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맨홀 아래
마마 델리와의 싸움 후 며칠만에, 나와 서지현은 함께 안동역 밖으로 나왔다.
다쳤던 몸이 완전히 회복하는 데에는 꼬박 5일이 걸렸다. 나는 회복속도에 불만이 있었지만, 서지현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회복이 느리다고 불평하자 이 정도로 빠르게 몸이 회복되었으면 의사들이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었을거라고 말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역청 같은 붉은 덩어리가 서서히 형체를 갖추어 거인의 형상이 된다. 몇 쌍인지 알 수 없는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응시한다. 한 쌍의 눈이 노려봐도 기분이 나빠지는데. 수십개의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으니 몇십배로 기분이 나빠진다.
"어떻게, 조금 도와드릴까요?"
5일간 나를 간호해주었던 서지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몸을 풀기 위해서 일부러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괴물들을 찾아다닌건데, 여기에서 서지현이 도와주는 건 의미가 없다. 게다가, 새로 배우고 강화한 스킬들도 시험해 봐야지.
물론 서지현은 나름대로 익숙해졌던 검 대신 에노테르로 무기를 바꾸긴 했지만, 내가 회복하는 동안 일부러 김아은을 도와 이것저것 하면서 새로 얻은 무기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상황이다.
"알았어요."
그리고 눈 앞의 괴물이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공격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던 나는 일부러 바람개비를 늦게 휘들러 크로스 카운터 상황을 만들었다.
후발선타가 발동하며 휘둘러진 바람개비에 확 속력이 붙는다. 그리고, 내 몸의 움직임에도 확 하고 가속이 붙는다. 서로의 몸을 동시에 공격해야 했던 상황에서 내 검은 괴물의 몸을 쑤시고, 자연스럽게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기분 좋은 쩌적, 하는 소리.
- 그.. 으어... 그어.
"뭐라는거야 새끼야,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말해."
괴물은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집어들고 안간힘을 쓰지만, 다시 붙거나 팔이 자라날 리가 없다.
[후발선타 : 상대와의 크로스 카운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당신의 공격은 무조건 먼저 적중하고, 상대의 공격을 피할 기회를 가집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그게 뭔가요?]
자그마치 950pt나 주고 강화해야 했다. 점프 스케어의 강화에 필요했던 pt가 250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강화에 말도 안돼는 수준의 pt를 필요로 했지만,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크로스 카운터가, 크로스 카운터가 아니게된다. 나는 떄리고 너는 맞는 극한의 이득. 그냥 공격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저 정도의 pt는 투자할 가치가 있는데, 심지어 내가 들고 있는 이 바람개비에는 파백까지 끼워져있다.
반사신경 3단계가 적용되고 나서 후발선타의 강화 옵션을 알게 된 나는 이것저것 따져 볼 필요도 없이 바로 후발선타를 강화했다.
"그리고... 서지현, 미안한데 시간 좀 재줄래?"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목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새로 배운 스킬도 한 번 써봐야지.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외쳤다.
"지금부터 재줘."
[짐승의 시간 발동]
눈 앞에 문자가 떠오른다. 나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고 공격은 하지 않으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효과 있는데."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고, 바람개비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붙는게 느껴진다.
내 움직임은 한 순간 한 순간이 지날 때 마다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는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이동하는 동안 주변의 사물을 제대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여기까지!"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그대로 괴물에게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바람개비로 날려버렸다.
[짐승의 시간 종료]
화악, 하고 몸에서 힘이 쪽 빠져나간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들어서 몸이 휘청거린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호흡을 몰아쉬고 있던 나는 서지현을 보며 말했다.
"몇 초 걸렸어?"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87초."
그래...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87초면... 스킬 발동을 멈추고 나서 탈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17초 정도다. 나는 스킬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짐승의 시간 : 쥐어짜면 마른 걸레에서도 물방울이 나온다고들 하죠. 전반적인 신체의 능력을 계속해서 끌어올립니다. 스킬을 사용 할 시 매 초 사용자의 육체 능력치가 점점 상승합니다. 유지 시간과 상승하는 능력치의 한계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스킬로 인해 상승한 육체 능력치가 사용자의 감각 스탯보다 높아지게 되면 점점 주변의 사물을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게 됩니다. 스킬 사용을 중단하면 유지한 시간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만큼 탈진 상태에 빠져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됩니다.]
"방금 전에 그게 새로 배운 스킬이에요?"
나는 서지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850pt를 주고 산 스킬이다.
"짐승의 시간이라고, 다 좋은데 너무 오래 유지하면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문제야."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눈에 뵈는게 없는 상태가 되는 거네요. 그래서 짐승의 시간인가?"
그런 걸 수도 있지. 눈에 제대로 뵈는게 없으면 철저히 본능에 의존해서 움직여야 할 테니. 짐승의 시간을 오래 유지하고 싶으면 감각 능력치를 올려야 한다.
"스킬이야 그렇다 치고, 몸 상태는 어떄요."
"완전히 나았어. 너는 그 동안 김아은의 일을 꽤 도왔잖아. 좀 익숙해졌나보지?"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뭐어, 나름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 궁금하면 한 번 직접 보실래요?"
표정을 보니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 잠시 안동시를 뒤지고 다니던 우리는 다섯 마리의 괴물들이 도로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발견했다.
"해봐."
내 말에 서지현이 에노테르를 손에 쥔 채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장 낫을 휘둘러 한 녀석의 정수리를 콱 찍었다.
"폭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멍하니 서지현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에노테르의 날은 괴물의 머리통에 박힌채, 날의 뒤쪽에서 쾅, 하는 폭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는다. 폭발의 힘이 더해진 에노테르의 날이 괴물의 정수리에 한 더 깊숙하게 박혀든다.
그리고 다시 폭음과 함께 괴물의 머리통이 작살난다. 서지현은 낫에서 일어난 폭발의 반동을 이용해 허공에서 한 바퀴 돌고, 그대로 착지했다.
계속해서 뭔가가 쾅쾅 터지는 소리와 함께 서지현은 소리만큼이나 폭발적인 가속도를 받아 땅 위를 누비며,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괴물을 깔끔하게 토막친다.
"꽤 익숙한 거 같지 않아요?"
서지현이 낫의 자루로 탁 하고 도로를 두드리자 깡, 하는 맑은 금속음이 울려퍼진다.
"우리가 다시 제일 처음 경험했던 그 거울 미로로 돌아가면 클리어에 얼마나 걸릴까?"
내 말에 서지현이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컵라면 불기 전에 끝내고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다. 일단, 목적은 달성했다. 내 몸 상태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새로 배운 스킬과 강화한 후발선타의 테스트도 끝났다. 서지현도 일주일 동안 참 다양한 의미로 굉장해졌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럼 다시 마저 진행해야지."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아은 씨가 슬퍼하겠네요. 도움이 많이 된다고 엄청 칭찬하던데."
"그거야, 혹시 열심히 칭찬하면 계속 도와주지 않을까 해서 그러는 거겠지. 칭찬은 공짜잖아?"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안동역으로 돌아온 우리는 지도를 펼쳐놓은 채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랜드마크는 어디에 있을까.
"이름이 랜드마크잖아요. 유명한 장소가 아닐까요."
나도 그 생각을 해보기는 했다.
"안동에서 제일 유명한게 뭔데?"
내 말에 서지현이 대답했다.
"일반적으로는 하회마을을 떠올리지만... 그럴 리가 없죠."
그렇겠지. 하회마을은 후보로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거기는 여기에서 너무 멀거든. 하회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아마 안동 구역의 경계선을 먼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설마하니 갈 수도 없는 곳에 랜드 마크를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거다.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어. 쉬면서 생각해본 건데."
내 말에 서지현이 턱짓을 했다.
"들어볼게요."
나는 서지현이 박살낸 시체를 바람개비로 가리켰다.
"저거 잘 살펴봐. 땅으로 흡수되는 중이지?"
서지현이 박살낸 괴물의 잔해는 부서진 아스팔트의 틈으로 서서히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저 녀석 뿐이 아니었다. 안동 대학교에서도 그랬었다. 죽은 괴물의 시체는 땅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땅 아래에 뭔가 있다는 건가요."
가능성이야 충분하지.
"생각해보면 붉은 포식도 그렇잖아. 건물을 뒤덮고 있던 그 시뻘건 살점들이 해가 뜨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안동역은 그 잔해들로 발 딛을 틈도 없게 되었을 거다. 빨려들어간 괴물과 붉은 포식의 잔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지하라, 맨홀 뚜껑이라도 열어 봐야 하려나."
서지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한 번 열고 들어가 볼까."
내 말에 서지현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말햇다.
"그럼 오늘 빨래는 오현석 씨가 하는 편이 어떨까요. 제가 들어가자고 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걱정된다면야. 내가 빨지 뭐. 게다가 저 너머에서 뭔가 뽕을 뽑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 번 살펴나 보자는 식으로 들어가보는 거다. 안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그렇게 합의를 마치고 나서 나는 바닥의 맨홀 뚜껑을 바라봤다.
"보자."
바람개비를 콱 하고 맨홀 뚜껑 틈새에 쑤셔넣은 다음, 그대로 지렛대러럼 활용해 뚜껑을 살짝 들어올리고, 손으로 잡아 들어올렸다.
"맨홀 뚜껑, 꽤 무겁다고 들었는데. 번쩍 들어올리시네요."
뭘 새삼스럽게. 옆으로 맨홀 뚜껑을 치우자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맨홀 뚜껑이 아스팔트 바닥을 때린다.
"..."
서지현과 나는 맨홀 뚜껑 너머의 냄새에 코를 막았다.
"이거, 오물 냄새가 아닌데."
내 말에 서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히려 좀 익숙한 악취네요."
시체 냄새다. 나는 맨홀 뚜껑 너머로 손전등을 던져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손전등이 보인다. 이 정도 높이라면 뛰어내려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 전에.
"환풍부터 할까."
괜히 들어갔다가 질식 당하면 나만 손해잖아. 나는 바람개비를 뽑아들고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어느정도 충전된 바람개비를 휘둘러 맨홀 뚜껑 아래에 공기를 불어 넣은 나는 곧바로 입을 마스크로 가린 다음, 맨홀 뚜껑 아래로 몸을 던졌다.
맨홀 뚜껑 아래는 생각과는 다르게 꽤 건조했다. 그리고, 코 끝을 찌르는 시체 썩는 것 같은 냄새도 여전하다.
"어때요?"
서지현의 물음에 나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벌레가 없어."
맨홀 뚜껑 너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물의 악취와 함께 온갖 버러지들이다. 하지만, 하수구 너머에 악취는 시체 냄새로 대체되었고, 벌레들은 온데간데 없다.
"..."
맨홀 뚜껑 아래에 놓여있는 거대한 파이프 관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하지만 액체는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상수도고 하수도고 함께 세트로 맛이 간지 오래니까. 파이프 안에 액체가 흐르고 있지 않은게 당연하지.
하지만 구멍이라. 대놓고 수상한데. 수도 파이프가 구멍이 나 있으면 안되는거잖아. 파이프에 구멍이 나있으면 그게 수도관이냐, 리코더지.