 의지에 따라 육신을 다시 빚어내는 힘이다. 나의 표식을 받고 나의 뜻을 섬기고 따르라. 너 또한 삶에 집착하는 인간이고, 욕망 또한 강할 터. 안동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네가 지배할 것이다. 너는 그저, 주기적으로 나에게 재료를 헌납하면 된다.
[히든 미션 발생]
눈 앞에 문자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