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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탈옥했다-50화 (50/237)

# 50

랜드마크 파괴

광석 덩어리가 떨어지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을 날아다니던 조각용 도구들이 광석 덩어리에 달라붙어 광석을 깎아내며 형태를 잡기 시작한다.

"저건, 비석을 만드는 것 같은데요."

서지현과 함께 조각상을 상대하던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딱 봐도, 저 비석이 완성되면 우리에게 좋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서지현, 여기는 내가 담당할게."

"좋아요. 그럼."

서지현은 곧장 비석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는 광석 덩어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살점 공예가를 지키던 조각상 중 몇 개가 서지현의 뒤를 쫒는다.

"목숨만큼 중요하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자기를 지켜야 하는 녀석 중 몇 명을 빼돌려서 저기로 보낼 이유가 없다. 용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하는 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바람개비를 슥 훑어보고 나서 조각상들을 바라봤다.

"둘 중 하나만 잘 해도 충분해."

서지현이 자기에게 따라붙은 조각상을 잘 처리하고, 저 만들어지는 비석을 때려 부수려고 한다면 자연스럽게 살점 공예가는 조각상 몇 개를 저쪽으로 더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내가 녀석의 숨통을 노리는게 쉬워진다.

또는, 내가 살점 공예가의 목숨을 매섭게 노리면 비석을 지키던 조각상을 빼서 이쪽으로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서지현이 비석을 부수는게 쉬워진다.

이래도 이득이고, 저래도 이득이다.

- 귀중한 재료를 쓰게 만들다니.

항아리에 떠 있는 표정이 험상궂게 변한다. 녀석이 손을 슥 휘젓자, 녀석의 주변에 추가로 조각칼이 나타난다. 뭐, 설마 그 귀여운 조각칼로 찌르기라도 하시게?

조각칼이 바닥을 누비는 동시에, 조각상들이 나에게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차라리... 레스토랑 웨이터들이 더 강한 거 같은데. 마마 델리 비웃을 일이 아니잖아. 공예가 선생."

내 말에 녀석은 대답하지 않는다.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진 도끼를 검으로 막는 동안, 내 가랑이 사이의 바닥으로 조각칼이 슥 하고 지나간다.

저거, 도대체 뭐지. 하는 생각에 바닥을 보자. 거기에는 이상한 마법진 같은게 새겨져 있었다. 서서히, 마법진이 검붉은 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용도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곧장 막고 있던 도끼를 역으로 밀어내고는 옆으로 쭉 미끄러졌다.

마법진에서 새하얀 뼈가 확 하고 솟구쳐 올라온다. 엄청나게 커다란, 끝이 뾰족하게 부러진 갈비뼈다. 서 있었으면 산 채로 꿰어질 뻔했다.

- 나 정도 되면, 직접 움직이는 것 보다는 아랫것들을 움직이는게 더 익숙하지.

그러셔? 나는 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는 조각상들을 향해서 마구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것들도, 부서지면 회복되지 않을거다. 녀석들의 몸에 검이 박혀 들 때 마다 계속해서 귓가에 쩌적, 하는 소리가 들린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서지현이 꽤 고생 중이다. 나는 몰라도, 서지현이 부순 조각상들은 쉬지 않고 모습을 회복하며 계속 서지현을 압박하는 중이다.

조각용 도구는 이미 비석의 모습을 다 완성시키고, 비석에 글자를 새기는 중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오답이었던 모양인데."

둘 중 하나만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하면 되지만, 그러기가 힘든 상황이다. 나도 살점 공예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서지현도 비석의 완성을 방해하는데 실패했다.

이거, 따로 움직이면 안된다. 결론을 내린 나는 파랗게 빛나는 바람개비의 코등이를 확인하고, 살점 공예가를 지키는 조각상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우선은 저 신경쓰이는 비석부터 처리해야겠다.

바람개비에서 쏟아진 폭풍이 살점 공예가를 지키는 조각상의 움직임을 잠시 멈춰두었다. 그 사이에 나는 바닥을 미끄러져 광석 덩어리 쪽으로 돌격했다.

"잘 좀 지켜줘!"

"그 정도는 문제 없어요!"

광석 덩어리를 지키던 조각상들이, 내가 달려드는 것을 확인하고 막기 위해서 덤벼든다. 달려든 조각상들의 몸에서 일제히 폭발이 일어나 박살난다. 부서진 파편들이 살짝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폭발로 달궈진 공기를 뚫고 비석 앞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뛰어올라 비석의 중심에 검을 박아넣었다.

"부서져, 부서져!"

검이 박혀들고, 나는 검의 손잡이 부분을 손으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휘둘러진 손에서 날 수가 없을 것 같은 살벌한 소리와 함께 비석에 박혀든 바람개비가 점점 더 그 칼날을 비석 깊숙히 밀어넣는다. 광택이 도는 붉은 비석에 거미줄같은 잔금이 번지기 시작한다. 서지현이 그걸 슬쩍 확인하고는 내가 비석에 매달려 있는 곳 바로 아래에서 접근하는 조각상들을 쉬지 않고 박살내기 시작한다.

조각상을 박살낸 다음에, 비석을 공격할 시간을 벌 수가 없어서 그렇지, 단순히 접근하는 조각상만 박살내는 거라면 어려울 일이 없다. 나도, 방해 없이 계속해서 비석에 박힌 바람개비에 손망치질을 했다.

자루만 남기고 바람개비가 완전히 박혀 들었다. 다시 바람개비를 뽑아낸 나는 비석의 뒤편으로 돌아가서 다시 바람개비를 박아넣고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매달려서 망치질을 하던 와중, 조각칼이 바닥을 슥 스치고 지나간다.

"이 정도면."

서지현이 그걸 보고는 곧바로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검붉은 빛을 내던 마법진에 서지현의 손이 닿자, 그 음침하기 짝이 없던 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마력 운용도 강화했던 모양이네.

- 이 자식들이!

살점 공예가를 지키고 있던 조각상 대부분이 광석 덩어리 쪽으로 달려들고. 바닥을 누비는 조각칼이 수십개의 마법진을 새기기 시작한다.

"몇 마리 흘렸어요, 미안!"

미안할 거 없어. 이래서는 서지현이 혼자서 전부 처리하기를 바라는게 양아치잖아.

내 쪽으로 뛰어올라 달려드는 조각상이 몇 개 보인다. 망할 새끼들.

나는 비석에 박힌 검에 의존한 채로 녀석들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기 시작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비석이 부서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녀석들의 공격은 굉장히 소심했으니까.

그 소심한 공격을 전부 피한 나는 확 손을 뻗어서 한 녀석의 머리를 확 잡고 비석에 박힌 바람개비의 손잡이 쪽으로 당겼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상의 머리통이 손잡이를 들이받는다. 조각상의 머리통에 금이 가고, 마침내 앞 뒤로 금이 쩍쩍 가 있던 비석이 박살나 무너진다.

"후우."

바닥에 착지한 나는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비석이 무너지자 마자 조각상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다시 살점 공예가에게 달려가, 그의 주변에 진형을 잡았다.

"지금 30분이나 지난거 알아요?"

"그래?"

나는 서지현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안동시에 뿌려진 살덩이들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럼 간단한 추론이 가능하지. 나는 박살난 비석을 발로 툭 차고는 말했다.

"이게 완성되면 돌아오는 모양이네. 그치?"

그러니 자기 목숨만큼이나 기를 써서 지키려고 했던거다. 일단 살덩이들을 다시 여기로 불러모을 수만 있다면 그 다음에 우리를 쓸어내는 건 일도 아닐테니까.

- 변하는 건 없다.

살점 공예가의 말과 함께, 다시 하늘에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졌다. 아까 봤던 그 광석 덩어리랑 똑같은 색깔의 광석 덩어리다.

"이런 씨..."

여기가 편의점이냐, 1+1은 무슨 망할 놈의 1+1이야.

- 그리고... 쉽게 해결될 상황이 아니군. 재료를 낭비하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

다시 하늘에서 몇 개의 광석 덩어리가 떨어진다. 비석을 만드는데 사용했던 광석 덩어리보다는 색이 투명한 편이다. 지금 살아 움직이며 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하는 조각상과 비슷한 정도다. 대신 크기는 훨씬 거대하다.

- 여기까지 쓴 이상...!

주변을 날아다니던 조각용 도구들은, 이번에는 곧장 색이 진한 광석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 떨어진 색이 연한 광석 위를 누비기 시작한다. 색이 진한 녀석을 조각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속도다. 뭘 해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팔다리...?"

조각된 것은 거대한 팔 한 쌍과 다리 한 쌍이었다. 곧바로 조각칼이 다시 짙은 붉은 색의 광석에 달라붙는다.

이번에는 바로 비석의 형태로 깎아내는 대신, 광석 덩어리에 뭔가를 새기기 시작한다.

"아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합체는 아니잖아."

조각된 거대한 팔과 다리가 비석을 몸통 삼아 달라붙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서 시비를 걸던 조각상들이 으직거리며 납작한 판 비슷한 형태가 되더니, 몸통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붉은 광석 덩어리에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한다.

그렇게 갑옷이 완성되었다.

다 좋은데. 나는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곧바로 살점 공예가에게 달려들었다.

"저렇게 다 저기로 보내면 너는 어쩌려고?"

고속으로 달려들어 바라본 항아리에는, 웃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바람개비가 몸통 위에 올려져 있던 항아리를 작살낸다.

왜 웃고 있었던 거야. 뭐 힘들 떄 웃는 놈이 일류다 그거냐. 순간적으로 내 시선이 녀석의 몸을 훑는다.

잠깐. 이 새끼... 손에 들고 있던 머리통 어디갔어.

내 시선이 곧장 방금 전에 완성된 합체 로보트 쪽으로 향했다.

"저게 왜 저기있냐."

내가 찾던 머리통은 합체 로봇 안에 들어가 있었다.

- 끝이 다가왔다!

끝이 다가오기는. 딱 봐도 이제 2 페이즈 시작인 것 같구만. 다시금, 조각용 도구들이 합체 로봇의 몸을 깎아내기 시작한다. 비석을 만들기 위해서. 진짜 다행인 점은, 아까 뚝 떨어진 광석 덩어리를 비석으로 깎아낼 때처럼 빠르지는 않다는 점이다.

아까 비석에 글자를 새길 때 30분이 지났다고 했었나? 지금 깎는 속도라면 완성에는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보통 변신 로봇은 선역이 타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다. 왜 악역이 변신 로봇을 타고 있는거냐.

"어쨌든, 이러면 오히려 저는 편할 것 같은데."

그렇지, 원거리에서 펑펑 터뜨릴 수 있으니까. 더 이상 방해꾼도 없고. 서지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곧장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글거리는 불덩이 몇 개가 길게 불꼬리를 남기며 비석을 향해 질주한다.

- 그렇게 둘 순 없지.

광석 덩어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던, 조각상이었던 넓은 판이 광석 덩어리를 향해 날아가던 불덩이로 들이밀어진다. 폭음과 함께 판이 박살나고, 이내 순식간에 다시 복구된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다른데."

서지현이 살짝 뒷머리를 긁는다. 괜찮아. 저쪽도 멍청이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아까 항아리로 쪼개는 표정 지어놓고 도망칠 때도 그랬지만, 나름 철저한 녀석이다.

- 죽어라, 벌레같은 놈들!

녀석이 우리를 향해 손을 들어올리는게 보인다. 우리는 곧바로 손이 내려찍히는 장소를 피했다. 충격파가 한 번 몸을 후려치고 지나간다. 귀가 다 먹먹할 지경이다. 저거 맞으면 능력치가 얼마건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괴적인 힘이다.

바닥에 때려박힌 손이, 그대로 바닥을 쓸어내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팔을 향해 뛰어오른 나는 그대로 팔목 위에 검을 박아넣고 팔 위에 올라타는데 성공했다. 서지현도 마찬가지로 낫을 박아넣어 팔 위에 올라탔다.

허공을 떠다니던 조각용 도구들이 우리가 팔 위에 올라타자마자 팔 위를 누빈다.

이건 뭐야. 뱀 머리? 도구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뱀의 머리 몇 개가 조각되어 있었다. 생명을 얻은 뱀의 머리통 몇 개가 우리를 보며 혀를 날름거린다.

그래. 올라타는데는 성공했지만, 곱게 도착하는 건 힘들겠구나. 이 세상이 날로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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